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 고흐, 영혼의 편지 (스페셜 에디션, 양장) 반 고흐, 영혼의 편지 1
빈센트 반 고흐 지음, 신성림 옮김 / 예담 / 2017년 5월
평점 :
품절


 

오래전 암스테르담에 있는 반고흐 미술관에 다녀왔다. 넓은 담광장을 지나면 보이는 아담한 미술관에 들어서며 감동했던 기억이 있다. 인상적인 그림은 해바라기, 꽃 피는 아몬드나무, 고흐의 방이었다. 그리고 마음에서 잊혀졌다.

 

도서관 인문도서 코너에서 반고흐, 영혼의 편지(빈센트 반 고흐 저.예담)’가 눈에 들어왔다. 이 책은 고흐의 후원자이며 동반자였던 네 살 어린 동생 테오와 주고 받았던 편지를 모아 엮었다. 내가 기억하는 고흐는 40년이 채 되지 않는 짧은 생애를 살면서 지독한 가난과 고독, 병마에 시달렸던 불운의 화가였다. 형을 평생 보살펴야했던 동생 테오에 대한 연민도 있었다. 정작 고흐의 마음은 들여다보지 못했다. 책을 읽고 나니 그의 그림에 대한 열정에 감탄하며 연민이 밀려왔다. 고흐 미술관에 다시 가보고 싶어졌다. 미술관에 하루 종일 머물며 그림을 찬찬히 보고 싶다. 미술관 가기 전 이 책을 읽고 갔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림을 그리는 동안 내 안에서 전에는 찾지 못했던 색채의 힘이 꿈틀대는 것을 느꼈다. 그건 아주 거대하고 강력한 어떤 것이었다.”

10년 동안 900여점의 작품을 남기며 죽기 전까지 그림을 그렸지만 생전에 팔린 유화 작품은 단 한 점이었다. 고흐는 밥 먹는 시간과 잠자는 시간이 아깝다고 할 만큼 그림에 빠져 살았다. 유화 물감 살 돈이 없어 데생을 그렸는데 살아있는 동안 그림이 팔렸더라면 하는 안타까움이 든다. 

 

우리가 살아가야 할 이유를 알게 되고, 자신이 무의미하고 소모적인 존재가 아니라 무언가 도움이 될 수도 있는 존재임을 깨닫게 되는 것은,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면서 사랑을 느낄 때인 것 같다. p.14

 

무언가 몰두하고 있는 사람은 부주의해지기 쉬워서 이따금 엉뚱하거나 충격적이고, 관습과 예절에 어긋난 행동을 하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다. 사람들이 그것을 나쁘게 받아들이는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다."  p.19

 

사람이 왜 평범하게 된다고 생각하니? 그건 세상이 명령하는 대로 오늘은 이것에 따르고 내일은 다른 것에 맞추면서, 세상에 결코 반대하지 않고 다수의 의견에 따르기 때문이다.   p.107

 

2년 전 형이 여기로 왔을 때만 해도 난 우리가 이토록 서로 의지하게 될지 몰랐단다. 하지만 이제 아파트에 나 혼자 남고보니 텅 빈 느낌이구나. 적당한 사람을 구해 함께 지낼 생각이지만, 형을 대신할 만한 사람은 찾을 수 없을 것 같다. 형이 지식과 세상에 대한 명석한 시각은 정말 믿기 어려울 정도란다. 그러니 형이 더 나이 들기 전에 유명해질 거라고 확신한다. 형 덕분에 난 많은 화가들을 알게 되었지. 그들 역시 형에 대해 아주 좋게 생각한다. 형은 새로운 생각의 챔피언이거든. 물론 하늘 아래 새로운 건 아무것도 없다는 말을 생각한다면, 더 정확히 말해 낡은 생각들을 뒤집는 일의 챔피언이라 해야겠지. 평범함 때문에 퇴보했거나 그 가치를 잃어버린 생각들에 대해 말이다. 게다가 형은 항상 남들을 위해 해줄 수 있는 무언가를 찾는 따뜻한 마음의 소유자란다.         p.161 

 

 

이번에 그린 작품은 나의 방이다. 여기서만은 색채가 모든 것을 지배한다. 그것을 단순화하면서 방에 더 많은 스타일을 주었고, 전체적으로 휴식이나 수면의 인상을 주고 싶었다. 사실 이 그림을 어떻게 보는가는 마음 상태와 상상력에 달려 있다.

벽은 창백한 보라색이고, 바닥에는 붉은 타일이 깔려 있다. 침대의 나무 부분과 의자는 신선한 버터 같은 노란색이고, 시트와 베개는 라임의 밝은 녹색, 담요는 진홍색이다. 창문은 녹색, 세면대는 오렌지색, 세숫대야는 파란색이다. 그리고 문은 라일락색. 

그게 전부다. 문이 닫힌 이 방에서는 다른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가구를 그리는 선이 완강한 것은 침해받지 않는 휴식을 표현하기 위해서이다. 벽에는 초상화와 거울, 수건, 약간의 옷이 걸려 있다. 그림 안에 흰색을 쓰지 않았기 때문에 테두리는 흰색이 좋겠지.

이 그림은 내가 강제로 휴식을 취할 수밖에 없었던데 대한 일종의 복수로 그렸다.          p.214 

 

자신을 새장에 갇힌 새로 표현한 고흐는 물질적, 정신적으로 테오에게 의지했고, 끊임없이 사랑을 갈구했다. 고갱과의 관계에서 우발적으로 귀를 자른 것도 외로움의 극단적인 선택이었다.  

 

조카의 탄생을 축하하며 선물한 그림꽃이 활짝 핀 아몬드 나무’, 푸른색과 노란색의 조합이 부드럽고 매혹적이라고 표현한 아를의 포럼 광장에 있는 밤의 카페 테라스’. 그림을 가만히 들여다보는데 참 따뜻했다. 불꽃같은 그림에 대한 열정과 부단한 노력에 경의를 표한다. 고흐가 사랑한 마을 남프랑스 아를에 가고 싶다. 그가 서성대던 해질녘 카페거리, 론 강변, 고즈넉한 아를 골목을 거닐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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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8-05-10 21: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테오와의 편지가 포함되어 있는 책을 읽었습니다. 출판사는 다른 책에서.
고흐가 예술가라서 그런지 글을 잘 쓰는구나, 생각하며 책을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오직 예술에만 몰두하며 사는 삶은 어떤 것인지 헤아려 보게 되네요. 재능을 타고 난 사람은 저절로 노력을 하게 되는 것일까요? 재능과 노력의 함수 관계가 궁금해지네요...

세실 2018-05-11 20:15   좋아요 0 | URL
저도 고흐가 글을 이리도 잘 쓰는지 이책 통해서 알았습니다.
천재지요...
단순하게,
세상과 무심하게 살아야 할듯 합니다.
최저 생계비로...
밥 먹는 시간과 잠 사는 시간도 아까웠다니..감이 오지 않아요.
재능과 노력이 교집합일때 빛을 바라겠지요?
평범한 사람은 중간. 저처럼요.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