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식의 강
올리버 색스 지음, 양병찬 옮김 / 알마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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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아인슈타인은 "새로운 이론이 낡은 이론을 무효화하거나 대체하는 게 아니라, 낡은 개념들을 좀 더 높은 수준에서 재발견할 수 있게 해준다"고 역설했다. 그는 유명한 직유법으로 이 개념을 확장했다.

 

비유법을 사용하여 설명해보겠다. 새로운 이론을 만든다는 것은 낡은 헛간을 부수고 그 자리에 마천루를 세우는 것과 다르며, 그보다는 산을 오르는 것과 비슷하다. 당신은 위로 올라감에 따라 시야가 새롭고 넓어지며, 출발점과 다채로운 환경 사이에서 예기치 않았던 관련성을 발견하게 된다. 당신은 변화무쌍한 산행길에서 장애물을 통과하여 마침내 널따란 시야를 확보한다. 그러나 출발점은 아직 존재하며, 크기가 아무리 작아 보이고 시야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작더라도 여전히 시야에 들어온다. (p226)

 

 

올리버 색스가 마지막으로 남기고 간 이 에세이는, 무엇보다 스쳐 지나간 것들에 대한 호기심과 탐구심이 돋보였다. 많은 새로운 아이디어들은, 시대에 맞지 않아서 당시의 과학자들의 생각과 달라서 등등의 이유로 그냥 묻혀 있다가 오랜 세월 후에 다시금 대두되곤 한다. 어쩌면 여건이 맞아떨어져서 또 어쩌면 몇몇의 천재들이 이를 우연히 발견하게 되어서 그랬을 수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아인슈타인의 위 말처럼 이 모든 것이 '발전'이라는 것의 진짜 모습인지도 모르겠다.

 

무언가 발견되고 어쩌면 그 가는 길 중에 외면당하고 회피되고 거부당하기도 하면서 직선으로 쭉 가는 게 아니라 지그재그로 움직여가면서 어느 순간에 다시금 길을 찾아 그 출발점을 확인하게 되는 것. 그것은 누구 하나의 힘이 아니며 역사 속에서 차곡차곡 쌓여온 토대 위에 누군가 벽돌 하나 더 올림으로써 가능해지는 것일 게다. 뉴턴마저도 이전 세대를 부정하고 자신의 이론이 독창적임을 강조했다고는 하지만, 누구든 "거인의 어깨"를 빌리지 않고는 발전이라는 것, 새로움이라는 것을 일구어내기 힘들다는 것을, 이제 우리는 안다.

 

올리버 색스의 글을 읽으면서, 부럽기도 하고 질투가 나기도 했다. 노익장으로도 끊임없이 이런 시선을 가질 수 있고 이런 글을 써낼 수 있었던 그가 평생 지녔던 것은 무엇일까. 한편으론 그가 가졌던 그 많은 지식들, 그 치밀한 시야들이 이젠 세상에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이 서글퍼지기도 한다. 글로써 여전히 우리를 감동시키고 있으니, 나는 그에게 빚을 지고 있는 셈이고 그도 누군가에게는 '거인'으로서 존재하는 게 아닌가 싶다. 다시한번 고인의 명복을 빈다.

 

 

기억은 고정되고 활기 없고 간편적인 수많은 흔적들을 고스란히 재탕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과거의 반응이나 경험들을 바라보는 전반적 태도‘와 ‘이미지나 언어의 형태로 저장된 세부 사항‘을 기초로 하여 상상력이 가미되어 구성되거나 재구성된다. 심지어 가장 기초적인 암기와 반복의 경우에도 기억이 늘 정확한 것은아니다. 따라서 기억의 정확성을 절대시할 필요는 없다. (p109)

인간의 기억은 오류를 범할 수 있고 취약하며 불완전하지만,굉장히 유연하고 창의적이다. 출처에 대한 혼동과 무차별성은 역설적으로 큰 힘을 발휘한다. 어디 한번 생각해보라! 만약 모든 지식에 출처가 표시된 꼬리표가 붙어 있다면, 우리는 종종 엄청난 양의 부적절한 정보에 압도당할 것이다. 출처에 무관심한 우리의 뇌는 ‘우리가 읽고 들은 것‘과 ‘타인들이 말하고 생각하고 쓰고 그린 것‘을 통합하여, 마치 1차기억인 것처럼 강렬하고 풍부하게 만든다. 덕분에 우리는 타인의 눈과 귀로 보고 들을 수 있고, 타인의 마음속에 들어갈 수도 있으며, 예술, 과학, 종교가 포함된 문화를 완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리하여 우리는 공동정신common mind에 참여하고 기여함으로써 보편적인 지식연방commonwealth of knowledge을 구성하게 된다. 기억은 개인의 경험뿐만이 아니라 많은 개인들 간의 교류를 통해 형성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p134)

멀린 도널드Merlin Donald는 <현대 정신의 기원Origins of the Modern Mind>에서, 모방문화mimetic culture를 문화와 인지능력 진화의 핵심 단계로 간주한다. 그는 흉내, 모방, 미메시스mimesis를 명확히 구분한다.

첫째, 흉내는 대상을 그대로 재현하는 것으로, 가능한 한 정확한 사본duplicate을 만들기 위한 시도다. 따라서 누군가의 얼굴 표정을 정확히 재현하거나 앵무새가 다른 새의 소리를 정확히 모사하는 것은 흉내에 해당한다. 둘째, 모방도 대상을 재현하지만, 똑같이 따라 하지는 않는다. 예컨대 부모의 행동을 따라 하는 자녀들은 모방을 하는 것이지 흉내를 내는 것은 아니다. 셋째, 미메시스는 모방에 표상representation이라는 차원을 첨가한다. 그리하여 흉내와 모방을 통합하여 새로운 차원으로 승화시키며, 하나의 사건이나 관계를 재현하는 동시에 표상한다. (p148)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누구든지 타인이나 주변의 문화로부터 아이디어를 차용한다. 아이디어는 늘 공중에 떠돌아다니며, 우리는 종종 의식하지 않고 오늘날 유행하는 구절과 언어들을 차용한다. 우리는 언어를 발견하고 그것을 빌려 와, 각자 개별적인 방식으로 사용하고 해석한다. 우리는 언어를 차용하는 것이지, 발명하는 게 아니다. 따라서 문제가 되는 것은 ‘왜 남의 것을 차용하거나 모방하거나 베끼거나 영향받는가‘가 아니라, ‘차용하거나 모방하거나 베낀 것을 갖고서 무슨 일을 할 것인가‘다. 다시 말해서, ‘남의 것을 완전히 소화시켜 자기 것으로 만든 다음, 자기 자신의 경험, 생각, 느낌, 입장과 혼합하여 얼마나 새로운 방식으로 표현할 것인가‘가 중요하다. (p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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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제트50 2018-05-27 12: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렇군요~ 수고했어용, 토닥토닥^^*

비연 2018-05-27 21:32   좋아요 0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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