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도철. 그의 이야기에는 현실과 판타지의 기묘한 충돌이 존재한다. 샴푸로 머리를 감으면 아름다운 모습으로 변신하는 소녀나 19세기말 유럽 소설 속에 등장하는 불멸의 흡혈귀처럼 지극히 비현실적인 소재를 취하면서 그 이야기 속에 현실에 대한 날카로운 시선을 숨기지 않는다. 때때로 그가 보여준 상식과 관습을 비트는 키치한 매력의 유머 속엔 현실을 바라보는 노도철 만의 날카로운 풍자가 담겨져 있다.

무엇보다 전형성을 벗어난 그의 이야기 속 반전들은 현실과 판타지의 불명확한 모호함에서 생성되고 있다. 웃음을 주는 시트콤이란 장르적 컨벤션을 떠나 이야기 전반에 묻어둔 지극히 감성적인 패턴들이 극의 완결성을 주도한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외모지상주의와 십대 소녀들의 숨겨진 욕망 속에 성장에 대한 저항과 혼란, 아스라한 슬픔을 귀결 시킨 <두근두근 체인지>나 소통부재의 현대인들에게 가족애의 노스탤지어를 자극한 <안녕 프란체스카>처럼.

이렇게 어울릴 것 같지 않은 극단의 접근방식들은 이야기 속에서 충돌하는 시선과 모호한 관점을 만들며 우리 가슴을 절묘하게 파고드는 힘을 갖는다. 수많은 마니아를 생성해 온 노도철 극의 파워는 여기에 기인한다.

“삭막한 세상에 지나친 리얼리즘은 숨이 막히죠. 저는 TV가 가진 ‘Dream come ture'를 믿습니다. 하지만 제 이야기에 판타지는 20% 정도 입니다. 그 밸런스는 아주 중요하죠. 모호한 관점일 수 있지만 전작들이 SF코미디로 흐르지 않은 이유도 묘한 지점에 충돌을 만들고 현실과 판타지를 절묘하게 섞어 놓았기 때문입니다.”

그의 작품 중 사랑과 결혼이란 가장 현실적인 소재를 선택했던 최근작 <소울메이트> 역시 이러한 기조를 같이 한다. 저마다 삶의 방식과 가치관이 다른 여섯 명의 '도시 남녀'가 소울메이트란 초월적 사랑을 찾는 과정 안에 기어코 비켜갈 수 없는 현실 속 사랑의 불안정성을 설파하며.

결국 이러한 충돌 속에 생겨난 격정적 감정들이 그토록 많은 열혈폐인들의 눈물샘을 자극하며 웃고 울린 힘이다.

당신은 현재의 사랑을 사랑이라 말할 수 있는가?

유한의 삶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변하지 않는 사랑은 영원한 판타지인가?

노도철 PD의 세 번째 시리즈 <소울메이트>는 무작정 기쁜 게 아니라 목이 멜 정도로 반가운 사람, 그러나 계속 만나자니 부담스럽고 헤어지자니 도리가 아닌 것 같은 사람. 그런 사랑이 평생에 한 번은 있다는 배은미씨의 시에서 출발했다.

“정말 평범한 사람들이 만나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때문에 모든 걸 배제한 채 사랑이야기만 가지고 <소울메이트>를 만들었죠. 소울메이트는 지극히 고전적인 개념이기에 이야기의 정서도 신파에 가까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안에 현실적인, 감각적인, 계산적인 사랑을 함께 보여주며 ‘정말 운명적인 사람과 우연이 반복될 때 당신이 지금하고 있는 사랑을 사랑이라 말할 수 있는가란 질문을 던져보고 싶었죠.”

그는 현실 속에 등장하는 다양한 연애들을 보여주기 위해 청담동의 ‘연애고수’ 2명을 아이디어 작가로 초빙하기도 했다.

“극 초반 노골적으로 시작된 실용적 연애팁들은 순간적이고 유희적인 현실의 사랑을 보여주는 장치입니다. 또 한 이것은 극 후반 동욱과 수경의 운명적 사랑과 선명한 대비를 이루며 시청자들에게 그 둘의 감정에 극적으로 동화될 수 있는 기폭제가 되기도 하죠. 초반 스토리가 지루했단 평도 있었지만 동욱과 수경 각각의 이야기를 길게 끌고 갔던 이유도 두 인물의 사연을 충분히 풀어주지 못 한채 그들의 만남을 운명으로만 설득하려 할 경우 시청자들의 심정적 반감을 가져올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죠. 결과적으론 옳은 판단이었다고 생각됩니다. 둘의 만남이 더 빨랐어도 지금 같은 감정의 진폭은 없었을 테니.”

분명 그가 <소울메이트>를 통해 던진 무수한 사랑의 담론들은 갖가지 심리 조각으로 녹아들며 시청자들의 공감을 얻는데 성공한다. 많은 이들은 <소울메이트>를 보며 현실 속 사랑이 너무 가볍거나 관성적인 것이 아닌가 불안하고 답답해 졌다고 하니.

“스텝 중 <소울 메이트> 마지막회를 보고 오랜 연인과 헤어진 사람도 있습니다. 소울메이트란 존재에 사랑의 모든 정당성을 부여하는 것은 아니지만 누구나 불안정한 현실 사랑에 두려움을 갖고 있으니까. 다만 <소울 메이트>의 마지막 이야기가 유진 이야기에 가까웠던 것은 운명이 아니라고 해서 쉽게 버릴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오랫동안 지켜온 그들의 관계도 사랑일 수 있다는 균형감을 주고 싶었던 때문입니다.”

어쩌면 <소울메이트>가 만들어낸 드라마의 새로움은 관성적으로 어느 한쪽의 손을 명확하게 들어주지 않은 그 방식에 있다. 하지만 “우리가 서로 운명이라고 믿고 사랑한다면 그동안 시간을 들여 했던 사랑이 모두 다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되어버릴 거”라며 현실을 선택한 수경이 어쩔 수 없는 운명의 이끌림으로 동욱과 같은 공간에 놓이게 되는 마지막 시퀀스는 사랑에 지친 사람들이 소망하는 극적 순간을 만들어낸 노도철만의 판타지한 반전이기도 했다.

“모두가 가는 길은 매력이 없다.”

“모두가 가는 길은 매력이 없어요. 전형성을 죽기보다 싫어하죠. 새로운 작품을 시작하면 종전에 익숙했던 모든 것을 버리자고 마음먹어요. 외진 길이라 생각했던 저의 방식들에서 반응을 끌어낼 수 있었다는 것은 분명 행운이라 생각합니다.”

노도철 PD는 진화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고 굳게 믿는 사람이다. 매너리즘에 빠진 시트콤의 위기론이 공공연하게 대두되던 때 ‘왜 시트콤이 드라마 못지않은 집중력을 가질 수 없는 가?’ 전형성을 벗어나 보다 새로운 표현방식을 찾아갈 수 없는 가?란 강한 의문을 갖기도 했다.

“2-30대를 메인 타겟층으로 <소울메이트>를 시작할 때도 가장 걱정했던 점은 시청률보다 트랜드의 선도였습니다. 아무도 ‘HOT’ 하지 않다고 생각한다면 이 드라마는 실패라고 생각했죠. 캐스팅 할 때도 배우들에게 이 점을 강조했습니다.”

그의 말처럼 <소울메이트> 속 연예팁들은 인터넷에 연애백서 형태로 회자될 만큼 이슈가 되었으며 심리를 끌고 가는 감각적인 장면에 흐르던 스타일리쉬한 음악들이 마니아층 형성에 미친 영향은 지대했다.


“일부에선 주인공인 수경의 캐릭터가 지나치게 평범하다는 얘기도 들렸지만 극한 지점을 만들지 않은 것은 의도적 이었습니다. 털털하고 직선적인 듯하지만 여성적인 면도 있고 수경은 시트콤이란 장르 안에 흔치 않은 캐릭터죠. 이수경이란 배우에게도 일부러 명확한 선을 주지 않아 연기하기 힘들었을 겁니다. 결과적으론 가슴 아픈 이별을 겪은 평범한 여자 수경이란 캐릭터가 동료의 남자와 운명적 사랑에 빠지는 극적 상황에 놓인 순간, 많은 시청자들은 그녀에게 마음을 열고 연민과 함께 공감을 주었으니.”

노도철 PD는 캐릭터에 맞는 인물들을 찾을 때까지 캐스팅에 많은 공을 들이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정형화된 이미지의 톱스타보다 배역에 어울리는 신인을 선호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 캐릭터에 맞는 인물들을 찾을 때까지 오랜 시간 캐스팅 작업을 합니다. 이번 캐스팅도 석 달 이상 걸렸죠. 조연급도 마찬가지입니다. 디자이너 장광효나 모델 김동수, 정덕희 교수등을 캐스팅한 이유도 이미지가 고정돼 있는 어설픈 재연 배우보단 튀는 것이 낫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이렇게 작품 속 새로운 사람들을 잡동사니처럼 모아놓으면 키치한 매력을 발산하며 극의 신선함을 유지해 주기도 하니까.”

그는 <소울메이트>에서 조진국 작가란 새 얼굴을 전면에 내세웠다. 새 작가를 영입해 일하는 것이 노도철 스스로도 한정된 틀에 갇히지 않는 방법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신정구 작가도 <안녕, 프란체스카>가 처음이었죠. 많은 사람이 반대했지만 결과적으론 정말 좋은 선택이었습니다. 기존 시트콤 작가들은 너무정형화 돼있는 부분이 많아요. 드라마는 작가에 따라 느낌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안녕 프란체스카>처럼 만화같이 통통 튀기는 맛으로 보는 거라면 당연히 신정구 작가가 써야 하겠지만 <소울메이트>는 신파에 가까운 멜로드라마입니다. 이 점이 조진국 작가를 선택한 이유기도 하구요. 무엇보다 안 써본 친구들에게서 더 기발한 부분이 많이 나옵니다. 앞으로도 작품마다 새로운 작가들과 팀을 꾸릴 생각입니다.”

시즌 2 비극에 가까운 엔딩이 될 것.

최근 노도철 PD는 <소울메이트> 출연진 및 스태프 40여명과 함께 경기도 가평으로 MT를 다녀왔다. 거의 모든 출연진과 제작진이 참석했을 정도로 작품에 대한 자부심과 애정도가 컸다.

“시트콤은 웃겨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나 예쁜 연기자들과 감성을 울리는 드라마 한 편을 만들어 냈다는 점에서 자부심을 느낍니다. 시청률이 높지 않아 회사엔 미안했지만 동욱과 수경이 가장 아름다운 커플로 회자되고 있다는 것도 연출자로선 행복한 일이구요.”

노도철 PD는 <소울메이트>를 통해 멜로 라인에 대한 자신감을 얻었다. 드라마나 영화 연출 제안이 부쩍 는 이유도 이 때문인 듯하다.

“완결성 있게 시즌 1이 잘 마무리 된 상황이기 때문에 작가나 저 모두 시즌 2 에 대한 많은 부담을 갖고 있습니다. 서두르다 어설프게 만들고 싶진 않아요. 편성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이지만 적어도 3개월 이상 준비 기간을 두고 싶습니다.”

그는 인연임을 깨달은 동욱과 수경의 본격적인 연애 과정이 그려질 시즌2로 들어가면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현실과 사랑의 충돌이란 주제가 더욱 선명히 드러나며 비극에 가까운 엔딩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사랑이 쉬운 세상에서 여전히 운명적 사랑을 찾아 헤매고 그 운명의 엇갈림이 비극을 만들어 내며 진실한 사랑이 얼마나 비현실적인 것인지 깨닫게 하려는 걸까? <소울메이트> 시즌2를 통해 새롭게 진화될 노도철만의 감성과 판타지한 반전이 궁금해 진다.

 
 
보슬비 2006-06-17 17:45   댓글달기 | URL
너무 재미있게 봤었는데... 음악도 너무 좋구요. 대사도 맘에 들구.. 신랑은 보면서 감동에 눈물까지 흘렸어요. ^^;;; 2시즌 기다려지는데 너무 비극이 아니면 좋겠어요.
 





 
 
프레이야 2006-02-13 03:51   댓글달기 | URL
아..장생과 공길의 장님놀이 하던 장면과 대사가 떠오르네요. 그들의 미래와 함께 하는 죽음으로 이어지는 영원한 동행이 그려져요.^^

보슬비 2006-02-13 12:27   댓글달기 | URL
마지막 장면에서 눈물이 나더라구요. 영화를 본후에도 계속 계속 생각나게 한 영화였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