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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세시, 바람이 부나요?
다니엘 글라타우어 지음, 김라합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4월
평점 :
하루종일 매서운 바람이 세차게 불어 심난했던 오늘, 햇살 가득한 봄날이 그립다. 매년 가을을 앓았는데 요즘 매사 심드렁하고 의욕 상실한 듯한 일상이 봄앓이를 할듯 하다. 무언가 삶의 활력소, 설레임의 대상이 필요하다. 다락방님의 공개구혼이 아니었다면 그냥 지나칠뻔한 레오와 에미의 사랑이 그래서 더 애틋하게 다가왔나 보다.
출장길 기차안에서 순식간에 읽어버린 후 소리내어 울지는 못하고 흐느끼면서 내다본 창밖 풍경은 봄이기 보다는 추운 겨울같은 황량한 느낌이었다. 언뜻 지나친 책에는 그들의 뒷 이야기가 펼쳐진다고 하지만 왠지 이쯤에서 멈춰야 할 듯 하다.
만약 미래에 사랑의 감정을 느끼는 상대가 나타난다면 레오와 에미처럼 메일로만 주고 받다가, 가슴이 터질듯한 그리움이 일면 사람이 많이 지나다니는 후버 카페 같은 곳에서 찾으려 애쓰지 말고 '이 사람일것이다' 하는 서로의 느낌만 간직한채 만남을 대신하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과연 가능하긴 할까?
에미의 두번째 사랑이라는 것만 빼면 잘 어울리는 두 사람이다. 언어 심리학 조교수인 레오와 웹 디자이너인 에미의 정기구독을 취소하는 메일의 착오로 시작된 만남. 문자나 전화통화보다는 훨씬 정제되는 글을 통해서 상대방에 대해 알아가며 서서히 호감을 갖게되고, 2분뒤, 1분뒤, 50초뒤로 이어지는 메일의 대화글이 보여주듯 많은 부분을 할애하며 서로를 갈망하게 된다.
레오가 애인이었던 마들레네에게 했던 말은 에미에 대한 사랑이 얼마나 깊은지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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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여자는 나를 휘저어놓고, 들뜨게 한다. 종종 그 여자를 달로 보내버리고 싶은 마음이 들지만, 꼭 그 마음 만큼 그 여자를 달에서 도로 데려오고 싶어진다. 나한테는 이 지상에서 그 여자가 필요하다. 그 여자는 들을 줄 아는 귀를 가졌고 영리하며 재치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여자는 온라인에서지만 내 곁에 있다는 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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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들기 전 메일에 쓴 레오의 인사가 참 따듯하다. 아 멋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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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세시예요, 북풍이 부나요? 굿나잇.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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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아무일 없이 평생을 함께 할 줄 알았던 그들의 사랑은 에미의 남편이 알게되면서 혼란속으로 빠지게 된다. 결국 한번의 만남도 갖지 못한채 레오의 떠남으로 그들의 사랑은 끝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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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 무슨 일인가가 일어났어요. 제 감정이 모니터를 벗어난 거예요. 전 당신을 사랑해요. 그리고 베른하르트는 그걸 알아차렸어요. 추워요. 북풍이 불어오고 있어요. 이제 우리 어떡하죠?
10초 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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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니 봄앓이를 할 수 밖에....
쉽게 타오르고, 쉽게 식어버리는 인스턴트식 사랑이 아닌 글을 통해서 서서히 서로에 대해 알아가는 느린 사랑은 어떨까? 우표를 붙여야 하고, 직접 우체국까지 가야하는 수고로움 없이 컴퓨터 자판을 통해서 쓰고 지우기를 반복하며 때로는 나의 생활에 대해. 때로는 내가 추구하는 것들에 대해 함께 공유하는 것은 어떨까?
마음을 애써 감추며 조심스럽게 다가가는 그들의 사랑이 읽는내내 안타까웠다.
레오......에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