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로렌초의시종 > 늦은 감상, 10월 1일 다니엘 하딩, 말러 체임버 오케스트라

역시 잘생겼다.ㅋㅋ
다니엘 하딩이라는 젊은 지휘자의 이름을 들은 건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아마 작년 여름에 음악애호가로 유명한 박종호 씨의 책에서 처음 이름을 접했던 것 같고, 그 뒤로는 여기저기서 이름을 들었는데 잘 기억나지는 않는다. 하지만 분명한 건 그의 이름을 처음 들었을 때는 별 느낌이 없었고, 점점 그에 대해 자세히 알아갈수록 그라는 사람에 대한 흥미가 깊어졌다는 것이다. 영국에서 태어나 고등학교 시절부터 현재의 베를린 필 음악감독인 사이먼 래틀 경의 주목을 받았고, 이후에는 그 당시 베를린 필 음악감독이었던 클라우디오 아바도의 지원을 받으며, 사상 최연소로 베를린 필의 정기 연주회를 지휘했다는 그의 이력은 충분히 대단하다고 할 만 했다. 물론 예술에 있어서 '경력(經歷)'이란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서는 나 역시 적지 않은 의문을 던지는 편이지만, 아무리 그래도 역시 이 정도의 배경이라면 그냥 과감하게 무시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 젊은 나이에 베를린 필의 전 현 음악감독 모두의 총애를 받고 급기야는 아바도가 몸소 창단한 말러 체임버 오케스트라의 음악감독 자리를 물려받았다는 것은 그가 단순히 운 좋은 반짝스타는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하기에 크게 부족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단순히 언론이나 평단의 극찬을 통한 홍보가 아니라 앞선 선배들의 추천에 의해 등장한 신예(新銳)는 대부분 기대를 무너뜨리진 않는다. 정명훈이 거장(巨匠) 줄리니의 인도로 피아니스트에서 지휘자의 길을 택하게 되었듯이. 더구나 정명훈이나 하딩은 전적으로 그들의 능력에 의해 선진(先進)들의 주목을 받았다. 그들의 경력을 단순히 불신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더구나 그는 잘생기기까지 했다!
사실 말러 체임버 오케스트라나 그 음악감독인 다니엘 하딩이나 한국에서는 그다지 유명하지 않다. 차마 무명이라고까지 말할 수는 없겠지만, 그나마 공연을 앞두고 부지런히 그에 대해서 알렸던 신문 기사들이 없었다면 확실히 그의 국제적인 명망에 비해서 한국에서의 지명도는 현격하게 낮았을 것이다. 그래도 역시 베를린 필 음악감독들의 보증이 헛된 것은 아니었는지, 좌석은 거의 매진 수준이었다. 공연 시간은 예술의 전당에서 열리는 여느 악단의 공연과는 달리 오후 4시였다. 대개는 저녁 먹고 공연을 관람하도록 8시에 시작하는 것이 거의 관례이다시피 한데, 약간 이례적이라고 생각했다. 아직 해가 높게 떠있는 시간에 예술의 전당에 찾아가는 기분이 묘했다. 좌석은 합창석 가운데 블록의 세 번째 줄 가운데 좌석이었다. 간단히 말하면 그의 잘 생긴 얼굴을 가장 정면에서 볼 수 있는 좌석이었다. 크레디아에서 이 공연의 티켓이 오픈되자마자 예매한 좌석이었다. 합창석은 소리도 의외로 선명하게 잘 들리고, 지휘자에게 집중하기가 쉽고, 저렴하기까지 해서 요즘엔 자주 이용하는 편이다. 더구나 실력에 뒤지지 않는 수려한 외모로 유명한 그의 첫 공연에서 합창석을 굳이 마다할 이유가 내게는 없었다. 그런 까닭에 같이 갈 사람도 기약 없이 두 장을 예매했다가, 동행자를 못 구해서 먼 지방에 사는 친구를 닦달해서 같이 관람하게 되었다. 이 젊은 지휘자와 역시 젊은 악단의 첫 내한 공연에서 어떤 감동을 받을 수 있을지 기대하는 마음이 가득했다.
프로그램은 모차르트-슈만-브람스였다. 언뜻 보수적으로 보이는 정통 레퍼토리로 무장한 듯 했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꼭 그런 것도 아니었다. 나름대로 자주 연주되는 슈만의 피아노 협주곡을 제외한다면 모차르트의 작품은 초기 교향곡인 6번(K. 43)이었고, 브람스의 교향곡은 통상적으로 주로 연주되는 1번이나 4번이 아니라, 2번이었다. 박수 속에 하딩이 입장하고, 모차르트의 교향곡이 울려 퍼졌다. 보통 공연의 첫 곡으로 연주되고는 하는 오페라 서곡이 아니라, 간소하나마 4악장 형식을 완비하고 있는 교향곡을 선택한 그의 안목이 이미 맘에 든 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주곡은 역시나 생소해서 인터넷 클래식 동호회를 통해서 한두번 들었지만, 역시 고풍스러운 칼 뵘의 연주로는 그저 이 곡이 어떤 곡이구나 싶었을 뿐, 하딩의 연주에 대한 상상을 자극할 수는 없었다.
각설하고 하딩의 연주는 정말이지 산뜻했다. 젊은 지휘자와 젊은 연주자의 실내악단이 빚어낸 젊은 모차르트의 교향곡은 더할 나위 없이 일사불란하게 돌아가면서도 동시에, 각자의 개성이 충실하게 빛나는 자유분방한 연주였다. 말 그대로 어떤 카리스마에 의한 연주가 아니라, 지휘자로부터 팀파니 연주자에 이르기까지 서로가 음악에 대한 깊은 애정을 맺어진 우정의 연주 같다고나 할까. 통상 41곡으로 알려진 모차르트의 교향곡은 어느 것 하나 버릴 수가 없다는 누군가의 말을 절감하는 순간이었다. 모차르트의 음악적 깊이가 비단 장중함으로만 구현되는 것이 아니라, 화사함과 민활함으로도 얼마든지 펼쳐질 수 있다는 사실을 충분히 인정할 수 있었다. 1악장부터 4악장에 이르기까지 신속하되 경박하지 않았고, 침착하되 지루하지 않았다. 어쩌면, '젊음'이라는 단어 하나만으로 이 악곡에 대해서 그리고 이 악곡에 대한 그의 지휘와 그들의 연주를 이해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곡이 끝나는 순간 나는 이미 그들의 숭배자가 되었다.
두 번째 곡은 얼마 전부터 주목받고 있는 역시 젊은 피아노 연주자 라르스 포그트와의 슈만 피아노 협주곡이었다. 사실 슈만의 피아노 협주곡은 이미 들어본 적이 있지만 좀처럼 와닿지가 않는 곡이었다. 어디까지나 슈만 자신만이 이해할 수 있으리라는 느낌이랄까. 절절한 듯 하지만 그 절절함이 너무도 깊어서 종잡을 수 없을 정도로 산지사방에 퍼져나가는 가운데, 나는 그 중에 어느 감정을 붙잡아야 할지 알 수가 없어서 그저 우두망찰 서 있는 듯한 망연함을 느꼈다. 물론 나 자신도 내면에서 이런 감정을 느낄 때가 적지 않다. 이룰 수 없어서 더욱 절실하고, 그래서 그 집요한 감정이 결국은 사방으로 흩어져버리는, 집착의 결과로 오히려 집착할 수 없는 결과를 낳게 된다. 어쩌면 슈만은 일생 동안 이런 감정에 사로잡혔던 청춘이었는지도 모른다. 나이를 먹으면 더 이상 집착하지 않고, 그런 까닭에 감정은 차분해져서 오히려 무엇인가에 집착해버리는 결과를 낳게 되니까. 그런 까닭에 하딩과 말러 체임버 그리고 포그트라는 같은 또래의 청년들의 연주가 더욱 기대되었다.
그렇지만, 솔직하게 내 생각을 이야기하자면 약간은 내 기대에 미치지 못한 연주였다고 생각한다. 기본적으로 지휘자와 악단, 독주자의 조화는 훌륭했지만, 아쉬움이 남는 연주였다. 그들의 슈만은 슈만이 말하고자 하는 곡의 느낌을 살려내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는 느낌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그에 수반되는 기백(氣魄)은 아무래도 부족했다. 곡이 담고 있는 순간순간의 감정의 변화에 최대한 예민하게 반응하는 그들의 노력에 설득력을 줄 수 있는 힘이 실려 있지 않았다고 말해야 할 것 같다. 물론 내가 합창석에 앉아있었던 탓에 독주자의 피아노 소리를 듣는데 다소 어려움이 있었다고 할지라도 전체적으로 곡의 감성이 풍부한 정조(情調)에 상응하는 설득력을 주기에는 역부족이라는 느낌을 받는 순간이 적지는 않았다. 스코어에 담겨 있는바 작곡가의 복잡미묘한 정서를 표현하는 데는 훌륭했지만, 재현에 신경을 쓰느라, 그 재현의 맥락 자체에 대해서는 미처 신경을 쓰지 못한 것 같다. 슈만의 자유분방하게 펼쳐지는 선율은 단순한 예민함으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변화의 밑바닥에 있는 때로는 유약하지만 때로는 광폭할 정도의 힘에 있는 것이 아닐까. 때문에 예술적 열정을 주체 못하는 거침없는 느낌을 주여야 할 슈만의 선율이 가꿈은 그저 아침밥상이 맘에 안 들어서 짜증을 내는 어린애의 종잡을 수 없는 투정 정도로 비치는 듯한 아슬아슬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단순히 젊은이들이라는 이유로 ‘막 나가는 듯한’ 힘과 속력을 과시하지 않겠다는 그들의 절제와 의지가 느껴지기도 했지만 역시 섬세함보다는 대범함이 아쉬운 순간이었다.

그런데, 정작 터지지 못한 정열은 그 이후에 준비되어 있었다. 일부러 그랬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슈만의 협주곡이 끝나고 커튼콜이 거듭되는 가운데 악장, 첼로 수석, 비올라 수석이 포그트의 피아노 중심으로 모여들고, 하딩은 포그트 뒤에 섰다. 그리고 브람스의 현악 4중주 4악장이 말 그대로 ‘쏟아져 내렸다.’ 애초에 작곡자인 브람스가 의도한 대로 집시 유랑 악단이 유럽의 어느 시골 장터에서 펼쳐내는 듯한 과감하고 거침없는 연주가 작열했다. 그들이 얼마나 젊은지 얼마나 기운이 넘치는지 얼마나 섬세한지를 한순간에 압축해서 보여주었다. 서로 뒤쳐질 세라 거침없이 질주하면서도 서로와 긴밀하게 결합되어 하나의 선율로서 달려 나가는 연주에 그야말로 넋이 나갔다. ‘지금 이 순간이 어떠한 순간인가?, 바로 축제의 순간이다’라고 그들이 우리에게 외치는 기분이었다. 더욱이 놀라운 것은 포그트의 뒤에서 페이지 터너(Page Turner)역할을 맡은 다니엘 하딩이었다. 잘생긴 얼굴에 똑똑해보이는 안경을 끼고 나와서 때로는 팔짱을 끼고 네 사람의 연주를 감상하고, 순간순간마다 포그트의 악보를 넘겨주는 모습을 합창석에서 바라보면서 그저 감탄할 뿐이었다. 지금 내 앞에서 펼쳐지는 연주, 보여지는 광경 모두가 그동안 상상할 수 없는 것뿐이었으니. 같은 또래의 연주자들과의 음악을 향한 열정을 지휘자로서의 권위보다 우선한다는 사실을 그는 무언의 공연자로서 우리에게 알려주었다. 얼마나 사랑스러운 모습이었는지. 브람스가 끝나고 포그트는 마지막으로 모차르트의 피아노 소나타 11번 3악장(터키 행진곡)을 연주해주었다. 마치 미국 어느 선술집의 재즈 피아니스트가 연주하는 듯한 경묘(輕妙)한 터치와 신명나는 선율이 돋보이는 재치만점의 연주였다. 아무래도 슈만의 얕은 아쉬움을 매워주기에는 너무도 훌륭한 앙코르였다.

인터미션 후에 이어진 공연은 브람스의 교향곡 2번이었다. 통상적으로 자주 연주되지는 않지만, 라이브로는 2004년에 리카르도 무티와 라 스칼라 오케스트라의 공연을 통해 들었고, 이미 위대한 거장 카를로스 클라이버의 DVD를 통해서 여러 번 들어 본 곡이었다. 처음에는 역시 1번이나 4번에 비하면 낯선 느낌을 어찌할 수 없었는데, 들으면 들을수록 맘에 드는 곡이었다. 역시 빈 필과 클라이버의 연주는 더할 나위 없이 훌륭했지만, 과연 다니엘 하딩과 이 악단의 공연은 어떠할지 더욱 기대가 되지 않을 수 없었다. 전통과 대규모 편성의 빈 필, 클라이버와 신생의 소규모 편성의 말러 체임버와 하딩은 과연 어디가 어떻게 다를까.
하지만 역시 나로서는 우열을 가리기에는 내가 부족하다는 사실만을 절감할 뿐이었다.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건 라이브로 들은 하딩의 연주가 결코 부족하지는 않았다는 사실이다. 1악장의 소박함과 화려함의 선명한 대비부터 아늑한 목가적 분위기에서 갑자기 나락으로 떨어지는 듯한 2악장의 비애감, 화사하고 아기자기한 현과 관의 조화가 돋보이는 3악장, 웅장한 선율을 안고서 거침없이 질주하는 4악장까지, 그는 지금 이 시대가 원하는 브람스를 들려주었다고 말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부담 없고 명쾌하면서도 곡의 본질인 소박함과 장중함과 조화를 이루는 연주였다. 무엇보다 실내악단 규모의 소편성으로 브람스의 교향곡을 연주한다는 것이 약간은 경박하다거나, 역부족으로 보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하딩의 지휘는악단에 대한 확고한 장악력를 통해 소수정예의 일사분란한 합주력을 끌어냄으로써 그러한 공백의 우려를 무리 없이 뛰어넘을 수 있었다. 간단히 정의하면 역시 그는 중력의 법칙을 무시하고 무겁게 질주하는 브람스의 경지를 보여주었다. 그것이 보편타당한 브람스의 이상인지에 대해서는 아직 짧은 견식으로 확신할 수는 없지만, 그는 앞으로 클래식 음악이 나아가야 할 중요한 열쇠에 가까이 다가간 사람임이 분명했다.
브람스는 끝났어도, 아직 '축제(祝祭)'는 끝나지 않았다. 당장 나부터가 그러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었다. 기립해서 박수를 치고 환호성을 지를 수밖에. 인심 후한 젊은 거장은 먼저 드보르작의 슬라브 무곡 4번을 연주해주었다. 앞선 곡에 이어서 브람스의 헝가리 무곡 5번 같은 경쾌한 곡을 들려주리라 생각했던 기대는 빗나갔지만, 역시 그의 선택은 탁월했다. 앞선 브람스의 화사하기 그지없는 목가적 풍경을 바라보면서 들떴던 마음이 한결 차분해지는 느낌이었다. 말러 체임버의 목관 악기 주자들의 역량이 십분 발휘된 우울한 듯 차분한 선율은, 무곡의 정취는 격렬함이나 단정함이라는 표면의 율동만이 아니라, 무한할 듯한 선율의 순환(循環) 그 자체를 즐기는 속에서 느낄 수 있다는 사실을 즐겁게 깨우쳐 주었다.

하지만 결정타는 이것이 아니었다. 정말 아니었다. 하딩은 내 마음을 읽었고, 내 꿈을 이루어주었다. 그는 모차르트의 교향곡 41번 주피터의 4악장을 내게 선사해주었다. 그 순간만큼 그의 잘 생긴 얼굴이 더욱 빛나 보일 때가 없었다. 이 곡은 그와 말러 체임버의 이번 아시아 순회 공연 중에서 일본에서만 모차르트 후기 3대 교향곡을 연주하는 프로그램에 들어있었다. 그렇다. 사실 내가 듣고 싶은 것은 슈만이라던가, 브람스 따위가 아니었다. 나는 정말이지 그의 모차르트가 듣고 싶었다. 그 연주가 누구에게 어떤 평가를 듣던 그건 내게 중요하지 않았다. 나는 어디까지나 젊은 지휘자와 젊은 연주자의 생기가 흘러 넘치고, 명쾌함으로 눈이 부시는 연주를 듣고 싶었을 뿐이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감히 말하건대 음악이 도달할 수 있는 절대적인 아름다움의 질서를 구현한 '주피터', 그중에서도 4악장을 듣고 싶었다. 이런 바람은 그의 모차르트 6번을 듣고서 가라앉기는 커녕 오히려 더욱 커져버리기만 했던 것이다. 그리고 들었다. 그의 손이 올라가고 주피터 4악장의 선율이 울려 퍼지는 순간, 난 이미 제 정신이 아니었고, 곡이 끝나고서야 내 넋은 다시 예술의 전당 합창석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4악장의 피날레를 앞두고 여기저기서 난무하듯 펼쳐지던 다양한 선율들이, 그야말로 꿰맨 곳 없는 천녀의 옷자락처럼 눈 깜짝할 새에 다듬어지면서 찬양의 피날레로 화하는 순간에 감탄할 수 있었다. 그의 모차르트는 화사하면서도 나약하지 않았고, 질주하면서도 광폭하지 않았다. 관은 울려 퍼지되 요란하지 않았고, 현은 겸손하되 침묵하지 않았다. 이제는 그저 기립박수에 환호성 밖에 나는 그에게 보답할 것이 없었다. 다른 무엇도 줄 것이 없었으니까. 그는 이런 관객들의 정성에 감동했는지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쥬피터의 3악장을 선물해주었다. 졸지에 서울에서 동경에 갈 목적을 절반이나 이뤄버린 셈이다. 정말이지 피아노 소나타, 사중주, 협주곡, 교향곡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들려주었고, 모든 것에 만족할 수 있었던 연주회였다. 덕분에 다시금 내 삶에는 윤기가 돌게 되었다. 그것도 순식간에. Thank you, maestro Hard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