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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news.naver.com/main/hotissue/read.nhn?mid=hot&sid1=103&gid=311533&cid=193776&iid=166395&oid=021&aid=0002018582&ptype=011 

  

<김승현의 文化데이트> 

“이제 서른… 음악적 삶은 ‘立志’와 ‘不惑’의 중간” 

 

 

 

바이올리니스트 사라 장(한국명 장영주·29·사진)이 10년 만에 내한 독주회를 연다. 11일 안산에서 시작, 대전(12일), 창원(14일), 수원(17일), 전주(19일), 광주(21일), 구미(22일), 의정부(24일), 제주도(26일)를 거쳐 28일 서울에서 마무리를 한다. 한국에서 10년 만의 독주회 말고도 올해는 장씨에게 여러모로 특별한 해다. 바이올린을 처음 잡은 지 25년째이며, 첫 음반을 녹음한 지 20년째다. 또 한국 나이로 서른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7일 오후 서울 중구 장충동 신라호텔 19층 미팅룸에서 장씨를 만나 삶과 음악에 대해 들었다.

먼저 언제 어떻게 바이올린을 시작했느냐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네살반쯤 됐을 거예요. 세살때부터 피아노를 쳤는데 싫증이 났나봐요. 바이올린을 달라고 했더니 16분의1짜리 바이올린을 사주시더라구요.”

돌상에서 공부 잘 할 애는 연필을 잡고, 돈 잘 벌 애는 돈을 잡는다고 역시 천재 바이올리니스트는 뭐가 달라도 좀 달라보인다.

“아니에요. 그냥 아빠 바이올린을 만지고 싶었어요. 못만지게 하면 더 만지고 싶잖아요. 그랬더니 ‘장난감’을 사주신 거지요.”

그 ‘장난감’이 지금 힘과 테크닉, 감성이 조화를 이룬 세계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를 만들 줄 아무도 몰랐을 것이다. 장씨는 새로 장만한 4분의1짜리 독일제 바이올린으로 여섯살때 첫 연주회를 열었고, 아홉살때 뉴욕 필하모닉 신년음악회로 공식 데뷔했다. 이 음반이 세계적인 메이저음반사 EMI에서 ‘데뷔’라는 음반으로 2년 후 나왔다. 녹음시점을 앨범 데뷔로 치는 관행에 따르면 첫 앨범을 만든 지 20년째이지만 장씨는 굳이 “18년몇개월 됐다”고 말했다,

20년을 기념한 아주 특별한 앨범을 준비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자 특유의 호기심이 발동, ‘크로스오버냐’ ‘독주냐, 협연이냐’ 등 이리저리 돌려가며 몇 번 캐물었으나 “비밀”이라며 입을 다물었다.

“저는 지금까지 정크(junk·허섭스레기, 시시한 것)는 한번도 안 만들었어요. 크로스오버는 아니에요. 바이올린하고 놀기는 싫어요. 바이올린은 제게 잡(job·일)이 아니에요. 제 라이프(life·삶)거든요. 클래식을 퓨어(pure)하게 한다는 것은 말할 수 있어요. 정말 제가 하고 싶은 작업을 할 거예요.”

‘크로스오버는 아닌’ ‘하고 싶은 작업’이라는 말에서 세계 최고로서의 자신감이 묻어난다. 장씨는 최근 EMI서 쿠르트 마주어가 지휘한 드레스덴 심포니와 함께 연주한 브람스·브루흐 바이올린 콘체르토 앨범을 내놨다. 베스트앨범을 포함, 19개 음반을 내놓을 때까지 20년 동안 그는 특별한 예술가가 평생을 걸쳐 해도 이루기 힘든 탁월한 성과를 기록했다. 마주어를 비롯해 다니엘 바렌보임, 콜린 데이비스, 샤를르 뒤트와, 로린 마젤, 주빈 메타, 리카르도 무티, 앙드레 프레빈, 사이먼 래틀, 볼프강 자발리슈 등 세계 최고 수준의 지휘자들이 지휘하는 뉴욕 필하모닉, 베를린 필하모닉, 비엔나 필하모닉, 런던 심포니오케스트라 등 세계 최고 수준의 오케스트라와 협연했다. 이들 지휘자 한 사람과, 한 오케스트라와 협연만 해도 사실 ‘가문의 영광’이다.

25년째 하고, 그렇게 눈부신 성과를 이뤘으면 이제 좀 지루할 만도 해보인다. 하지만 그는 “옮겨다니며 시차를 계속 바꾸는 게 피지컬리(phisically·육체적으로) 힘들기도 하지만 음악은 가장 즐거운 라이프 스타일”이라며 “특히 새로운 나라, 도시, 사람들, 다양한 문화가 너무 신기하다”고 덧붙였다.

“저는 연주를 즐겨요. 음악가가 된게 정말 행복해요. 새로운 지휘자와 오케스트라를 만나 수많은 레퍼토리를 공부하느라고 지루할 틈이 없어요. 매일 데디케이션(dedication·봉헌, 헌신, 여기서는 진지한 연습)해야 합니다. 하루라도 쉴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바이올린은 제 삶에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합니다. 또 지금부터 2, 3년 앞까지 스케줄이 다 잡혀있어요. 제 삶에서 가족이 퍼스트(first)라면 다음이 음악입니다. 제게 음악은 결코 하비(hobby·취미)가 아닙니다.”

사반세기를 바이올린 연주를 한 것과 관련, 우문을 던졌다가 본전도 찾지 못했다. 얼른 말을 돌려 그 동안 얼마나 많은 도시에서 연주했느냐고 묻자 그는 “아직 안 간 도시가 더 많겠지만 수백개쯤 안될까”라고 반문했다.

“미국의 도시는 다했고, 유럽도 대부분 했고, 남미도 많이 가요. 한국, 일본, 중국에 최근 두바이까지 아시아도 많이 했어요. 아프리카도 케이프타운, 요하네스버그, 더반 등을 돌았어요. 이번 서울 공연은 특히 제가 아직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우리나라의 도시들에서 연주해 큰 기대를 갖고 있습니다.”

좋은 연주의 조건에 대해 묻자 그는 “밸런스”라고 했다.

“연습실에 오래 있다고 좋은 것은 아니지요. 자기 길만 갈 수 없지요. 서로에게 양보하며 기브 앤드 테이크(give and take)를 하며 맞춰가야 합니다.”

10일로 생일이 지나면 만으로 29살, 한국나이로 서른이다. ‘서른, 잔치는 끝났다’라는 시도 있다. 인생에서 ‘서른’은 ‘입지(立志)’라고도 하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장씨는 “이제 시작하는 것”이라며 최씨의 시를 무시했다. 또 ‘입지’라는 데 대해 “뜻은 벌써 세웠다”면서 “아마 그런 표현이라면 ‘입지’와 ‘불혹(不惑)’의 사이일 것”이라고 의연하게 말했다. ‘지우학(志于學)’인 10대처럼 말하면서도 의식은 이미 ‘입지’와 ‘불혹’을 넘어 50대인 ‘지천명(知天命)을 향해 가고 있었다.

10년 만의 독주회인데 왜 그리 뜸하게 독주회를 하는지 궁금해 하자 장씨는 “독주회를 많이 안한다”며 “오케스트라와 함께 해야 하는 콘체르토를 제일 좋아하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그는 “미국과 유럽에서는 3년에 한번씩은 독주회를 하는데 한국에서는 왜 그렇게 됐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독주회는 기뻐요. 다른 색깔을 많이 보여주는 레퍼토리를 할 수 있거든요. 특히 이번 공연은 정말 제가 하고 싶은 레퍼토리만 골랐어요.”

이번에 연주할 레퍼토리는 근대 이후 작곡된 바이올린 소나타 가운데 최고로 평가되는 프랑크의 ‘바이올린소나타’, 브람스의 바이올린 소나타 가운데 유일하게 단조로 작곡돼 낭만과 우수가 백미인 ‘바이올린소나타 3번’ 그리고 그리스 출신의 세계적 현대음악가 크리스토퍼 테오파니디스가 장씨에게 헌정한 ‘판타지’ 등이다.

“모든 곡이 정말 훌륭한 제가 인조이(enjoy)하는 곡입니다. 프랑크 소나타는 제가 제일 자랑하는 곡이에요. 로맨틱하고 예쁜 곡이지요. 브람스 3번은 제가 가장 좋아하는 곡으로 드라마가 있어 들으면서 더욱 아름답게 느끼는 곡입니다. ‘판타지’는 테오파니디스가 작곡한 곡인데 이번에 피아노와 바이올린 곡으로 새로 만들어 줬어요. 이번 한국에서 연주가 세계 초연입니다.”

장씨는 “‘판타지’가 자칫 바이올린 중심으로 흐르기 쉬워 협연자를 ‘반주자’가 아닌 ‘솔로이스트’를 원했다”고 말했다.

“한 곳에 치우치지 않는 파트너십이 필요하거든요. 따라 오는 것이 아니라 강력한 파트너십으로 대등하게 질서를 이룰 수 있는 솔로이스트로 전에 좋은 호흡을 이뤘던 앤드루 폰 오이엔과 함께 하게 돼 기쁩니다.”

이 ‘젊고 아름다운 거장’의 앞으로의 도전과제는 무엇일까.

“안 해본 곡은 없을 거예요. 하지만 더 배우고 싶어요. 실내악을 좀 더 해보고 싶고 디스코그래피도 좀 더 제 색깔을 살려 만들고 싶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정말 ‘이유가 있는 음악’을 하고 싶습니다.”

나이가 서른이지만 음악밖에 모르는 너무나 순진무구한 모범생 같다. 그런 생활에서 일탈하고 싶었던 적은 없었는지 묻자 깔깔 웃으며 “다른 것 갖고는 놀아보고 싶지만 바이올린 갖고는 놀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바이올린은 제게 시리어스(serious)한 커리어예요. 바이올린만은 깨뜨리고 싶지 않아요. 그런 실험은 라이프에서나 할래요.”

편집국 부국장 hyeon@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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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신동이 제대로 된 연주자가 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 면에서 사라 장 (장영주)은 잘 큰 연주자라고 할 수 있겠다..우리나라에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연주자라고 한다면 초창기 세대가 정경화, 정명훈이 있을테고, 그 다음이 사라 장이 될 것 같다. 다른 연주자들도 많지만, 그냥 우리의 뇌리에 박힌 연주자의 이름을 말하는 것이다. 사라 장의 연주는 CD로는 들어보았지만, 현장에서 직접 들은 적은 없는 것 같다. 인터뷰 내용을 보니, 녹녹치 않은 서른의 젊은 연주자이면서 이미 20년 경력의 노회함이 느껴진다. 내년에 연주회가 있다면 꼭 한번 가봐야겠다 생각했는데 독주회는 앞으로 10년은 기다려야 할 것 같다...CD로 일단 만족해야 하나.

얼굴 나온 것만 대충 추렸는데 꽤 많은 음반이 나왔다. 앳되던 어린 모습이 점점 성숙해져가는 디스크 쟈켓도 재미있다. 눈화장을 꽤 짙게 하는데 안 그러면 더 좋지 않을까 라는 생각도 잠시 해본다. 아뭏든, 인상으로는 카리스마가 있고 자신감이 있는 얼굴이라 좋다. 이 중에 한 2~3개 정도의 CD를 가지고 있는 것 같다.




 

 

 

 

 

 

 

 

  

 

 

 

 

 

 

 

 


 

 

 

 

 

 

 

 



 
 
 

 

 


흥겹다~  

평소 Yo-Yo Ma를 그닥 좋아하진 않지만, 이걸 보니 좀 멋지네... 

 

 



 
 
 


요즘 Horowiz의 Chopin 연주에 흠뻑 빠져 유투브에 리스트 걸어놓고 계속 듣고 있다~..


 

  

저 손의 테크닉을 보라..정말 예술 아닌가. 피아노의 왕이 아니라 피아노의 神이다.. 
내가 옆에 있는 후배에게 얘기했다. '호로비츠 넘 잘 치지 않냐?' 그랬더니 "욕해?'..ㅜㅜ
정말 주위가 다 암흑이지 뭔가..흑흑. 암튼 그 김에 음반도 하나 구입했다..













CD 가 2장인데, 첫 장 어제 들었다. 챠이코프스키에서는 좀 빠른 감도 없지 않으나
아름다운 건 아름다운 거다...아주 좋아라 열심 듣고 있다^^

날이 꾸물해진다. 이런 날엔 왠지 피아노 독주곡이 끌리는 건 나만 그런가? ㅋ




 
 
 

 

 

 

 

Horowiz의 피아노 소리는 뭐랄까. 영혼을 울린다. 아주 차분하고 섬세하고 지적인 연주.
비오는 날 그의 Chopin을 들으니, 꿉꿉한 날도 다 저리가고 참 마음이 좋아진다. 

 

 



 
 
아롬 2009-07-09 19:49   댓글달기 | URL
제목에 화악 끌려서 왔습니다~. 비오는 날 쇼팽!!!원더플입니다!!!ㅎㅎ

비연 2009-07-09 20:03   URL
그쵸그쵸?^^ 수없이 반복해 듣고 있슴다..
어쩜 피아노를 저렇게 수월하게 치는것처럼 보이는지요...부럽.

손님 2009-09-20 15:27   댓글달기 | URL
어제 오늘 쇼팽에 끌려 듣고 있는데^^ 마침 글이 있네요. 쇼팽은 꿉꿉한 날도 좋고, 너무 화창하지 않은 날에도 좋고, 약간 추운 저녁에도 좋고..ㅋ

근데, 마음의 여유가 있어야 더 잘 들리는 것 같습니다.

비연 2009-09-20 21:43   URL
마자요, 음악도 마음의 여유가 없으면 사실..잘 안 들리죠.
쇼팽은 뭐랄까. 약한 듯 하면서도 마음에 새겨지는 면에서는 참 강한 면이 있어요...특히 호로비츠나 루빈스타인의 연주를 좋아합니다^^
 
 전출처 : 바람구두 > 므스티슬라프 로스트로포비치가 세상을 떠났다

므스티슬라프 로스트로포비치가 세상을 떠났다.



얼마전 보리스 옐친 전 러시아 대통령이 떠났을 땐 고놈 여태 살아있었나 싶었더니 이제 로스트로포피치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접하니 만감이 교차한다. 구소련 붕괴의 촉매제 역할을 했던 소련 군부와 공산당의 불발 쿠데타를 맨몸으로 막았던 첼리스트 로스트로포비치의 죽음은 충분히 애도할 만한 것이긴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오랜 세월 수많은 무산계급의 피와 땀으로 이루어진 사회주의의 모국을 자처했던 한 나라의 붕괴를 촉진한 결과를 빚은 것이란 점에서 마음 편하게 애도하기엔 석연치 않은 마음이 드는 건 어인 일일까. 공산당 혹은 사회주의 세력이 주도했던 혁명 가운데 성공하지 못한 것이 역사상 한둘은 아니지만 공산당이 주도한 쿠데타란 것은(찾아보면 그럴 만한 사건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말부터가 어색하다. 아니, 용납이 안 되는 말이다.



어떤 이들은 그는 첼리스트가 아니다. 그는 자연현상이라고 격찬할 만큼 뛰어난 첼리스트였지만, 나는 뭔가 쫓기는 듯 연주한 그의  첼로 무반주 조곡(92년 녹음)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는 첼리스트로서는 물론 피아니스트로서도 일가견이 있었다고 하는데, 실제 활동은 첼리스트와 지휘자로서의 활동이 주된 것이었다. 지휘자로서의 그에 대한 평가도 나름대로 좋은 편이긴 했지만 나는 그가 지휘자이기 보다는 첼리스트였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그의 지휘음반들은 부드럽게 넘어가는 맛은 있지만 듣는 이들을 압도하는 아름다움이나 감동은 드물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에 대한 나의 비호감을 감출 수 없는 것이 사실이지만, 객관적으로 보자면 나에겐 비록 그것이 그에 대한 결정적인 비호감을 키운 것이기도 하지만 그의 생애에도 첼로의 성인 파블로 카잘스를 연상시키게 할 만한 것들이 있었다. 모스크바 음악원 교수였던 그가 솔제니친을 옹호하다 시민권을 박탈당하고 추방당한 것이나,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을 때 그 앞에서 연주하는 모습은 이념을 초월해 참으로 가슴 뭉클한 장면이었다. 역사 앞에서 그는 한 인간으로, 첼리스트로서 최선을 다했다. 다만 시대의 아이러니가 나로 하여금 그를 선뜻 애도하지 못하게 할 뿐이다.

그의 사망 소식 얼마전인 지난 3월 그는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에게서 조국공헌 1급훈장을 수여받았다. 러시아의 불발 쿠데타 자리에서 그가 보인 모습, 동원된 탱크의 옐친 곁에서 조국 러시아의 민주주의를 위해 싸운 그에게 바치는 헌사였으리라. 우리에게는 첼리스트 장한나를 발탁한 인물로도 친숙한 그의 모습은 더이상 볼 수 없겠지만 그의 음악은 계속 남을 것이다. 한 인간이 저물고 간 상흔마다 사람들은 이러쿵저러쿵 입방아를 찧겠지만 그 순간 누구도 그 보다 나은 선택을 했을 것이라고 장담할 순 없으리라. 하여 나는 그에 대한 나의 비호감을 잠시 접고자 한다. 나조차도 마음에 안 드는 선택을 해야 할 때가 있는 것이 인간인 것을, 어쨌든 그는 커다란 사람이었다.



 
 
손님 2009-09-20 15:30   댓글달기 | URL
로스트로포비치의 바흐 무반주 첼로 모음곡 연주 DVD 를 누군가와 보던 기억이 납니다. 참 무거우면서 날렵한 보잉을 보여주더군요. 그 누군가 덕분에 많은 설명을 듣게 되었는데 중간 화면을 보며 아주 어려운 패시지를 그렇게 "쉽고도 의미있게" 연주하는 것에 놀라더라구요.

로스트로포비치. 그는 분명 카잘스가 해 놓은 것을 이을 수 있었던, 단 한 사람의 첼리스트였다는 생각입니다.

비연 2009-09-20 21:45   URL
위대한 예술가라고 한다면 로스트로포비치같은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인 듯.
그의 DVD가 보고 싶네요. 다른 누구의 첼로연주보다도 인상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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