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을 왜 샀을까. 솔직히, 난 가토 슈이치라는 지식인을 이전에는 전혀 알지 못했다(무식..ㅜ). 내가 이 책을 산 이유는, '자서전' 이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개인적으로 자서전이라는 종류의 글에 관심이 많다. 어떤 사람이 스스로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는 것. 글을 쓰는 현재의 자기를 만든 과거를 재구성하는 작업. 이런 일들이 내게는 늘 흥미로운 대상이었다. 그래서 '자서전'이라고 붙은 책이 나오면 무조건 사고 대부분 읽는다. 이 책도 산 지는 꽤 되었으나, 결국 이제라도 읽었고.

 

잘 알지도 못하는 일본인 지식인이고, 그러니 이 책에 나오는 가토 슈이치의 知人들은 일본 사회에서는 저명한 사람들일 수 있으나 나는 단 한 명도 아는 사람이 없었다. 역자의 각주를 읽고서야 아 일본 사회에서 이런 역할을 하는 사람이었구나 라는 정도의 감상이 있었달까. 그러니 읽는 속도가 대단히 느릴 수 밖에 없었다. 잘 모르는 사람의 인생에 잘 읽혀지지도 않는 일본인들의 이름이 끊임없이 나오는 책.

 

하지만, 이 책은 읽을 만 했다.

아니, 읽기를 잘 했고 꼭 추천하고 싶다. 

 

1919년에 태어나 21세기 초입에 사망한... 그러니까 일본의 제국주의 시절부터, 태평양 전쟁, 한국전쟁, 일본의 부흥 등등을 다 겪어낸 전후 세대로서, 가토 슈이치는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주변인으로서의 지식인이었다. 정치활동을 한다거나 어디에 적을 두고 계속해서 뭔가를 한다거나 목소리를 드높여 자신의 생각을 강변한다거나 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끊임없이 일본과 해외를 부유했고 거기에서 본인이 느꼈던 것들, 본인이 의구심을 가졌던 것들을 글로 계속 써나갔을 뿐이다. 의사라는 직업이 있었으나 40세에 버리고 자신의 마음의 소리에 충실히 살았던 사람. 그러나 정치적인 동물은 아니었던 사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그의 말과 글에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었다.

 

자신이 그렇게 되기까지의 인생을 담담하면서도 그러나 일관된 태도로 잔잔히 기술하는 능력이 있어서, 사실 별다른 이벤트가 빵 터지는 내용은 없었음에도 책을 손에서 놓을 수가 없었다... 그는, 생계의 목적으로 택한 직업인 의사를 하면서 주변에 훌륭한 지식인들을 계속 두고 교류하며 자신을 만들어나갔다. 일본이라는 나라 안에서 궁금해하던 것들을 해결하고자 외국으로 홀연히 떠났으며 그것을 시작으로 수많은 나라들을 다니게 되었고, 그럼에도 일본인이라는 정체성에 대해서 늘 고민했었다. 일본이라는 나라가 가지는 속성과 역사 앞에서 자신이 바라보는 시각으로서 진실에 다가가고자 노력했다.

 

 

 

 

 

 

 

 

 

 

 

 

우리나라에도 그의 저작들이 몇 권 번역되어 출간된 바 있다. 가토 슈이치의 자서전을 읽고 나니, 그가 직접 쓴 책을 읽고 싶다는 바램이 생겨 몇 권 보관함에 집어 넣는다. 그의 인생을 읽으면서 문득, 리영희 선생이 생각났다. 이 글 <대화>라는 책을 읽을 때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뭣 때문일까를 생각해보니, 가토 슈이치와 리영희 선생 모두, 그 시대에 특출난 지식인이었고 격동하는 역사 속에서 진실과 스스로의 목소리에 귀기울인 사람들이었으며 나서서 투쟁을 울부짖기보다는 글을 통해 보여주려 했던 사람들이었다는 공통점이 있는 게 아닐까 싶었다. 이 두 책을 읽으면서, 지식인이란 과연 이래야 하는 게 아닌가 라는 생각도 들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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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4-10 19: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리영희 선생의 책과 버트런트 러셀의 책을 거의 같은 시기에 읽은 적 있었어요. 리영희 선생과 러셀, 이 두 사람의 반전 ᆞ 반핵 의식이 묘하게 비슷한 느낌을 받았어요.

비연 2017-04-11 09:44   좋아요 0 | URL
아. 버트란드 러셀... 이 분 책은 잘 안 읽는 편인데 한번 봐야 겠어요...
개인적으로 리영희선생님을 좋아해서.. 요즘 같은 시기에 이 분이 살아계셨으면 뭔가 사회의 원로로서 제대로 된 이야기들을 해주지 않으셨을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