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 《달려라 정봉주》를 읽던 중 "히틀러의 씽크로율 100%"라는 장을 보게 되었다. 그리고 '봉도사도 역시 그렇게 생각하는 거였어~!'라는 즐거움과 함께 2009년 봄 《나치 시대의 일상사》를 읽으며 느꼈던, 나의 생각 '어쩌면 이렇게 히틀러를 닮았을까!'를 떠올렸다. 봉도사의 책을 읽다보니 자연스레 깔대기가 일상화된다. 나의 겸허와 겸손은 어디로 갔는지... ㅋㅋ

 

 

 

 

 

 

 

 

 

  바로 이 책이다. 읽는 내내 새로 얻은 장난감, 따끈따끈한 권력의 맛을 즐기시던 가카를 떠올리게 했던 책이.

 

  합법적인 정부의 비합법적인 쿠테타.

 

  합법적인 투표를 통해 권력을 얻은 (히틀러)와 (나치)는 법을 무시하고 공권력을 이용하여 자신에게 반대하는 세력부터 시작해서 차근차근 탄압한다. 그리고 그 선봉엔 언론 이용의 대가 (괴벨스)가 있었고.  (  ) 안에 들어가는 단어는 알아서들 바꿔보자. 생각하시는 그 이름, 그것이 정답이다.

 

  오히려 잠재적인 저항을 억제하고 체제의 요구에 둔감하게 만들었던 것은 바로 사적인 영역으로의 후퇴였다. 그리고 사적인 영역으로의 후퇴는 자기중심성과 자기만족, "무감각과 쾌락 추구"의 혼합으로 이어졌다. 이는 어떤 사람의 일기에 다음과 같이 표현되었다.

 

세계? 사람들은 세계로부터 눈과 귀를 닫고, 갈수록 꼬여가고 풀리지 않는 그 모든 끔찍한 일들에 대해 듣지도 보지도 않으려 한다. 그 누구도 이 모든 것이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고 있다! 사람들은 대부분 아예 묻지도 않는다. 그들은 다만 무엇을 먹을지 무엇을 사올지 고민하는 힘든 일상에 열중할 뿐이다. 그런 가운데 공허감은 점점 커지고 있다.

 

  역설적이게도 나치의 동원에 대한 사람들의 반작용이야말로 체제를 안정시켰던 것이다. ― 114쪽

 

……역시 사람들이 나치즘에 기대한 것이 무엇이었는가, 하는 것이다. 이 문제가 풀려야 나머지도 풀릴 수 있기때문이다. 포이케르트가 발견한 답번은 바로 "정상성"에 대한 작은 사람들의 희구였다.

  정상성이 무엇일까? 작은 사람들에게 정상성은 일자리와 질서였다. 나치즘은 그 정상성이 위기에 봉착했을 때 그것을 회복시켜주겠노라고 약속함으로써 집권한 운동이다

 ― 404쪽

 

  먹고 살기 힘들어서 잘 살게 해달라고 뽑아 놓은 정부가 권력을 이용해 법치를 무시하고 언론을 통제하며 정적들을 제거했다. 그리고 일상의 작은 삶에 열중할 뿐이었던 독일인들은 히틀러와 나치를 막을 수 없었다.

 

  오늘 대법원은 삼권분립이 이상적인 말에 불과하다는 것을 확인시켜주었다. 덕분에 가카는 정적의 입을 막고 오늘 밤 편안히 주무실 수 있게 되었다. 정말?

 

 "무엇을 먹을지 무엇을 사올지 고민하는 힘든 일상에 열중할뿐"이어서 히틀러를 막을 수 없었던, 그리하여 2차 세계대전의 공범이 되었던 독일의 소시민들과 달리 나에겐 일상으로 침잠하지 않게 만들어 준 "나는 꼼수다"가 있다. 감사한다. 덕분에 욕이 입에 익었어도...

 

  나도 쫄지 않을 테다. 정봉주, 당신도 쫄지마라. 씨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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