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스타벅스를 오면 대부분 조용하다. 왜냐하면 사람이 없기 때문이고. 여기 스타벅스는 지하에 공간이 있는데, 아 내려오는 순간 안심했다. 아. 조용하다... 그러나 그 순간은 잠시. 뒤이어 남녀 한쌍이 내려와 크게 떠들기 시작했고 할아버지 한분이 내려와 전화를 큰 목소리로 하기 시작했고, 여자 두명이 내려와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 도대체 사람들이 스타벅스라는 공간을 다방으로 생각하는 것인지. 소리를 조금 낮추어서 하면 안되나. 속에서 짜증이 치밀어 오르면서.. 이어폰을 챙겨오지 않은 스스로에게까지 짜증의 화살을 돌리게 된다.

 

어쨌든.

 

최근에 두 권의 책을 연거푸 읽었다.

 

나쓰메 소세키의 글은 묘하게 찾아보게 된다. 100년도 전의 사람이고, 약간 고풍스럽고 어색한 어투이고, 그 사상 또한 고루함이 엿보이기도 하는데... 생각의 방식이랄까. 내용의 참신함이랄까. 읽으면서 재미있다 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그래서 현암사에서 나온 책들을 하나하나 다 모으고 있는데... 이 책은 네 편의 단편이 수록된 에세이집이다. 단편도 한꺼번에 쓴 게 아니라 초창기부터 사망하기 바로 전 해까지 띄엄띄엄 쓴 것들을 한데 모은 것이고, 표제인 <긴 봄날의 소품>은 그 중 하나의 제목이기도 하다...

 

나쁘지는 않으나, 아주 좋지도 않은 그만그만한 에세이였다. 소설과는 달리 소세키의 내면을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는 괜챦았고. 특히 마지막 단편 <유리문 안에서>는 그 이듬해에 사망하는 소세키를 생각하면, 뭔가 쓰는 내용마다 애잔함이 스민다고나 할까. 알고 보면 이런 것이겠지. 자주 아프고 그래서 자주 병석에 누웠던 소세키인지라, 주변 사람들 주변 동물들 등등에 대한 감상들이 조금 남다르다고나 할까. 죽음에 대한 생각들도 그렇고.

 

 

 

이런 류의 책을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아서 안 읽고 버티고 있었다. 그러다가 노회찬 국회의원이 김정숙 여사에게 선물을 했다 하고... 지난 번에 경주 내려갔을 때 들렀던 '어서어서'라는 서점의 주인장도 옆에서 보니 극구 추천을 하길래, 그래, 그럼 한번 읽어볼까 하고 사두었던 책이다... 반나절 만에 다 읽을 수 있을 정도의 분량과 내용이었다. 그냥 TV 프로그램의 사람에 대한 다큐멘터리가 있다면 그 나레이션을 읽는 느낌이랄까. 원래 방송작가 출신이라 그런 지 글 쓰는 것이 읽어 내려가는 데 부담스럽게 쓰지는 않으나, 대단히 임팩트가 있거나 깊이가 있는 것은 아니라서 좀 실망스러웠다.

 

내용이 술술 넘어간 것은 내가 여자이기 때문인 지도 모른다. 주인공 김지영이 살았던 시대보다 조금 앞서 살았던 사람부터 김지영 세대까지의 우리나라 여자라면 누구나 겪을 법한 일들. 이제 여자도 교육을 받아야 한다... 라고 해서 가르치기는 하지만 딱 거기까지. 기대도 없고 결혼과 출산과 육아에 따르는 부담을 같이 안기도 싫고... 여성들의 자아는 커지고 있으나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어디에나 만연한 폭력적 상황 (말이든 신체접촉이든)에 노출되어 겁을 먹을 수 밖에 없는... 그런 상황들.

 

학교에서 회사에서 당했던 '여자'였기 때문에 일들이 내 머릿속에서도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가서 마음이 많이 불편했다. 분개하면서도 거기에 대해 뭐라 딱 부러지게 말도 못하고 끼리끼리 모여 욕이나 하며 속을 풀던 우리들. 지금 같았으면 정말 가만히 있지 않았을 것들도 그저그렇게 눈감고 지나가야 했던 나와 내 주변의 많은 여자들의 모습이 떠올라서 소화가 안되는 기분이 되었었다. 이제는 아니겠지.. 라고 하지만, 세상이 많이 바뀌어서 여성들의 지위가 많이 상승되고 어디를 가든 잘 해내는 여성들이 많아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결혼은 불평등하고 출산은 부담스러워하며 육아는 고통으로 다가오고 있다. 언제쯤이면 이런 것들의 평등이 이루어지 것인지 생각하면 갑갑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대단히 추천하고 싶지는 않으나 읽어볼만은 하다 라고 얘기해보련다. 이런 책들이 나오면, 너무나 일상적이라 그냥 잊고 지내던 것들이 표면으로 떠오르고 그래서 다시한번 더 생각하게 한다는 점에서 의미는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읽는 사람이 나같이 여자인 경우, 특히나 저런 시대를 겪었던 여자인 경우는, 상당히 소화가 안될 정도의 갑갑함을 안고 읽게는 되지만.

 

이제 일을 좀 해야겠다. 개인적으로 벌인 일들이 많아 주말마다... 내가 생각해도 고생이다.. 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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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9-02 12: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82년생 김지영》의 반 정도 읽었는데요, 여자 입장에서 보면 화가 날만한 남자들의 안이한 태도를 확인할 수 있어요. 이 책을 남자들도 읽어보면 좋을텐데, 반은 이해를 못하거나 나머지 반은 페미나치가 좋아할만한 책이라고 비난했을 것입니다.

비연 2017-09-02 20:05   좋아요 0 | URL
제가 아는 남자들 중에는 이 책을 읽고, 다 이해하지만 (과연?) 남자들도 힘들어... 라는 반응들이 있었어요.
그게 아니라는 것이 아니라 (사는 건 다 힘들죠...) 여자이기 때문에 그리고 남성 위주의 사회에서 살아가기 위해 겪어야 하는 내용들을 담았다고 생각하는데 말이죠... 아쉬운 부분이에요. 이 책의 결말에서 그거 여실히 보여주죠. 그래서 책을 덮을 때 참... 씁쓸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