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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화면에 "세계 100대 문학 작품"이라는 선전 문구가 있어서 도대체 뭘 말하는 건가 싶어 눌러보니 페르난두 페소아의 <불안의 책> 번역본이었다. 이 책이 결국 우리나라에서도 나오기는 나오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문득 얼마 전에 어떤 만화를 뒤적이다가 이 작가에 대한 언급을 접하고 놀랐던 기억이 났다. 그 만화는 벌써 여러 번 읽은 참이었지만, 페소아에 대한 내용이 나온다는 것은 이번에 처음 안 것도 같았기 때문이다.(물론 이미 한 번 이상 "놀라고" 또 "까먹는" 과정을 거쳤을 수도 있지만). 그런데 막상 다시 찾으려고 했더니, 이번에는 어떤 만화책이었는지 기억이 안 나는 거다. 일단 "샌드맨"과 "배트맨" 시리즈는 아닌 것 같고, 일본 만화 쪽도 아닌 것 같고, 아트 슈피겔만이나 제이슨도 아닌 것 같고... 결국 <무슈 장> 1권에서 찾아냈다.

 

미혼의 젊은 소설가인 주인공은 자기 책을 포르투갈어로 펴낸 출판사의 초청을 받고 리스본으로 향하다가 그만 공항에서 짐을 잃어버린다. 더 큰 문제는 그 짐 속에 자기가 가장 소중히 여기는 할아버지의 유품이자, 자기를 문학의 길로 이끌었던 옛날 시집이 들어 있었다는 점이었다. 주인공은 공항에서 자기 소설의 포르투갈어 번역자인 중년 남자와 만나지만, 상대방의 공손한 태도에도 불구하고 생각은 온통 잃어버린 짐이며 그 책에만 쏠려 있다. 주인공의 처지에는 아랑곳없이, 번역자는 자기가 제일 좋아하는 작가라면서 서가에서 어떤 책을 하나 꺼내 선물하고, 심지어 그 책의 저자인 포르투갈 작가의 동상이 서 있는 거리로 주인공을 안내한다. 그 포르투갈 작가가 바로 페르난두 페소아이다.

 

뭐 한 가지에 빠진 사람들이 흔히 그렇듯, 번역자는 페소아의 동상 바로 옆에 있는 카페에서, 또 저녁에 열린 출판사 주최의 만찬에서도 줄곧 저자의 옆에 앉아서 페소아의 말을 인용하며, 그 작가를 예찬하느라 시간 가는 줄은 모른다. 상대방의 장광설에 지친 주인공은 처음 봤을 때부터 호감을 느낀 출판사의 젊은 여직원을 따라 변두리에 있는 어느 파티장으로 뺑소니친다. 그리고 피곤한 나머지 그곳에서 다음날까지 잠들어 버린 까닭에 예정되어 있던 일정을 놓치고 만다. 우여곡절 끝에 리스본 방문을 끝내고 돌아가는 주인공에게 번역자는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페소아의 말을 인용한다. "나 오늘 여기서 위풍당당한 슬픔을 느끼네. 그것은 바로 나 자신에게서 멀리멀리 벗어났기에. 잃어버렸던 소중한 추억, 그것은 바로 나 자신이기에."

 

<무슈 장> 시리즈는 우리나라에서 3권까지 나왔지만 아직 완간까지는 아니다. 단순하지만 정감이 가는 그림체에, 몇 가지 인상적인 에피소드가 종종 기억에 떠올라서 종종 꺼내서 뒤적이곤 한다. 글을 쓰고 나니, 과연 주인공이 항공사의 착오로 엉뚱한 데 떨어진 자기 짐을 결국 찾았는지 아닌지 궁금해진다. 한편으로는 포르투갈 여행에서 그리 유쾌한 것이 없었기에, 번역자로부터 선물받은 페소아의 책도 그가 자주 펼쳐들었을 것 같지는 않고 말이다.



보르헤스의 <바벨의 도서관 작품 해제집>을 구입해서 뒤적이다가 "사키"에 관한 대목에서 오류를 하나 발견했다. 혹시 더 있나 싶어 후루룩 뒤져보았더니 몇 가지가 더 눈에 띈다. 288쪽짜리 책이 2,800원이라니 저렴해서 좋기는 한데, 그렇다고 해서 번역이나 편집까지 저렴하면 곤란하지 않나 싶다. 생각해 보니, 여기 들어 있는 해제는 이미 바벨의 도서관 시리즈로 따로따로 간행된 것들을 묶은 것뿐인데, 그렇다면 아래의 오류들이 그 해제에도 똑같이 들어 있는 셈이다. 바벨의 도서관 시리즈는 아마 우리나라에서는 "절대" 나오지 못할 거라고 일찌감치 체념했던 사람으로서... 어쨌거나 완간은 고마운 일인데 (디자인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많음!) 그래도 이왕 만들 거면 좀 더 열심히 잘 만들지 그랬냐는 타박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019쪽, 위에서 2행,

전술가 퀸토 파비오 마시모 Quinto Fabio Massimo 에서 이름을 따온 페이비언 협회 소속이었다.

==> 고대 로마 사람이므로 "퀸투스 파비우스 막시무스"(Quintus Fabius Maximus)가 되어야 맞다. 보르헤스의 고유명사 표기는 아마도 에스파냐어 식 표기일 것이다.

 

023쪽, 인물화와 해설,

==> <러시아 단편집>의 해제인데, 인물화에는 톨스토이(처럼 보이는 인물. 도스토옙스키라면 턱수염이 더 짧지 않나?)가 들어 있고, 약력에는 도스토옙스키가 들어 있다. 둘 중 한 사람으로 통일해 주었으면 더 좋았을듯.

 

087쪽, 위에서 4행,

베르사유 궁에서 거행된 독일 제국의 선포식에 참석했던 니체는

==> 보불전쟁 당시에 니체는 일개 위생병에 불과했으므로, 독일 제국의 출범을 알리는 행사에 "참석했다"는 것은 좀 과장일 것 같다. 니체 전기를 살펴보아도, 그가 이 소식을 접하고 우려와 불만을 나타내기는 했다는 이야기는 있어도 베르사유 궁에 다녀왔다는 이야기는 없는 것으로 보아, 번역 과정에서 뭔가 과장된 것이 아닐까 싶다. 보르헤스의 영어판 산문 선집에 수록된 글을 보면 "참석했다"가 아니라 "목격했다"(witnessing)고만 나온다.

 

117쪽, 밑에서 9행,

<나프자우이의 향기로운 정원>은 버턴의 부인이 그의 사후에 <프라아포스에서 영감 받은 풍자 시집>으로 출간하기도 했다.

==> 아마도 끊어읽기를 잘못한 것이 아닐까 싶다. <향기로운 정원>과 <프리아포스>는 양쪽 모두 성에 관한 내용이긴 하지만 사실은 전혀 다른 책이며, 전자는 버턴의 부인이 원고를 불태워서 결국 이 세상에 남아 있지 않지만, 후자는 버턴의 사후에 간행되었기 때문이다. 정확한 원문은 알 수 없지만, 역사적 사실에 의거하자면 아마도 이렇게 되어야 맞지 않을까. "<나프자우이의 향기로운 정원>은 버턴의 부인이 그의 사후에 원고를 불태워 버려서 지금은 전하지 않는다. 대신 그의 사후에 공역인 <프리아포스에서 영감 받은 풍자 시집>이 출간되었다." 그리고 "프라아포스"는 비아그라신 "프리아포스"(Priapus)의 오기이다.

 

144쪽, 밑에서 7행,

그 홀은 열네 명의 가족을 수용할 수 있을 정도의 크기였다고 한다.

==> fourteen family 는 "열네 명의 가족"이 아니라 "14개 가구"나 "14개 가족"이 되어야 맞을 것이다. 오스카 와일드가 모르몬교의 본산인 솔트레이크시티에 갔을 때에, 그 정도의 청중이 들어가는 장소에서 강연을 했다는 뜻인데, 사실 14명이 들어가는 공간이라면 언뜻 생각해도 말이 안 된다. 다만 모르몬교도는 일부다처제라서 여러 명의 아내가 있음을 고려해 보면, 14개 가족이 모였을 경우의 인원이 대략 짐작되지 않을까. 10명이 한 가족이라면 140명, 20명이 한 가족이라면 280명, 30명이 한 가족이라면 420명이나 된다.

 

193쪽, 위에서 3행,

최근에 나온 환상적 성격의 책이 있다며 그것을 복사해서 내게 주었다.

==> 원문은 알 수 없지만, a copy 의 오역이 아닐까 싶다. 책을 지칭할 경우에는 이게 "복사본"이 아니라 책을 세는 단위, 즉 "책 한 권"을 의미한다. 여기서 말하는 "최근"이 1916년임을 고려해 볼 때에도, "복사본"을 만드는 것보다는 "한 권"을 사서 주는 편이 더 싸게 먹히지 않았을까.

 

221쪽, 위에서 5행,

그의 필명 사키는 루바이야트(페르시아 말로 술대접 하는 사람)에서 유래했다.

==> 이 책을 구입하고 딱 펼치자마자 맨 처음 눈에 띈 오류다. 이것만 아니었더라면 굳이 이 책을 죽 읽어가며 다른 오류를 잡아낼 생각도 못했겠지. 오마르 카얌의 독자라면 이미 다 알고 있겠지만, 루바이야트는 "사행시"라는 뜻이고, 사키가 바로 "술 따르는 사람"을 의미한다. 즉 괄호 안의 설명은 "루바이야트"에 걸리는 것이 아니라 "사키"에 걸려야 맞다. 그나저나 이 소설가의 필명이 루바이야트에서 왔다는 사실은 나도 이번에야 처음 알았다. 다른 책(주로 단편집)에는 그냥 "사키는 필명이다"라고만 나왔지, 그게 무슨 뜻인지는 설명해 주지 않았으니까.

 

266쪽, 위에서 5행,

에이햅은 낸터켓 Nantucket 호 선장으로

==> 바로 다음 페이지에 나오는 것처럼, 에이햅은 "포경선 피쿼드의" 선장이고, 낸터킷은 이 포경선의 본거지인 유명한 항구의 이름이다.

 

 

끝.



유종호 선생의 <과거라는 이름의 외국>은 얼마 전에 쓰다 말았던 수수꽃다리 출판사 관련 글을 오늘 마무리하는 과정에서 손우성 선생에 관한 일화를 확인해 보기 위해 꺼냈던 것이다. 그런데 책을 뒤적이다 보니, 뒤늦게야 내가 한 가지 착각했음을 알게 된다. 어째서인지 이 책을 선생의 자서전 3부작 가운데 마지막 권이라고 내내 인식하고 있었던 거다. 이제야 책을 다시 뒤적여 보니 대학 시절을 회고한 자전적인 이야기는 그중 한 대목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주로 문학 관련 비평이나 에세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이상한 이야기지만 내가 유종호 선생에 대해서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비평가로서가 아니라 오히려 회고록 작가로서였다. 즉 선생이 펴낸 <나의 해방전후>와 <그 겨울, 그리고 가을>이라는 두 권의 회고록은 각각 일제 말기와 육이오를 다루고 있는데, 약간은 진부하지 않을까 하는 애초의 생각과는 달리 무척이나 재미있어서 조금 놀라면서도 즐거웠다. 나야 문학 전공자도 아닐뿐더러, 종종 비평문에서 볼 수 있는 주객전도 현상을 못마땅해 하기 때문에, 비평이라면 오히려 기피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다만 유종호 선생의 글 같은 경우에는 워낙 회고록이 재미있었기 때문에, 다른 책까지 찾아서 읽다가 얼떨결에 비평문까지 읽어버리게 된 셈이다.

 

유종호 선생의 회고록에서 또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그런 글을 쓰게 된 계기였다. 당신은 해방 다음날(즉 8월 16일)도 학교에 나가서 공부를 했다고 기억하고 있었는데, 수십 년 만에 만난 친구들은 마치 당장 그 다음날부터 일본인은 물러가고 조선 사람 천지가 된 줄로 기억하고 있더라, 또는 해방 당시에 각자 한 "만세" 씩을 하고 돌아다닌 줄로 착각하더라는 것이다. 본인의 기억은 망각하고 타인의 기억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는 사례는 심리학에서도 자주 인용되는데 (가령 로널드 레이건은 자기가 출연한 영화 속에서의 "현역 복무"를 자기가 실제로 "현역 복무" 한 것으로 착각한 바 있었다) 결국 이와 유사한 일이 유 선생의 친구에게도 일어났던 셈이다.

 

흥미롭게도 기억의 왜곡, 그리고 그렇게 왜곡된 기억이 마치 사실인양 자리잡는 과정에 대한 주의, 또는 경계는 유종호 선생의 회고록에서 반복되어 등장하는 소재다. 회고록 2권에서는 알타이 연구로 유명한 박시인 선생과의 만남, 그리고 재회에 관한 일화가 등장하는데, 여기서도 어떤 기억의 망각, 또는 억압이 어렴풋이 암시된다. 그렇다면 유종호 선생의 기억 자체에 대해서는 얼마나 신뢰할 수 있을까? 알 수 없는 일이다. 아무리 기억력이 정확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세월이 흐르면 뭔가 공백이 생기거나 전후 관계를 잘못 아는 경우가 생길 수밖에 없으니까. 가령 리영희 선생(이 양반에 대해서 좀 할인해서 보아야 할 부분이 없지 않다)의 <대화>라는 책에도 일부 내용이 잘못 회고되어 있어서, 주위의 건의로 2쇄에 가서는 다시 고친 부분이 있다고 알고 있다. 또한 김수영-이어령의 논쟁에 관한 부분에도 착각이 있을 수 있다는 주장이 강창래의 이어령 대담집 <유쾌한 창조>에서 제기된 바 있다.

 

여하간 유종호 선생의 자서전인 줄 알고 있다가 뒤늦게야 아닌 줄 알고 놀랐던 책 <과거라는 이름의 외국>에도 의외로 재미있는 글이 많이 들어 있다. 문학 계간지에 연재된 내용이라고 하는데, 신변잡기나 독후감 정도의 글이라 하더라도 역시 오랜 내공을 무시할 수는 없는 모양인지, 적어도 내게는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하나가득이었다. 가령 정지용의 "향수"에 관한 비판에 대한 상식적인 차원에서의 지당한 반론(지금도 이 시에 나오는 "얼룩백이 황소"가 "젖소"라는 일부의 잘못된 지적을 믿는 사람들이 있다면, 이 반론을 꼭 읽어보라고 말하고 싶다)이라든지, 손창섭의 말년에 대한 일화 같은 것이 눈에 들어오더니, 막상 책을 도로 꽂아넣기 직전에는 우연히 책장을 넘기다가 케스틀러라는 이름이 눈에 들어왔다.

 

오오, 이건 또 웬 아서 케스틀러냐 싶어서 앞으로 몇 페이지 넘겨 보니, 이번에는 조지 슈타이너와 조지프 니덤, 심지어 프랭크 커모드까지 등장한다. 어찌나 놀랐던지. 아니, 왜 이 양반들이 한꺼번에 등장하는 거야! 급기야 "타인의 삶 속에서"라는 제목의 그 에세이를 처음부터 정독했다. 이 글은 유종호 선생이 그 당시에 읽은 커모드의 자서전과 전기, 그리고 슈타이너의 자전적 에세이집의 내용을 요약하면서, 거기 등장하는 니덤과 케스틀러의 이야기까지 덧붙인 것이다. 프랭크 커모드라면 최근에 바깥양반이 플롯에 관한 책들을 찾아 읽다가 감탄해 마지않았던 (그리하여 한동안 나를 붙잡고 그 내용에 대해 설교했던) <종말 의식과 인간적 시간>이라는 책의 저자다.

 

꽤 오래 전에 헌책방에서 "문지의 빨간 띠"만 믿고 무작정 집어들었던 책인데, 의외로 나보다는 바깥양반에게 소용이 있는 책이 되었으니, 이것 역시 주체할 수 없는 책 욕심을 정당화하는 나만의 방법 가운데 하나라고 할까. 그때부터 바깥양반은 프랭크 커모드의 책을 찾아 보았지만, 단행본으로는 <셰익스피어의 시대>를 제외하면 찾을 수가 없었던 차였고, 최근에야 내가 우연히 김성곤 교수의 대담집 <미로 속의 언어>에서 커모드와의 대담을 발견해서 알려준 바가 있었다. 유종호 선생의 글은 커모드가 어떤 사람인지를 자서전에 의거해 차근차근 설명해 놓고 있는데, "에드먼드 윌슨 이후 마지막 박람강기의 문인"이라는 전기 작가의 말이 인용되어 있다. 커모드는 케임브리지 교수를 역임했지만, 학교 당국과의 갈등으로 인해 그리 편안하게 지내지는 못한 듯하다.

 

유종호 선생의 글을 읽다 보니 문득 프랭크 커모드가 본인의 저서보다는 오히려 책임 편집 총서로 인해 의외로 우리에게 가까이 다가와 있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바로 콜린스-바이킹 기획의 "모던 마스터즈 시리즈"의 책임 편집자로 활동한 것이었는데, 이 시리즈는 2000년대에 들어서 시공사에서 "로고스 총서"라는 제목으로 번역 간행된 바 있다.(물론 그보다 더 먼저는 지성의샘에서도 시리즈로 몇 권이 간행되었고, <프로이트> 같은 책은 민음사의 이데아총서로도 나온 적이 있었다). 프랭크 커모드가 이 시리즈의 발간 사업을 추진하게 된 배경이 흥미로운데, 월남전이 한창일 때 미국을 방문했다가 청년들이 마르쿠제, 게바라, 파농, 촘스키, 레비스트로스 등 당대의 유명 사상가며 행동가에 관해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았다고 한다. 그런데 청년들의 이야기란 "대체로 소문이고 들은 풍월"에 불과했기 때문에, 이들 사상가에 대한 간결하면서도 저렴한 입문서를 내기로 했다는 것이다.

 

그러던 와중에 커모드는 조지 슈타이너에게도 이 시리즈에 들어갈 사상가 한 사람을 맡아 달라고 제안했고, 이에 슈타이너는 저명한 중국학자인 조지프 니덤에 대한 책을 쓰겠다고 약간은 의외의 제안을 했다는 것이다. 슈타이너는 니덤이라는 인물의 개성과 업적에도 매료되었던 한편, 니덤의 생애에서 가장 큰 실수라고 꼽을 수 있는 "한국전쟁 당시 미군의 세균전 폭로 스캔들"의 현장을 목격한 일 때문에 양심의 가책도 느끼는 상황이었다. 이 스캔들은 한국전쟁이 한참일 때에 공산주의자였던 니덤이 기자들을 모아놓고 "미군이 한국에서 세균전을 하고 있다"는 중국 정부의 이야기를 그대로 전한 것이 발단이 되었는데, 나중에 소련이 붕괴되고 나서 밝혀진 자료에 따르면 이때의 주장이며 물증은 모두 소련 첩보기관에서 조작해냈던 것이라고 전한다.

 

슈타이너는 당시 신문기자로 니덤의 기자회견에 참석했지만, 세균전 관련 주장이 뭔가 거짓말 같다는 인상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차마 용기가 없어서 이의를 제기하지 못했는데, 그것 때문에 오랫동안 양심의 가책에 시달려 왔다는 것이다. 커모드의 제안에 따라 슈타이너는 니덤을 직접 만나서 그의 사상에 대한 입문서 집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니덤은 지극히 호의적이었지만, 슈타이너가 세균전 스캔들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자마자 격분해 마지않는다. 결국 두 사람은 이후로 전혀 만나지 않았으며, 슈타이너는 니덤 대신에 하이데거에 관한 책을 써서 "모던 마스터즈"에 넣었다는 이야기이다.

 

조지프 니덤의 경우, 지금은 중국학자로 유명하지만 원래는 케임브리지의 천재 생화학자로 유명했다. 중국의 과학 문명 연구는 사실 그의 개인적인 취미가 얼떨결에 본업보다 더 유명해진 경우에 해당한다. 그는 화약과 나침반을 비롯한 인류 문명의 중요한 과학 및 기술적 발견과 발명이 중국에서 유래했음을 밝혀내서, 한때 뒤떨어진 것으로 간주된 중국의 문명사적 위상을 드높인 공적이 있다. 하지만 일부의 지적처럼, 그 와중에 니덤이 중국을 향한 맹목적인 애정 때문에 한국이나 일본 같은 주변국의 중요성을 다소간 깎아내리거나 무시하는 경우도 없지 않았던 듯하다. 세균전 스캔들 역시 결국 중국 공산당 정부와의 긴밀한 관계(그는 공산당이 정권을 잡기 훨씬 전부터 주은래와 절친한 사이였다) 때문에 비롯된 일생일대의 실책인 셈이었다.

 

유종호 선생의 글에서 아서 케스틀러가 등장하는 것 역시 슈타이너와 관계가 있다. 슈타이너가 에세이 중에 케스틀러의 이야기를 했다던가. 선생의 글에서는 케스틀러가 이런저런 초자연 현상에 대한 관심이 컸다는 사실이 언급되어 있다. 작년엔가 알라딘에서 외서를 크게 할인 판매했을 때에 케스틀러의 영어판 전기가 있어서 한 권 구매해 둔 적이 있었다. 케스틀러는 원체 키가 작은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그 전기에 수록된 사진을 보면 단순히 키만 작은 것이 아니라 체구 자체가 많이 왜소해서, 다른 건장한 남자들과 서 있는 모습을 보면 마치 인간 옆에 서 있는 호빗의 모습처럼 보이기도 한다.

 

내가 케스틀러라는 작가를 처음 접한 것은 그의 소설 <한낮의 어둠>의 번역본 가운데 하나인 <보이지 않는 일인자>라는 책 때문이었는데, 마침 1980년대에 언론인 출신인 우리 동네 국회의원 양반이 이걸 번역해서 홍보용으로 뿌린 적이 있었다. 단순한 자전적 에세이라면 금방 내다 버렸겠지만, 그래도 외국 소설이라니 흥미로워 보여서 잘 간직해 두었는데, 감옥 이야기라서 그런지 별로 흥미가 동하지 않아서 몇 번인가 읽어보려다가 그냥 포기하고 말았다. 나중에 가서야 케스틀러가 소설가로서뿐만 아니라 사상가 겸 논픽션 저술가로서도 유명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케스틀러의 초자연 현상 관련 저술 가운데에는 <야누스>라는 것이 범양사출판부의 신과학총서 가운데 한 권으로 번역된 바 있다. 하지만 그의 대표작으로 종종 언급되는 The Sleepwalkers 라든지 Ghost in the Machine 같은 책은 아직 번역되지 않은 것으로 안다. 대신 <실패한 신>이라는 제목으로 한때 공산주의자였지만 나중에는 공산주의에 등을 돌린 사람들의 글을 모은 책이 역시 범양사출판부에서 나온 적이 있는데, 거기에 케스틀러의 글도 수록되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케스틀러는 발터 벤야민이 먹고 죽은 "말 한 마리를 죽일 만한 양"의 독약을 선물한 사람으로도 유명한데, 말년에 가서 백혈병을 앓게 되자 22세 연하였던 부인과 함께 동반 자살해서 모두에게 충격을 주었다.(특히 부인을 억지로 동반 자살에 끌여들였다는 혐의가 짙어서 더 논란을 낳았다). 최근에 읽은 책 중에서는 독설가 폴 존슨의 저서에 그에 대한 일화(당연히 부정적인 내용)가 수록되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여하간 마침 관심 있었던 인물들에 관한 이런저런 흥미로운 이야기가 하나가득이다 보니, 한참을 손에서 놓지 못하고 유종호 선생의 책을 읽으며 정말 시간 가는 줄도 몰랐다. 급기야 바로 뒤에 나오는 "광화문 언저리에서"라는 글까지 읽다 보니 다음과 같은 대목이 등장한다.


문학 분야에서 가장 풍성한 곳은 고전 서가이다. 펭귄이나 옥스퍼드 세계고전총서가 즐비해 있다. 그 앞에 서면 은근히 부아가 난다. 젊은 시절엔 도대체 읽고 싶은 책을 구할 수가 없었다. 인문학도가 읽어야 할 기본 도서조차 구할 수가 없었다. 거의 모든 책을 다 구해볼 수 있는 세상이 되었는데, 이제는 시간이 없고 기력이 없다. 눈도 침침해져 눈 감기나 먼산바라기를 틈틈이 해야 할 처지다. 뭐 누구를 놀릴 셈인가, 하고 딱 누구에게랄 것 없이 시비를 걸고 싶은 심정이 된다. 그래도 책 보기는 돈이 제일 적게 드는 도락이니 담을 쌓을 수도 없다.(349쪽)


정말이지 공감이 가는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비록 세대가 한참 아래이긴 하지만, 나 역시 한때 보고 싶었지만 구할 수 없어서 못 보았던 외국 책들이 최근 들어서는 줄줄이 번역으로 나오는 걸 지켜보며 한편으로는 기쁘고 또 한편으로는 약이 올랐다.(가령 에테아 호프만의 <숫코양이 무르의 인생관>이 번역된 것을 보라! 로렌스 스턴의 <트리스트람 샌디>는 번역본이 무려 두 가지이고, <엘 시드의 노래>는 무려 세 가지나 된다! 비록 중역이지만 <에다>와 <황금전설>과 <칼레발라>와 <냘의 사가> 같은 말로만 듣던 고전들까지도 은근슬쩍 번역이 되었다!)

 

유종호 선생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나 역시 이제는 마음이 조급해진다. 매일같이 시간에 쫓기고, 어쩐지 몸도 녹스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이제는 책도 빨리 못 읽겠고, 밤을 새우기만 하면 다음날 아침에는 완전히 정신을 못 차린다. 정말 예전에는 어떻게 <적과 흑>이며 <인간의 굴레>를 하룻밤에 독파할 수 있었던 걸까?) 물론 돈이야 없지 않으니, 기회 있을 때마다 차마 놓칠세라 이것저것 잔뜩 사서 쟁여놓기는 하지만, 읽는 책은 일주일에 한두 권인데 사는 책은 일주일에 수십 권이니, 결국 다 못 읽고 버리게 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없지 않다. 이 에세이의 결론을 보면 유종호 선생의 입장도 크게 다르지 않은 듯하다.


이렇게 적어놓고 보니 독서깨나 하는 것으로 비칠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현재 가지고 있는 책만으로도 읽은 것보다 못 읽은 책이 훨씬 많다. 그럼에도 아직껏 서점가를 배회하면서 읽지도 못할 책을 이따금씩 사들이는 것은, 그렇게 함으로써 나의 삶이 전과 다름없이 무사하게 진행되고 있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자기최면적 착각을 조성하기 위해서다. 마침내 다가올 불가피한 시간의 접근을 잊고 외면하자는 무의식의 방책이었던 것이다. 미련하고 슬프게도 얼마 전에야 그것을 깨달았다. 집으로 돌아가는 지하철 노약자석 시렁 밑에 앉아서 홀연 대오각성한 것이다.(355쪽)

 

자기최면적 착각이든, 무의식의 방책이든 뭐든지 간에, 읽을 책이 많다는 것은 좋은 일이고, 아직까지는 조금이라도 책을 읽을 여유와 시간이 있다는 것은 더 좋은 일이다. 그러니 나중에 후회하기 전에 할 수 있는 데까지는 책을 좀 더 많이 읽을 일이다. 출판계는 책이 안 팔린다고 아우성이고, 언론에서는 국민이 책을 안 읽는다고 아우성이고, 바깥양반은 마루에 쌓인 책들 좀 내다 버리라고 아우성이지만, 생각해 보면 벼라별 놈의 책이 다 쏟아져 나오고 외국 책도 못 구하는 것 없이 다 구하는 (어쩐지 <해리 포터> 8부나 <반지의 제왕> 4부도 구할 수 있을 것 같다) 요즘처럼 책 좋아하는 사람들이 행복해 할 만한 때가 또 있었을까 싶다.



지난 주 일요일에 바깥양반과 함께 점심 먹고 동네 공원으로 산책을 갔다가, 우연히 어느 관목에 걸려 있는 나무 이름 팻말을 보게 되었다. "수수꽃다리"라는 이름을 보자, "아, 이런 나무가 우리 동네에도 있었구나" 싶었다. 체스터튼은 자연물을 묘사한답시고 굳이 인공물을 들먹이는 현대인의 습성을 꼬집은 적이 있었는데, 나 역시 천성이 책상물림인지라 언제부턴지 모를 정도로 오래 전부터 집에서 가까운 곳에 실물을 놓아두고서, "수수꽃다리"라는 꽃 이름을 지금껏 줄곧 출판사 이름으로만 알고 있었다.

 

지금 알라딘에서 "수수꽃다리"라는 출판사 이름으로 검색해 보면 모두 열한 권의 책이 나온다. 발행일 순으로 나열해 보자면 이렇다.

 

1. 클로드 리포 지음, 이인철 옮김, <인류의 해저 대모험 - 아리스토텔레스 시대에서 핵잠수함 시대까지>,

    해양문화총서 1, 2000년 4월
2. 손우성 지음, <손우성의 유럽여행기 - 1960 겨울에서 1961 봄까지>, 2000년 5월
3. 어슐러 구디너프 지음, 김현성 옮김, <자연의 신성한 깊이 - 존재의 기원과 의미에 대한 명상적 에세이>, 

    2000년 9월
4. 베르나르 아르노, 이브 메사로비치 지음, 성귀수 옮김, <나는 내꿈에 뒤진 적이 없다 - 패션제국의 황제 베르나르

    아르노의 경영철학과 성공전략>, 2001년 7월
5. 카트린 바리 지음, 김병욱 옮김, <티벳으로부터의 사색 - 달라이 라마의 잠언>, 2001년 9월
6. 힐러리 비덜스 지음, 김웅서 옮김, <바다는 희망이다 - 21세기를 위한 해양보전>, 해양문화총서 2, 2002년 3월
7. 파비엔 카스타-로자 지음, 박규현 옮김, <연애 그 유혹과 욕망의 사회사>,  2003년 2월
8. 앵거스 컨스텀, 클라우디아 페닝턴 지음, 김웅서 옮김, <난파선의 역사>, 해양문화총서 3, 2003년 3월
9. 도미니크 페르낭데즈 지음, 김병욱 옮김, <가니메데스 유괴 - 도미니크 페르낭데즈가 본 서양의 동성애문화>,

    2004년 5월
10. 최승헌 지음, <사람이 그립다>, 2004년 10월
11. 마르셀 장 지음, 이지순 옮김, <퀘벡영화>, 2005년 2월


절판된 책이 서너 권쯤 되지만, 나머지는 아직도 알라딘에서 구매가 가능한 것으로 나온다. 하지만 2005년 이후로는 책이 한 권도 나오지는 않은 것으로 보아, 지금은 사실상 문을 닫은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물론 이름이 특이하다고 해서 이 출판사를 기억하게 된 것은 아니고, 분명히 내가 주목하지 않을 수 없었던 특별한 책이 몇 권 있었다. 내가 맨 처음 접한 책은 수수꽃다리의 첫 번째 간행 도서인 클로드 리포의 <인류의 해저 대모험>이었는데, 당시로서는 물론이고 지금도 흔히 접할 수 없는 해저 개척사라는 독특한 주제가 흥미를 끌었다. 또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번역을 담당한 이인철이라는 인물인데, 약력을 보면 성균관대학교에서 불문학을 전공하고 여러 권의 책을 번역했으며 강의도 하는 한편, "국내 잠수 장비 보급 전문회사인 (주) 대웅슈트 총무이사로 재직중"이라고 했다.(강의를 병행했다는 것으로 미루어 가업이나, 뭐 그런 것이 아니었을까?) 이 책을 필두로 수수꽃다리에서 "해양문화총서"라는 이름으로 바다에 관한 논픽션이 모두 세 권이나 나온 데에는 그 이인철이라는 인물의 영향이 없지 않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왜냐하면 판권면에는 "해양문화총서는 (주) 대웅슈트의 재정지원에 의해 기획, 제작되고 있습니다"라는 문구가 들어 있기 때문이다. 이인철은 나중에 문학과지성사에서 나온 쥘 베른의 <해저 2만 리>를 번역하기도 했는데, 번역자의 취향과 번역 작품이 딱 어울리는 사례가 아니었을까 싶다.

 

국내의 스쿠바 애호가가 직접 출판에 관여한 경우라면 맨 처음 떠오르는 것이 자크 이브 쿠스토의 <침묵의 세계(사일런트 월드)>를 펴낸 풍등출판사라는 곳인데, 워낙 독자층이 제한되어 있다 보니 3천 권 초판을 찍어도 십수 년이 넘도록 다 판매하지 못할 정도로 운영에 어려움을 겪었다는 이야기를 예전에 들은 것 같다. 그래서인지 수수꽃다리라는 낯선 출판사의 첫 번째 책이 스쿠바 관련서, 그것도 실용서가 아니라 본격 논픽션이라는 점에 유난히 호기심이 일었다. 그래서인지 나는 한동안 수수꽃다리라는 출판사를 "해양서적 전문 출판사" 정도로 오해하고 있었다. 나중에야 우연히 이 출판사의 두 번째 책이 불문학자 손우성 선생의 <유럽 여행기>라는 사실을 알고 또 한 번 의외라고 생각했는데, 그때에만 해도 이 출판사의 또 한 가지 특성, 즉 학연에 대해서는 주목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수수꽃다리 출판사를 다시 한 번 주목하게 된 것은 최근에 알라딘 중고샵에서 <가니메데스 유괴>와 몇 권의 책을 뒤늦게야 구입하면서였는데, 그제야 이 책의 발행인이 김병욱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김병욱이라 하면 밀란 쿤데라의 책을 여러 권 번역한 불문학자로 기억하는데, 이인철과 마찬가지로 성균관대학교 불문학과 출신이다. 달리 말하자면 두 사람 모두 손우성 선생의 제자라는 이야기가 되겠다.

 

손우성 선생이라고 하면 불문학자로서는 1세대에 해당하는 인물(<유럽 여행기>의 서두에 수록된 화보에 안응렬, 이휘영과 함께 찍은 기념사진이 수록되어 있는데 거의 동년배로 보인다)로 알고 있으며, 무엇보다도 <몽테뉴 수상록>과 <존재와 무>의 번역자로 기억하고 있다. 얼마 전에는 김기협의 시병일기 <아흔 개의 봄>을 읽다가 그 부친인 김성칠("인물이 훤했지. 씨 받아줄 만한 남자였지"라는 부인 이남덕의 평이 무척 기억에 남는다. 요샛말로 표현하자면 "쎅시했다"는 뜻이었을까, 대략)의 <역사 앞에서>를 뒤늦게 읽어보게 되었는데, 거기서 의외로 손우성 선생에 대한 여러 가지 일화가 수록되어 있는 것을 발견하고 놀란 기억도 난다. 손우성 선생은 1904년생이니 김성칠보다 10년쯤 연상인데, 상당히 꼬장꼬장한 듯한 인물로 묘사되어 있었다. 워낙 올곧은 분이라서 정치적 의견이 다른 사람들조차도 차마 함부로 대하지 못하고 어려워했다는 일화를 분명히 읽은것 같은데, 정작 김성칠의 책에서는 찾아볼 수 없어서 의아하더니만, 혹시나 싶어서 다시 꺼내 뒤적여 본 유종호 선생의 회고록의 연장선상에 있는 <과거라는 이름의 외국>의 "어둡고 외로워라 - 1950년대의 대학가"라는 글에 손우성 선생에 관한 일화가 나와 있었다. 유 선생이 대학 시절에 손 선생의 "상징주의" 강의를 들었는데, 강의 내내 이승만 정권을 비판한 것이 상당히 놀라왔다는 것이다. "손 선생은 김성칠 지음의 <역사 앞에서>에서 가장 긍정적인 인물로 묘사되어 있다. 육이오 당시의 붉은 서울에서 시세에 기민하게 편승하는 사람들과는 달리 시종일관 자기의 신념을 지키며 체모를 유지하는 희귀한 인물로 나온다."(72쪽)


<유럽 여행기>를 보면, 저자인 손 선생이 출간 당시인 2000년에도 아직 살아 계셨다고 하는데,이 글을 쓰면서 확인해 보니 무려 102세 때인 2005년에 타계하셨다고 나온다. 비슷한 시기에 활동하고 역시 장수한 법학자 겸 역사학자 최태영 선생이 생각난다. 그분은 1900년에 태어나 2005년에 사망했으니 무려 105세를 사신 셈이다. 예전에 우연히 자서전인 <인간 단군을 찾아서>라는 책을 구입해서 무척 재미있게 읽은 기억이 난다. 이병도를 설득해서 한국 고대사에 대한 의견을 바꾸도록 했다는 일화가 전해지는데, 내 입장에서 최 선생의 주장에 대해서는 동의가 되는 부분도 있고 안 되는 부분도 있다. 최근에 선생의 유작이 된 다른 역사론집을 구해 놓았으니 조만간 다시 한번 읽어볼 생각이다. 유종호 선생의 회고록에 보면 손우성 선생의 장남이 불문학자인 손석린 교수라고 나온다.(에밀 졸라의 <목로주점>을 이분 번역으로 읽었다). 손우성 선생의 부고 기사에 따르면 슬하의 4남매 가운데 세 명이 교수다. 손 선생의 이름으로 검색된 다른 기사 중에는 고려대 지리교육학과의 최영준 교수라는 분의 이야기도 있다. 학자이면서도 20년째 강원도 홍천강변에서 농사를 짓는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로 나오는데 무슨 관계인가 했더니, 최 선생이 바로 손 선생의 막내사위이며, <유럽 여행기>가 간행되었을 무렵에 손 선생이 강원도의 그 집에 계셨다 한다.


손우성 선생의 번역 작품이라면 역시나 맨 처음에 꼽힐 작품이 몽테뉴의 <수상록>인데, 이건 원래 을유문화사에서 세 권짜리로 간행되었다가 절판되고, 지금은 동서문화사에서 한 권짜리로 복간되어 판매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다만 복간되는 과정에서 실수인지 의도인지는 모르지만 단어나 표현이 달라진 부분이 종종 눈에 띄는 것은 조금 문제가 있지 않나 싶다. 동서문화사 자체도 그다지 꼼꼼한 편은 아니고, 일본어 중역으로 책을 만들던 구태를 영 벗어나지 못해서 아쉬운데, 최근에 다시 만들고 있는 문학이며 사상 분야의 총서의 수준을 보면 (최근에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의 번역서를 보고 정말 '으악' 소리가 나왔다. 일어 중역도 잘만 하면 문제가 없는데, 정말 어처구니 없는 오역이 심심찮게 눈에 띄었으니까) 솔직히 동서문화사가 재기하지 말고 그냥 역사의 뒤안길로 조용히 사라지는 편이 더 명예롭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해보게 된다. 예전에야 중역이라도 너그러이 봐줄 이유가 있었을지 몰라도, 지금 와서는 굳이 그럴 필요가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책깨나 봤다는 사람들까지도 종종 리스트에서 동서문화사 책을 턱턱 추천해 놓는데, 더 좋은 번역서가 많은 상황에서 굳이 중역 위주의 옛날 번역서를 추천할 이유는 없다.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의 경우처럼 국내 유일본이라 하더라도 동서문화사 책이 전반적으로 크게 신뢰할 만한 번역 수준은 아니라는 점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쉽게 말해 추천할 때에는 책을 실제로 좀 들춰나 보고 추천을 하라는 거다). 손우성 선생의 번역 중에서 또 하나 기억나는 것은 사르트르의 <존재와 무>인데, 이건 선생 본인도 내용을 잘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억지로 번역을 끝내 놓고, 지인에게 부탁해서 구한 일어본과 대조해 가면서 대대적으로 뜯어 고쳤다는 이야기가 서문에 나왔기 때문에 더욱 기억에 남는다.


일제시대에 공부한 분이다 보니, 일본어 자료를 주로 참고한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인지도 모른다. 오늘 우연히 책 정리를 하다가 오래 전에 사다 놓았던 곽광수 선생의 에세이집을 뒤적이다 보니, 당신이 프랑스로 유학을 떠날 때에 은사인 이휘영 교수가 당신이 쓰던 프랑스어-일본어 사전을 제자에게 선물했다는 일화가 나왔다. 감사하기는 했지만 정작 제자 쪽은 일본어를 못했기 때문에, 그것은 어디까지나 순수한 격려의 의미였을 것이라고 곽 선생은 회고하고 있다. 하지만 곽 선생은 몇 년 동안의 유학 기간 내내, 정작 참고할 수도 없었던 그 프랑스어-일본어 사전을 책상 위에 올려놓고 있었다고 회고한다. 책이 흔하고, 사전과 스승의 권위가 나란히 내리막길을 걷는 지금에는 사실 공감이 잘 안가는 이야기이다. 유종호 선생은 막상 손 선생의 글이 "전체적으로 논리정연하지 못한 '혼란스러운 열정'이란 인상을 받았다"(73쪽)고 비평했지만, 그래도 이 당시의 학자나 문인이 쓴 글을 보면 지금과는 뭔가 다른 느낌이 들기도 한다. 언젠가 동네 헌책방 사장님이 어떤 책을 읽고 계시다가 "역시 옛날 양반들이 글을 참 잘 썼다니까!" 하고 감탄하시면서 오래된 양장본을 보여주시는데, 그게 아마 손우성 선생의 저서 가운데 하나였던 걸로 기억한다. 얼마 전에 바깥양반이 "김붕구가 누구야?"라고 물어보기에 한참 야단을 치고 ("김붕구를 몰라? 어떻게 김붕구를 모를 수가 있어?") 에세이집을 하나 꺼내주었더니, 비록 "필로쏘피칼 쿨네쓰"(이건 "창전백삼"에게서 가져온 우리끼리의 표현. 요즘 식으로 말하자면 "오글거림"이라고나 할까) 같은 느낌도 없지 않지만, 그래도 문학적 감성 하나는 정말 대단하다고 감탄했던 적이 있는데, 어쩌면 헌책방 사장님의 감탄 역시 그와 유사한 것은 아니었을까 싶다.


여하간 지금은 상황이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지만, 수수꽃다리라는 출판사가 한때 있었다는 사실, 그리고 꽤나 흥미로운 책을 몇 권 펴낸 적이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독자도 한 사람은 있었음을 알리기 위해 두서 없이 적어 본다. 그나저나 새삼스레 오랜만에 그 출판사의 책을 몇 권 꺼내 뒤적이다 보니, 맨 앞에 등장하는 판권면에 이런 구절이 적혀 있다. "수수꽃다리는 순 한국산 라일락의 우리말 이름입니다. 수수꽃다리의 향기는 멀리 갑니다." 아쉽게도 올해는 이미 꽃이 져 버려서 그 향기를 맡아보지는 못했다. 내년 이맘때에는 수수꽃다리의 책을 한 권 챙겨서 수수꽃다리가 피어난 공원으로 나들이를 해야 되겠다.




마루에서 책을 솎아내다가 <래리 킹, 대화의 법칙>(김서일 옮김, 청년정신, 2001)이란 책을 찾아냈다. 이 책이 한창 인기를 끌던 2000년대 초에 누군가로부터 선물을 받은 것이었는데 (같은 출판사에서 나온 <협상의 법칙>과 함께) 나중에 읽어봐야지 하고 책더미 속에 파묻어 놓았다가 무려 10여 년이 지나서야 처음 꺼내보게 되었다. 래리 킹이라는 인물에 관해서는 딱히 호감을 지닌 것도 아니고, 지금 와서 ‘대화의 법칙’을 알아야 하는 상황도 아니고 하니, 결국 내다 버리는 수밖에는 없겠다고 쉽게 결론을 내렸다. 물론 이왕 손에 들어온 책이니, 내다 버리기 전에 한 번은 대강 훑어보기라도 할 생각이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래리 킹의 책은 의외로, 그리고 상당히 재미있었다. 제목만 보아서는 정말 대화술에 관한 교본처럼 보이지만, 생각만큼 딱딱하거나 원론적인 내용은 아니었다. 오히려 인터뷰의 달인답게 자신이 경험한 수많은 게스트에 관한 풍부한 일화, 심지어 자신의 갖가지 실수담까지 곁들여 가면서 재미있게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었다. 내 경우에는 그가 언급한 갖가지 인물들에 얽힌 일화가 무척이나 재미있었다. 한편으로는 <대화의 법칙>이란 실용서에서도 이 정도 일화가 등장하니, 그의 자서전이 등장하면 정말 흥미진진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 보았다.(확인해 보니 <원더풀 라이프>라는 자서전이 번역되어 있다).

 

래리 킹이 소개하는 갖가지 일화 중에서도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그가 중학교 3학년일 때에 친구들과 벌인 짓궂은 장난이다. 친구 중 한 사람이 말도 없이 이사를 가 버리자, 저자와 친구 두 명은 그가 사망했다는 소문을 퍼트리고 아이들에게 성금을 걷어서 빼돌리기로 작정한다. 여기까지는 장난이었지만, 급기야 소문이 퍼지면서 교장 선생님까지 뛰어들어서 급기야 학교 차원에서의 성금 걷기가 이루어진다. 이쯤 되면 당시의 미국이나 지금의 우리 정서로 미루어 보아도 결코 웃고 넘어갈 수만은 없는 심각한 사건으로 번진 셈인데, 결국 자초지종이 폭로되면서 세 친구는 무기정학을 당할 위기에 처한다.

 

이때 세 친구 가운데 한 명인 허브가 대뜸 교장 선생님에게 “우리를 짜르면, 선생님도 무사하지 못할 것”이라고 엄포를 놓는다. 자기 학교의 학생이 죽었다는데 직접 꼼꼼히 확인해 보지도 않고, 다른 학생 세 명의 말만 고지식하게 믿었다는 점을 근거로 들어, 일종의 관리 소홀 책임을 물은 것이다. 이 엄포에 교장 선생님도 움찔 했던지, 세 친구는 결국 쌍방 과실을 인정하여 모든 문제를 조용히 덮어놓기로 작정한다. 이 ‘허브’라는 친구가 바로 <협상의 법칙>을 쓴 ‘허브 코헨’이었다. 래리 킹의 책을 번역 출판한 청년정신 출판사에서 머지않아 허브 코헨의 책을 번역 출판한 것도 아마 그래서가 아니었을까.

 

아쉽게도 허브 코헨의 <협상의 법칙>은 생각만큼 재미있는 책은 아니었다. 래리 킹의 책이 실용서의 외관에도 불구하고 정작 내용은 흥미진진한 일화 위주여서 재미있었다고 하면, 허브 코헨의 책은 외관과 내용에 나름의 일관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실용서인 한에는 어쩔 수 없는 한계도 있었겠지만, 그래도 래리 킹이 인정한 ‘협상의 달인’인 만큼 허브 코헨의 실제 ‘위업’이 자세하게 소개되면 더 재미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어쩌면 이런 아쉬움 역시 허브 코헨의 ‘자서전’이라고 나오게 되면 해결될 수 있을 것 같기는 하지만.(아직까지는 ‘자서전’이라 할 만한 것이 국내에 나오진 않은 것으로 안다).

 

래리 킹의 책을 읽고 나니, 문득 얼마 전에 읽은 시드니 셀던의 자서전이 생각났다. 말년에 가서는 베스트셀러 소설의 저자로 더 명성을 떨쳤지만, 본래 그는 할리우드를 거쳐 TV 극작가와 제작자로 활동했던 방송인 출신이다. <또 다른 나: 시드니 셀던 자서전>(최필원, 북@북스, 2006)에서 다루어지는 시기는 그가 출생한 1917년부터 두 번째 소설인 <깊은 밤 깊은 곳에>를 발표한 1974년까지이다. 즉 그의 90년 생애에서 3분의 2에 해당하는 기간인데, 이때의 시드니 셀던은 소설가라기보다는 오히려 방송인이라고 해야 맞을 것이다. 그리고 어떤 의미에서는 방송인 시절의 시드니 셀던이 좀 더 호감을 주는 인물이기도 하다.

 

미안한 말이지만, ‘시드니 셀던’이란 이름을 들으면 아직도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은 이런저런 부정적인 이미지 일색이다. 그중에서도 ‘싸구려’라는 이미지가 유독 강한 것은 그의 책이 통속 소설이자 베스트셀러였으며, 나아가 저작권법이 제대로 적용되지 않던 시절에는 숱한 해적판을 낳았기 때문이었다. 물론 나도 한때 그의 소설을 재미있게 읽은 바 있다. 그러나 마치 드라마를 보는 것 같은 흥미진진한 이야기(그리고 야한 장면)가 주는 말초적인 재미에도 불구하고, 몇 권을 읽고 나면 어딘가 좀 식상한 느낌이 들었다. 그런 까닭에 지난 20년 가까이는 그의 소설을 한 권도 읽지 않고 있었다.

 

당연히 시드니 셀던의 자서전이 번역, 간행되었다는 사실도 전혀 모르고 있었다가, 뒤늦게야 ‘이런 게 있었나?’ 하는 호기심에 구입해 보았다. 중간부터 펼쳐서 여기저기 뒤적이다 보니 눈에 익은 여러 영화배우들의 이름이 곳곳에 박혀 있었다. 그제야 비로소 그의 이력을 점검해 보니 인생의 황금기를 영화계와 방송계에서 보냈다고 하지 않은가. 상당히 흥미로운 이야기가 많았다. 무명 배우인 커크 더글러스를 오디션에서 선발한 일화며, <미라클 워커>의 주인공인 패티 듀크가 진행자인 TV 쇼를 성공시킨 일화, 버스턴 키튼과의 만남, 심지어 마릴린 먼로와의 데이트며, 그보다 더 놀라운(!) 조지 오웰과의 서신 교환에 이르기까지.

 

흥미진진한 일화 말고도 또 한 가지 주목해야 할 점은 ‘천하의’ 시드니 셀던에게도 배고픈 무명 극작가의 시기가 있었다는 점이었다. 쥐꼬리만큼 대가를 받고 아이디어를 팔아야 했으며, 여러 영화사와 제작자로부터 문전박대를 받은 것도 부지기수였다. 훗날 아카데미 각본상과 에미상을 여러 차례 수상하는 인기 극작가 겸 제작자가 되었을 때에도, 이런저런 경제적이고 정신적인 문제가 그치지 않았다고 그는 고백한다. 이쯤 되면 시드니 셀던을 ‘소설가’로만 아는 세태가 약간은 유감스러운데, 어쩌면 이 책이야말로 소설가 지망생보다는 극작가 지망생에게 더욱 유용한 책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극작가와 소설가라는 이중 직업 때문인지, 국내에 소개된 시드니 셀던의 소설 중에는 순수 창작이라기보다는 극본을 소설화한 작품이 많지 않았나 싶다. 가령 내가 읽은 그의 ‘비교적 얇은’ 장편 가운데 <은화의 비밀>이라는 것이 있었는데 (반짝거리는 새 주화 하나가 이 사람 저 사람의 손을 거쳐 가면서 펼쳐지는 천태만상) 막상 그의 소설 목록을 살펴보니 나오지 않았다. 그런가 하면, 자서전을 읽고 나서 동네 헌책방에 갔다가 펼쳐 본 <7일간의 이별>이라는 소설은 Hart to Hart, 즉 시드니 셀던이 제작한 동명의 TV 시리즈의 소설화 가운데 하나였다. 국내 방영시에는 <부부 탐정>으로 소개된 인기 드라마다.

 

시드니 셀던이 만난 인물 중에서 특히 버스터 키튼이 흥미로웠다. 보통은 찰리 채플린과 함께 슬랩스틱 무성영화를 대표하는 거장으로 소개되지만, 대중적인 인지도 면에서는 ‘방랑자’보다 한 수 아래가 아닐까 싶다. 하지만 시드니 셀던의 자서전을 읽고 나서 다시 한 번 유투브에서 찾아본 버스터 키튼의 연기, 시종일관 심각하고 굳은 표정으로 펼치는 그의 ‘스턴트’(정말 이건 ‘슬랩스틱’이 아니라 ‘스턴트’의 수준이다)는 정말 놀라운 묘기였다. 버스터 키튼을 보고 나면 우리에게 익숙한 성룡의 쿵푸 연기조차도 한낱 모방에 불과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베니와 준>에서 조니 뎁의 연기도 키튼에 대한 오마주이다).

 

시드니 셀던까지 이야기하고 보니, 또 한 가지 책이 떠오른다. 바로 <창가의 토토>의 저자인 구로야나기 테츠코의 <토토의 친구들>(와다 마코토 그림, 김현희 옮김, 데미안, 2003)이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토토짱’으로 통하는 이 저자에 대해서도 시드니 셀던 못지않은 부정적인 이미지를 갖고 있었다. 왜냐하면 <창가의 토토>의 성공 이후에 ‘토토’라는 이름이 들어간 갖가지 후속작이 우후죽순으로 나와 버렸기 때문이다. 한두 권은 이해하지만 예닐곱 권은 좀 너무하지 않은가 하는 생각도 들었고, 출판사가 전부 제각각인 것도 썩 마음에 들지는 않았다. 그래서 <창가의 토토> 이외에는 모두 외면하던 참이었다.

 

그러다가 얼마 전에 동네 헌책방에서 “이건 또 뭐야?” 하는 기분으로 <토토의 친구들>을 펼쳐보니, 목차에 소개된 인물 가운데 의외의 인물들이 눈에 띄는 거다. 율 브린너, 알랭 들롱, 테네시 윌리엄스, 심지어 에든버러 공 필립까지도. ‘이것 참 묘한 책이다’ 싶어서 구입해 읽어보니 상당히 흥미로운 일화가 많았다. 특히 율 브린너의 <왕과 나> 마지막 공연, 어느 파티에서 우연히 마주친 테네시 윌리엄스와 그의 ‘파트너’, 그리고 알랭 들롱과 함께 파파라치를 피해 자동차로 도망치던 (그런데 다음날 신문에는 구로야나기의 이름이 쏙 빠지고, 다른 미모의 여배우가 들롱의 파트너로 지목된다) 일화 등이 인상적이었다.

 

이 책에서 소개된 또 한 명의 흥미로운 인물은 “위를 보며 걷자”라는 노래로 유명한 가수 사카모토 규이다. 저자와는 상당히 절친한 사이였는데 1985년에 JAL 여객기 사고로 사망했다고. 이 노래는 훗날 미국에도 소개되어 일본어 가사임에도 불구하고 빌보드 차트 1위까지 올랐다는 별난 기록을 갖고 있다. 다만 제목은 엉뚱하게도 “스키야키”로 바뀌었다는 또 한 가지 유명한 일화가 있다. 그러고 보니 무라카미 하루키도 어느 에세이에서 이 노래 이야기를 한 적이 있는 것 같은데, 흥미롭게도 <토토의 친구들>의 삽화를 그린 사람은 와다 마코토, 즉 하루키의 <재즈 에세이> 시리즈에서 그림을 담당한 인물이기도 하다.

 

P.S. 래리 킹이 진행하는 유명한 인터뷰 프로그램 <래리 킹 라이브(Larry King Live!)>에 관한 황당무계한 오역 하나. 루크 티모티 존슨의 <누가 예수를 부인하는가?>(손혜숙 옮김, CLC, 2003)라는 책을 보면 이 프로그램 제목을 “래리 왕 만세!”(111쪽)라고 해 놓았다.(이건 바깥양반이 발견한 것이다). 아마도 “국왕 만세!”(Long live, King!)에서 착안한 번역이 아닐까 싶은데, 문제는 번역자가 미국에서 거주하는 한국인 목회자라는 것. 미국에 살면서도 <래리 킹 라이브>를 모를 수 있다는 사실이 약간은 놀랍다. 신학을 하려면 세상 돌아가는 것도 좀 알고 살아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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