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사내전 - 생활형 검사의 사람 공부, 세상 공부
김웅 지음 / 부키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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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우리도서관이 지원하는 독서프로그램 참관으로 교도소에 다녀왔다. 몇 년 전 교도소와 MOU 체결이후 두 번째 방문이지만 여전히 긴장된다. 다행히 수업에 참여한 재소자들의 표정이 밟다. 돌아 나오는 길. 우수 재소자 가족 초청 행사가 진행 중이다. 애써 외면하려는데 오십대 후반의 어른과 장애 아이가 눈에 들어온다. 부인을 위해 준비했을 검정 봉지들의 묵직함이 안쓰럽다. 교도소 담당직원에게 기회가 된다면 재능기부하고 싶다는 말을 남겼다. 재소자의 범죄 항목에 사기죄가 가장 많다는 직원의 말이 하루 종일 맴 돌았다.

 

법학을 공부하는 딸아이가 책을 추천했다. 생활형 검사의 사람 공부, 세상 공부라는 부제의검사내전(김웅 저. 부키)’이다. 스스로자신은 조직에 맞지 않는 타입이라고 말하는 저자는 현재 인천지검 공안부장이다.

책의 내용은 검사로서 접한 다양하고 흥미로운 사건 사고를 다룬다. 특히 첫 장에서 소개한사기 공화국 풍경은 마치 TV에 나왔던 사랑과 전쟁처럼 막장 드라마가 펼쳐진다. 사기의 첫 번째 공식은 피해자의 욕심을 자극하는 것이라고 한다. 4억원으로 100억원의 건물을 매입해 주겠다는 말에 사기 당한 목사. 대학을 휴학하고 아르바이트를 하는 연예계 스타가 꿈인 수민씨는 모델 에이전시를 찾아가 대출 담보를 맡기면서 악의 구렁텅이에 빠진다. 청년의 입에서 하루하루가 지옥 같다고 말하는 건 참으로 슬프다. 노름에 빠진 엄마를 대신해 고깃집에서 아르바이트 하는 대학생 딸이 검찰 조서를 받는 엄마를 볼 때 어떤 느낌일까?

 

깜박 잠이 들었을까. 어느새 딸이 찾아왔다. 작고 통통했다. 함부로 묶은 머리에서는 맵게 탄 고기와 젖은 수세미 냄새가 비리게 풍겼다. 근처 전문대를 다니는데 밤마다 고깃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고 했다. 급히 대타를 구하기 어려워 늦게 왔다고 말하면서 인사부터 꾸벅한다. 노름에 빠진 엄마 때문에 중학교 때부터 천둥벌거숭이 신세였다는 딸은, 그래도 칠칠하게 잘 자란 것 같았다. 하지만 초저녁 구들이 따뜻해야 새벽 구들도 따뜻한 법이다. 어려서부터 가난과 고된 노동에 지쳐서인지 딸의 현재는 몹시 무거워 보였다. 무엇보다 스스로를 재촉하는 시간 속에서만 살아와서인지 그 나이 때 다른 아이들이 가질 법한 가벼운 치장의 흔적이 없어 보여 안쓰러웠다.

 

지치고 땀에 흠뻑 젖은 딸은 놀람과 걱정에 찬 눈으로 두리번 거린다. 그 모습을 보아서일까, 박여사는 왈칵 눈물을흘린다. 하긴 누구도 얼룩덜룩 가난이 묻어 있는 어린 딸의 모습을, 그것도 검찰청에서, 보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딸은 낯익은 울음소리를 듣고서야 박여사를 발견했다. 어느새 모두들 숨죽인 채 지켜보고 있었다. 딸의 모습이 너무 초라해서 마음이 아리기도 했거니와 그런 딸을  바라보는 죄 많은 어미의 심정이 느껴지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딸은 성큼성큼 다가가 앉아 울고 있는 엄마를 가만히 안아준다.

 

책을 읽다가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철 없는 엄마보다 때로는 아이가 더 어른일때가 있다. 적어도 아이에게 부모의 짐까지 드리우는 어리석은 짓은 하지 말아야지. 힘들게 공부하는 모습이 안쓰러워 경제적으로 어려워도 차마 아르바이트 하라는 소리 못하는게 부모 마음 아닐까?       

 

학교폭력의 심각성을 다루면서 청소년 폭력의 원인은 사회가 아니라 부모가 아이를 잘못 양육한 탓이라는 말에 공감한다. 범죄의 일반적 원인인자아통제 부족은 방임 및 방치 또는 과잉보호가 문제다

    

죄 지은 자들의 갱생과 재활을 위해서는 그렇게 많은 돈을 쓰면서 왜 피해를 입은 사람들에게는 제대로 지원을 하지 않는지 궁금하고 짜증났다. 그녀들은 주변의 도움이 절실했다. 무엇보다 경제적인 도움이 필요했고, 정신과 치료와 법률적 조언이 시급했으며, 따뜻한 위로가 절실했다.”

 

교도소를 나오면서 문득 의구심이 들었다.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강의실은 도서관보다 쾌적했다. 6명이 모여 앉는 원형 책상에는 조화꽃 화분과 간식거리도 놓여 있다. 인권을 외치는 재소자들로 인해 힘들다는 말도 한다. 저자는 인권의식에 대해 "자신이 아니라 타인이 소중하다는 것을 깨닫고, 주변의 모든 것에 대해 공감하는 능력을 키우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재소자들의 재범률이 44%프로라고 한다. 사기를 당한 피해자들은 어떻게 생활할까?    

 

저자는 피해자에게 따뜻한 시선을 돌린다. 우리에게 범죄 피해를 당하지 말라고 말한다. 세상에는 사기꾼도 많지만 김검사처럼 정의로운 사람도 있다. 정의로운 사회는 정의로운 개인이 많아질 때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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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8-04-09 16: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정의로운 사람도 있다는 말씀이 새삼 와닿는 세상에 살고 있는 것 같아요. 누가 피의자이고 누가 피해자인지 조차 헛갈릴 때가 있고 내가 제대로 법을, 또 정의를 알고 있는 것일까 생각들때가 있거든요.
청소년 폭력의 원인은 사회라기 보다 부모에 있다는 말에도 아프지만 공감합니다.
교도소에 가보는 경험은 참 특별할 것 같아요.

세실 2018-04-10 09:38   좋아요 0 | URL
두번째 방문이라 덜 낯설었지만 여전히 긴장되더라구요.
김웅검사 멋지네요. 개인주의 성향이지만 감성도 풍부하면서 예리하고 정의롭고....좋아요^^
청소년 폭력의 원인은 부모...그쵸? 백프로 공감합니다.
따뜻한 아이로 성장하고, 옳고 그름을 가르치는건 가정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