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대학원 선배이자, 지금 회사의 같은 팀에 있는 분이 그제 퇴사를 하겠다고 밝혔다. 이직이 아니고 그냥 온전한 퇴사. 아이가 둘이고 아직 중고딩이고 남편은.. 흠. 생략. 그닥 도움이 안된다는 것까지만. 그래서 사표를 훌렁 던졌다고 하여 깜짝 놀랐다. 사회 물이 들대로 든 내가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앞으로 어쩌려구? 이 험한 세상에? 뭔 생각이지?..

 

어제 긴급 회동을 했고 태국음식을 우걱우걱 먹어대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결국 태국음식만으로는 안되어 팥빙수까지 먹으러 근처 빠바를 갔었다는... 다이어트에 별로 도움 안되는 전개. 태국음식은 맛났고 아주 오랜만이었고 그래서 더욱 맛났고... 다음엔 다른 것도 먹어봐야지 하면서 나왔고... 암튼 말이 옆길로 샜는데.. (으이구 비연) 그저 홀가분하고 좋다고 했다.

 

정말 안 맞는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나가야겠다 생각한 건 오래 전이라 했다. 물론 아이들 생각해서 좀더 버티어 보리라 하고 버틴 건데, 그 누군가가 (있다, 싸가지 없는 넘) 그 심정에 벽돌 하나 올려서 누르는 바람에 튕겨나가게 된 거라 했다. 일을 그만둔다니 자유롭고 즐겁고. 아직 앞으로 뭐할 진 생각하지 않았지만 이제 천천히 알아보고 싶고. 나이가 있고 또 본인 성향상 어디 다시 취직하긴 싫고 그래서 아마도 창업(!)을 하지 않을까 하는데 그것도 불명확하긴 하다.. 하지만 여길 벗어나야 뭔가를 할 수 있겠다 라는 생각이 커서 그냥 사표를 던진 것.

 

그래. 뭐. 그럴 수도 있지.

 

경제적 이유, 그것 때문에 사실 회사를 그냥 나가기는 어렵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앞으로 뭐 먹고 살지 할 일은 있을 지 무지하게 불안하니까. 논다는 건, 경제적 서포트가 대략 다 끊어진다는 것이고 이 불경기에 뭔가 새로운 job을 찾는다는 건 불가능해보이기도 하고... 그래서 사실 난 조금 더 참아보라고 말렸다. 그 선배라고 대단히 부자에 일 안하고도 먹고 살 수 있을 사정은 아니니까. 애들 클 때까지만 몇 년만. 그러나 이미 저질러진 일이라 되돌리기 힘들고... 다시 그 생활로 돌아간다는 건 너무 끔찍하다.. 라는 답.

 

그래, 뭐. 산 입에 거미줄 치겠어.

 

얘기하다보니, 문득 내가 부러워하고 있다는 걸 느꼈다. 그것도 많이. 아주 많이. 저런 홀가분함을 느꼈던 적이 나도 있었다. 십년 전쯤, 직장 때려치고 나온 적이 있었다. 그 때의 해방감이란. 지금도 기억난다. 그 심정. 퇴사 완전히 하고나서의 첫날. 세상이 온통 이뻐보였던... 그리고 내가 간 곳은 만화방이었다.. 푸하하. 가서 하루종일 보고 싶은 만화를 읽어대었었다. 좀더 우아한 곳을 갔어야 했나... 갸우뚱이지만, 난 그 때 그게 정말 하고 싶은 일 중의 하나였었다. 평일에 만화방 가서 만화책 보기. 대학 때처럼. 크크크.

 

물론, 그런 자유로움이 오래 가진 않았다. 젊어서 불안감 따윈 없을 줄 알았는데, ... 시간이 지나니 그게 커졌다. 사실 그 땐 어디 다른 데 취직하겠다는 마음은 전혀 없었고 공부를 좀더 해볼까 하는 마음이었는데 나와보니 공부가 하기 싫었다. (나는 공부가 싫은 거다.. 그러니까) 그래서 그냥 선배들 일 도와주면서 (사실 부림을 당한 거다..ㅜ) 그냥저냥 1년 정도 지냈더니 뭔가 낙오자 같은 느낌? 이런 게 들어서 많이 괴로와졌었다. 결국... 그 싫어하는 공부라는 걸 좀더 하는 소심한 길을 선택했고.. 그래서 이모양 이...꼴...ㅜㅜ

 

응원을 보내고 싶다. 오히려 다 놓고 나면 뭔가 보일 지도 모르고. 이제 나이가 먹어서 그냥 아무 대책없이 나갔다고 생각되지도 않고. 또... 이젠 정말 내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알 나이가 아닐까 싶어서... 걱정 안 하기로 했다. 다만 화이팅을 외칠 수 밖에. 선배.. 홧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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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9-04 12:0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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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9-04 13:1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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