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모양처의 죽음 해미시 맥베스 순경 시리즈 4
M. C. 비턴 지음, 전행선 옮김 / 현대문학 / 2016년 10월
평점 :
절판


 

이 시리즈에 대한 이야기는 정말 자주 하는 것 같다. 지금 6권까지 번역되어 나왔는데, 여차하면 그냥 원서로 볼 마음이 든다. 책도 가볍고 손에 쥐기에 적당한 크기라 번역본도 꽤 마음에 든다. 무엇보다 나는 이 시리즈의 주인공인 해미시 멕베스 순경이 좋다. 왜? 이번 4권을 읽으면서 내가 이 주인공을 왜 좋아하는 지 확실히 알게 된 것 같다.

 

그러다가 프리실라에게 가까워지기 직전에야 비로소 자존심 덕분에 가까스로 체면을 차릴 수 있었다. 해미시 멕베스는 원숭이 같은 털복숭이 남자에게 홀딱 반해 정신을 못 차리는 저급한 취향의 여성 뒤꽁무니나 쫓아다니는 그런 남자가 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오랜만이에요, 프리실라."

(p35)

 

신분 차이가 완연한 프리실라 할버턴스마이스에게 마음을 뺏기고 있으면서도, 자존심을 지키려고 하는 시골 순경의 태도. 멋지지 않은가. 비위나 맞추려 한다든가 마음에 들지 못할까봐 전전긍긍하지 않고 끝까지 나름의 품의를 지키려는 해미시. 굿.

 

그와 해미시는 유전자 지문 감식법으로 해결한 사건들에 관해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고, 프리실라는 다시 데이비엇 부인을 상대하게끔 남겨졌다. '이게 바로 해미시와 결혼하다면 내가 살아가게 될 그런 삶이란 말이군.' 그녀는 생각했다. 하지만 해미시가 직접 총경을 찾아왔다는 사실은 그에게도 야망이 있음을 보여 주는 어떤 신호가 분명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니, 프리실라는 갑자기 기분이 좋아져서 데이비엇 부인의 심문 같은 질문도 그럭저럭 견뎌 낼 수 있었다.

(p59)

 

해미시를 좋아하는 것을 아직 완전히 깨닫지는 못했지만, 해미시와 함께 있는 것이 좋은 프리실라. 하지만, 야망이 없는 남자에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그녀는, 해미시가 시골에서 순경으로나 만족하며 살려고 하는 것이 비겁한 것이라 생각한다. 이런이런. 야망이 뭔지나 아는 지. 야망을 가진 남자가 어떤 종류인 지 알기나 하는 지. 생각만 해도 머리가 지끈지끈 아프구만.

 

해미시는 한숨을 쉬었다. "날 여기 묶어 두는 게 내 아둔함이나 수줍음 같은 게 아니라는 사실을 언제쯤이나 당신 머리가 받아들일 수 있겠어요? 난 로흐두를 사랑하고, 로흐두 사람들도 좋아하고, 여기에 있는 게 행복해요. 내가 왜 꼭 사회의 통념에 맞춰 로흐두 밖으로 나가 승진을 하고 돈을 벌고 하는 식의 성공을 해야 하는 거죠? 난 성공했어요, 프리실라. 요즘 나처럼 자신의 삶에 만족하고 사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요."

(p228)

 

이 대목에서, 난 해미시 멕베스 순경을 좋아한다고 소리지를 뻔 했다. 이 얼마나 당당한가. 자신의 삶에서 자기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확실히 알고 있고 남과 비교를 하지 않으며 자신의 행복에 충실한 모습. 이게 자칭 성공했다 하는 사람들이 봤을 때 대수롭지 않은 인생이면 어떤가. 이런 경지가 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얼마나 영리해야 이럴 수 있는지를 이해 못 할 사람들에게 이해를 구할 필요도 없는 것이고. 해미시의 이 말 한방이 얼마나 좋은 지.

 

 

그때 데이비엇 부인은 블레어 경감의 존재를 처음으로 알아차렸다. 그녀는 프리실라의 차가운 반응에 속이 쓰리던 참이었다. '블레어는 정말 괜찮은 사람이야.' 데이비엇 부인은 생각했다. 그 말은 블레어라면 무조건 그들 앞에서 굽실거리며 아첨하리라는 사실이 보증된다는 의미였다... (중략) ... 블레어는 거의 뛰다시피 그들 곁으로 왔다. 데이비엇 총경도 긴장이 풀리기 시작했다. 블레어에게는 사람을 안심시키는 뭔가가 있었다. 그는 한마디로 전형적인 형사였다. 해미시는 특이하고 별나고 사람 기분을 상하게 했다. 솔직히 말해 진심으로 행복하고 만족스러운 사람을 사는 사람과 마주치고 싶은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다는 말인가.

(p258-259)

 

역시 한 자리를 하는 사람은, 게다가 그 사람의 부인까지도, 자기 맘대로 안되면 싫어한다. 아주 작은 지위라도 가지고 있으면 그러하다. 나에게 아첨해주길 원하고 내가 원하는 대로 해주길 원하고 무조건적인 복종을 하길 원한다. 나의 불행이 그에게도 자리해서 함께 고뇌하기를 원한다. 일반적이고 전형적인 사람이 좋다. 권력 앞에 굽신 거리고 애결하고 살살 거리고, 그래서 나의 자존심을 높여 주는 사람이 좋다. 인간에 대한 완벽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우리는 지금 현실로도 그걸 목격하고 있으니까. 상당히 가슴 아프게, 절렬하게, 미치게.

 

 

그녀는 천천히 돌아서서 부엌 식탁에 나란히 놓인 두 신문을 바라봤다. 광분한 존 벌링턴의 얼굴과 멕베스 순경의 행복한 얼굴이 보였다.

(p267)

 

고작 4권 읽었지만, 해미시 멕베스 순경이라는 캐릭터가 점점 좋아진다.

 

사람의 내면을 꿰뚫어보는 힘, 그리고 어찌어찌하여 누군가를 죽이거나 해꿎이 한 사람들에게도 보이는 따뜻함, 유머 그리고 마을과 주변 사람들의 평온함을 지키려는 보이지 않는 노력들. 슬쩍 슬쩍 불법적인 일을 하면서도 얄밉지 않게 넘어가고, 사랑 앞에 약하지만 비굴하지 않은 모습. 그리고 무엇보다 부러울 정도로 현재의 삶을 사랑하는 자세.

 

반하지 않을 수 없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재는재로 2016-11-06 16: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프리실라는전권들에서 만난남자들을보면모두야망이가득한 인물들이고야망없는 헤미시를이해하지못하죠 헤미시가자신의생활에만족한다는걸이해하지못하는 가족들이속물인데 그자신역시 모르지만그런면이있죠 2권의공산주의자부터지금까지나머지권에서는 다행히남친이없죠 근데헤미시가다른여자한테관심이가서 과연두사람이이어질지 지켜보는것도이시리즈의재미중하나죠 썸아닌썸타는두사람의관계

비연 2016-11-06 20:25   좋아요 0 | URL
저도 이게 꿀잼이에요 ㅎㅎㅎ 프리실라가 야망없는 해미시를 이해하고 받아들일 것이냐 아니면 해미시가 다른 여자에게 마음이 가게 될 것이냐... 둘이 이어지면 어떤 모양새일까도 기대되구요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