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벼르고 벼르다 ("...이젠 다 자랐소"가 아니라) <서림청화>를 구입해서 뒤적이다 보니, 이문조라는 이의 "유리창 서사기"라는 글이 인용되어 있어서 재미있게 읽었다. 18세기 중반, 청 건륭제 시절 북경의 서점가로 유명한 "유리창"의 풍경을 묘사한 글인데, 짧은데도 서점 특유의 모습을 잘 포착해서 읽다 보니 나도 모르게 그곳의 풍경이 머릿속에 선하게 떠오르는 거다. 문득 이전에 책 구하러 여기저기 돌아다니던 시절의 이야기를 틈틈이 정리해 볼까 싶은 마음도 들었지만, 이제는 기억이 많이 쇠퇴해서 헌책방의 상호는 물론이고 위치조차도 가물가물해졌다. 무슨 일이건 간에 주도적으로 활약하는 사람은 따로 있고, 그 활약을 기록으로 남기는 사람은 또 따로 있게 마련이니 (즉 무슨 일에나 홈즈와 왓슨이 따로 있게 마련이니) 그건 내몫이 아닌가보다 생각하고 그냥 내버려두는 편이 속 편할 듯 싶다. 


다만 오래 전부터 머릿속에 맴돌던 두 가지는 기회가 생겼을 때에 어디라도 털어 놓아야만 머리가 좀 가벼워지지 않을까 싶다. 우선 생각나는 것은 1990년대 초에 강남 고속버스터미널 지하상가에 있는 외서 전문 헌책방이다. 당시 한가람문고 (맞나?) 입구 맞은편에 패션 잡지 위주로 운영하던 외서 전문 헌책방이 두어 곳 있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그중 한 곳을 운영하던 사장님이 나중에 안양 경향서점으로 가셨다고 알고 있다. 현재 "경향서점"은 "아단문고"라는 상호로 인터넷 서점도 운영하고 있을 거다) 한가람문고 옆으로 빠져서 인적이 뜸한 통로로 이리저리 돌아다니다가, 그 한가운데서 간판도 없는 작은 헌책방을 하나 발견한 적이 있다. 책이 많지는 않아서 휘휘 둘러보다가 한창 모으고 있던 스티븐 킹의 CUJO가 있어서 저렴한 가격에 구입해서 나왔다. 그런데 그때 이후로 그곳은 두 번 다시 못 가봤다.


생각해 보면 그 즈음에 강남 고속버스터미널 지하상가는 무슨 공사를 했던 모양인지, 도로를 따라서 있는 주 지하상가 말고 터미널 아래쪽은 비교적 한산했던 것 같다. 그래서 나도 페이퍼백을 사들고 이리저리 한참 헤매다가, 공사중이어서 합판으로 막아 놓은 곳을 여기저기 지나오고 나서야 주 지하상가로 나오게 되었다. 아마도 주 지하상가와 터미널 지하를 연결하는 외곽의 통로 가운데 하나는 아니었을까. 이후에 다시 찾아가 보았으면 과연 뭘 더 건졌을지 모르겠지만, 여하간 이후로는 이상하게 그쪽으로는 가볼 일이 없었다. 그러다가 작년에 몇 번이나 강남 성모병원에 문상을 갈 일이 있어서 그곳 지하상가를 지나다 보니, 문득 예전에 갔던 헌책방이 생각나는 거다. 사실은 한동안 잊고 있었다가 지하상가에 들어선 순간, 아, 예전에 저쪽으로 가면 낯선 헌책방이 있었지, 하는 생각이 불쑥 떠올랐던 거다.


작년에 갔을 때에는 고속버스터미널 지하의 모습이 예전 기억과는 상당히 달라진 것을 깨닫고 깜짝 놀랐다. 그곳 헌책방을 몇 번인가 찾아갔을 때에는 지하상가 전체가 꽃가게여서 지하도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후덥지근한 습기가 느껴졌었다. 성모병원 쪽으로 나가는 지하상가를 걷다 보니 끄트머리에는 아직 한두 곳이 남아있는 것 같던데, 나머지 공간은 그냥 일반 점포가 차지하고 있는 듯했다. 혹시 도로 방면의 주 지하상가 쪽에는 꽃가게가 더 많이 남아있으려나? 여하간 고속버스터미널 하면 꽃가게, 그리고 오랜만에 그곳을 찾아가서 머리에 떠오른 헌책방, 이 두 가지가 조합되면서 한동안 잊고 있었던 또 다른 기억이 하나 떠올랐는데, 그건 지하철 2호선 홍대입구 역 앞에 있던 꽃집 겸 헌책방에 딱 한 번 들어가본 일이었다. 쓰고 나니 좀 이상한데, 거기는 분명히 꽃집과 헌책방을 겸하는 특이한 가게였다.


홍대입구 지하철역에서 늘 사람이 제일 붐비는 지하도, 그러니까 신간 서점과 연결되는 통로 옆에 있는 그 지하도로 나가면, 지금은 커다란 건물이 있고 그 앞 광장이 일종의 약속장소처럼 사용되는 모양인데, 내 기억에 1990년대 중반까지는 그곳이 평범한 보도 외에는 블록 담장으로 딱 막혀 있었다. 그리고 그 블록 담장을 따라서 조금 떨어진 곳에 문제의 꽃집 겸 헌책방이 있었는데, 꽤 오래 된 단층 점포 왼쪽에는 꽃집이, 그리고 오른쪽에는 헌책방이 나란히 있는 거였다. 한동안 그 근처를 오락가락하면서도 어째서인지 그 안에는 영 들어가 볼 생각을 하지 않았다가, 나중에 (아마도 없어지기 직전쯤에?) 우연히 한 번 들어가 보았는데, 안에 들어가 보고서야 두 가게가 사실은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즉 나는 헌책방 문으로 들어갔는데, 거기서 왼쪽을 보니 꽃집 내부가 훤히 보이는 거다.


그런데 사실 꽃집과 헌책방이란 애초부터 궁합이 잘 안 맞게 마련이다. 꽃집이라고 하면 습기가 기본적으로 있게 마련일 터인데, 사실 책이라는 것은 습기와는 완전히 상극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두 군데 가게가 그렇게 내부에서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을 수밖에 없었다. 기억을 더듬어 보면, 그때에도 가게 안은 꽤나 습하고 더웠던 것 같다. 마치 시골에서 흔히 볼 수 있듯이, 가게 하나를 반으로 나누어 도로 쪽에서 볼 때에 왼쪽 절반은 꽃가게를 차리고, 오른쪽 절반은 헌책방을 차려서 나무로 짠 책장에 책이 꽂혀 있었다. 시간이 촉박했기 때문인지 서둘러 돌아보고 그냥 빈손으로 나온 기억만 나는데, 그때 본 책 중에서 <모파상 전집>(영일문화사)이라는 세로쓰기 전집 낱권이 있었다는 것만 아직 기억에 남아 있다. 아마 실물로는 처음 본 책이어서 각별히 기억에 남은 것은 아니었을까.


여하간 나에게는 일종의 "초록색 문"으로 남게 되었던 헌책방 두 군데에 관한 짧은 기억은 여기까지이다. 지금도 가끔 '내가 그때 그곳을 다시 찾아가 보았다면 무슨 책을 건졌을까?' 하는 의문이 들곤 하는데, 이것 역시 지금껏 살면서도 여러 번 지나쳤던 숱한 "가지 않은 길들" 가운데 일부일지도 모를 일이다. 헛된 일이라 생각하면서도 마음속 한구석에는 아쉬움이 짙게 자리해서 두고두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으니, 이것도 참으로 이상하면서도 참으로 쓸데없는 일이다. 또 한편으로는 평소에도 종종 꿈속에서 헌책방에 드나들거나, 또는 한참 찾아 헤맸던 책이나 의외의 책을 발견하고 잠결에 히죽히죽 웃어대던 (꿈속에서 만나는 이런 책의 특징은, 절대 펼쳐서 내용을 확인할 엄두를 못 낸다는 것) 내 오락가락하는 정신을 생각해 보면 어쩌면 위의 두 가지 기억도 내 착각인가 의심스러운 데가 아주 없지는 않고.



샤나메 아시아클래식 5
아볼 카셈 피르다우시 지음, 헬렌 짐머른 영역, 부희령 옮김 / 도서출판 아시아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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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시대와 영웅시대와 역사시대, 이렇게 3분되는 시대를 다룬 전체 내용 가운데 신화시대와 영웅시대를 다룬 전반부의 축역 겸 산문역이다. 구체적인 묘사 부분이 상당 부분 날아가 버린 줄거리 요약이다 보니, 한 사건이 벌어지자마자 또 다른 사건이 이어지며 숨가쁘게 이야기가 펼쳐져서 지루할 새조차 없다. 영웅 서사시답게 용기와 명예, 그리고 무엇보다도 인간의 ‘오만’이 갖가지 사건을 만들어내는 주요 동기가 된다. 등장인물마다 저마다의 약점과 한계를 지니고 있으며, 한때는 현명하던 인물이 어리석게 변해서 내놓은 경솔한 행동과 발언이 문제를 일으키고 파국을 불러온다.

 

가장 마음에 드는 인물은 역시 전반부의 주인공인 루스템이다. 그는 강하고 용감한 인물이며, 샤에게 충성을 맹세한 봉신이라는 한계는 있을망정, 종종 직언과 반발도 서슴지 않는다. 그런 한편으로 명예와 승리를 중시하다보니 종종 간계를 이용하다가 결국 전쟁터에서 친아들 소랍조차 못 알아보고 죽이기에 이르니 참으로 딱한 노릇이다. 가장 구체적이면서도 입체적으로 묘사된 인물이기 때문에, 독자가 루스템에 대해 ‘인간적인’ 매력을 느끼는 것은 당연한지도 모른다. 또 비교적 후대에 창작된 내용이기 때문에 성서를 비롯해 각지의 신화와 전설과의 유사성을 떠올리게 되는 경우가 없지 않다.

 

특히 루스템과 명마 라쿠쉬의 일화에서는 이른바 ‘칭기스칸과 사냥매’의 일화라든지, 또는 구약과 신약 성서에 두 번이나 나온 ‘전진을 거부하는 가축’의 일화가 연상된다. 뿐만 아니라 사이야우쉬의 일대기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히폴리토스의 일화와 유사한 데가 있고, 바이준과 마니제의 사랑 이야기는 마치 <천일야화>의 한 대목과도 유사한 느낌을 준다. 또 <새들의 회의>에서 30마리 새들의 목표이며 성취이기도 했던 불사조 ‘시무르그’도 짧지만 인상적으로 등장하고, <루바이야트>에서도 언급되었던 전설의 왕 ‘젬쉬드’와 ‘카이 코바드’와 ‘카이 코스로’의 일대기도 소개된다.

 

이전까지 <루바이야트>를 읽으면서도 단순히 ‘옛날 왕들’의 이름이라고만 생각하고 넘어갔는데, <샤나메>를 읽으면서 그들의 성격과 일화를 알고 나니, 시인이 과연 무엇을 떠올리고 또 한탄했는지를 비로소 알 것 같다. 번역은 나쁘지 않지만 오타와 오류는 몇 가지 보인다. ‘두루말이’(211쪽)와 ‘찾다가’(236쪽)는 각각 "두루마리"와 "찾아가"의 오타로 보이고, 요새의 벽이 두꺼워서 그 위의 길을 따라 “기마병 넷이 말을 타고 잇따라 달려야 건널 수 있는 두께”(292쪽)라고 한 것은, “기마병 넷이 말을 타고 나란히 달릴 수 있는 두께”의 오역이다.(요새의 벽이 그 길의 폭만큼이나 두껍다는 뜻이다).

 

또 루스템이 게우에게 말을 놓다가, 나중에 가면 갑자기 존칭을 쓰는 대목(251쪽 3-4행)이 있는데, 가계도를 보면 게우는 루스템의 ‘사위’이므로 계속 말을 놓는 것으로 옮겼어야 맞을 것이다. 그리고 제1장에서 ‘사이아묵’이라는 이름이 난데없이 등장해서 좀 당황했는데, 짐머른의 영역문과 대조해 보니 한 단락 전에 “카이우메르스와 그의 사랑하는 아들을”은 “카이우메르스와 그의 사랑하는 아들 사이아묵을”이 되어야 맞았다. 번역이나 교정 과정에서 이처럼 누락된 부분이 또 있는지 궁금하다. 아울러 자주 나오는 명칭은 용어해설로 정리해 두었으면 더 낫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여객선이 침몰해서 300여 명이 죽었다. 사고 120일이 넘도록 그 원인조차 밝혀지지 않았다. 사고 현장에 있었던 선원들은 여전히 입을 굳게만 다물고 있다. 사고의 원인을 제공한 것으로 지목되던 배후 세력자는 코미디 같은 수배 과정을 거쳐서 의혹이 짙은 가운데 변사체로 발견되었다. 사고 조사와 책임자 처벌을 원하는 유족의 바람은 아직도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사건을 엄중히 조사하고 처벌하겠다고 약속했던 대통령은 유족을 아예 만나주지조차 않는다. 정부의 미온적인 태도에 분격한 유족이 단식에 나서자 일각에서는 제대로 단식이나 하느냐고 의혹을 제기하고 아예 단식하는 사람을 찾아와서 욕설을 퍼붓는다. 법은 있지만 억울한 사람을 보호해주지 못한다. 이게 우리나라의 현실인데, 사실은 프란츠 카프카의 소설 가운데 한 대목이라고 해도 이상할 것이 없을 정도로 저 부조리한 이야기를 많이도 닮아 있다.


<화부>에서 동명의 주인공은 해고 위기에 처하여 자신의 억울함을 결정권자에게 납득시키려 하지만 성공을 거두지 못한다. <단식 광대>에서 동명의 주인공은 성실하게 단식을 수행하지만 관객은 물론이고 서커스의 동료들까지도 그가 몰래 음식을 숨겨놓고 먹고 있다고 의심한다. <율법 앞에서>에서 주인공은 자기 한 사람만을 위해 허락된 율법 안으로 들어갈 수가 없어서 전전긍긍한다. <소송>과 <성>의 주인공들은 자기 앞에 닥친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또는 자기 앞에 보이는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애쓰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부조리하기 짝이 없는 제도의 장벽이며 사람의 장벽에 가로막혀 꼼짝달싹하지 못한다. 과연 이런 악몽 같은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있는 것일까? 카프카는 이에 대해 아무런 답변도 남겨놓지 않았다. 따라서 나 역시 아무런 답변도 알지 못한다. 그저 분노하고 분노할 뿐이다.





<해무>라는 영화의 예고편을 여러 차례 접하다 보니 그 내용이 궁금했는데, 영화 관련 프로그램에서 나온 전반부의 줄거리로 짐작하건대 가산 카나파니의 단편 "태양 속의 사람들"과 유사한 내용이 아닐까 싶었다. 생각난 김에 알라딘에서 그의 책을 찾아보았더니, 놀랍게도 과거의 창비 판본은 물론이고 이후의 열림원 판본 모두 절판이다.(<가산 카나파니의 삶과 문학>이라는 연구서에도 단편이 몇 가지 수록되어 있는 것으로 기억하는데, 그것도 역시나 절판이다). 최근 가자 지구 사태에 관한 소식을 접하고 나서, 꽤 오래 전에 사다만 놓았던 <팔레스타인의 눈물>이라는 단편집을 뒤적이면서도 새삼스레 가산 카나파니의 작품을 떠올렸다. 이 단편집에 수록된 여러 작가들의 작품도 나쁘지는 않았지만 (수아드 아미리의 "개 같은 인생"이 특히 인상적이긴 했는데, 제목은 "개 팔자"가 되어야 더 낫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가산 카나파니의 단편집에 수록된 작품들을 접했을 때의 충격과 감동에는 차마 비할 바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인 상황이라면 가산 카나파니의 책도 여전히 간행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었을까.("이보시오, 의사 양반, 그게 무슨 소리요!") 이래저래 아쉬움이 든다.







가자 지구 사태와 관련해서 오랜만에 팔레스타인 관련서를 꺼내 보다가, 예전에 사다 놓고 까맣게 잊어버렸던 팔레스타인 작가들의 단편집 <팔레스타인의 눈물>을 꺼내 읽었다. 출판사가 "도서출판 아시아"라고 되어 있기에, 뭐 하는 곳인가 궁금해서 알라딘에서 출판사 이름으로 검색해 보니, 우리에게는 생소한 아시아 작가들의 작품을 번역하기도 하고, 우리나라 작가들의 작품 영역본도 간행하는 등, 일반 출판사로서는 선뜻 하기가 힘든 책을 내놓는 것으로 보아, 아무래도 개인보다는 어느 기관과 관련된 (쉽게 말해 돈 많은) 출판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이 출판사에서 내놓은 "아시아 클래식"이라는 시리즈를 보니, 최근에 피르다우시의 <샤나메> 번역본이 그중 하나로 나와 있었다! 오오, 이건 정말 오래 살고 볼 일이구나, 이런 책이 다 번역되다니, 등등 기대 만발해서 미리보기를 클릭클릭해 보니, 아쉽게도 (또는 예상대로) 산문역이기는 한데, 어쩐지 분량이 생각만큼 많지는 않은 거다. 혹시나 해서 구글링을 해 보니, 이 책의 대본으로 삼은 헬렌 짐머른의 영역본은 아무래도 완역본이 아닌 것 같았다. 문제는 그렇다는 사실을 번역서에서 전혀 설명해 놓지 않아서 엉뚱하게도 독자의 혼란만 불러일으킨다는 거다.


역자후기의 설명은 이렇다: "<샤나메>의 영어 번역은 19세기 초부터 시도되었는데, 대부분은 축약본이다. 인도회사에 의무관으로 근무하던 제임스 앳킨슨이 1832년에 그 첫 번째 영어 역본을 출간했다. 본서에서는 헬렌 짐머른의 1883년 영어 번역본을 저본으로 삼았다"(326쪽). 그렇다면 이 책의 번역본인 "짐머른 판본"은 완역이란 말인가, 아니면 축약이란 말인가? 왜 딱 꼬집어 설명하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짐머른 역본의 맨 마지막 에피소드는 "로스템의 죽음"인데, 또 다른 영역본인 2006년의 딕 데이비스 영역본에서는 이 에피소드가 전체의 딱 절반 부분에 등장한다.


그러니 짐머른 역본은 대략 전체의 절반쯤에 해당하는 분량이라고 해도 무방할 듯하지만, 문제는 데이비스 역본도 완역까지는 아니라는 것이다. 더 이전에 나온 아서와 에드먼드 워너의 또 다른 운문역 영역본(1905-1925)을 PDF 형태로 인터넷에서 찾아볼 수 있어서 대조해 보았더니 (고유명사 표기가 번역자마다 제각각이라서, 이것 참 까다로운 일이었다) 짐머른 역본의 결말인 "로스템의 죽음"은 워너 역본의 전9권 가운데 5권 후반부에 등장한다. (워너 역본이 완역인지 여부는 확인하지 못했지만) 이쯤 되면 적어도 짐머른 역본 자체가 완역이 아니라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물론 "첫 술에 배부르랴"는 속담은 이 경우에 딱 맞아 떨어진다. 당장 페르시아어 전문가가 많지 않을 것이고, 나아가 방대한 운문을 원작에 가까운 모습으로 옮긴다는 것은 더욱 쉽지 않은 일일 수밖에 없다. 일찍이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가 그러했듯이, 그리고 최근 <마하바라타>가 그러하듯이, 처음에는 산문역 영역본을 옮긴 중역본 및 축약본으로 시작해서, 결국 운문역 완역본이라는 목표로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갈 수밖에 없다. 그러니 비록 산문역 축약본이라고는 해도 사실상 우리말로는 최초 번역인 아시아 출판사의 <샤나메>는 정말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생각해 보니, <샤나메>라는 작품에 관해서 처음 알게 된 것이 지금으로부터 20여 년 전이다. 망원동의 한 헌책방에서 A TREASURY OF ASIAN LITERATURE (ed. by John D. Yohannan, New York: Mentor Book, 1958) 라는 낡은 페이퍼백을 한 권 구입했는데, 그 안에 <판차탄트라>, <장미의 낙원>, <겐지 이야기>, <마하바라타>, <샤나메>, <샤쿤탈라>, 그리고 루미와 하피즈에 이르기까지, 난생 처음 보는 희한한 작품들이 발췌 수록되어 있었던 것이다. <샤나메>에서는 "소랍의 탄생"과 "소랍의 죽음"이 실려 있었는데, 다시 확인해 보니 앳킨슨의 운문역이다.


이 낡은 (종이가 완전히 삭아 버려서 페이지를 넘기기만 해도 마치 낙엽처럼 바스라진다!) 페이퍼백에 수록된 작품 대부분은 (중역이든 축약이든) 우리말 번역본이 하나둘씩 나왔다. 하지만 <샤나메>는 유독 소식이 없기에 결국 못 나오나보다 체념했는데, 오랜 기다림 끝에 결국 우리말 번역본이 나왔으니 그저 반가울 뿐이다. 도서출판 아시아에서는 R. K. 나라얀이 개작한 <마하바라타>와 <라마야나>의 번역서도 이미 내놓았던데, 앞으로는 또 무슨 희한한 책을 내놓을지 궁금하다. 중역도 괜찮고 축약도 괜찮으니, 계속해서 이렇게 희한한 책을 계속 내놓았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