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종호 선생의 <과거라는 이름의 외국>은 얼마 전에 쓰다 말았던 수수꽃다리 출판사 관련 글을 오늘 마무리하는 과정에서 손우성 선생에 관한 일화를 확인해 보기 위해 꺼냈던 것이다. 그런데 책을 뒤적이다 보니, 뒤늦게야 내가 한 가지 착각했음을 알게 된다. 어째서인지 이 책을 선생의 자서전 3부작 가운데 마지막 권이라고 내내 인식하고 있었던 거다. 이제야 책을 다시 뒤적여 보니 대학 시절을 회고한 자전적인 이야기는 그중 한 대목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주로 문학 관련 비평이나 에세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이상한 이야기지만 내가 유종호 선생에 대해서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비평가로서가 아니라 오히려 회고록 작가로서였다. 즉 선생이 펴낸 <나의 해방전후>와 <그 겨울, 그리고 가을>이라는 두 권의 회고록은 각각 일제 말기와 육이오를 다루고 있는데, 약간은 진부하지 않을까 하는 애초의 생각과는 달리 무척이나 재미있어서 조금 놀라면서도 즐거웠다. 나야 문학 전공자도 아닐뿐더러, 종종 비평문에서 볼 수 있는 주객전도 현상을 못마땅해 하기 때문에, 비평이라면 오히려 기피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다만 유종호 선생의 글 같은 경우에는 워낙 회고록이 재미있었기 때문에, 다른 책까지 찾아서 읽다가 얼떨결에 비평문까지 읽어버리게 된 셈이다.
유종호 선생의 회고록에서 또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그런 글을 쓰게 된 계기였다. 당신은 해방 다음날(즉 8월 16일)도 학교에 나가서 공부를 했다고 기억하고 있었는데, 수십 년 만에 만난 친구들은 마치 당장 그 다음날부터 일본인은 물러가고 조선 사람 천지가 된 줄로 기억하고 있더라, 또는 해방 당시에 각자 한 "만세" 씩을 하고 돌아다닌 줄로 착각하더라는 것이다. 본인의 기억은 망각하고 타인의 기억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는 사례는 심리학에서도 자주 인용되는데 (가령 로널드 레이건은 자기가 출연한 영화 속에서의 "현역 복무"를 자기가 실제로 "현역 복무" 한 것으로 착각한 바 있었다) 결국 이와 유사한 일이 유 선생의 친구에게도 일어났던 셈이다.
흥미롭게도 기억의 왜곡, 그리고 그렇게 왜곡된 기억이 마치 사실인양 자리잡는 과정에 대한 주의, 또는 경계는 유종호 선생의 회고록에서 반복되어 등장하는 소재다. 회고록 2권에서는 알타이 연구로 유명한 박시인 선생과의 만남, 그리고 재회에 관한 일화가 등장하는데, 여기서도 어떤 기억의 망각, 또는 억압이 어렴풋이 암시된다. 그렇다면 유종호 선생의 기억 자체에 대해서는 얼마나 신뢰할 수 있을까? 알 수 없는 일이다. 아무리 기억력이 정확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세월이 흐르면 뭔가 공백이 생기거나 전후 관계를 잘못 아는 경우가 생길 수밖에 없으니까. 가령 리영희 선생(이 양반에 대해서 좀 할인해서 보아야 할 부분이 없지 않다)의 <대화>라는 책에도 일부 내용이 잘못 회고되어 있어서, 주위의 건의로 2쇄에 가서는 다시 고친 부분이 있다고 알고 있다. 또한 김수영-이어령의 논쟁에 관한 부분에도 착각이 있을 수 있다는 주장이 강창래의 이어령 대담집 <유쾌한 창조>에서 제기된 바 있다.
여하간 유종호 선생의 자서전인 줄 알고 있다가 뒤늦게야 아닌 줄 알고 놀랐던 책 <과거라는 이름의 외국>에도 의외로 재미있는 글이 많이 들어 있다. 문학 계간지에 연재된 내용이라고 하는데, 신변잡기나 독후감 정도의 글이라 하더라도 역시 오랜 내공을 무시할 수는 없는 모양인지, 적어도 내게는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하나가득이었다. 가령 정지용의 "향수"에 관한 비판에 대한 상식적인 차원에서의 지당한 반론(지금도 이 시에 나오는 "얼룩백이 황소"가 "젖소"라는 일부의 잘못된 지적을 믿는 사람들이 있다면, 이 반론을 꼭 읽어보라고 말하고 싶다)이라든지, 손창섭의 말년에 대한 일화 같은 것이 눈에 들어오더니, 막상 책을 도로 꽂아넣기 직전에는 우연히 책장을 넘기다가 케스틀러라는 이름이 눈에 들어왔다.
오오, 이건 또 웬 아서 케스틀러냐 싶어서 앞으로 몇 페이지 넘겨 보니, 이번에는 조지 슈타이너와 조지프 니덤, 심지어 프랭크 커모드까지 등장한다. 어찌나 놀랐던지. 아니, 왜 이 양반들이 한꺼번에 등장하는 거야! 급기야 "타인의 삶 속에서"라는 제목의 그 에세이를 처음부터 정독했다. 이 글은 유종호 선생이 그 당시에 읽은 커모드의 자서전과 전기, 그리고 슈타이너의 자전적 에세이집의 내용을 요약하면서, 거기 등장하는 니덤과 케스틀러의 이야기까지 덧붙인 것이다. 프랭크 커모드라면 최근에 바깥양반이 플롯에 관한 책들을 찾아 읽다가 감탄해 마지않았던 (그리하여 한동안 나를 붙잡고 그 내용에 대해 설교했던) <종말 의식과 인간적 시간>이라는 책의 저자다.
꽤 오래 전에 헌책방에서 "문지의 빨간 띠"만 믿고 무작정 집어들었던 책인데, 의외로 나보다는 바깥양반에게 소용이 있는 책이 되었으니, 이것 역시 주체할 수 없는 책 욕심을 정당화하는 나만의 방법 가운데 하나라고 할까. 그때부터 바깥양반은 프랭크 커모드의 책을 찾아 보았지만, 단행본으로는 <셰익스피어의 시대>를 제외하면 찾을 수가 없었던 차였고, 최근에야 내가 우연히 김성곤 교수의 대담집 <미로 속의 언어>에서 커모드와의 대담을 발견해서 알려준 바가 있었다. 유종호 선생의 글은 커모드가 어떤 사람인지를 자서전에 의거해 차근차근 설명해 놓고 있는데, "에드먼드 윌슨 이후 마지막 박람강기의 문인"이라는 전기 작가의 말이 인용되어 있다. 커모드는 케임브리지 교수를 역임했지만, 학교 당국과의 갈등으로 인해 그리 편안하게 지내지는 못한 듯하다.
유종호 선생의 글을 읽다 보니 문득 프랭크 커모드가 본인의 저서보다는 오히려 책임 편집 총서로 인해 의외로 우리에게 가까이 다가와 있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바로 콜린스-바이킹 기획의 "모던 마스터즈 시리즈"의 책임 편집자로 활동한 것이었는데, 이 시리즈는 2000년대에 들어서 시공사에서 "로고스 총서"라는 제목으로 번역 간행된 바 있다.(물론 그보다 더 먼저는 지성의샘에서도 시리즈로 몇 권이 간행되었고, <프로이트> 같은 책은 민음사의 이데아총서로도 나온 적이 있었다). 프랭크 커모드가 이 시리즈의 발간 사업을 추진하게 된 배경이 흥미로운데, 월남전이 한창일 때 미국을 방문했다가 청년들이 마르쿠제, 게바라, 파농, 촘스키, 레비스트로스 등 당대의 유명 사상가며 행동가에 관해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았다고 한다. 그런데 청년들의 이야기란 "대체로 소문이고 들은 풍월"에 불과했기 때문에, 이들 사상가에 대한 간결하면서도 저렴한 입문서를 내기로 했다는 것이다.
그러던 와중에 커모드는 조지 슈타이너에게도 이 시리즈에 들어갈 사상가 한 사람을 맡아 달라고 제안했고, 이에 슈타이너는 저명한 중국학자인 조지프 니덤에 대한 책을 쓰겠다고 약간은 의외의 제안을 했다는 것이다. 슈타이너는 니덤이라는 인물의 개성과 업적에도 매료되었던 한편, 니덤의 생애에서 가장 큰 실수라고 꼽을 수 있는 "한국전쟁 당시 미군의 세균전 폭로 스캔들"의 현장을 목격한 일 때문에 양심의 가책도 느끼는 상황이었다. 이 스캔들은 한국전쟁이 한참일 때에 공산주의자였던 니덤이 기자들을 모아놓고 "미군이 한국에서 세균전을 하고 있다"는 중국 정부의 이야기를 그대로 전한 것이 발단이 되었는데, 나중에 소련이 붕괴되고 나서 밝혀진 자료에 따르면 이때의 주장이며 물증은 모두 소련 첩보기관에서 조작해냈던 것이라고 전한다.
슈타이너는 당시 신문기자로 니덤의 기자회견에 참석했지만, 세균전 관련 주장이 뭔가 거짓말 같다는 인상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차마 용기가 없어서 이의를 제기하지 못했는데, 그것 때문에 오랫동안 양심의 가책에 시달려 왔다는 것이다. 커모드의 제안에 따라 슈타이너는 니덤을 직접 만나서 그의 사상에 대한 입문서 집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니덤은 지극히 호의적이었지만, 슈타이너가 세균전 스캔들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자마자 격분해 마지않는다. 결국 두 사람은 이후로 전혀 만나지 않았으며, 슈타이너는 니덤 대신에 하이데거에 관한 책을 써서 "모던 마스터즈"에 넣었다는 이야기이다.
조지프 니덤의 경우, 지금은 중국학자로 유명하지만 원래는 케임브리지의 천재 생화학자로 유명했다. 중국의 과학 문명 연구는 사실 그의 개인적인 취미가 얼떨결에 본업보다 더 유명해진 경우에 해당한다. 그는 화약과 나침반을 비롯한 인류 문명의 중요한 과학 및 기술적 발견과 발명이 중국에서 유래했음을 밝혀내서, 한때 뒤떨어진 것으로 간주된 중국의 문명사적 위상을 드높인 공적이 있다. 하지만 일부의 지적처럼, 그 와중에 니덤이 중국을 향한 맹목적인 애정 때문에 한국이나 일본 같은 주변국의 중요성을 다소간 깎아내리거나 무시하는 경우도 없지 않았던 듯하다. 세균전 스캔들 역시 결국 중국 공산당 정부와의 긴밀한 관계(그는 공산당이 정권을 잡기 훨씬 전부터 주은래와 절친한 사이였다) 때문에 비롯된 일생일대의 실책인 셈이었다.
유종호 선생의 글에서 아서 케스틀러가 등장하는 것 역시 슈타이너와 관계가 있다. 슈타이너가 에세이 중에 케스틀러의 이야기를 했다던가. 선생의 글에서는 케스틀러가 이런저런 초자연 현상에 대한 관심이 컸다는 사실이 언급되어 있다. 작년엔가 알라딘에서 외서를 크게 할인 판매했을 때에 케스틀러의 영어판 전기가 있어서 한 권 구매해 둔 적이 있었다. 케스틀러는 원체 키가 작은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그 전기에 수록된 사진을 보면 단순히 키만 작은 것이 아니라 체구 자체가 많이 왜소해서, 다른 건장한 남자들과 서 있는 모습을 보면 마치 인간 옆에 서 있는 호빗의 모습처럼 보이기도 한다.
내가 케스틀러라는 작가를 처음 접한 것은 그의 소설 <한낮의 어둠>의 번역본 가운데 하나인 <보이지 않는 일인자>라는 책 때문이었는데, 마침 1980년대에 언론인 출신인 우리 동네 국회의원 양반이 이걸 번역해서 홍보용으로 뿌린 적이 있었다. 단순한 자전적 에세이라면 금방 내다 버렸겠지만, 그래도 외국 소설이라니 흥미로워 보여서 잘 간직해 두었는데, 감옥 이야기라서 그런지 별로 흥미가 동하지 않아서 몇 번인가 읽어보려다가 그냥 포기하고 말았다. 나중에 가서야 케스틀러가 소설가로서뿐만 아니라 사상가 겸 논픽션 저술가로서도 유명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케스틀러의 초자연 현상 관련 저술 가운데에는 <야누스>라는 것이 범양사출판부의 신과학총서 가운데 한 권으로 번역된 바 있다. 하지만 그의 대표작으로 종종 언급되는 The Sleepwalkers 라든지 Ghost in the Machine 같은 책은 아직 번역되지 않은 것으로 안다. 대신 <실패한 신>이라는 제목으로 한때 공산주의자였지만 나중에는 공산주의에 등을 돌린 사람들의 글을 모은 책이 역시 범양사출판부에서 나온 적이 있는데, 거기에 케스틀러의 글도 수록되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케스틀러는 발터 벤야민이 먹고 죽은 "말 한 마리를 죽일 만한 양"의 독약을 선물한 사람으로도 유명한데, 말년에 가서 백혈병을 앓게 되자 22세 연하였던 부인과 함께 동반 자살해서 모두에게 충격을 주었다.(특히 부인을 억지로 동반 자살에 끌여들였다는 혐의가 짙어서 더 논란을 낳았다). 최근에 읽은 책 중에서는 독설가 폴 존슨의 저서에 그에 대한 일화(당연히 부정적인 내용)가 수록되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여하간 마침 관심 있었던 인물들에 관한 이런저런 흥미로운 이야기가 하나가득이다 보니, 한참을 손에서 놓지 못하고 유종호 선생의 책을 읽으며 정말 시간 가는 줄도 몰랐다. 급기야 바로 뒤에 나오는 "광화문 언저리에서"라는 글까지 읽다 보니 다음과 같은 대목이 등장한다.
문학 분야에서 가장 풍성한 곳은 고전 서가이다. 펭귄이나 옥스퍼드 세계고전총서가 즐비해 있다. 그 앞에 서면 은근히 부아가 난다. 젊은 시절엔 도대체 읽고 싶은 책을 구할 수가 없었다. 인문학도가 읽어야 할 기본 도서조차 구할 수가 없었다. 거의 모든 책을 다 구해볼 수 있는 세상이 되었는데, 이제는 시간이 없고 기력이 없다. 눈도 침침해져 눈 감기나 먼산바라기를 틈틈이 해야 할 처지다. 뭐 누구를 놀릴 셈인가, 하고 딱 누구에게랄 것 없이 시비를 걸고 싶은 심정이 된다. 그래도 책 보기는 돈이 제일 적게 드는 도락이니 담을 쌓을 수도 없다.(349쪽)
정말이지 공감이 가는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비록 세대가 한참 아래이긴 하지만, 나 역시 한때 보고 싶었지만 구할 수 없어서 못 보았던 외국 책들이 최근 들어서는 줄줄이 번역으로 나오는 걸 지켜보며 한편으로는 기쁘고 또 한편으로는 약이 올랐다.(가령 에테아 호프만의 <숫코양이 무르의 인생관>이 번역된 것을 보라! 로렌스 스턴의 <트리스트람 샌디>는 번역본이 무려 두 가지이고, <엘 시드의 노래>는 무려 세 가지나 된다! 비록 중역이지만 <에다>와 <황금전설>과 <칼레발라>와 <냘의 사가> 같은 말로만 듣던 고전들까지도 은근슬쩍 번역이 되었다!)
유종호 선생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나 역시 이제는 마음이 조급해진다. 매일같이 시간에 쫓기고, 어쩐지 몸도 녹스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이제는 책도 빨리 못 읽겠고, 밤을 새우기만 하면 다음날 아침에는 완전히 정신을 못 차린다. 정말 예전에는 어떻게 <적과 흑>이며 <인간의 굴레>를 하룻밤에 독파할 수 있었던 걸까?) 물론 돈이야 없지 않으니, 기회 있을 때마다 차마 놓칠세라 이것저것 잔뜩 사서 쟁여놓기는 하지만, 읽는 책은 일주일에 한두 권인데 사는 책은 일주일에 수십 권이니, 결국 다 못 읽고 버리게 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없지 않다. 이 에세이의 결론을 보면 유종호 선생의 입장도 크게 다르지 않은 듯하다.
이렇게 적어놓고 보니 독서깨나 하는 것으로 비칠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현재 가지고 있는 책만으로도 읽은 것보다 못 읽은 책이 훨씬 많다. 그럼에도 아직껏 서점가를 배회하면서 읽지도 못할 책을 이따금씩 사들이는 것은, 그렇게 함으로써 나의 삶이 전과 다름없이 무사하게 진행되고 있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자기최면적 착각을 조성하기 위해서다. 마침내 다가올 불가피한 시간의 접근을 잊고 외면하자는 무의식의 방책이었던 것이다. 미련하고 슬프게도 얼마 전에야 그것을 깨달았다. 집으로 돌아가는 지하철 노약자석 시렁 밑에 앉아서 홀연 대오각성한 것이다.(355쪽)
자기최면적 착각이든, 무의식의 방책이든 뭐든지 간에, 읽을 책이 많다는 것은 좋은 일이고, 아직까지는 조금이라도 책을 읽을 여유와 시간이 있다는 것은 더 좋은 일이다. 그러니 나중에 후회하기 전에 할 수 있는 데까지는 책을 좀 더 많이 읽을 일이다. 출판계는 책이 안 팔린다고 아우성이고, 언론에서는 국민이 책을 안 읽는다고 아우성이고, 바깥양반은 마루에 쌓인 책들 좀 내다 버리라고 아우성이지만, 생각해 보면 벼라별 놈의 책이 다 쏟아져 나오고 외국 책도 못 구하는 것 없이 다 구하는 (어쩐지 <해리 포터> 8부나 <반지의 제왕> 4부도 구할 수 있을 것 같다) 요즘처럼 책 좋아하는 사람들이 행복해 할 만한 때가 또 있었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