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에 좀 무리를 한다 싶었다. 일 때문은 아니고.. 물론 일의 스트레스도 만만치 않았다. 그렇지만 그보다는 새로운 만남들에서 괜한 들뜸과 즐거움을 발견하고는 정신없이 저녁마다 놀았던 것 같다. 예전같으면 그 정도야 뭐 거뜬하게 버텨냈겠지만 역시 나이는 속일 수 없는 모양이다. 주량이나 체력이나 정말 예전같지 않다.

 

덕분에 금요일부터 왠지 두통에 오한이 있다 했더니만, 토요일부터 오늘까지 꼬박 침대와 한몸이 되어 끙끙 앓는 신세가 되고야 말았다. 독감. 몸살. 의사는 그렇게 말했다. 거기에 나혼자 마음으로 하나 더 붙였다.. (노환) 아 정말...ㅜㅜ

 

아프면 책도 눈에 안 들어온다. 그저 먹고 자고 또 먹고 자고. 그렇게 해도 아직까지 다 낫지 않았다. 역시 머리가 아프고 근육통도 심하고 열도 조금 있고... 병원에 가보니 나같은 사람들로 바글거렸다. 독감이 유행이라 하더니 거짓이 아님을 내눈으로 확인하는 기분이란. 그 속에 내가 있다니.

 

 

드문드문 아사다 지로의 이 책을 읽고 있다. 에도 시대에서 메이지 시대로 넘어가는 그 어정쩡한 순간에 처한 옛사람들의 이야기. 그냥 아무 생각 없었는데, 바꿔놓고 생각하니 정말 그랬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어서 괜스레 아연해지는 책이다.

 

"송구스럽습니다만 주인님, 먼 옛날부터 한 해의 섣달그믐은 음력 12월 말일로 정해져 있습니다. 아니면 무엇입니까, 저 사쓰마 조슈의 섣달그믐은 12월 초이틀이기라도 하단 말씀인가요?...(후략)"...(중략)..."제 아무리 사쓰마 조슈라도 섣달그믐은 12월 말일일세. 그런데 올해부터 서양 책력을 채용한다나 뭐라나 해서, 말하자면 12월 초사흘부터 말일까지가 없어져버린다나봐. 그래서 초이틀이 섣달그믐, 그 이튿날이 메이지 6년의 원단이 되는 거지." (서쪽을 보는 무사 中)

 

"예부터 사용한 일본 시계에는 열두 시각을 나타내는 짧은 바늘 하나뿐이었다. 물론 그 시계조차 별 대단한 이기는 아니었다. 사라들은 하늘을 올려다보거나 그림자를 내려다보고 때를 알았다. 나날의 작업도 타인과의 약속도 시각을 대강 정했고, 지각을 탓하는 사람도 없었다.

시곗바늘이 두 개가 되면 기다리는 사람은 조바심이 난다. 조만간 올 사람을 멀거니 기다리며 시간을 흘려보내는 일은 이제 없어진다. '발사 30세컨드 전' 1세컨드. 24시로 나뉜 1아워스의 60분의 1인 1미니트의 60분의 1. 일순간을 규제하면서까지 하는 전투에 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것은 단지 맞서는 적도 똑같은 인간이란 생각을 못 하게 하려는 수법 아닌가. 1세컨드라는 순간에는 인정을 발휘할 틈이 없으니까. 목숨을 구걸할 틈도, 동정을 베풀 틈도 없으니까." (먼 포성 中)

 

생각해보니 서양식 시간에 완전히 익숙해진 우리는 초단위로 숨가쁘게 살아가고 있는 것 같다. 예전처럼 2시간 정도씩 대충 잘라서 자 축 인 묘.. 등등의 時로 계산할 때는 여유로움이 있었겠건만. 현대인들이 성마르고 스트레스받고 힘들어하고 그러는 것은 어쩌면 이런 시간의 다툼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나또한 요즘, 매일 정신없이 여기저기 얽매여 지내고 나면... 집에 돌아오는 길이 그리 허전하다. 나이 탓일까. 요즘은 이런 게 무슨 의미가 있나 라는 쭈그러진 생각을 하곤 한다. 누군가 그랬다던데. 인생은 지치지 않는 자가 이긴다고. 맞는 말인 것 같다. 계속 자기를 경직되게 빠릿하게 유지한다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라는 걸, 요즘 많이 생각하고 있다. 이렇게 일각을 다투는 삶에서 남는 건 뭘까 라는 생각도 곱씹어 하고 있고.

 

아사다 지로의 책은 그래서 좋다. 단편들이 말하는 게 마음에 쏘옥 들어온다. 따뜻하고 정감있는 글을 쓰는 작가다. 아플 때 이런 사람의 책을 찾게 되는 건, 당연한 건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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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울 2014-02-18 1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밥때군요. 끼니와 끼니 사이만 있어도 좋겠군요. 몸 챙기세요. 많이 쉬어주고요.

맛점~ 드시고 힘내시구요. ㅎ

비연 2014-02-19 20:42   좋아요 0 | URL
감사요... 힘내보려구요~ㅎㅎ

antitheme 2014-02-19 08: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감기가 몹시도 오래 가던데 몸 잘 챙기세요.
역시나 감기는 푹 쉬고 잘 먹는 것 밖엔 없을 듯 합니다.

비연 2014-02-19 20:42   좋아요 0 | URL
다행히 초기라 감기약 먹고 며칠 침대와 한몸으로 살았더니만 많이 좋아졌어요.
감사요~

페크pek0501 2014-02-23 09: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몸 잘 챙기세요. 나이가 들수록 건강이 제일인 것 같아요. ^^

비연 2014-02-24 07:48   좋아요 0 | URL
perk0501님.. 정말 맞는 말씀인 듯. 요즘 주말마다 쓰러져서 정말..;;;;
건강에 신경써야 할 나이가 된 것 같아요. 좋은 말씀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