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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단어 인문학 산책 - EBS 이택광의 어휘로 본 영미문화
이택광 지음 / 난장이 / 2010년 6월
평점 :
알라딘에서 반값 할인 하는 걸 보고 새삼스레 떠올린 기억. 예전에 읽다가 의외로 오류가 많아서 놀랐더라는. 며칠 뒤에 생각이 나서 다시 꺼내 보니까... 상당히 심했다. 저자는 영문학과 철학을 전공하고 외국에서 박사학위까지 받았으며 지금은 어디 교수로 있는 모양인데... 일단 꼼꼼하지 못한 것은 물론이고, 가끔은 상식의 부족이 드러나기도 한다. 영어 단어의 어원에 관해 이야기한다면서, 자료 조사가 철저하지도 않은 듯하고, 단순한 풍문이나 인터넷 검색 결과를 무비판적으로 옮겨놓는 정도로 만족한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도 든다. 이렇게 부실한 내용에다가, 어울리지 않게끔 "인문학"이라는 거창한 이름까지 걸어 놓아서 꼴이 더욱 우습게 되고 말았다.
사실 영어의 역사, 또는 영어의 어원에 대해 이야기하려면 상당히 자료 조사를 폭넓고 철저하게 해야 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이 분야만큼 옥석이 뒤섞인 곳이 또 없기 때문이다. 워낙 다양한 의견이 혼재되었기 때문에, 여차 하면 이런저런 근거 없는 이야기(대개는 민간어원설)에 넘어가 버려서 마치 그걸 정설인 양 내세우고 망신 당하기 십상이다. 박학다식하기로 유명한 (물론 저널리스트의 박학다식이야 십중팔구 과장된 이야기이기 쉽지만) 빌 브라이슨도 영어의 역사를 다룬 <모국어>라는 책에서 단어의 어원 몇 가지를 잘못 이야기했다가 지금까지도 두고두고 잘못했다고 씹히고 있으니 말이다.(자세한 내용은 아마존닷컴의 독자 서평을 참고하시라).
어원에 관한 책을 쓰려면 대략 이래야 했을 것이다. 우선 이 분야의 좋은 교양서가 많이 나와 있으므로(빌 브라이슨의 책도 그중 하나다), 일단 거기 나온 자료를 참고로 하되, 인터넷 검색을 활용해서 자료를 보강하고 비판적으로 검토하여 정확성을 높이는 것이다.(물론 인터넷이야말로 민간어원설의 온상임을 기억하고 최대한 조심해야 하고). 방송이야 시간 제한이 있으니 그냥 넘어가더라도, 기왕 단행본으로 가공할 생각이었다면 참고한 자료나 출전을 명기함으로써, 훗날 타인이 마음놓고 인용할 수 있을 만큼의 정확성은 갖추었어야 하지 않았을까. 쉽게 말해서 "인문학"이라는 제목에 걸맞게끔 뭔가 좀 더 생각하고, 좀 더 노력해서 만들어야 하지 않았을까.
현재의 이 책은 너무나도 허술하다. 영어에 관한 쉬운 교양서의 외양을 하고 있지만, 정작 그 외양을 뒷받침할 만한 내용까지는 없다. 영어 이야기를 하면서 굳이 "인문학"을 들먹이는 것도 이상하고, 정작 그 제목에 걸맞은 "인문학적" 내용이 부족하다는 점은 더더욱 이상하다. 어쩌면 이 책이야말로 최근 수년 사이에 두드러진 경향, 즉 "독자의 눈높이에 맞춘다"는 구실 아래 수준 이하의 원고를 가져다가 교양서로 포장하는 "인문학 상업주의"의 대표적인 사례가 아닐까 싶다. 초판 1쇄 기준으로 이 책에 나온 갖가지 오류 가운데 대표적인 것만 몇 가지 살펴보자. 혹시 나중에는 고쳐졌을지 모르겠지만, 애초부터 이런 오류가 나왔다는 것 자체가 큰 문제다.
31쪽, 밑에서 3행,
이탈리아로 여행하기 위해서 가출을 감행하는 '십대의 괴테'를 상상하게 만드는 단어입니다. 이 어린 괴테를 사로잡았던 것이 바로 이탈리아였습니다.
# 괴테의 유명한 <이탈리아 기행> 이야기를 하는 대목인데, 저자는 괴테가 "십대" 시절에 이탈리아 여행을 했다고 착각한 모양이다. 하지만 그 여행을 떠난 당시에 괴테의 나이는 이미 37세였고, 바이마르 공국에서 군주의 신임을 받으며 중책을 맡고 있었다. 그렇다면 저자는 도대체 무슨 근거로 그 당시의 괴테를 "어리다"고 단언하는 것일까? 저자는 이 구절에 앞서서 "제가 청소년기에 재미있게 읽었던 책 중에 괴테의 <이탈리아 기행>이 있습니다"라고 말한다. 어째서 이 구절을 쓰면서는 그 재미있게 읽었다던 책을 한 번 더 찾아보지도 않았던 걸까?
59쪽, 밑에서 11행,
실제로 bite 에는 속이다(cheat)의 뜻이 있는데, 가령 '그가 우리를 속였다'라는 걸 He bites us 라는 식으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같은 맥락에서 "Dog bites man" 이라는 말은 특정한 개가 사람을 물었다는 게 아니라, 평소에 잘 일어나지 않은 사건이 일어난 걸 뜻합니다. 좀 의아하지요. 우리 상식으로 보면 개가 사람을 무는 건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인데, 잘 일어나지 않는 사건이 일어난 것이라니요. 오히려 사람이 개를 문다면 그게 사건이 될 텐데 말이에요. 하지만 여기서 'bite' 는 개가 사람을 문 것이 아니라 '개가 사람을 속인 것'이라고 봐야 합니다. 이건 사실 일어나기 힘든 일이잖아요. 그래서 'Dog bites man' 과 'Man bites dog' 라는 말은 비슷한 말이예요.
# "개가 사람을 물었다"와 "사람이 개를 물었다"는 저널리즘의 속성을 이야기할 때 나오는 유명한 말이다. 즉 전자는 일상이므로 뉴스거리가 되지 않지만, 후자는 이변이므로 뉴스거리가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Dog bites man 은 "뻔한 사건; 일상적인 일"이라는 의미로, Man bites dog 는 "희한한 사건; 뉴스 거리"라는 의미로 통용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저자는 He bites us 라는 표현이 "그가 우리를 속였다"라는 뜻이므로, Dog bites man 도 "개가 사람을 속였다"라는 뜻이라고 해석한다. 무척이나 참신한 해석이긴 하지만... 솔직히 뭘 모르고 하는 소리일 뿐이다. 사실은 양쪽 모두 "물었다"는 1차적인 의미가 맞고, 다만 사람의 경우에는 "속였다"라는 2차적인 의미로 해석이 가능하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저자는 지금 어떤 것이 먼저고 어떤 것이 나중인지를 혼동하는 셈이다. 가령 저널리즘의 속성에 관한 이야기만 보아도, Dog bites man 과 Man bites dog 는 물고 물리는 대상이 서로 뒤바뀌었을 뿐이고 피차 같은 뜻이어야만 한다. 하지만 저자의 논리대로라면 이것도 결국 "개가 사람을 속였다"와 "사람이 개를 속였다"로 해석해야 하는 것인가?
또 한 가지 예를 들어보자. 저자의 논리대로라면, "학생이 수업시간에 떠들다가 걸려서 선생님에게 뒤통수를 맞았다"라는 문장의 의미는 사실 "학생이 선생님에게 배신을 당했다"는 의미이다. 왜냐하면 "뒤통수를 때리다/맞다"라는 표현에 "배신을 하다/당하다"라는 부차적인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저자의 논리대로라면 "뒤통수를 때리다/맞다"의 1차적인 의미가 폭행이라는 사실은 중요하지 않다. 오로지 2차적인 의미가 배신이라는 사실만이 중요할 뿐이다.
99쪽, 사진,
# 이건 사실 저자가 아니라 출판사의 삽질일 것인데, "에라스무스"라고 캡션을 붙인 도판 속에다가 홀바인이 그린 "토머스 모어"의 초상화를 집어넣었다. 물론 이걸 제대로 확인 안 하고 넘어간 저자의 책임도 무시할 수 없을 듯하지만.
124-129쪽,
# 스팸에 관해 설명한다면서, 정작 스팸에 관한 가장 중요한 사실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다. 즉 스팸은 저자의 말처럼 "양념된 돼지고기 햄 통조림"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사실은 구체적인 부위조차도 알 수 없는 "잡고기"로 만든 가공품이라는 점이다. 초기의 스팸(어원은 "양념된 햄")은 창자나 부스러기 고기 같은 것을 갈아서 만드는 가공품 햄이었다. 한편으로는 워낙 살코기 함량이 적었기 때문에 "햄"이라는 단어를 쓰면 안 된다는 규제를 받았고, 그로 인해 "스팸"이라는 단어를 고안했다는 설도 있다. 그래서인지 "스팸"은 애초부터 "싸구려 물건", 또는 "가짜 햄"이라는 느낌이 강했고, 결국 나중에 가서는 "스팸"이라는 말 자체가 뭔가 저열한 것, 열등한 것, 쓰레기, 가짜 등등의 의미를 담게 되었다. 저자는 몬티 파이톤의 코미디에서 스팸에 관한 에피소드를 장황하게 설명하는데, 애초에 그런 에피소드 자체가 나오게 된 배경에도 스팸의 싸구려 이미지가 있었음을 간과하면 곤란하다. 비유하자면 지금 저자의 서술 방식은 "싼 게 비지떡"이라는 이야기를 하면서 정작 "비지"가 두부를 만들고 남은 일종의 찌꺼기, 또는 부산물이라는 사실에 대해서는 입도 뻥긋하지 않는 식이다. 그렇다면 왜 "비지떡"에 "저급한 품질"이나 "싸구려"의 이미지가 있는지를 어떻게 설명한다는 것인가?
183쪽, 밑에서 7행,
그런데 scapegoat 라는 말은 사실 오독의 산물입니다. 16세기에 틴들리라는 사람이 만들어낸 말이 scapegoat 인데요, goat sent into the wilderness on the Day of Atonement, symbolic bearer of the sins of the people 이라는 뜻으로 쓰였습니다. 번역하자면 "최후의 심판 날에 인간의 죄를 대신 지고 황야로 보내질 염소"라는 말입니다. 하지만 여기에서 goat 는 히브리어 azazel 이라는 말의 오역입니다. 틴들리라는 사람이 azazel 을 ez ozel 로 읽은 거죠. ez ozel 은 염소라는 뜻지만, azazel 은 유태 신화에 나오는 악마의 이름이거든요. 말 그대로 심판의 날이 오면 악마가 쫓겨날 것이라는 말이 염소가 쫓겨난다는 말로 전혀 엉뚱하게 바뀐 겁니다.
# 영문학과 철학을 비롯한 인문학의 필수적인 배경 지식 가운데 하나인 성서에 대한 저자의 무지가 드러나는 대목이다. 저자는 우선 Day of Atonement, 즉 매년 있는 "속죄의 날(욤 키푸르)"을 세상 종말의 "심판의 날"로 오독한다. 아울러 Tyndale 을 "틴들리"라고 써 놓았는데, 보통은 "틴들"이라고 하지 않던가. 아울러 azazel 에 대한 설명도 뭔가 어설프다. 구약 레위기에 보면 매년 속죄의 날이 되면 염소 두 마리를 골라서, 그중 한 마리는 하느님에게 바치고, 또 한 마리는 "아사셀을 위하여 희생 염소"로 삼는다는 설명이 나온다. 즉 이 염소는 "아사셀을 위하여" 이스라엘 백성의 죄를 모두 짊어지고 황야로 쫓겨나는 것이다. 문제는 여기서 저자가 언급한 "아사셀"이 무엇이냐인데, 이에 대해서는 성서학자들 사이에서도 아직까지 논란이 분분하다.
히브리어 원문의 "아사셀을 위하여"(영어로는 for Azazel)는 "아사셀을 향하여"나 "아사셀로 삼아서"라고도 해석이 가능하다. 첫 번째의 경우, "아사셀"은 어떤 신이나 악마를 의미한다고 해석할 수 있다. 두 번째의 경우, "아사셀"은 광야나 언덕 같은 지형지물을 가리킨다고 해석할 수 있다. 세 번째의 경우, "아사셀"(azazel)은 "보낼 염소"(ez ozel)의 오기라고 해석할 수 있다. 흔히 사람들이 "틴들의 오역"이라고 일컫는 것은 이 영어 성서 번역자가 "아사셀로 삼아서"을 "보낼 염소로 삼아서"로 해석해서 "희생양(염소)"(scapegoat)라는 영어 단어를 고안한 것을 가리킨다. 하지만 앞서 말한 것처럼 "아사셀"의 의미가 확정되지 않은 상황이라면, 이 해석을 어느 누구도 "오역"이라고 단정하기는 곤란하다. 실제로 틴들 말고 70인역(그리스어)이나 불가타(라틴어) 성서 역시 "아사셀"을 "보내질 염소"라고 옮기고 있으므로, 이쯤 되면 "아사셀"을 "희생양"으로 옮긴 것도 충분히 이유가 있어 보인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의 본문에 나온 저자의 단언, 즉 "심판의 날이 오면 악마가 쫓겨날 것이라는 말이 염소가 쫓겨난다는 말로 전혀 엉뚱하게 바뀐 겁니다"라는 주장은 틀린 것일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실제로 "속죄의 날"에 "염소가 쫓겨난다"는 것은 성경에도 나온 엄연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틴들의 번역에서 엉뚱하게 바뀐 것이 있다면, "아사셀"이라는 뜻모를 단어를 그 "쫓겨나는 염소"를 가리키는 명칭으로 옮긴 것뿐인데, 앞에서 설명한 것처럼, 이것도 아직 틀렸다고 단언하기는 곤란하다. 그리고 저자의 주장과 달리, "아사셀"이 정말로 "악마"인지, 또 다른 무엇인지는 아직 아무도 모른다. 짐작컨대 이 단어가 "악마"로 여겨지는 것은 더 후대의 전통에서 수립된 해석일 것이며, 결국 그것 역시 레위기의 해당 구절에 대한 해석의 어려움을 보여주는 사례에 불과할 것이다.
184쪽, 위에서 8행,
히브리어로 낙타(gamta)와 밧줄(gamla)의 발음이 비슷해서 오역을 했다는 주장이 바로 그겁니다.
# 신약성서에 나오는 예수의 유명한 비유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기는 낙타가 바늘귀를 통과하는 것처럼 어렵다"에 대한 설명이다. 저자의 실수는 구약성서가 히브리어로 작성된 반면 신약성서는 아람어와 그리스어로 작성되었다는 점을 몰랐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 대목에서 "히브리어"를 운운 하는 것이 첫 번째 잘못이고, 그러면서도 정작 아람어 gamta 와 gamla 를 버젓이 적어놓고 히브리어라고 우긴 것이 두 번째 잘못이다.("아람어"를 "아랍어"나 "히브리어"로 잘못 쓰는 경우는 다른 책이나 기사에서도 제법 흔히 찾아볼 수 있다. 가령 이미도 같은 자칭 영어 전문가의 기고문에도 그런 실수가 나타나 있다. 그 사람도 결국 어디서 들은 풍월을 따라 적었다는 뜻이다). 사실 이 오역 논란 역시 진위 여부는 불확실하다. 어떤 사람은 그리스어의 낙타(kamelos)와 밧줄(kamilos)의 유사성을 근거로 드는데, 이처럼 낙타와 밧줄이 애초부터 비슷한 어원에서 시작되었다면, "밧줄과 바늘귀"를 "낙타와 바늘귀"로 바꿔 부르는 것도 어쩌면 "당연하지"가 "당근이지"로 변한 것처럼 자연스러운 말장난이었을 수 있다. 그렇게 보자면 이건 사실 오역까지는 아닐 것이다.
뒤늦게 하나 추가. 위에서 "신약성서는 아람어와 그리스어로 작성되었다"라고 했는데, 신약성서의 각 편 가운데 오로지 아람어로만 이루어진 편은 없다. 다만 그리스어로 이루어진 본문 중에 "달리다굼", "에바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처럼 일부 아람어 구절이 등장하는 것뿐이다. 멜 깁슨의 영화 <그리스도의 수난(패션 오브 크라이스트)>에서는 대사 가운데 상당수를 아람어로 처리했다고 해서 화제가 되었는데, 사실 여기서 사용된 아람어는 예수 당시가 아니라 훨씬 더 후대의 아람어에 근거해서 재구성한 인공물에 불과하다. 그러면서 정작 영화를 홍보할 때에는 마치 아람어를 이용해서 더 예수 당시의 실상에 가깝다고 주장해서 성서학자들로부터 빈축을 산 바 있다.
202쪽, 위에서 8행,
서인도 제도에서 들여온 기니피그라는 애완동물을 거래할 때 지불하는 화폐로 기니라는 금화가 사용됐는데, 한 마리에 1기니라는 비싼 가격으로 팔렸다고 합니다.
# 기니피그의 이름에 관한 설명인데, 이것도 조금만 더 조사해 보았으면 근거가 없는 이야기임을 알 수 있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위키피디아의 "기니피그" 항목을 보면, "기니피그"라는 이름이 처음 영어에 등장한 것이 1653년의 일인데, 정작 "기니"라는 화폐가 처음 도입된 것이 1663년의 일이라고 나오기 때문이다. 기니피그의 이름 어원에 대해서는 이것 말고도 여러 가지가 있다. 내가 저자에게 바란 것은 차라리 이런 다양한 "썰"들을 비판적으로 검토해 주는 거였다.
242쪽, 밑에서 1행,
이들은 다소 재밌는 이야기를 소개하고 있는데, 애플 컴퓨터 로고와 아이비엠 컴퓨터 로고를 번갈아 보여주는 실험을 했답니다. 그런 뒤에 장난감 브릭을 사용해서 할 수 있는 만큼 이름을 짓도록 했는데, 그 전에 비해 훨씬 창조적인 결과가 나왔다고 합니다.
# 저자는 <사이콜로지 투데이>라는 잡지에서 "제이 딕시트와 매츄 헛슨이라는 싸람이 쓴 글 중에서 Logos: Branded for Life 라는 게" 있다면서, 그 기사에 나온 심리학 실험 결과를 위와 같이 설명한다. 그런데 나는 솔직히 "장난감 브릭을 사용해서 할 수 있는 만큼 이름을 짓도록" 하는 게 도대체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는 거다. 구글에서 Logos: Branded for Life 라는 제목으로 검색해 보니 <사이콜로지 투데이>에 나온 짤막한 기사(마치 박스 기사 같은)를 열람할 수 있었는데, 원문은 이러했다. Then they were asked to name as many uses for a brick as they could think of. 즉 "곧이어 장난감 브릭의 용도를 최대한 많이 생각해 내서 말해 보라고 요청했다"는 뜻이다. 여기서 name 은 "이름을 짓다"가 아니라 "말하다"로 해석해야 맞다. 원문의 요지는 아이비엠보다 애플 로고를 보여주었을 때, 사람들이 내놓은 답변에서 창의성도 더 높아진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애플"이라는 브랜드를 "창의성"과 연결시켜 생각하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결국 저자의 설명은 원문의 짧은 기사를 잘못 옮긴 것은 물론이고, 그 요지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셈이다.
320쪽, 위에서 9행,
license 에는 이외에 방종, 제멋대로 하다는 뜻도 있습니다. 007 영화 시리즈 중에서 16탄 제목이 <살인면허>이지요. 여기에 쓰인 license 가 그 이중적 의미를 잘 드러낸 제목이기도 해요. 허가증이면서도 제 맘대로 죽일 수 있는 권리를 뜻하니 말입니다. 이렇게 license 가 방종의 의미로 쓰이게 되는 것은 15세기 중엽부터입니다. 허가증을 남발해서 고충을 겪는 이들이 생겨서 이런 게 아닐까 싶군요.
# license to kill, 즉 "살인면허"라는 것은 이언 플레밍의 제임스 본드 시리즈에서 영국의 비밀 기관에서 활동하는 주인공에게 부여된 면책 특권을 말한다. 즉 이 특권을 지닌 사람은 임무 수행을 위해서라면 심지어 살인을 하더라도 무방하다는 뜻인 것이다. 이 시리즈에서는 "살인면허" 소지자를 특유의 암호명으로 부르는데 그게 바로 00- 이라는 숫자다. 즉 007은 "살인면허" 소지자 가운데 "일곱 번째 사람"이라는 의미인 것이다. 여기서 license 는 말 그대로 "면허"일 뿐이지, 이걸 "방종"과 연관시켜 이야기하는 것은 과도한 확대 해석이다. 그렇게 따지자면 driving license 역시 "방종"과 연관시켜 이야기해야 하지 않을까? 결과만 놓고 보면 driving license 역시 종종 인명 사고를 낸다는 점에서는 "살인면허"나 다름없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