쉬는 날들 동안 책을 읽었다. 말러의 음악을 방안 가득 틀어놓고 침대에 대자로 뻗어 누워 책을 읽는 맛은 그 무엇에도 비길 바 없는 행복의 한 장면이다. 나이가 들면 좋은 것이, 내가 좋아하는 것과 싫은 것이 명확해진다는 것. 누구의 눈치도 살필 필요가 없이 내가 좋아하는 것을 "아 내가 좋아하는 거구나" 라며 누릴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말하자면, 시간이 남을 때 뭔가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행위들을 하지 않고 '나' 위주의 생활을 할 수 있는 것이 그 시작이다. (아 근데, 말러의 음악들, 요즘 마음에 팍팍 꽂힌다. 인생을 좀 살아본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그런 감정이 목구멍까지 밀려올라온다)


 

 

 

 

 

 

 

 

 

 

 

 

 

 

 


 

다 합하면 1,000페이지가 넘어가는 이 장대한 에도시대 소설을 읽으면서 나는, 밥먹는 것도 귀챦고 TV 보는 것도 귀챦고 노트북에 전원을 넣는 것도 귀챦았다. 재미있고 흥미진진하면서 따뜻한 미미여사의 에도시대 소설이 내게 쥐어져 있다는 것만으로도 뿌듯한 시간들이었다. 원제는 <おまえさん (그대? 당신?)> 이지만 우리나라 제목은 진상. 어머 진상이야의 진상이 아니라 (어감은 썩 좋지 않다..;;;) 사람의 진짜 모습? 뭐 이 정도로 생각한 것 같다.

 

<얼간이>나 <하루살이>에 나왔던 그 주인공들의 재등장. 그리고 미미여사의 한 마디.

이번에는 농도 짙은 연애소설을 써보고 싶었습니다. 헤이시로와 부인도 결혼하고 세월이 꽤 오래 지났지만 사이가 무척 좋습니다. 제가 이상적으로 여기는 부부입니다. 부럽기 짝이 없습니다. 마루스케와 오만도 무척 행복했다고 생각합니다. 오토쿠는 비록 남편이 죽었지만 계속 소중하게 마음에 담아두고 있습니다. 한편으로 여러 사람의 슬픈 사랑도 있습니다. 사랑이란 매우 잔혹한 것입니다. 터무니없는 정열이 결실을 맺어 결혼을 하더라도 그 감정이 지속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랑은 언젠가 식는 것이니까 그 잔혹함과 허무함도 써보고 싶었습니다.

 

남녀의 사랑과, 외모의 미추와 에도시대 장남이 아닌 아들들의 운명과, 등등등의 이야기들이 날실과 씨실이 짜맞추어지듯 잘 엮어진 이야기이다. 마지막까지도 참 긴장을 늦출 수 없는 내용이기도 하고. 미미여사는 어떤 사람일까. 다시한번 궁금해지는 책이었다. 어떤 사람이길래 이런 이야기들을 이렇게 자연스럽게 이렇게 정감있게 때론 유머러스하게 적어갈 수 있는 것일까.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의 줄리언 반스. <예감은...>을 읽으면서 줄리언 반스의 책들을 좀더 봐야겠다 했었고 그 중 처음으로 구매한 게 이 책 <플로베르의 앵무새>이다. 소설가 귀스타브 플로베르의 작품과 인생을, 비평과 환상을 절묘하게 조합하여 풀어낸 이 책. 기법도 상당히 다양하여 현대의 소설에서 실험해볼 수 있는 다양한 방법들을 잘 도입한, 역작이다. 읽는 내내, 이렇게 재미없을 수 있는 소재를 이리 읽지 않고는 못 배기게 써내려간 작가에게 경의를 표했다. 그리고 플로베르라는 작가에 대해 궁금증이 생겼다. <마담 보바리> 이 책이 아마도 우리에게 가장 널리 알려진 책일텐데 (D.H. 로렌스가 <채털리부인의 사랑>으로 유명한 것처럼, 정비석이 <자유부인>으로 유명한 것처럼) 제대로 읽어본 적은 없는 것 같다. 필시, 너무 유명한 책은 오히려 다 읽어내지 않고도 다 읽은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곤 하는데, 이 책도 그 부류 중의 하나이다.


 

 

 

 

 

 

 

 

 

 

 

 



 

 

요 책은.... 아... 조금씩 조금씩 아껴가며 보고 있다. 도쿄라는 곳은 매우 화려한 도시이기는 하지만 구석구석 이런 공간들이 있어 매번 가도 질리지 않는 곳이다. 우리도 그렇지만 동네서점이라는 것이 얼마 못 버티고 턱턱 나가떨어지고 있는 요즘에, 이런 다양한 서점들이 곳곳에 자리매김하고 책을 찾는 손님들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기쁜 일이 아닐 수 없다. 원전 사고 나고서는 도쿄에 가는 게 좀 망설여지곤 해서 가지 못했는데, 다음에 갈 때는 서점 위주로 한번 여행을 해봐야지 싶다. 책도 좀 사오고.... 같은 현광사MOOK에서 나온 <도쿄의 북카페>도 참고로 하고.ㅎ

 

 

 

 

 

 

 

 

 

 

 

 

 

 

 

 

 

 

현재 읽고 있는 것은 노르웨이 작가 요 네스뵈의 <레드브레스트>. 이 아저씨 책은 재미는 있는데, 아 너무 두꺼워...;;;;; 도대체 700페이지 가까이 되니 선듯 들기가 무섭지 않냐 이말이다..;;; 지금도 책 보면서 깔릴까 두려운 나머지 엎드려 보거나 옆으로 보거나 암튼 머리 위로는 들고 보지 않는 자세를 유지하고 있다... 근데 일단 재미있다. <스노우맨>이 마틴 스콜세지 감독에 의해 영화화한다는데, 누가 나올까. 특히 해리 홀레 반장으로 말이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라는 얘기가 도는데, 오호. 그렇다면 반.드.시. 봐야 한다...(라고 하지만 아직 <위대한 개츠비>도 못 본 비연..ㅜ)


 

*************************

 

 

일요일이 가고 있다. 평온한 하루하루의 일상이 소중하게 느껴지는 요즘, 기도하는 마음이 된다. 여전히 말러의 심포니 1번을 들으면서... 일요일을 마무리한다..

 

뱀꼬리) 그저 내 마음을 요즘 어지럽히는 게 하나 있다면... 두산의 5연패. 오늘 드디어 삼성한테 스윕을 당했다. 그래서 이제 6등이라는 것. 아 정말... 속상할 뿐이다. 에잇.

 


댓글(4)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숲노래 2013-06-10 08: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즐겁게 새 하루 누리셔요.

저는 1982년 원년 삼미팬클럽 가운데 하나인데, 삼미도 청보도 태평양도 5연패뿐 아니라... 훨씬 기나긴 연패도 많았답니다. 그저 즐거이 믿고 기다리시면 앞으로 잘 할 테니, 좋은 마음으로 지켜보시면 되리라 생각해요.

비연 2013-06-10 12:40   좋아요 0 | URL
아... 삼미 팬이셨군요!
기대치만큼 안되면 참 경기 보는 것도 즐길 수 없고...그러면 안되는데.
즐기는 마음으로 봐야겠어요, 함께살기님.

Mephistopheles 2013-06-10 12: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 네스뵈의 소설은 일단 엄청난 분량을 자랑하긴 하지만,

1권 2권으로 나눠버리는 출판사의 만행은 없어서 다행이지 뭡니까.

그리고 엄청 빨리 읽히다 보니까. 무겁다는 생각은 그닥 안들긴 하더라고요.

하긴 책이 왜이리 두껍냐고 투덜거리면 아마도 작가는

"세상이 다 그렇지 않나요?" (해리 홀레 왜이리 괴롭히냐 묻는 기자 질문에 대한 답변)

란 시니컬한 답변을 내놓을지도....

비연 2013-06-10 12:39   좋아요 0 | URL
ㅎㅎㅎ 하긴. 두 권으로 분권하여 값을 1.5 배 이상 받는 것보단 낫겠네요..
가끔 책에 깔릴까 두려운 것만 빼곤.. 이 책도 엄청 재미나더라구요..ㅎㅎ
그나저나 해리 홀레의 대답. 정말 멋져요!
 

 

기한 지난 원고를 써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아침부터 일찍 일어나서 대충 준비하고 노트북이랑 바리바리 싸들고는 집 앞 투썸플레이스로 나왔다. 집 앞에는 카페가 한 두개가 아니지만, 인터넷이 자유로우면서 좀 조용하면서 앉는 자리가 널찍한 곳은 찾기가 힘들다. 별다방 콩다방은 이른 아침부터 수다하는 아줌마들과 뭔가 오타쿠같은 느낌을 팍팍 풍기는 아저씨들에게 점령 당해 들어가자마자 나와버렸고.. (무엇보다 전선 연결할 수 있는 자리를 다 점령당했다는 게 컸지ㅜㅜ) 결국 10여 분 걸어나와 이 곳으로 왔다. 여기는 좀 떨어져 있어서 그런지 내가 바라는 요건들이 대체로 갖추어져 있다. 지금 이 카페에 나 혼자라는 거. 아. 이 카페 망하는 거 아냐. 이 비싼 땅에.

 

조금 전까지는 내 옆에 부녀가 앉아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었더랬다. 아이는 중학생 정도. 아버지는 겉보기에도 문화예술인인 것처럼 보였는데 역시나 (들으려고 하지 않았으나 내 귀에 그냥 흘러들어오는) 대화로 미루어보건데, 뭔가 예술인이었다.

 

딸: 아빠. 이번에 예술제(?)에서 상 받아?

아빠: 그건 말이지. 낙타가 바늘 구멍에 들어가는 것보다 힘들어.

딸: 그래? 쉽네. 낙타를 갈아. 그래서 바늘 구멍에 넣으면 되지.

 

참으로 훈훈한 대화가 아니냔 말이다..푸히힛. 암튼 나긋나긋한 목소리의 아빠는 딸에게 절약해야 한다는 거, 친구들은 어떠냐는 거, 이것저것 물어보았고 아이는 그냥 대충대충 대답하는 수준이었지만 그래도 토요일 아침 부녀가 나와서 '대화'라는 걸 하는 걸 보니 저 집안은 소통은 되는 집안이군.. 이란 생각을 잠시 했다.

 

아. 원고는 한달이나 기한이 있었는데 그동안 뭐했을까. 요즘 여러가지 개인적인 사정으로 생활이 엉망인지라 이것도 저것도 못하는 몇 달이 이어지고 있고.. 그게 또 하나의 스트레스로 나를 짓누르고 있다. 좀 편하게 편하게 지내야지 싶은데 그게 잘 안되는 건, 역시나 성격 탓이다..


 

요 책을 집중해 읽어서 어제 다 읽어버렸다. 상당히 독특한 문체의 책이었고 내용도 대단히 인상적이었다. 문학은 혁명이고 혁명은 텍스트에서 비롯되며 이건 세상이 망한다 망한다 해도 한참 멀은 종말론에 휩싸여 문학이 끝이라는 둥 하는 얘기로 좌절하는 건 말도 안된다는 얘기를 특유의 화법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그걸 설명하기 위해 루소가 나오고 도스토예프스키가 나오고 버지니아 울프가 나오고 중세 혁명 얘기가 나오고.. 다양한 인물들과 사건들을 등장시키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논지를 이어가고 있다. 오호. 보기드문 재미난 책이었다.

 

이제 막 시단에 새로이 등장한 폴 발레리가 스승으로 우러러보던 스테판 말라르메에게 詩作의 충고를 구하는 편지를 쓴 적이 있습니다. 말라르메는 어떻게 답장을 썼을까요? "유일한 참된 충고자, 고독이 하는 말을 듣도록" 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아름다운 일화입니다. 자신이 하는 말도 듣지 말라는 얘깁니다. 누구의 '부하'도 되어서는 안 되고 누구의 '명령'도 들어서는 안 됩니다. 르네 샤르나 콘스탄티노스 카바피스가 시로 쓰고 있는 듯한, 일종의 거절이라는 것이 거기에 있다고 생각됩니다. (책 중에서)

 

계속 흥미를 가지고 있을 만한 사상가이다. 사사키 아타루. 책을 자주 낼 것 같지는 않지만 나온 책이라도 번역되고, 앞으로 나올 책들도 계속 번역... 이 아니라 내가 원서를 읽을 수 있도록 일어를 더욱 열심히 해야겠다..^^;;;;

 

 

이번 주말의 쟝르소설은 누쿠이 도쿠로의 <미소짓는 사람>이다. 흠.. 그러고보니 계속 일본사람들 책만 읽는 주간이구만. 흠... 그래도 누쿠이 도쿠로의 이 책은 바로 읽고 싶다. 사회파 미스터리 작가로 그 역량을 충분히 발휘하고 있는 사람인데다, 내가 좋아라 하는 기법으로 썼기 때문. 르포르타주 형식의.

 

 

 

 

 

 

 


 

아직 <~ 증후군> 시리즈는 읽지 않았다. 뭐랄까. <우행록>을 읽고 난 후였던가. 이 사람 책은 당분간 보지 말아야겠다 싶었다. 날 심리적으로 넘 괴롭힌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버거운 감정을 주었었던 것 같다. 그러고보니 꽤 오랜만에 읽게 되는 것 같네. 누쿠이 도쿠로 아저씨. 반갑슴다~

 

일하자. 원고기한도 넘겼는데 제대로 써주기나 해야지 않겠는가. 벌써 12시가 다 되어간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런 거 얘기하면 연식이 다 드러나는 것이긴 하지만... 나는 DJ 이종환의 심야방송 '밤의 디스크쇼'를 들으며 학창시절을 보냈었다. 어두운 밤, 굵으면서도 감칠 맛 나는 DJ가 진행하는 라디오방송은 내게 있어 복음과 같은 것이었다고나 할까. 그를 통해 엘비스 프레슬리를 알았고 신디 로퍼를 알았으며 티나 터너를 알았다... 뭐 더 말 하면 무엇하겠는가. 이종환 DJ가 오늘 돌아가셨고 이로써 또 하나의 세대가 막을 내린 기분이 든다.

 

여차저차 많은 사연들이 있었던 분이라 나중엔 큰 호감을 품진 못했지만, 어쨌거나 척박한 시절에 음악 하나 벗으로 삼아 가난한 통기타 가수들과 청춘을 보내고 그들을 키우고 팝송 가락 속에 인생을 음미하며 영원히 라디오 옆에 자리했던 것 만큼은 존경스럽다. 뭐든, 자기가 좋아하는 것에 필이 꽂혀 평생을 다한다는 것. 그건 누구나가 선망하는 일일 수도 있지만, 생각만큼 아름다운 길만은 아니기 때문에 더 하다.  

 

요즘 DJ 들은 전문성이 너무 떨어져서 말이다..=.=;; 이종환이라든가 김광한이라든가 김기덕이라든가 이들 예전 DJ들의 그 해박한 지식과 열정, 입담...을 따라갈 자가 있는가 싶다. (머릿속으로 한참 생각했지만 그닥 떠오르지 않는다..쩝) 그저 얄팍한 지식으로 우스개소리나 하고 리액션이나 하는 젊은 사람들과는 달리, 물론 웃기고 재미있고 리액션도 했지만 그 속에는 수많은 팝송과 가요에 대한 지식이 담겨져 꾸욱 누르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터져 나올 것만 같은 깊이가 있었다. 실력은 말로 안 해도 다 드러나는 것이고 말로 나오면 바닥까지 보이게 마련. 그래서 아쉽다. 75세라면 요즘 세상에 더 계실 수 있는 연세였는데...

 

내가 학창시절에 알던 분들이 한분 한분 저 세상으로 가는 것을 확인하면서, 그렇게 나도 나이가 들어가나 보다. 인생은 찬란함만이 있는 것이 아니며 병마와 고통과 죽음도 함께 한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는 요즘이다.

 

고인의 명복을 진심으로 빈다.

제 학창시절의 빛나는 부분에 함께 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댓글(8)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ceylontea 2013-05-30 14: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니까요.. 학창시절에 알던 분들이 그렇게 한분 둔분.. --;

비연 2013-05-30 15:20   좋아요 0 | URL
마음이 아파옵니다....;;

노이에자이트 2013-05-30 15: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수 출신 디제이 중엔 요즘은 김C가 음악에 대해 해박하더군요.배철수 씨도 그렇고...성시경 씨도 지적인 진행솜씨가 괜찮습니다.

이번 달 부터 기독교 방송에서 김광한 씨가 진행하는 음악방송이 생겼습니다.

비연 2013-05-30 15:22   좋아요 0 | URL
아.. 배철수씨도 있군요. 김광한씨는 아직도 활동하고 계시는군요..

세실 2013-05-31 16: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종환의 밤의 디스크쇼 입니다. 빠바바..... 들었던 기억이 나네요.
참 좋았는데 돌아가셨군요.

비연 2013-06-01 00:21   좋아요 0 | URL
네... 그 오프닝 음악도 참 인상적이었는데...
그 오프닝 음악을 들을 때마다 느꼈던 반가움이 되살아나는 것 같아요.

솔개17 2020-08-26 23: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하고 비슷한 세대이시군요 . 그런데 이기덕이 아니고 김기덕입니다 ㅎㅎ

비연 2020-08-27 10:32   좋아요 0 | URL
헉. 2013년 페이퍼에 댓글이 달려서 깜놀했습니다만.... 말씀해주신대로 김기덕으로 고쳤습니다^^
지난 7년 동안 김광한씨도 돌아가셨고.. 시간이라는 게 참.
암튼 댓글 감사드려요~^^
 

 

미용실을 갈까... 하다가 에잇. 귀챦아 하면서 산발인 머리를 쓰다듬는다. 며칠은 더 버틸 수 있을거야 라며 스스로를 위안한다. 저녁이 되니, 흠... 이 머리 가지고 내일부터 출근하면 좀 그렇겠는걸 하는 후회가 슬며시 올라온다. 일요일이라고 집에서 데굴데굴 한 게 아쉽다는 생각도 든다. 요즘 유행하는 '힐링' 이라는 단어를 마음 속에 새기며 그저 침대와 식탁만 오고가는 하루를 보내고 나면, 몸은 편한 게 맞는데 마음은 가끔 불편해지곤 한다. 이것도 병인 게지. 어제까지 매일 하루도 빠짐없이 나가서 온종일 뭘 하고 들어왔으면 일요일 하루 정도는 집에서 쉴 수도 있는 것이지. 쯧.

 

역시 일요일에는 쟝르소설. 주중에 보지 않고 그간 사두었던 미스터리물들을 하나씩 열어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요즘엔 많이 사두지도 않아서 고르려면 꽤 시간이 걸리곤 하지만.

 

 

 

작년에 나왔던 책인데 이제야 집어들었다. 열한살짜리 플라비아 들루스의 탐정기? 정도로 요약할 수 있는 책인데, 제목이 참 재미나다. 책에 보면 어느 다른 책에서 가져온 문구인데 왜 이 제목을 붙였는 지는 아직까지 잘 모르겠다는... (갸우뚱)

 

암튼, 내용은 그냥 재미있다. 상당히 위트있는 문장들을 구사하고 어린 소녀의 심정이랄까 이런 것들이 잘 담겨있어서 좀 두껍긴 해도 술술 넘어간다. 잘 몰랐는데, 이게 플라비아 들루스 시리즈 3번째 거라고 하고 1, 2편도 번역되어 나와있었다. 가볍지만 유쾌하게 읽을 수 있는 시리즈라 다 사서 봐야겠다 싶어서 일단 보관함에 푱..

 


 

 

그나저나 이 책을 번역한 윤미나님은 <굴라쉬 브런치>의 작가였다! 너무나 재미나게 읽었던 <굴라쉬 브런치>의 기억이 새록새록 나서 문득 즐거워졌더랬다. 여행을 가게 되면 글을 이렇게 써보고 싶다... 는 생각을 가지게 했었는데.

 

다시 플라비아 들루스 시리즈에 대해 코멘트 하면... 일단 표지가 예쁘다는 것도 덧붙이고 싶다. 상큼발랄한 느낌이고 책이 두께에 비해 가벼워서 암튼, 여러가지로 나쁘지 않다.

 

 

 

 

 

실제 법조인인 작가가 시릴 헤어라는 필명으로 낸 몇 권의 추리소설 중 하나이다. 영국식 건물에서 벌어지는 연쇄살인사건의 얘기인데, 영국이라는 나라의 특성들이 잘 녹아들어가 있는 소설이다. 그러니까, 영국이니까 발생 가능한 얘기라고나 할까. 결말까지 읽어가면서 영국이라는 나라가 재미나다는 생각을 했다. 정치나 의원세습이나 집사의 풍습이나.. 등등. 우리가 영화나 드라마 등에서 느낄 수 있는 영국만의 분위기를 느끼기에 좋은 책이다.

 

사실, 아주 재미있다고 보기는 힘들고... 잘 짜여진 한 편의 드라마를 보는 느낌이랄까. 쓰는 문장이나 이런 것들이 아무래도 약간은 진부할 수밖엔 없지만, 쉬리릭 읽을 만은 한 책이다.

 

 

 

 

그리고 이 밤, 추리소설을 2권 다 읽어내리고 이제 주중에 읽으려고 고른 책은 사사키 아타루의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이다. 이제 초반에 들어갔는데, 오오. 느낌이 좋다. 이 책에 대해서는 나중에 한번 자세히 쓸 일이 있지 않을까 싶다.

 

 

이런 책을 일어로 읽어낼 수 있다면 좋겠으나.. 흠 아직까지는 소설이나 에세이 정도 수준인지라 안타까울 뿐이다. 일어는 한문이 있어서 읽기는 훨씬 쉬워서 소설이나 에세이는 원서로 읽어도 아주 큰 불편은 없는데... (그렇다고 자주 읽는 건 아니지만서도..ㅎ) 사상서를 읽기에는 아직 미흡하지 않나 싶다. 쩝쩝.

 

나는 이런 신진 사상가나 철학가, 평론가들의 책이 좋다. 우리나라 같으면 <피로사회>를 지은 한병철이나 <몰락의 에티카>를 지은 신형철이나... 현 세대를 반영하면서 나와 같은 고민의 바닥을 지닌 것 같아서 왠지 모를 동질감을 느끼게 된다. 이런 책들은 많이, 많이 발굴되기를 희망. 읽고 쓰는 것이 혁명이며 문학이 혁명의 본질이라 말하는 사사키 아타루. 그의 데뷔작이자 히트작인 <야전과 영원 - 라캉, 르장드르, 푸코>도 곧 번역되어 나오길. 아멘.

 

 

 

 


댓글(2)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숲노래 2013-05-26 22: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즐겁게 책과 보낸 일요일을 떠올리며
새로운 한 주도
씩씩하고 힘차게 누리셔요

비연 2013-05-27 12:24   좋아요 0 | URL
네, 함께살기님도 좋은 한 주 되세요~
 


살면서 여러가지 일들이 있는 건 누구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아무리 행복해보이는 사람도 이런 일 저런 일 겪으며 살아가는 것이고, 그게 좋은 일일 수도 있고 나쁜 일일 수도 있고 그런 것이지. 특히나 나쁜 상황들 속에서 스스로를 담대히 지켜나가는 건,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살아보니 그렇다. 남의 얘긴 하기 쉬워도 내 일이 되면 아주 작은 고통도 크게 느껴지고 힘들어지는 법. 좋은 일에 좋아라 웃고 기뻐하고 그러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다. 나쁜 일에 절망하고 힘들어하고 서러워하는 것도 누구나 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런 일들의 성격이 나의 감정을 결정하기 때문이고, 특별히 나쁜 일의 경우는 내 자신의 일이 되면 더 심하게 느껴지는 게 인지상정. 이럴 때 담담하게 현실을 직시하고 하나하나 대응할 수 있는 사람을 보면, 아.. 이 사람 정말 내공이 있구나 싶다.

 

내 주위의 어떤 사람은, 본인이 돌연히 갑상선암 초기라는 것을 알게 되어 수술을 받아야 했다. 갑상선암이 남들이 말할 땐 별 거 아니야, 그냥 감기 같은 거지, 수술만 받으면 그만이야.. 라고 해도 자신에겐 큰 충격일 테다. 내가 '암환자'로 분류된다는 자체. 우린 이런 것을 '낙인'이라고까지 얘기하곤 한다. 그리고 수술을 받는 것도 두렵고 그 이후 결과도 두렵고. 이 분은 수술을 받고도 부위가 나빠서 두 차례의 방사선 치료도 받아야 했다. 그걸 받기 위해서는 암 수술 후 계속 먹어야 하는 약을 끊어야 하고 철저한 식이요법에 들어가 2주 정도 버텨야 하는데, 이게 여간 고역이 아니었다. 얼굴이 붓고 (쟁반만 해지더라) 물론 몸도 붓고, 무엇보다 엄청난 피로감에 시달려야 했다. 남들은 수술로만 끝나는 걸 자신은 방사선 치료까지 받아야 하는 것. 그래도 꿋꿋이 받아내었다.

그리고 얼마 후 그 분의 아내가 림프암 4기임이 발견되었다. 젊었고 그냥 배가 아팠을 뿐인데... 이유를 찾지 못하다가 결국 알아낸 것이 림프가 부어올라 소화기관을 압박하고 있다는 것. 그래서 조직검사를 해보니 악성이고 4기라는 것. 여러 번의 항암치료를 받아야 하는데 그 이후 결과는 반반이라는 것. 서럽게 울고 힘들어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 분. 정말 대단한 것이 그 와중에도 자신의 생활을 성실히 유지했다. 변함없이 출퇴근을 했고 무리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모임도 참석했다. 그러나 아내가 병원에 가야 하거나 아이들의 학교 관련 일이 있으면 조용히 시간을 내었고... 질문을 받으면 (사람들은 정말 조심스럽게 물어보게 된다. 이게 더 힘든 일일 수 있다) 그냥 대수롭지 않게 얘기해주었다. 그 속엔 많은 아픔이 담겨 있는 것 같았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아내는 7번인가의 케모테라피를 받았고 힘든 시간을 보내야 했다. 그 분은 그런 아내가 인내해줌에 감사하면서 묵묵히 옆을 지켰고 아이들을 돌봤다.

 

일년 여가 지난 지금. 며칠 전, PET-CT를 찍어보니 암세포가 하나도 없었다고 한다. 치료는 성공적이었고 이제 유지만 잘하면 된다는 결론이 나왔다. 축하. 축하. 그 분은 아내에게 큰 꽃다발을 선물했다. 평소에는 꽃다발에 돈 쓰는 걸 정말 우습다고 얘기하던 사람이 이 기쁨을 꽃으로 표시하고 싶어했다. 꽃은 너무나 예뻤고 그 축하의 마음이 잘 나타나 있었다. 진심으로, 마음에서 우러나 축하한다고 말했다. 한 톨의 다른 생각 없이. 정말.

그 긴 시간을 옆에서 동료로 지켜보면서 진정 내공 있는 사람은 이런 사람이 아닌가 싶었다. 자신의 생활을 평소대로 유지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이었을까. 간병휴가도 있고 여러가지 방법이 있었을텐데 그러지 않았다. 그렇게 하면 오히려 아내가 힘들어질 거라는 이유도 포함되었다. 자신이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어야 가족들이 힘을 낸다고 했다. 우울해하거나 쳐져 있거나 그런 모습을 보인 적은 거의 없었다. 유머러스했고 자신의 상황을 담담히 설명했고 그리고 솔직하게 양해를 구했다. 이런 사람이고 보니 주변 모든 사람이 이 분을 좋아한다. 사람마다 느끼는 것은 비슷한 게지. 알 사람은 다 아는 거다.


요즘 내가 여러가지 일이 있다보니 나와 친한 이 분의 상황이 얼마나 힘들었을 지 다시 한번 가늠이 되어 마음이 짠하기도 하고, 내공이 필요한 시기에 내공있는 사람을 주변에 둔 것이 얼마나 행운인가를 고마와하게 된다. 보고 배우고 느끼고... 인생은 그렇게 호들갑스럽게 대응해선 안된다는 것을. 현실을 받아들이기는 하되, 차근차근 하나씩 대응해 나가며 인내해야 한다는 것을. 살면서 이런 사람을 곁에 둘 수 있다는 건 큰 행운이 아닌가 라는 생각까지 한다.

 

어려운 일에 처해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 이해득실이 관계된 일에 함께 처해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 진정으로 내가 배워야 할 사람, 주변에 둬야 할 사람을 알 수 있다. 그래서 神은 우리에게 고난이라는 것을 부여하면서 담금질을 시키는 모양이다. 그렇게 이해하고 싶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세실 2013-05-26 09: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불과 몇개월전 조직검사를 하면서 별생각이 다 들었습니다.
혹시 암이면 어쩌나? 님의 표현처럼 '암환자'라는 낙인도 견디기 힘들듯하고, 왜 내가?라는 원망도 견디기 힘들겠다는 생각했습니다. 다행히 이상없음으로 결론이 났지만,
그 날 이후 주변에 암에 걸렸던 분들 다시 생각하게 되더라구요. 얼마나 힘들었을까......
긍정적인 사람은 어려운 일이 닥쳤을때 순응하고, 헤쳐나가는 사람이라고 하더라구요.
편안한 주말 되세요.

비연 2013-05-26 19:03   좋아요 0 | URL
세실님.. 충분히 이해합니다...그런 생각들.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알 수 없는 그런 것이지요...
어떤 일이 있든 항상 긍정적이고 내공있는 사람으로 '버티는' 게 참 중요한 듯.
주말 잘 마무리하시길..

울보 2013-05-27 2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가슴한쪽에. 몇개의 덩어리가. 덩어리라 부르라 마음먹고 가끔생각나고 아플때 그리고 검사할시간이 다가오면 드는두려움 전긍정의마인드를 가지고계시는 분들이 너무 부러워요. 제가 그러지 못해서

비연 2013-05-29 12:21   좋아요 0 | URL
아..양성종이면... 괜챦으신거니까 넘 걱정마세요, 울보님.
그래도 참... 그런 게 내 속에 있으면 항상 꺼림칙하고 그런 듯...
저도 그런 부분에 있어서는 완전히 긍정적이 되긴 힘들더라구요...두렵고 무섭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