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한 줄도 읽지 못하게 하라 - 누가 왜 우리의 읽고 쓸 권리를 빼앗아갔는가?
주쯔이 지음, 허유영 옮김 / 아날로그(글담) / 2016년 12월
평점 :
절판


시대를 막론하고 그 시대를 대표하는 문학작품과 작가가 있다. 우리는 그 작품들을 고전이라 부르기도 하고 베스트셀러라 부르기도 한다. 하지만 그 작품들이 처음부터 많은 이들에게 사랑을 받은 것은 아니다. 어떤 작품은 출간되자마자 판매 중지가 되었으며 어느 작품은 출간조차 힘든 경우도 많았다. 지금이야 맘만 먹으면 언제든 그때 그 시절의 유명한 문학 작품들을 읽을 수 있지만 그렇게 되기까지 문학작품과 작가에게 헤아릴 수 없는 역경이 있었다. 이름만 들어도 익히 알고 있는 문학작품들은 거의 대부분 이런 과거를 갖고 있다.

고전에 대한 우리의 접근 방식은 대부분 순수 문학적 측면이 강하다. 작가와 문학작품들을 사랑하는 독자들에게 그것 말고 달리 어떤 의미가 있을 수 있을까. 지금의 우리에겐 맞는 말이다. 하지만, 그 시대를 살았던 이들에게도 과연 그럴까. 조금만 달리 생각한다면 꼭 그렇지는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첫 문장에서 말했다시피 문학작품은 그 시대를 반영한다. 즉, 문학작품은 그 시대의 문화, 역사, 사상, 정서 등을 모두 내포하고 있다. 그것은 곧 문학작품을 누가 읽느냐에 따라 그 작품의 의미를 달리 해석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대다수 국민들에겐 그들의 삶과 정서를 대변해주는 이야기지만 이익을 취하는 소수 권력집단에겐 불온한 사상을 전파하고 혁명의 불꽃을 피우는 글이 된다. 그렇게 수많은 문학작품들이 권위와 권력에 반한다는 명목 아래 읽을 수 없는 '금서'가 되었다.

Calamus Gladio Fortior(깔라무스 글라디오 포르띠오르). 라틴어로 된 이 문장은 영국 작가인 에드워드 볼워 리턴이 1839년 발표한 역사극 <리슐리외 또는 모략>에서 처음 말해졌다고 한다. 그 뜻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펜은 칼보다 강하다'라는 뜻이다. 이 문장을 굳이 여기서 언급한 이유는 단 하나다. 문학작품이 금서로 지정된 이유가 바로 그 한 문장 속에 모두 담겨 있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강대국이 약소국을 지배하면서 가장 먼저 한 일이란 바로 그 나라의 말과 글을 없애는 일이었다. 그 이유는 단 하나. 그들의 말과 글을 통해 다른 생각을 할 수 없게 하기 위함이었다. 소수의 이익을 위해 존재하는 미개한 다수를 깨우치는 계몽의 글을 읽지 못하게 하는 이유다. 만약, 그 글이 다수의 사람들에 읽히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변화의 시작, 혁명이 일어난다. 그렇다면 모든 금서는 한 시대를 뒤엎을 만한 힘을 지니고 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우리가 지금껏 단순히 문학작품으로 알고 읽어왔던 고전들이 이런 엄청난 배경을 지닌 금서란 사실이 그저 놀라울 뿐이다.

<단 한 줄도 읽지 못하게 하라>라는 책 제목부터 강렬하게 다가오는 이 책은 세기의 '금서'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닥터 지바고>, <무엇을 할 것인가>, <나에게 손대지 마라>, <악마의 시>, <피가로의 결혼>, <데카메론>, <호밀밭의 파수꾼>, <수상록>, <롤리타>, <악의 꽃>, <채털리 부인의 연인>, <북회귀선>. 이름만 들어도 유명한 고전들이다. 이 책은 이러한 작품들이 어떻게 세기의 금서로 지정이 되었는지 그 문화적, 사회적, 역사적 배경을 파헤친다. 그뿐만 아니라 금서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작가들(사드, 푸시킨, 빅토르 위고, 윌리엄 포크너 등)에 대해서도 함께 알아본다. 이 책은 줄곧 고전을 문학작품으로서 매력을 느꼈던 독자들에게 신선한 재미를 선사한다. 이 책은 독자들에게 두 가지 재미를 동시에 만족시켜주는데 하나는 문학작품으로서의 고전을 만나는 기쁨과 문학작품으로 인정받기 이전의 고전에 대한 역사적 탐험이 그것이다. 작가를 따라가다보면 무려 기원전 410년의 작품부터 1988년 발표된 작품까지 만나볼 수 있게 된다. 읽지 못하게 하면 더 읽고 싶은 게 사람 마음이다. 그 속에 감춰진 비밀을 알고 싶은 욕망이 꿈틀대기 때문이다. 이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다. 감추면 감출수록 널리 퍼지는 이유가 아닐까 싶다. 금서로 지정된 고전들은 모두 그 시대 베스트셀러였다. 지금까지 전해져 읽히고 있으니 더 이상 말할 필요 없을 듯하다.

시대가 변했어도 금서는 여전히 존재한다. 다만 그 존재가 미흡할 뿐이다. 책은 많은 사람들에게 지식과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 만들어진다. 그와 더불어 진실을 말하기 위해서도 만들어진다. 그렇게 진실을 말하는 책은 시대를 막론하고 금서가 되어 은폐되어 왔다. 하지만, 은폐된 진실은 언젠가 세상에 그 모습을 드러내기 마련이며 그 진실은 세상을 변화시켜 왔다. 금서가 될 수밖에 없었던 고전 작품의 암울했던 시대적 배경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실을 추구하고자 했던 작가들의 위대한 사상을 보며 다시금 깨닫게 된다. 우리 앞에 펼쳐진 진실의 왜곡과 은폐로 점철된 작금의 현실이 그저 안타까울 뿐이다. 과연 우리의 역사는 이것을 어떻게 기록하고 후대에 남겨줄지 의문이다. 현시대의 금서.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가기 위한 발판이 되어주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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