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좋은 책들을 떼로 만나고 있는 중이다.
이 책들 모두를 한동안 여기저기 추천하고 다닐 것같은 강력한 예감이 든다.
1. 아프리카에는 아프리카가 없다 (윤상욱)
지난 주에 오프서점에서 보다가 맘에 쏙들어 사들고 온 책이다.
역사학도 출신의 주 세네갈 한국대사관 참사관이 쓴 글인데, 아프리카의 역사를 알기쉽게 조목조목 설명해 주면서 현재의 문제점과 미래의 가능성을 동시에 이야기 하는, 아프리카에 관한 한 보기 드물게 알찬 책이다. 책 속의 지도, 관련사진은 물론이고, 이해를 돕기위한 도표들과 뒤 쪽의 주제별 참고문헌 정리도 잘 되있다.
* <아프리카에는 아프리카가 없다> 저자가 쓴 감사의 말에는 고 유홍근 주 카메룬 참사관이 언급되어 있다. 2008년
가족을 한국에 남겨두고 카메룬에 부임한후 2세의 출생소식도 아프리카에서 들었는데, 2009년에 잠깐 서울출장 와서 쓰러진게
마지막이 되었다고 한다. 아들이 겨우 7개월일때.
<아프리카에는 아프리카가 없다>가 눈에 들어온 이유는 올해 초 읽었던 트레이시 키더의 <고통은 너를 삼키지 못한다>때문.
이 책은 퓰리처 수상 작가인 트레이시 키더의 대표작인 Strength in What Remains 의 번역본인데, 내전으로 인해 죽음의 땅으로 변한 브룬디를 탈출한 청년 데오의 이야기를 쓴 책이다. 앞부분은 데오의 입장에서 기술했고 뒷부분은 트레이시 키더가 설명을 덧붙였다.
생과사의 외줄타기 끝에, 영어 한 마디 못하던 채로 뉴욕 할렘가에 도착한 데오의 실화를 읽으며 사람을 죽이는 것도, 살리는 것도 결국엔
"사람"이구나 싶었다.
책을 읽으면서 여러번 훌쩍였던 것은 물론이고, 이 책을 읽기 전까지 브룬디가 아프리카 어디쯤에 붙어있는 지도 몰랐던 나는, 브룬디내전이 바로 옆에서 벌어졌던 르완다 내전과 어떻게 다른 양상을 띠게 되었는지, 브룬디의 후투족/투치족은 르완다의 후투족/투치족과 어떻게 다른 지배구조를 이루게 됬는지 자세히 알게 됬다. 영화 <호텔 르완다>를 통해서 르완다 내전은 많이 알려졌지만 브룬디 내전은 트레이시 키더가 아니었다면 묻혀버렸을 지도 모를 일이다. 책을 읽는 도중에 브룬디에 대해 여러번 검색을 하다가 알게된 또 하나의 사실은 우리나라에 귀화한 첫번째 아프리카인이 바로 브룬디 출신이란 것.
번역본이 나왔다는 것은 아예 몰랐다가 중고샵에서 발견하곤 재빨리 구입했는데, 안타깝기 그지없는 이 책의 세일즈지수를 나중에 보고선 그냥 새책 살걸 했다.
(공항에서) 모두가 행복해 보였다. 놀라거나 겁에 질린 듯한 얼굴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들은 출장이나 여행을 다니는
사람들이었는데, 개들이 사람 머리를 입에 물고 돌아다니는 세상이 존재한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듯 했다. 하지만 어떻게 모를 수가
있을까?
“하느님, 왜죠?” 데오는 조용히 물었다. (p. 25)
어른들이 자주 하는 말이 있었다. “불행을 견디기 힘들 때는 좋은 일이 생긴 것처럼 웃어라.” 사람들은 그런 식으로 가난의 고통을 잠시라도 잊으려 했다. (p. 54)
나는 (저자, Tracy Kidder) 샤론에게 말했다. “대학살 생존자들의 수기를 읽다 보면 ‘하느님이 나를 살려주셨다’는
얘기가 꼭 나오지요. 난 그런 구절을 볼 때마다 이런 생각이 들어요. ‘그럼 머리가 잘려나간 무수한 사람들은 어떻게 되는 거지?
하느님은 그들을 사랑하지 않는 건가? 그래서 과연 그런 시각이 옳은 것인지 의심스러워요.” (p.237)
데오는 자신이 얻은 답을 익살스럽게 표현하기를 좋아했다. “나는 하느님을 믿어요. 진실로 하느님을 믿어요. 내 생각엔
하느님이 인간들에게 너무 큰 힘과 지능을 주고 이렇게 말한 것 같아요. ‘자, 이제 알아서 해라. 난 피곤해서 눈 좀 붙여야
겠다. 너희는 성숙하다. 그러니 스스로를 돌보아라.” 그는 잠시 멈췄다가 말을 이었다. “그리고 너무 오래 자버린 거예요.”
(p. 250)
나는 컬럼비아에서 데오가 수강했던 과목들이 다소 의아스러웠다. 무일푼 이민자라면 컴퓨터 공학 같은 잘 팔리는 전공을 택하는 게
상식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데오는 생화학을 전공하면서 철학 과목들을 최대한 많이 수강했고, 4년 내내 철학을 들었다. 그래서
나는 데오에게 그 이유를 물었다. “내게 일어난 일을 이해하고 싶었어요.” 데오가 말했다.(p.244)
르완다 대학살은 다수 종족의 정부가 무력한 소수 종족을 제거하기 위해 계획적으로 일으킨 일종의 마녀사냥이었다. 반면 부룬디의
대중 폭력은 소수 종족의 정부와 다수 종족 반란군 간의 대등한 힘을 지닌 두 무장 세력의 싸움이었다. (p. 270)
******
2. 킬리만자로의 눈 (어니스트 헤밍웨이)
오프서점에서 구입한 또 하나의 책은 바로 <킬리만자로의 눈>이다.
헤밍웨이의 단편 13편이 담겨있고, 영어본이 같이 붙어서 냉큼 구입했다. 문제는 랩핑이 되어있어서 확인하지 않은 채로 그냥 샀는데 영어본은 앞에 3편만 수록되어 있었다는 불편한 진실 -_-;; 분명히 두께가 엄청 얇은데 도대체 눈은 어디다 두고 있었던 건지...
제임스 조이스의 추천사는 이 책을 집어들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헤밍웨이는 문학과 삶 사이의 장막을 축소했습니다.이것은 모든 작가들이 추구하는 일이죠.
<깨끗하고 불이 환한 곳>이라는 작품을 보셨습니까?
장인의 솜씨예요. 정말이지 이것은 지금까지 쓰인 것들 중에서 최고의 것 가운데 하나입니다.
올 봄엔 그럴듯한 외국소설이 적게 나온다 싶은 기분이 드는데, 나만 그런가?
*****
3. 나는 세계일주로 자본주의를 만났다 (코너 우드먼)
아일랜드 태생으로 런던 금융가에서 수십억대 연봉을 받던 에널리스트가 회사의 구조조정을 맡아 400명의 직원에게 해고통지를 보내다가 자신에게 회의를 느껴 회사를 그만두었다. 그가 모니터앞에서 수백억원을 거래하던 일을 포기하고 선택한 것은, 세계경제 현장을 몸으로 느끼기 위한 6개월간 여행이었다. 특히, 이 책은 트렌드화 되고 있는 "공정무역"의 진실을 알아보기 위해 떠난 여행의 기록이다. 니카라과, 영국, 중국, 라오스,콩고민주공화국, 아프가니스탄, 탄자니아, 코트디부아르를 돌며 우리가 소비하고 있는 상품들의 생산과정을 생생하게 전달해준다.
<나는 세계일주로 자본주의를 만났다>를 읽다가 코너 우드먼의 책은 모두 사봐야 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나는 세계일주로 경제를 배웠다>도 주문해 버렸다.
지구상에서 가장 가난하고, 가장 위험한 지역들을 돌아다니며 건져올린, 생생하게 살아있는 진짜배기 지식과 정보에 어찌 귀기울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게다가 그가 만난 것이 절망과 좌절이 아니라 희망과 가능성이라고 하는데!
******
4. 중국을 읽다: 세계와 대륙을 뒤흔든 핵심사건 170장면 (카롤린 퓌엘)
1980-2010년까지 중국이 눈부시게 성장한 시기를 기록한 책이다. 인류 역사상 유일무이한 변화를 보여준 거대국가의 발자취를 꼼꼼히 정리해 놓았다.
내용으로서도 시의적절한 책이지만, 책의 만듬새도 무척 맘에 드는 책이다. 앞뒤부분에 들어가 있는 지도, 사진, 연표, 색인, 참고도서 정리도 깔끔할 뿐더러, 위에민준의 그림과 중요사건의 사진을 덧붙인 표지디자인도 인상적이다 (미쓰다 신조의 <잘린 머리처럼 불길한 것>의 표지를 떠올리게 하는 - 그런데 펴보다가 살짝 찢어졌어 ㅜㅜ ). 백과사전처럼 주요부분 찾아가며 읽어도 되고, 역사책으로 읽어도 좋은 책이다. 여러모로 공을 많이 들인 책이란 것이 팍팍 티가 난다.
<중국을 읽다>를 읽으면서 생각난 김에 주문한 보관함속 책 두 권. <헨리 키신저의 중국이야기>와 <이슈, 중국현대미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