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 마플이 울던 새벽
김살로메 지음 / 도서출판 아시아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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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만으로 미소 지어지는 사람이 있다. 유난히 까만 눈동자, 수줍게 웃는 모습이 예쁜, 조분 조분 다정한 목소리는 마냥 기대고 싶어진다. 지금 만나는 사람에게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아름다운 그녀는 김살로메 작가다. 만날때면 늘 과분한 사랑으로 잠시 주춤했던 내 이기심이 부끄러워진다. 

 

내게 친언니 같은 따뜻한 사람이기에, 첫 작품 '라요하네의 우산'을 읽고 한동안 먹먹했다. 나와는 동 떨어진 평범하지 않은, 낯선 사람들의 이야기는 충격이었다. 겉모습에서 느껴지는 온실 속 화초가 아닌, 어릴 적 힘들었던 기억이 내공으로 승화한 깊이가 묻어났다. "안동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유년을 보냈다. 수몰민으로 대도시에 버려진 채 십대와 청춘을 버겁게 앓았다. 그 시절의 트라우마가 글쓰기의 자양분이 되었다. 아픈 어제가 모여 꽃핀 오늘로 거듭나는, 치유로서의 글쓰기에 매혹을 느꼈다."

 

두번째 책, '미스 마플이 울던 새벽'은 일천 글자 미니 에세이라는 부제가 달려 있는 따뜻한 책이다. 물론 말랑말랑한 신변잡기를 생각하면 오산이다. 그녀의 일상을 엿보는 즐거움도 있지만 몽테뉴, 프로이트, 마키아벨리, 장자, 롤랑 바르트 등 묵직한 철학자의 이야기를 다룬다. 호밀밭의 파수꾼, 데미안, 롤리타, 숨그네등 그녀가 애정하는 책에 대해서도 말한다. 그녀의 책 읽는 취향, 책과 삶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진 이야기도 참 좋다.

 

엄마가 노심초사하는 것만큼 자식들은 다급하지 않으며, 엄마가 애면글면하는 것만큼 자식들은 힘겨워하지도 않는다. 자식은 엄마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빨리 크고 앞서 간다. 독립 못하는 것은 자식이 아니라 엄마이다. 자식은 잘 알아서 하는데 괜히 엄마는 뒷북을 친다. 자식의 홀로서기를 막는 가장 큰 적은 엄마가 아닌지, 자식에게서 한시라도 자유로울 수 없는 엄마, 그게 모성인 걸 어쩌란 말이냐."

 

아이를 키우면서 느낀 감정이 고스란히 묻어있다. 불안하고 노심초사하는, 애타는 모습이 복합된 '애면글면'이라는 표현이 와 닿는다. 자식들은 알아서 공부하고, 독립할 준비가 되어 있는데 엄마가 발목을 잡는다. 무더운 여름날, 공부하느라 애쓰는 두 아이가 안쓰럽지만 대견하게 잘 견디고 있다.   

 

"주책없이 후하게 구는 것은 사람들의 호의를 사는데는 서투른 방법이다. 그렇게 하면 호의를 얻을 자의 수보다도 더 많은 사람들의 반감을 산다." 몽테뉴의 수상록에 나오는 한 구절이다. 신선함과 혼란스러움을 동시에 맛보게 해주는 말이다. (중략)

 

"받아버린 것은 이미 계산에 들어가지 않는다. 사람은 앞으로 후대 받을 것밖에는 좋아하지 않는다. 그 때문에 왕은 남에게 후하게 주다가 줄 것이 없어질수록 그만큼 심복을 잃는다." 

받는다는 것에 고마운 맘이 이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문제는 그 유효 기간이 찰나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 지나친 베풂은 사람들로 하여금 후대를 기약하게 하고, 그럼에도 착한 사람들은 계속해서 선행을 하리라는 것. 한편으로는 호의를 기대하는 그 사람들을 잃을까봐, 주는 것조차 조절해야 하는 군주까지 있게 된다는 무섭고 서늘한 통찰. 몽테뉴의 저 한마디는 순한 사람과 탐욕스런 사람이 함께 살아가도록 운명적으로 조직화된게 인간사라는 것을 깊숙한 찌름으로 보여준다.

 

내 성격상 많이 주지도 많이 받지도 못한다. 선배에겐 밥 한끼 얻어 먹으면 커피라도 사야 하고, 후배에겐 밥을 얻어 먹으면 불편해 다음에 꼭 사야 한다. 특히 후배에게 커피 쿠폰이라도 받으면 커피 쿠폰에 얹어 케잌 쿠폰이라도 보내야 편하다. 가끔계획에 없는(?) 선물을 받으면 좌불안석이다. 언젠가 갚아야 한다는 기브 앤 테이크 심리가 작용한다. 지금도 머리속에 아직 보내지 못한 리스트가 맴돈다. 어쩌면 무심한 친구의 말처럼 안주고 안받기가 편할수도 있겠다. 하지만 내 성격은 받는 것도 좋아하고, 주는 것도 좋아는지라....지나치지 않는 절제가 필요할듯.

 

제대로 읽는다는 명분하에 내게 눈도장 찍힌 책들은 대개 지저분해져 있다. 한 문장 한 문장에 매료된 상태에서는 밑줄 긋지 않을 수 없고, 책갈피를 접는 것도 모자라 옮겨 적고 싶은 구절엔 별표들이 넘쳐난다. 책이 더러워진만큼 애정의 강도가 높아졌다고나 할까.

빨리 읽고 많이 읽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적게 읽더라도 깊게 다가와 읽는 이의 영혼을 한 방 때려줄 수 있는 서늘함, 그것이 제대로 된 읽기이다. 카프카의 '변신'에서 이런 말을 하지 않았던가. "책이란 무릇, 우리 안에 있는 꽁꽁 얼어버린 바다를 깨뜨려버리는 도끼가 아니면 안 되는 거야."

 

책을 읽을 때 밑줄 긋고, 별표들이 넘쳐나는 느낌을 안다. 책이 좋아 다른 이에게 추천하고, 독서모임에 포함하면 세 번 읽게된다. 물론 두번째 읽을때는 밑줄 그은 내용 위주로 읽는다. 책을 덮고 밑줄 그은 내용중 기억하고 싶은 구절은 노트에 옮겨 적으면 가끔 떠오른다. 다독보다 정독의 중요함을 새삼 느낀다.

 

김살로메 작가는 성실하다. 거의 매일 일천 글자 쓰기를 실천한 정성을 안다. 새벽에 깨어 고요한 시간에 글쓰기는 얼마나 힘겨운 자신과의 싸움일까. 그녀는 사람을 좋아하지만 혼자 있는 시간도 즐길줄 안다. 에세이는 일천 글자의 단아함과 절제, 적재적소에 맞는 문장, 책 이야기로 가득하다. 술술 읽히지만 긴 여운을 남긴다. 무더운 여름날, 열심히 펌프질해서 끌어 올린 물 한 사발, 몸속까지 시원해지는 청량함을 가득 담은 사이다 같은 책, 작가다.

 

다음주 목요일 포은중앙도서관에서 그녀를 위한 강연이 열린다. 하루 연가 내고 가급적 참석하려 한다. 우리가 만난지 벌써 2년 6개월이 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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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8-07-01 20: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세실님 리뷰 정말 좋아요. 담아야할 걸 다 담는 리뷰예요. 저도 읽어볼게요!

세실 2018-07-01 21:21   좋아요 0 | URL
어머 다락방님 칭찬에 춤추고
싶어요~~감사합니다^^
이 책 강추합니다!
청주엔 하루종일 많은 비가 내려요. 비 피해는 없어야 하는데 걱정입니다.

프레이야 2018-07-02 13: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청주 비피해 없기를. 목요일 봐요~

세실 2018-07-02 22:20   좋아요 0 | URL
다행히 소강상태랍니다^^
목요일 뵈요~~ 2년 반만에^^

라로 2018-07-02 13: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몽테뉴 수상록 얘기는 나도 읽으면서 뜨끔했어~~~ㅎㅎㅎㅎㅎ.
내 얘기 같아서~~~.ㅋㅋㅋ
암튼 다락방님 말처럼 자기 리뷰는 정말 좋아! 뭐 물론 내가 늘 한 말이긴 하지만~~~.ㅎㅎㅎㅎㅎㅎㅎㅎㅎ
나도 거의 다 읽어가고 있는데 막바지에 접어드니 좀 아쉽네. 좀 더 길었으면 하는,,,
암튼 목욜 모임 즐거운 시간 되길!!! 내가 있으면 더 좋겠지만~~~ㅋ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세실 2018-07-02 22:26   좋아요 1 | URL
몽테뉴 수상록...
정 많으신 언니ㅎㅎ
과하지 않은 베품 좋아요^^
책과 삶의 자연스러운 연결고리가 특히 좋은 책.
칭찬은 저를 춤 추게 해요. 늘 감사드려요~~
여운이 길게 남는 책!
이 기회에 언니도 확 와요~~ 내일 출발? 에구 보고싶어라~
기회 되면 호미곶도 가면 좋겠다. 바다 본지 두 달 넘었어용^^

다크아이즈 2018-07-02 14: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보다 리뷰인 글이네요 애정 넘치고 꼼꼼한 리뷰 고맙습니다~~

세실 2018-07-02 22:27   좋아요 0 | URL
다크님 무슨 그런 겸손하신 말씀을~~
책 참 좋아요.
정갈하고 간결하면서 깊이 있어요~
목욜 뵈요^^
끝나고 호미곶 가요.

다크아이즈 2018-07-02 23: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네 호미곶 좋아요, 갑시다 ㅋ

세실 2018-07-03 23:56   좋아요 0 | URL
콜!
팜언니 사랑해요~~
술 마셔서 그러는거 아님. 진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