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거실 한켠에 내 공간을 만들었다. 십년된 나무 책상은 편안함을 안겨준다. 새로움보다는 익숙함이 좋은 나이인가보다. 독서하는 여인들의 그림이 있는 알라딘 달력은 깔끔하면서 고급스럽다. 지인 사무실에서 얻은 몽글몽글 보라색 꽃을 피운 난 화분은 우아하다. 나랑 어울린다며 보내준 시아언니의 선물, 꽃병은 볼수록 귀엽다. 보랏빛 다이어리는 애장품중 하나이다. 매일의 지출을 적고 일정과 간단한 일기를 적으며 그림도 그려 넣는다. 올해 읽고 있는 책 리스트를 작성한다. 얼마전부터 규환이를 위해 성경을 쓰고 있다. 시작할때 '규환이가 공부에 열정을 가질 수 있도록, 꿈을 발견할 수 있는 지혜를 주소서`하는 소망을 담는다. 3년후 네가 누나의 든든한 보디가드가 되어주렴.


 

 

 

그리고 읽을 책들이 놓여있다. 일요일의 밤을 아이들과 책 읽으며 보내고 있다. 바삭 소리나는 꼬깔콘, 꿀 꽈배기는 필수! 다이어트는 언제 시작할까?

 

 

 

 

 

 

 

 

 

 

 

 

문득 집안에 살림 도구가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랫동안 이사를 가지 않아 책, 옷, 이불, 화장품, 가방, 화분 등 온갖 물건들로 넘쳐났다. 서랍에는 아이들 어릴적 쓰던 크레파스며 색연필이 즐비하다. 정리가 필요하다는 생각에 도서 '날마다 하나씩 버리기(선현경. 예담)'를 읽었다. 만화가 이우일의 부인이기도 한 선현경의 글은 간결하고 깔끔해서 좋다. 일본의 일러스트레이터 마스다 미리와 닮았다. 

 

이 책은 저자가 1년 동안 실천한 '하루에 1가지씩 버리기' 프로젝트다. 물건을 버리며 추억을 꺼내기도 하고 그림을 그리고는 과감히 버린다. 지인에게 선물받은 양말, 과월호 잡지, 유행 지난 옷, 오븐 장갑, 굽 높은 구두, 더이상 쓰지 않는 모자, 색색의 원석들이 박혀 있는 목걸이 등 저자는 매일 하나씩 버린다. 여행하면서 산 목걸이, 티셔츠, 장식품들은 그 당시엔 예뻐보이지만 일상에서 하기에는 대부분 부담스럽다. 여행의 행복했던 기억을 떠올리면서 친구들 만날때 주렁주렁 매달고 나가 예쁘다고 하는 사람에게 기꺼이 선물한다. 내게는 더이상 필요없지만 누군가에게 유용한 물건이 된다면 소소한 기쁨이다.

 

홍대 앞을 걷다가 산 빈티지 패딩 점퍼

 

이 옷은 안 입은지 벌써 육년이 넘었다. 그런데도 이 옷만 보면 생각나는 친구 때문에 버리지 못했다. 지금은 그 친구와 애매한 관계라서 더더욱 그랬다. 이 옷마저 버리면 그 친구와의 모든 관계도 사라질까봐. 관계라는건 참 묘하다. 해를 넘길수록 친해지는 관계가 있듯이 시간이 지날수록 힘들어지는 관계도 있고, 그저 그런데도 편한 관계가 있는 반면 자주 마주쳐도 불편한 관계가 있다. 한때 모든 걸 나눴던 친구였다. 이 옷을 입은 나를 좋아해주고, 같이 술을 마시면서 웃고 울었던 친구...... 그런 친구가 없어진다는건 내 과거도 다 사라지는 것만 같아 관계가 틀어질 때마다 붙잡고 아등바등했다. 이제 친구와 나 사이에는 넓은 강이 흐르는 기분이다. 사는 데 급급해 신경쓰지 않고 배려하지 않았던 내가 있었다. 이 옷과 함께 친구를 내려놓아야 할 시간인 모양이다.

 

 

교복 느낌이 나는 회색 개더 스커트

 

예전에 딸과 백화점을 기웃대다가 단정한 라인이 예뻐서 샀던 치마다. 딸이 중학생이 되니 교복 치마를 뺏어 입은 것 같아 민망해서 못 입겠다. 그때 나는 어려지고 싶었나보다. 한 해가 지나가려 하니 여러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지금 가지고 있는 인간관계들을 얼마나 계속 유지할 수 있을까? 내 의지와 상관없이 멀어지기도 하고 소원해지기도 하며 틀어지기도 한다. 관계에는 각각 저마다 다른 유통기한이 있나 보다.


입지 않는 옷을 보며 친구와의 추억을 떠올린다. 학창시절에 늘 붙어다니고 모든 걸 공유하던 사이지만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 친구라도 서로 노력하지 않으면 관계는 서서히 멀어진다. 헤어지고 만남이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하지만 가슴 한켠에 아린 기억으로 남는다.

 

우리집 거실을 정리했다. TV 거실장 옆에 놓여있던 2단 책꽂이는 서재로 옮겼다. 책꽂이가 있던 자리에 테이블을 놓고 내 공간으로 꾸몄다. 벽에 걸어 두었던 드라이 플라워를 버렸고 조화를 꽂아둔 화병 두개는 도서관으로 가져가 허전한 공간에 두었더니 조금은 따뜻해졌다. 다음 날은 화장대를 정리했다. 화장대 위와 서랍속의 오래된 매니큐어와 립스틱, 쓰지 않는 아이섀도우, 샘플로 받은 스킨, 로션들을 버렸다. 마스크 팩 케이스를 버렸고, 팩은 냉장고 한켠에 가지런히 놓아두었다. 깔끔해진 화장대를 보니 마음까지 산뜻해진다. 샘플은 쓰는 제품 이외에는 가급적 받지 말자.

 

내게 필요없는 물건은 기꺼이 다른 사람에게 주어야겠다. 조만간 악세서리도 정리해서 하나씩 떠나 보내야겠다. 저자처럼 사람들 만날때 주렁주렁 달고 나가 예쁘다고 하면 선뜻 내어줄까? 언젠가 선배의 팔찌가 예쁘다고 하니 즉석에서 주어 기뻤는데 나도 지인에게 기쁨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이 책을 읽고 하나씩 버리기 시작하면서 식료품 외에는 물건을 사지 않는다. 살아가면서 꼭 필요한 최소한의 도구만 소유하고 욕심내지 말아야겠다. 한 권의 책이 내 삶의 방향을 제시할 때가 있다. 책속에 길이 있다는 평범한 진리가 가슴에 와 닿는다.

       

 

 

 

 

 

 

 

 

 

 

 

 

독서클럽 회장님이 상담 공부하는 이야기를 하면서 추천한 책이다. 요즘 규환이와 내 관계는 좋다. 우리는 여전히 양 볼과 입술에 뽀뽀 세번을 하며, 눈이 마주치면 미소를 날린다. 내가 말을 예쁘게 하면 아이도 예쁜 말로 대답한다. 명령이 아닌 "멋진 아들, ~ 해줄래?" 하는 표현을 하면 아이는 거부감없이 들어준다. "공부해!" 하기 보다는 "규환아, 방학 숙제 해야지? 스케줄 직접 작성해 볼래?" 하니 열심히 적는다.

 

자기 진정법은 어렵지 않습니다. 하트매스 연구소 수석 연구자인 롤린 맥크레이티 박사의 연구에 의하면 천천히 고르게 호흡하고, 고마운 마음을 진정으로 느끼는 것입니다. 그렇게만 해도 약 3분 안에 스트레스가 진정되고 마음이 안정적인 상태가 됩니다.         p.150

 

 

감성코칭의 세 번째 단계는 바로 '감정을 들어주고 공감해 주는 것'입니다. 자녀와 학생들의 감정을 알아차리는 감정코칭의 1단계와 그것을 좋은 기회로 삼는 2단계는 부모나 교사의 마음속에서 이루어지는 일입니다. 이제 3단계에서 비로소 부모나 교사가 아이에게 능동적으로 개입합니다. 감정코칭의 3단계는 코칭의 기본 도구인 대화(소통)의 방법론입니다. 그 핵심은 경청과 공감입니다. 잘 들어주고, 있는 그대로 받아 들여주는 것이지요. 단, 여러 번 강조했듯이 감정을 받아들여주는 것이지 행동을 받아주는 것은 아닙니다.       p. 175

 

**

보림이가 대학 기숙사에 들어가기를 간절히 바랬지만 선정되지 않았다. 선정은 무작위 추첨이었다. 명단에 이름이 보이지 않을때의 좌절감이란.... 어제 아이와 신랑이 학교 근처의 하숙집을 구하려고 하루종일 헤맸다. 나는 규환 일로 함께 갈수 있는 상황이 안되었다. <응답하라 1994>의 로맨틱한 하숙집을 꿈꾸었지만 하숙집을 구할수 없단다. 원룸을 구할까도 생각했지만 아이 혼자 생활하기에는 나도, 아이도 불안했다. 결국 아이 사촌과 당분간 지내기로 했다. 독립할 자신감이 생길때 원룸을 구하는 것으로..... 혼자 살수 있을까? 지방에서 서울로 대학을 보내는건 참 힘든 일이다.
나도 따라가고 싶다. 이참에 서울로 내신을? 거의 불가능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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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a 2015-02-16 0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춘기 아드님과의 건강한 관계가 부러워요. 힘든 경우를 많이 봐서요. 저도 조금씩 사랑과 신뢰를 세 살 아들한테 저축해야겠어요. 보림양이 신경 쓰이시겠어요. 빨리 든든하고 안전한 거주 환경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세실 2015-02-16 11:50   좋아요 0 | URL
그 건강한 관계가 언제 무너질지 모르지만, 서로 노력하고 있으니 잘 이어지겠죠? 공부 하라는 소리만 안하면 좋은 관계 유지됩니다. 명령이 아닌 경청과 공감을 하면 충분히 가능해요. 엄마의 참을성과 관대함은 필수....사춘기는 중2가 최고조였다가 중3부터 서서히 내려오기 시작했어요^^
보림이. ㅜㅜ 고민하고 있습니다.

양철나무꾼 2015-02-16 11: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상은 그러고 보면 참 불공평한거 같아요, ㅋ~.
전 아들이 부디 지방 국립대를 가보길 원했는데, 꾸역꾸역 부모 옆에 있겠다네요~--;
네에~, 서울로 오세요.가까이 살면서 마실다니면 잼날것 같아요~^^

세실 2015-02-16 11:52   좋아요 0 | URL
전 보림이가 청주에 있는 국립대를 가길 내심 바랬지만 단호하게 싫다고 하네요.
서울이 좋은가 봅니다. 우리가 싫은건가? ㅎㅎ
아이는 서울에서 놀게 하고 싶은 마음도 있답니다.
나이가 조금만 젊었어도.....내일 모레면 50이 되는 공무원을 누가 받아줄까요? 으.....슬프다!!

마녀고양이 2015-02-16 1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림이 대학 입학 축하드려요~
전 아직도 코알라 떼놓고 사는게 그려지지 않아서 ㅠㅠ

날마다 하나씩 버리기~ 저도
냉장고가 너무 가득차 있어서 있는 식재료부터 처리하자를 당분간 목표로 삼으려구여 ^^

세실 2015-02-16 11:53   좋아요 0 | URL
고마워요~~~
난 보림이가 혼자 지내는 그림이 그려지지 않아요. ㅜㅜ
저도 혼자 생활한적이 없어서....
당분간 언니랑 지내면서 독립할 준비를 해야겠죠.

냉장고 비우기도 참 괜찮죠. 우리 새해엔 슬림하게 살아보아요.
몸도 집도~~~~

다크아이즈 2015-02-16 14: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캬오, 누가누가 준 포트메리온 꽃병도 보인다!!!
역시 그 꽃병은 세실님께 가야 어울리는 것.
아롬님 센스에 어울리는 세실님 센스 또한 찰떡 궁합입니당~

세실 2015-02-16 22:42   좋아요 0 | URL
꽃병 볼수록 예뻐요~~ 덕분에 꽃은 늘 볼 수 있게 되었어요. 시아님에 대한 예의(?)로 꽃 한송이씩 담아두려고요^^
아롬언니가 한수 위~~~~ ㅎ

라로 2015-02-16 14: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기에게도 물론 어울리기는 하지만 자기가 포트메리온 차셋트를 갖고 있기에~~~^^;; 저렇게 놓으니 세실의 센스가 돋보여~~~멋쟁이 세실^^*
나도 요즘 N군이랑 사이가 좋아졌다는~~~ 져주니까 그렇게 되네~~~^^;;;; 성경쓰기 할 건데,,꼭!!! 성경쓰기 할 노트 아직도 찾고 있어~~~ㅠㅠ 이왕이면 자기처럼 성경쓰기용 사고 싶어서~~~ㅋ
그러니 좀 천천히 쓰시길~~~^^;;;;

세실 2015-02-16 22:45   좋아요 0 | URL
포트메리온이 아직은 예뻐요~~보고있으면 기분이 산뜻해져요^^
우리 아이들 사춘기 끝난듯? 규환이 지금 열공중이예요~~
시험기간도 아닌데 밤11시까지 공부하는건 처음인듯요.
성경쓰기노트 음.. 전 카톨릭용이라 이거라도 드릴까요? 하루에 달랑 노트 반장씩 채우고 있어요~~~

라로 2015-02-18 00:54   좋아요 0 | URL
으응~~~아냐아냐!!! 어제 드디어 장만했어~~~. 밤색 커버로. 가죽이랴~~~.ㅋㅎㅎㅎㅎ 용두사미가 되지 말아야 할텐데만 바랄뿐!!!
규환이가 그렇게 될 거라고 했잖우???? 걱정하지 말라고 하신 것 기억나~~~.ㅋ
자기가 잔소리 할수록 안 된다고 했던 말도 기억나네~~~.ㅋㅋㅋ
우리 그저 아들들에게 입 꼭다물고 성경이나 열심히 쓰자규~~~~.ㅋㅎㅎㅎㅎㅎㅎ

세실 2015-02-19 22:26   좋아요 0 | URL
오홋 럭셔리한 가죽으로.......전 레자~~~ ㅎㅎ
요즘 규환이가 하루 공부할 양은 책임지려고 하는 노력이 가상합니다.
벌써 성경쓰기의 힘?은 아니겠죠?
좀전에 둘이 맞고 쳐서 6천원 떼이더니 삐져서는 방에 들어가 잔다고 합니다.
세뱃돈으로 수십만원 받았서도 단 돈 6천원에 목숨거는......소심쟁이^^
전 알라딘 글 수정하고 이제 성경 쓰려고요^^
생각보다 진도는 안나가용.

yamoo 2015-02-16 16: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상이 멋집니다!

대학에 합격했나 보군요! 축하드립니다~~~ 청주국립대보다야 서울이 좋지요~~~예비대학생들은 모두 그렇게 생각할 걸요~ㅎ

세실 2015-02-16 22:46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고집을 피우기에 보내긴 하는데 맘이 놓이지 않아요^^
그저 인서울에 의미를 두는 정도랍니다~~~

cyrus 2015-02-16 17: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딸의 대학합격 축하드립니다. ^^

세실 2015-02-16 22:47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요즘 이런저런 걱정이 생깁니다. 좀더 대범해야겠죠.

페크pek0501 2015-02-16 22: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날마다 하나씩 버리기, 는 아니지만 쓸데없는 걸 쌓아 놓고 살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편이에요.
그래서 입지 않는 옷은 재활용 쓰레기통에 기꺼이 버린답니다.
책도 다시 읽지 않을 것 같은 책은 버렸어요.
물건을 사는 것도 신중을 기합니다.

딸의 대학 합격을 축하드립니다. 방 문제는 행복한 고민이에요. ^^

세실 2015-02-16 22:50   좋아요 0 | URL
오늘은 주방 서랍장 정리했는데 버릴게 많았어요. 행주, 수세미, 일회용 젓가락 등등
최소한만 두고 다 버렸답니다. 사은품은 절대 사절해야겠어요.
옷도 버려야겠네요. 욕심에 두었는데 입지를 않으니...
버릴수록 마음이 가벼워 집니다.

행복한 고민이라고 하기에는 스트레스가 커요. 몇개월 지나면 원룸에서 생활할 수 있기를 바랄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