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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삼관 매혈기
위화 지음, 최용만 옮김 / 푸른숲 / 2007년 6월
평점 :
<허삼관 매혈기>는 중국이 배출한 세계적 작가 위화의 장편소설로 피를 팔아 살아가는 허삼관의 고달픈 생애사다. <허삼관 매혈기>를 검색하면 두 권의 책이 나온다. 하나는 1999년 출간, 다른 하나는 신간도서로 소개되는 소설이다. 같은 작가의 같은 번역 소설인데, 최근에 푸른숲에서 다시 출간된 소설은 때깔이 곱다. '호오 저 자가 허삼관이군'싶은 수염난 배불뚝이 남자가 한 명 표지에 그려져 있다.
피를 팔아 산다는 것의 참혹함
<몸을 판다>거나, <피를 판다>, <장기를 판다>는 말의 참혹함은 모두 같다. 얼마나 팔 게 없으면, 자신의 신체 기관을 내어팔까 하는 상상. 우리는 누구나 부모의 피를 빨아먹고 사는 생물인 셈이지만, 이 모든 과정이 추상화되어 있어 좋은 옷을 입고 으쓱대며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라고 말한다. 위화의 <허삼관 매혈기>는 바로 이 으쓱댐을 걷어내고, 가장 날 것의 삶 근처로 내려간다.
피를 판다는 건 참 섬뜩한 소재다. 구석기 시대에서 신석기 시대, 청동기 시대, 철기 시대를 거쳐 정보화 시대에 이르기까지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은 진화했다. 자신의 몸을 직접 파는 게 아니라 자신이 만들어낸 무언가를 파는 시대다. 더 지적으로 고도화된 무언가를 팔면 팔수록 다치지 않는 고고한 직업군에 속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 시대에 '피를 팔아 사는' 사람들이 있다는 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중국에서 피를 팔아 산다는 건, 과장이 아닌 모양으로 <양쯔강의 에이즈 고아>(EIDF 2007 상영작)라는 다큐멘터리에서도 나온 적이 있다. 마을 주민의 10%가 에이즈 감염자라는 양쯔강 허난 지역. 한 쪽 벽이 완전히 무너져 내린 낡은 집에서 부모를 모두 에이즈로 잃은 고아들이 방치되어 있었다. 그러고보니 우리네 화장실에도 가끔은 <장기 삽니다>라는 문구가 붙어있으며 60년대까지만 해도 피를 팔아 산다는 게 드물지 않은 시절이 존재했다. 그러니까, 이건 진짜 현실의 이야기다.
단순한 논리와 날 것의 언어로
위화는 참혹한 이야기를 전하며 가장 쉽고 가장 우스운 말투를 택했다. 가난한 시골에서 동네 친구들을 따라 물을 열 동이 마시고 피를 판 뒤, 돼지간볶음에 황주를 마시며 탁자를 탕 치는 남자 허삼관. 그는 표지에서 빠져나와 수염을 매만지는 듯, 정감가는 인물이다.
허삼관이 그 깨진 거울을 손에 들고 먼저 자기 눈을 보고 다시 일락이의 눈을 보니, 그 눈이 그 눈이었다. 다시 자기 코를 비춰 보고 일락이의 코를 보니, 역시 그 코가 그 코였다. 그래서 그는 생각했다. '모두 일락이가 날 안 닮았다고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닮은 구석이 있구만.'(54p)
소설 속의 인물들이 행동은 지극히 단순한 논리로 이어진다. 허옥란은 하소용보다 허삼관이 가진 돈이 더 많고, 얼굴도 조금 더 잘 생겼으며, 자기 성이랑 성씨가 똑같아 허 씨를 물려줄 수 있다는 까닭으로 허삼관에게 시집을 온다. 일락이, 이락이, 삼락이를 낳을 때 허옥란은 허삼관을 저주하며 "내가 괴로울 때 당신은 병실 밖에서 희희낙락했지? 이 망할 놈의 인간. 그러니 일락이 이락이 삼락이잖아"하고 욕을 퍼붓는다.
재치있는 서술이 훌훌 흘러간다. <흥부 놀부전> 판소리 대본을 그 시대에 읽었다면, 이렇게 술술 읽혔을까. 서민들의 마당에서 벌어지던 극은 가장 쉽고도 우스운 골계미로 가득했다. <허삼관 매혈기>는 단 한 순간도 젠체하지 않고, 피를 팔아 살아가는 가난한 사람들과 그들의 아내와, 자식들을 따라가며 독자를 웃긴다.
"그런다고 천하의 내가 겁을 낼 줄 알아? 가서 너희 형 불러와. 너희 형, 너, 그리고 네 동생 모두 신나게 두들겨 패줄 테니"(80p)
사람을 울리는 부자(父子)의 대화
입술을 슬며시 말아올려 이를 드러내고 웃던 독자는, 그러다 한편에서 눈물을 떨구고 마는데. 그건 이들이 처한 어처구니 없는 상황 속에서 함께 사는 이들의 갈등을 동여매는 인간애를 발견하기 때문이다. 허삼관의 첫째 아들 일락이는, 사실 허삼관의 아들이 아닌 하소용의 아들로, 허옥란이 결혼 전 그와 관계를 맺어 뱄던 아이다. 이를 발견하며 허삼관은 격한 갈등에 빠지고, '내가 피를 팔아 남의 아들 먹이는' '자라대가리'노릇을 했다며 분해한다.
먹을 게 부족하여 군입을 덜려는 시대, 두 아버지의 갈등 속에 정작 일락이는 누구를 아버지라 불러야할지 모르는 슬픔으로 방황한다. 그는 수시로 허삼관에 대한 충성을 맹세하지만, 대기근이 닥쳐온 어느 날, 허삼관은 자신의 피를 팔아 자신의 가족들에게 국수를 먹이며, 일락이만은 제외시킨다. 두 아버지의 집을 오가며 운명에 휘둘리던 일락이는, 결국 이날 가출을 하고 만다. 소설에서 가장 좋은 부분은, 결말도, 허삼관이 피 팔다 죽을 듯한 장면도 아닌, 바로 이 날 부자의 대화다.
"이 쪼그만 자식, 개 같은 자식, 밥통 같은 자식...... 오늘 완전히 날 미쳐 죽게 만들어 놓고...... 가고 싶으면 가. 이 자식아. 사람들이 보면 내가 널 업신여기고, 만날 욕하고, 두들겨 패고, 그런 줄 알거 아니냐. 널 십일 년이나 키워줬는데, 난 고작 계부밖에 안 되는 거 아니냐. 그 개 같은 놈의 하소용은 단돈 일 원도 안 들이고 네 친아빈데 말이다. 나만큼 재수 옴 붙은 놈도 없을 거다. 내 세에는 죽어도 네 아비 노릇은 안 하련다. 나중에는 네가 내 계부 노릇 좀 해라. 너 꼭 기다려라. 나세에는 내가 널 죽을 때까지 고생시킬테니....."
승리반점의 환한 불빛이 보이자 일락이가 허삼관에게 아주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버지, 우리 지금 국수 먹으러 가는 거예요?"
허삼관은 문득 욕을 멈추고 온화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래." (191-192p)
1960년 생 중국 작가 위화는 서문에서 이 소설이 <평등에 관한 이야기>라고 말한다. 자신의 유전자, 자신의 가장 가까운 것을 물려주는 자식에 관한 이야기가 욕심에 관한 이야기라면, 남의 아이를 키우는 허삼관의 이야기는 평등에 관한 이야기가 맞다. 나를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에서 엉엉 울게 만든 이 대목은, 성질 더러운 인간들이 서로 나누며 살아가는 것에 관한 이야기였다. 그리고 작은 아이의 성장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했다. 누군가의 분배 없이 아이의 성장은 불가능하니까.
'아버지'의 이야기, 그러나 모든 가난한 자들을 위하여.
석 달에 한 번씩만 팔아야하는 피를, 한 달 걸러 팔고 쓰러져 결국 자기가 수혈을 받으며 "남의 피를 가져가라"고 말해 웃음거리가 되는 허삼관. <허삼관 매혈기>는 추운 겨울, 찬 바람에 몸을 내맡기고 읽어도 가슴 한 구석을 데워주는 풍자소설임에 틀림이 없다. 허삼관의 가족들은 지지리도 가난한 시절을 거쳐 문화대혁명에 휩쓸려 생이별을 하고, '허옥란은 창녀'라는 죄목으로 대자보가 붙자 집안에서 자아비판대회를 열기도 한다.
그러나 평등에 관한 이야기라는 이 소설은, 한편으로 중국 사회의 가부장성과 '자신의 씨'에 집착하는 아버지-아들의 관계에 집중함으로 인해, 허옥란과 여성들은 잠시 제껴둔다. 일락이가 누구의 아들인지 몰라도 내가 일락이의 어미만은 맞다는 허옥란. 일락이는 "난 여자들이랑 있는 게 싫어요. 아버지랑 있을래요."라고 말하고, 허옥란은 소설의 막바지에 "늬 아버지가 늬들을 위해 얼마나 고생했는데"라며 야단치는, 부자간 관계를 끈끈하게 만들어주는 조연 어머니로 분한다.
하지만 성급해지지 말자. 세상에 누구도 온전히 모두의 이야기를 기록할 수는 없는 거니까. 이렇게 훌륭하게 구구절절 넋두리를 해주지 않았는가. 나는 <허삼관 매혈기>를 품에 안고 사막처럼 갈라져가는 입술에 한 방울 눈물을 떨구었고, 데굴데굴 굴러가는 심장을 부여안고 웃었다. 그렇다면 족하다. 중국 여성들의 이야기와, 남성 씨족 바깥 세계의 풍자, 그리고 모녀관계는 여성 작가들의 몫으로 떼어두기로 한다. 피 팔아 사는 아버지는, 현실이기도 하지만, 모두의 가난에 대한 비유이기도 할테니까.
오늘도 무언가를 팔러 먼 곳을 다녀오셨을 아버지들의 수 켤레 구두 맡에, 한 어머니의 대사가 맴돈다.
"내가 피를 판 지는 11년이 됐어요. 한 번에 30위안과 계란 빵 한 봉지를 받지요. 처음엔 몰래 갔어요. 무서워서 안 하려고도 했죠. 12번 기절하고나서야 피를 뽑을 수 있었지요."(다큐멘터리 <양쯔강의 에이즈 고아>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