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준영과 승리의 사건을 보면서 우리 사회는 정말 같은 일들이 조금씩 다른 양상으로 반복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사회구나, 그러나 이제 곪을대로 곪아서 터질 단계까지는 온 것일 수 있겠구나, 이번 기회에 뭔가 획기적인 전기를 만들었으면 좋겠는데 이런 생각을 한다. 남자들의 여자를 보는 시각은 뭘까. 여자를 물건으로 취급하지 않고서야 동등한 인격체를 대하는 태도가 이 정도라면 그건 스스로가 인간이길 포기하는 게 아닌가 싶다.

 

회사를 다니다보면 여전히 여자를 보는 시각이 저열한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이걸 하나하나 지적질하기 조차 짜증나는. 그런 의식들이 모여서 모여서 이런 심각한 사건들이 벌어지는 근간을 이루게 되는 것이 아닐까.

 

아까 우리 팀 30대 여성직원들이 프로젝트 사이트에 있다가 오랜만에 연봉싸인하러 본부에 들렀더랬다. 이런 경우, 어떻게 인사하는가. "아 반가와요." "오랜만이네." "잘 지내죠?" 이게 정상 아닌가. 근데 한 오십대 후반의 아저씨 부장이 큰 소리로 얘기했다.

 

"어! 우리 공주님들 왔는가?"

 

공주님?  누가 공주님? 나는 뒤돌아 앉아 있었고 이걸 지적해야겠다고 고개를 돌리려는 순간, 옆에 있던 남자직원이 슬쩍 말한다. "아이고. 요즘 그렇게 말하면.. 안되는데." 그래, 그런 얘길 하는 사람도 있군. 그랬더니 그 아저씨,

 

"아니 왜? 공주님이 어때서? 공주님이 공주님이지?"

 

워낙 평상시에도 여자 팔자는 뒤웅박 팔자라고 공공연히 말하는 사람이라 더이상 말 섞기가 싫었다. 딸이 둘인데, 첫째가 공부를 좀 잘해서 소위 명문대를 다닌다. 이번에 로스쿨을 지원할 거라고 해서 내가 "좋네요." 그랬더니 한다는 말이,

 

"뭐. 한다니까 자유롭게 두는데 어차피 여자라 나중에 어떻게 될 지도 모르고. 애도 키워야 하고."

 

여자는 남자 잘 만나 가정을 이루고 결혼해서 애낳고 하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는 시각이다. 그게 중요하지 않다는 게 아니다. 딸을 키우면서 어떻게 같은 돈 들여 공부를 시키면서 그런 사상을 계속 지니고 있는 지 이해가 안 된다.

 

심지어 프로젝트 사이트에서는 고객들 사이사이에 여성직원들을 끼여 앉히기 까지 한다고 들었다. 그리고는 말했단다.

 

"그게 고객에 대한 예의거든. 여자가 끼여서 얘기를 받아줘야 부들부들 해지거든, 분위기가."

 

내가 직접 들은 얘기가 아니라서, 게다가 한참 지난 일이라서 뭐라 대놓고 말은 못했지만, 정말 '쓰레기'라는 생각을 했다. 어떻게 같은 회사 직원을 그런 식으로 취급을 하는 지. 50대면 나이도 많지도 않고, 자기도 딸들만 있는데 여성에 대한 의식이 이렇게 저열하고 비루해서야 어쩌겠는가.

 

요즘, 그래서 독서량도 줄었지만, 1월 초까지 읽다가 침대맡에 고스란히 남겨진 <페이사이드>를 다시 펼쳐들었다. 절반 정도 읽었었는데 최근의 사태들과 연결지어 보니 더욱 흥미롭고 재미있고... 분노스럽다. 이제 포르노그래피 부분을 읽고 있는데, 현재의 정준영, 승리 사태 (사실 이게 빙산의 일각일 거라는 것은 누구나 알 거다) 를 떠올리면서 저녁마다 분노하면서 읽고 있다. 넘 무기력해져서 새해의 결심을 잊고 있었는데, 페미니즘 책읽기라는 나의 최초의 목표를 다시 떠올리며 독서에 집중해봐야겠다. 역시, 책을 통해서 느끼는 것이 제일 절렬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