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이니까 역시 책으로 마무리를 한번은 해야지. 다음 주는 여행이 예정되어 있어서 책을 한두권 더 읽을까 말까인지라 미리 나름의 올해의 책을 꼽아본다. 이건 뭐... 그냥 내가 읽은 책 중에 가장 감명 깊은 책들이었어요...의 리스트니까. 다음 주에 읽을 책이 내게 크나큰 감명을 주었다면 바로 추가해서 올리면 그만이다. 큭.

 

올해는 많이 읽겠어.. 라고 작심까지 했는데도 계획에 한참 못 미치는 권수인지라. 물론 뭔가를 양으로 승부한다는 것이 좋은 것이냐... 라고 묻는다면 할 말은 없다. 책은 質이지. 하지만 가끔 量도 중요하니까. 그리고 난 읽고 싶은 책이 많으니까. 내년의 목표도 정해야 하지만, 일단 올해부터 마무리하고. 꼽아보니 11권 정도 된다. 작년엔 7권 꼽았더랬는데. 늘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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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류

 

 

1. 목로주점 (에밀 졸라) - 프랑스

 

 

에밀 졸라의 이 소설은, 올해 마지막달에 큰 소득이었다. 너무 비참할까봐 선듯 손을 내밀지 못했던 책인데, 상당히 사실적이고 그러면서도 마냥 바닥을 치는 문제도 아니라서 굉장히 몰입하여 재미나게 읽었다... 이런 내용이 재미나다고 할 수 있겠는가. 한 여성이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애쓰다가 벗어났나 싶더니 그 자유와 풍요에 매몰되어 결국 나락으로 떨어지게 된다는 이야기. 그 주변의 많은 서민들이 살아가는 모습. 술과 빈곤과 질투와 시기와 분노와 자포자기들. 그 모습들이 마치 영화를 보듯이 선명하게 머릿 속에 그려졌더랬다. 어떻게 이런 글을 쓰나 싶을 정도로 감탄... 20권짜리 이 총서 중에서 유명하다는 <제르미날>, <인간짐승>, <나나>는 무조건 보관함에 넣어두었다. 내년에 이 중 한 두 작품은 꼭 접해 보리라... 심지어 요즘은 때맞춰 세잔과의 우정을 그린 영화까지도 등장하였으니. 이 영화도 한번 봐야 하나 싶다. 드레퓌스 사건으로 말년에 궁지에 몰렸었던 에밀 졸라로만 알고 있었는데, 대단한 문학가였음을 재발견한 책이었다. 이제까지 에밀 졸라의 책을 읽지 않았다는 것에 대해서도 내심 놀라고. 다른 프랑스 작가들의 책은 그렇게 읽어댔으면서 말이다.

 

 

※ 내년에 찜해둔 에밀 졸라의 책들

 

 

 

 

 

 

 

 

 

2. 풍아송 (옌롄커) - 중국

 

 

묘하게 중국 작가가 쓴 책은 내게 잘 맞는 편이다. 그 걸쭉한 입담과 비참한 현실에 대한 중국 특유의 해학, 그러면서도 놓치지 않는 문학적 감수성, 독특한 정신 세계 등이 내게는 즐거움으로 다가온다. 루쉰으로부터 비롯하여, 위화, 모옌... 등등등. 그리고 올해 만난 작가 옌롄커도 내가 기억할 만한 중국 작가로 기억된다. 이 책을 썼을 당시 북경대학교를 배경으로 한 것이 아니냐는 비난과 질책이 난무했다고 하지만, 어디가 배경이었든간에 (그건 기득권층의 몸부림에 불과하다고 난 생각하기에) 중국의 현재의 모습을 고전의 힘에 빌어 세세하게 묘사했다는 것에 상당히 감탄했었다. 중국인들의 스케일이랄까. 그런 것에도 감탄했었고. 꿈인 듯 생시인 듯 현실인 듯 아닌 듯 묘사하고 있지만, 다양한 분야에 대한 폐부를 찔러대는 솜씨에도 경탄했었다. 또한, 요즘 내가 좋아하던 위화의 필력이 예전같지 않아 실망하던 차에 또 하나의 중국 작가를 만나 기뻤다.

 

 

 

 

 

※ 내년에 찜해둔 옌롄커의 책들

 

 

 

 

 

 

 

 

 

3. 7년의 밤 (정유정) - 한국

 

 

한국 작가, 특히 여성이라는 성별이 쓴 작가들에 대해 편견이 있는 나로서는 올해 정유정의 발견은 충격에 가까왔다. 어라. 이런 글을 쓰는 작가가 우리나라에도 있었네? 물론.. 내가 질색하는 장광설이 아주 없지는 않으나, 그 쫀쫀한 구성과 문체, 표현력, 그리고 그 스케일. 가히 압도적이었다. 예전부터 정유정을 추천하는 많은 알라디너들이 있었지만, 애써 외면하고 있었는데 아 이제야 그 느낌을 공유하게 되었구나 라는 애석함마저 있었다. 영화로도 만들어진다고 하지만, 사실 소설을 영화로 만든 것에서 감명을 받은 기억은 거의 없는 지라 그냥 일단 패스하고... 정유정의 소설을 좀더 밀착해서 읽어 보리라 생각하고 있다. 이미 <종의기원>은 사두었고.

 

 

 

 

 

 

 

※ 내년에 찜해둔 정유정의 책들

 

 

 

 

 

 

 

 

 

4. 스토너 (존 윌리암스) - 미국

 

 

단연, 이 책이 올해의 책이었다, 내겐. 주변 사람들에게 선물도 꽤 했다. 심지어 회사에서 책선물하는 이벤트가 있었을 때도 이 책 소개해서 당첨이 되었고 세 명에게 회사 돈으로 선물하는 영예도 안았다. (우훗) 담백하고 평이하지만 진솔하고 마음을 연민으로 적시게 하는 이 책. 영어로도 읽겠다고 야심차게 사두었지만 그건 아직 진도가 별로 안 나갔고. 한글 책만큼은 옆에 두고 그냥 몇 장씩이나마 읽고 있다. 한 사람의 인생이 이렇구나. 미미하지만 무겁고, 단조롭지만 경이롭고, 느리지만 빠른. 그래서 인생이 무엇인지 죽음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굳이 공자왈 맹자왈 하지 않아도 마음으로 느끼게 해 준 책. 그것이 이 책 <스토너> 였다. 영어로도 꼭 완독하고 싶다. 원어가 주는 맛을 느끼고 싶어서.

 

 

 

 

 

이렇게 골라보니, 프랑스, 미국, 중국, 한국 소설 한 권씩을 고른 격이 되었다. 재밌네.

 

 

 

인문/에세이류

 

 

5. 멀고도 가까운 (리베카 솔닛)

 

 

인문/에세이류에서는 올해 내게 가장 큰 감동을 준 책이었다. 작가의 상처와 어머니의 모습이 겹쳐져서 아릿한 느낌을 자아내던 글이었다. 평범하지 않은 정신세계가 엿보이지만, 또 어느 순간 나의 어떤 모습들을 떠오르게 하는 글들. 이런 글을 잘 쓴 에세이라고 하지 않을까 생각햇었다. 스스로의 상처에 대해, 특히 어릴 적의 상처, 부모에게서 받은 상처를 얘기할 때 사람들은 상당히 감상적이 되고 글이 너저분해진다. 조절되지 않은 감정들이 얼룩덜룩하게 묻어난다고나 할까. 하지만 레베카 솔닛은 참 정제되고 차분하게 '극복'이란 걸 하는 자신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그게 마음에 들었고 와닿았더랬다.

 

 

 

 

 

 

 

 

 

6.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노벨상 탔다고 무조건 좋아라 하던 시절은 지났다. 하지만 이 책은, 에세이라 하기에도 인문학이라 하기에도 그 어느 쟝르에도 잘 부합되지 않는 이 책은 노벨상이라는 상을 줄만 하다고 생각했다. 관점있는 사람의 수년간의 인터뷰라는 것이 어떤 건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전쟁마저도 남자들의 전유물이고, 그래서 전쟁에서마저 소외된 여성들이 있었다. 그들은 전쟁에 남자들만큼 용맹하게 참여하기도 했고 후방에서 생활을 지원하기도 했었지만 잊혀져 있었다. 그들을 복원하고 그들의 상처를 드러내는 데에 있어 작가는, 애정을 다해 표현하고 있다. 그냥 그렇게 지나치는 사람들이 아님을, 그들은 그들 나름의 기억과 상처가 있음을, 그리고 전쟁은 결코 남성들만의 것이 아니며 그 속엔 분명히 여성도 있었음을 최선을 다해 이야기하고 있다. 남다른 방식이 마음에 들었고 그 내용들이 마음을 후벼 팠더랬다. 그 처절함이 아직까지도 내 마음에 잔상을 남기고 있을 정도로.

 

 

 

 

 

※ 내년에 찜해둔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 책들

 

 

 

 

 

 

 

 

 

7. 가만한 당신 (최윤필)

 

 

이 책을 그냥 지나칠 수 없다. 알지 못하는 사람에 대한 부고가 한 권의 책으로 묶여 나오다니. 그리고 누군가의 죽음을 이렇게 설명하고자 하는 사람이 있었다니. 아. 아니다. 죽음이 아니라 그들의 삶을 이야기하고 싶었다는 게 더 정확하겠지. 누구의 인생인들 귀중하지 않은 인생이 있겠는가. 다 처음 살아내는 인생에서 나름의 최선을 다하고 살고 있다. 그 와중에, 세상의 편견에 대적하고 스스로의 삶을 나만의 것이 아니라 모두의 것으로 만들어나갔던 사람들이 있는 것이다. 최윤필이 이야기하고 있는 사람들은 그런 사람들이었다. 읽다보면 불현듯 괜한 부끄러움이 생기는. 부끄러우라고 쓴 글들은 아니겠지만, 그러나 부끄러워지는 그런 책이었다. 진실과 정의를 위해 내가 한 일은 무엇인가. 아주 작은 일이라도. 그런 생각들을 하면서 읽었던 모음집이었다.

 

 

 

 

 

 

8. 읽는 인간 (오에 겐자부로)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일본 작가 오에 겐자부로의 '읽기' 예찬이랄까. 인생을 통틀어 책을 읽는다는 것이 본인의 인생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 지, 수많은 인생사에서 어떤 버팀목이 되어 주었는지, 그리고 그 책읽기는 어떻게 하면 좋은 지에 대해서 차분하고 정갈하게 구술하고 있는 책이다. 오에 겐자부로는 알다시피 아이가 병이 있었고 그 아이를 키우면서 느꼈던 감정의 알알들이 작품에 묻어나는 작가이다. 그만큼 사는 것이 녹록치 않았던 사람이고 어쩌면 많이 느리고 많이 노력해야 하는 사람이었지만, 읽는다는 것에 만큼은 일찍부터 철학을 가진 사람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알라디너라면 누구나 책을 좋아하니까 이 심정을 이해할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인생의 굽이굽이 책이 있기에 내가 설 수 있었던 시기가 참 많았음을, 오에 겐자부로의 고백과 함께 다시 한번 절렬히 느끼는 시간들이었다, 이 책을 벗한 시간들이.

 

 

 

 

 

 

과학서적

 

 

9. 사피엔스 (유발 하라리)

 

 

올해 내가 읽은 과학서적 중 으뜸이다.. (사실 많이 읽지 않았다, 과학서적ㅜ) 태초부터 지금까지의 인류의 발생부터 인공지능이라는 것이 얘기되는 현재까지의 역사를 독특한 관점으로 풀어낸, 보기드문 과학서적의 쾌거라고 생각한다. 광대한 참고문헌도 문헌이지만, 작가가 가지고 있는 세계관이 이제까지와는 좀 달라서, 일면 통쾌함마저 느끼면서 본 책이었다. 이 책도 여러명에게 선물로 주었던 기억이 있다. (책 선물 좋아라 하는 비연..ㅎ) 이 사람이 비슷한 류의 책을 쓴다면 반드시 사볼 의향이 있다.

 

 

 

 

 

 

 

 

 

 

만화

 

 

10. 송곳 (최규석)

 

 

만화? 라고 하지 말라. <송곳>은 만화가 아니다. 이것은 그냥 이러저러 궁시렁거리면서 쓴 산문책들보다 백배 천배는 더 많은 것들을 던져주는 책이다. 연초에 이걸 보고 어찌나 좋던지. 요즘 이랜드 불매운동도 벌어지고 있지만... 누군가는 이 세상에서 '송곳'의 역할을 해주어야 한다... 라는 것을 되새김질하기에 충분했다. 비단 이랜드 뿐이겠는가. 그리고 그것이 기업에 한정된 것이겠는가. 요즘같은 세태에선 정말이지 두고두고 읽을 만한 으뜸의 책이다. 내친 김에 연말에 이 만화나 한번 더 봐야겠다.

 

 

 

 

 

 

 

 

11. 마스터키튼 리마스터 (우라사와 나오키, 나가사키 타카시)

 

 

마스터 키튼 리마스터는 역시, 기존에 나왔던 <마스터 키튼>을 무색하게 하지 않을 만치의 중량감이 있었다. 마스터 키튼 전편에서 흐르는 사람에 대한 애정, 사사로운 것에 대한 소중함, 세상에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나 사람.. 이라고 보내는 메세지들. 나는 리마스터를 보기 전에 이 전권을 다시 한번 더 보았고 다시 한번 감동을 느꼈다. 볼 때마다 마음을 저릿하게 만드는 책이 어디 흔하던가. 이 <마스터 키튼> 시리즈가 그런 책이다. 아 제발 계속 나왔으면. 하는 간절함마저 생긴다. 제발제발....

 

 

 

 

 

 

 

 

***

 

 

이 밖에도 몇 권 더 있기는 했지만, 다시 돌아봐도 이 11권의 책이 올해는 가장 좋았다는 생각이다. 이렇게 올해의 독서기록들을 되새김질 해보니 마음이 너무 따뜻해진다. 이 책들이 있어서 올해를 버틸 수 있었다, 싶기도 하고. 고맙다, 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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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6-12-23 21: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연님, 2016 서재의달인 축하드립니다.
행복한 크리스마스 되세요.^^

비연 2016-12-24 01:41   좋아요 1 | URL
서니데이님, 감사해요~
그닥 많은 활동을 한 건 아닌 것 같은데 선정되어서 좀 얼떨떨... Merry Christma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