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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의 역습 - 일본의 농촌은 보물산이다
소네하라 히사시 지음, 제갈현 옮김 / 쿵푸컬렉티브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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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대학 시절 농활을 처음 가보고 나서 농촌의 현실을 알게 되었다. 그 당시는 김영삼 정권인 1997년이었다. 농부 아저씨들은 저마다 농협에 큰빚이 있었는데 대부분 경운기나 트랙터 등 농기계를 구매하기 위한 것들이었다. 어린 나이에 보기에도 농부 아저씨들의 시름은 깊어 보였고 표정에 패배감 같은 것이 서려 있었다. 아무도 관심을 주지 않고, 농사일을 하찮게 보는 주위의 시선에 대한 시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시골 출신이긴 하지만 바닷가 동네여서 농사일은 잘 모른다(그렇다고 바닷일을 잘 아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내 고향 제주도에는 농업 일을 하는 사람이 많아서 분위기를 감지할 수 있었다. 그 후로 정권교체를 통하여 진보적인 정권이 들어서기도 했지만 달라지는 것은 별로 없었다. 우르과이라운드가 FTA로 바뀐 것처럼. 


농촌에 배정된 예산이 적지는 않았지만 "죽지 않을 만큼"만 보조해준다는 느낌이었고 별로 관심을 갖는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우리나라의 식량자급률 추이는 이러한 현상을 뒷받침한다. 


2012년 12월 27일 농림수산식품부와 농협경제연구소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식량자급률은 22.6%로 해당 통계를 작성한 이후 가장 낮은 수치다. 식량자급률은 1970년대 80.5%에서 1980년대 56.0%, 1990년 43.1%, 2000년 29.7%로 계속 낮아지고 있는 추세다. 특히 쌀을 제외한 곡물의 자급률은 불과 3.4%로 CECD 34개국 가운데 28위 수준이다. 1990년대의 도시근로자 평균소득 대비 농가소득은 97.3%에서 59.1%로 급락했다. 말 그대로 '농업의 위기'다. 


한편 도시에서는 귀농·귀촌 이 유행처럼 번졌다. 통계청의 최근 발표를 보면 2011년 귀농가구는 1만75가구로 전년의 5405가구에 견줘 86.4%나 늘었다. 2012년도에는 2만가구에 육박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올해의 귀농귀촌 예산은 작년에 비해 28%나 늘었고,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 계류중인 예산만도 242억 원이나 된다. 


하지만 귀농·귀촌 열풍을 받아들일 만한 준비가 되어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미디어에서는 성공사례가 보고되지만 과장되는 경우도 많고 실질적인 현실과 괴리된 경우가 많다. 특히 실패 사례가 더욱 많다. 귀농·귀촌에 대한 마땅한 철학이나 시스템이 약하다 보니 얼마 전에는 귀농·귀촌을 미끼로 한 사기 사건이 생긴 일도 있다. 


2011년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귀농자의 평균 연령은 52.4세로 전년도에 비해 조금 젊어졌다고 하지만 아직도 '귀농'이란 말은 도시에서 현역생활을 마치고 시간적 물질적 여유가 있는 사람이 만년에 돌아가는 곳이라는 인식이 일반적이다. 최근의 귀농·귀촌 열풍에서도 농업은 '주변 산업'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농업은 주변이 아니라 중심"이라는 생각은 세계적인 추세이며, 이 흐름에 뒤처지면 식량전쟁이 본격화될 때쯤이면 국가경쟁력을 잃을 수도 있다. 최근 전세계 금융위기에서도 볼 수 있듯이 제조업 등 실물경제가 받쳐주지 못하는 금융산업이란 사상누각에 불과하다. 그리고 실물경제의 가장 기초적인 체력은 '먹거리'에서 나온다. 하지만 이것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할지 몰라서 발만 동동 구르고 있던 차에 생각지도 못한 인연이 찾아왔다. 


대구사회연구소에서 나에게 원고 하나를 보내주며 이 글의 저자 선생님과 동행해줄 수 있느냐고 요청한 것이다. 나는 원고를 밤새 읽어보며 행복감을 느꼈다. 내가 생각했던 농촌의 모습이 담겨 있었을 뿐만 아니라 무려 18년 전부터 그 그림을 그려오던 사람이 실제로 있었다는 사실에 놀랐다. 그 주인공은 일본 6차 산업의 전설 소네하라 히사시 대표(비영리법인(NPO) 에가오츠나게테)다. 




<농촌의 역습>은 어떤 책?


처음 <농촌의 역습>을 펼쳤을 때 10조엔 플랜(원화 117조원)에 깜짝 놀랐다. 하지만 더욱 놀라운 것은 10조엔을 채우는 그 내용이다. 농업의 6차 산업이라는 개념은 한국에서도 큰 관심을 받고 있다. 농업의 6차 산업화란 농업자나 농업생산법인 등의 다양한 경영체가 농업생산(1차)에 머무르지 않고 가공(2차), 판매 및 서비스(3차)까지 (1X2X3=6)를 표현한 총합적인 사업 전개를 행하는 것을 말한다. 



▲  1960년부터 54년의 긴 세월을 풀무학교와 함께 한 충남의 큰어른 홍순명 선생과 오찬을 나누며 인사를 하고 있는 소네하라 대표


소네하라 대표는 이 일을 18년째 해오고 있다. 시골 출신이 가지고 있는 건강한 상상력과 자연에 대한 겸허함이 몸에 배고, 대학 시절 음악세계에 심취해 하모니를 이해하고, 15년간 은행의 경영 컨설턴트를 하면서 돈의 흐름에 대해서 깊이 체험한 바탕이 마치 예술처럼 펼쳐진다. 예컨대 1.5톤의 쌀을 그대로 팔면 30만엔에서 40만엔의 수입이 되지만, 모내기 체험 등과 함께 상품화하게 되면 수입이 500만엔으로 10배가 넘는 수익을 얻을 수 있다. 


이것은 하나의 아이디어가 아니라 오랜 고민과 행동을 통해서  얻어낸 결과이기 때문에 희망제작소 시절의 박원순 시장이 몇 번 방문해서 배우기도 했고, 최근에는 안희정 충남도지사가 방문해 배워가기도 했다. 세계적인 언론사인 BBC, CNN 등이 방문해 취재를 해가기도 하고 아예 미국 일간지에 관련 기사가 소개되기도 했다. 


기업 또한 사회적 책임을 실천할 수 있고 이를 통해 기업 이미지를 높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황폐화된 농촌을 생명의 땅으로 개간하는 과정에서 팀워크와 뇌 자극이 일어나 업무의 효율성을 높인다는 관찰 결과들이 일본에서 보고되고 있다. 이것은 농촌을 바라보는 전혀 새로운 시각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 분야는 현대 자본주의를 관통하는 산업이 될 여지가 충분하다. 


<농촌의 역습>이 산업의 혁신에 머물렀다면 부러운 이웃나라의 사례 정도로 다가왔을 것이다. 6차 산업화가 진행된다는 것은 개인의 라이프스타일과 워크스타일 자체가 변화하는 것을 의미한다. 땅을 일구고 농산물을 키우는 것 자체가 다른 의미를 얻고, 농산물을 소비하는 것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농사를 짓는 일은 생명을 일으키는 일이기도 하고, 자기계발을 하는 일이기도 하고, 대체에너지 자원을 만드는 일이기도 하고, 자급하는 일이기도 하다. 


나는 소네하라 대표의 두 가지 통찰에 특히 놀랐는데, 첫 번째로 놀란 것은 일본의 버블 붕괴와 식량자급률과 에너지자급률 하락, 실업률 상승, 고령화, 경작 포기지 확산 등 총체적인 문제가 "농촌을 지지할 것"이라는 사실을 꿰뚫어본 부분이다. 여기서 제대로 한 수 배웠다. 두 번째로 놀란 것은 각 사회의 주체들이 가지고 있는 연결고리를 잘 잡아낸 것이다. 


행정에는 권위주의가 있고 대학의 권위에 약한 경향이 있습니다. 따라서 행정과 연대 체제를 만들고 싶다면 우선 대학에 접촉하는 것이 효과적입니다. 대학은 섹셔널리즘에 빠져 있어서 학제적 활동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NPO와 연대하기를 바라는 연구자가 많이 있습니다. 또한 NPO는 자금 부족에 고민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금이 있는 기업과의 매칭 기회를 가지기를 바랍니다. 기업은 감독관청, 행정에 약한 특징이 있습니다. 따라서 기업과 연대하려면 우선 행정과의 연결고리를 만들어 가면 원만하게 진행되어 가는 경향이 있습니다. 기업은 행정과 연대한 NPO활동의 장이 되면 참여하기가 쉬워집니다. (258쪽)


마치 '가위 바위 보'처럼 각 연결고리를 정확하게 짚을 수 있는 것은 각 단위들과 함께 오랫동안 일을 해왔기 때문이다. <농촌의 역습>을 읽다 보면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놓치기 쉬운 것들이 멋진 산업의 자원이 되고 있는 모습에 놀라게 될 것이다. 우리나라 농업의 미래에 관심이 있는 사람에게는 신선한 충격을 선사한다. 


3박4일의 대장정



▲  길을 새롭게 발견한 제주올레 서명숙 이사장과 농촌을 새롭게 발견한 소네하라 대표의 만남은 그 자체가 의미 있는 일이었다. 제주시 마을을 관통하는 18코스를 직접 안내하는 서명숙 이사장과 소네하라 대표가 쉬면서 한담을 나누고 있다



소네하라 대표는 2월 26일 서울에 왔다가 3월 1일 귀국했다. 작달막한 키에 멋들어지게 콧수염을 길렀고 피부는 까무잡잡한 게 전형적인 시골 아저씨 풍이었다. 얼굴은 항상 웃고 있는 모습이어서 미소를 따라 주름이 졌지만  아이 같이 해맑아 보였다. 사소한 것에 대해서도 의문을 품고 영어와 일본어, 바디랭귀지를 써가며 질문하였고 신기해 했다. 비언어 소통의 달인처럼 말이 통하지 않아도 몸짓과 영어, 일어 등을 섞어서 웬만한 의사소통이 되었다. 


소네하라 대표를 처음 보는 순간 그가 어떻게 10조엔 플랜이라는 원대한 구상을 하게 되었는지 알 수 있었다. 서울의 한 게스트하우스에서 여독을 푼 후 다음날 아침부터 강행군이었다. 박원순 시장이 희망제작소장으로 있을 때부터 오랜 인연을 맺고 강연도 다녀갔던 희망제작소 강연을 오전에 끝내고 오후에는 제주 올레길을 걷고 제주 젊은이들, 농업인들과 만났다. 


<농촌의 역습> 원고를 읽고 나자마자 떠오른 사람은 바로 제주올레 서명숙 이사장이었다. 농촌 출신 소네하라 대표가 17년 동안 은행의 경영 컨설턴트를 하다가 농촌으로 돌아갔다면, 서명숙 이사장 역시 무려 24년 동안 현역 저널리스트로 일하다가 고향 제주도로 내려와 제주올레 길을 냈다. 소네하라 대표는 농촌을 전혀 새로운 시각으로 보았고, 서명숙 이사장은 감춰졌던 길을 걷어내며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었다. 두 분이 남매처럼 어깨동무하고 포옹도 하며 찍은 사진은 지금 생각해도 감회가 새롭다. 제주 올레는 현재까지 20코스의 길을 내었지만 당분간은 새로운 코스를 내지 않을 계획이라고 한다. 


서명숙 이사장은 "지금까지 만들어진 코스 속에서 공동체가 어우러지는 일을 고민할 때다"라고 말했다. 제주 올레는 '올레꾼'을 제주로 불러들이는 큰 역할을 했고, 올레꾼들이 동네 상점에서 사먹는 생수와 각종 소비재, 민박과 게스트하우스 수입 등으로 제주의 지역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하지만 제주의 길에서 제주의 마을로 어떻게 끌어들이고 함께 호흡하게 할 것인가 하는 고민을 깊이 하고 있었다. 


올레길을 통해 마을 공동체의 지속적인 수입을 만들어갈 수 있는 기획도 곁들여야 하는 상황이다. 소네하라 대표는 현 상황에서 올레와 제주 지역에 신선한 자극을 던져주었다. 이러한 사정 때문인지 제주의 소리, 헤드라인 제주, 제주저널 등 많은 제주 언론이 이 강연에 주목하고 기사로 관심을 표명했다. 소네하라 대표 역시 에가오츠나게테에서 '길'에 대한 시도는 해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이 강연회를 계기로 지속적으로 관계를 맺으며 돕기로 약속하는 모습을 보면서 제주로 초대하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날에도 강행군이 이어졌다. 대구의 농업기술센터 강의에서는 200~300명이 넘는 인원이 자리를 채워 뜨거운 관심을 나타냈다. 대구 역시 경제 상황이 좋지만은 않기 때문에 활로를 모색해야 하는 시기다. 오후에는 충남발전연구소 초청으로 강연을 했다. 80명이 들어가는 강연장에 의자가 부족해 일부는 일어서서 들어야 했다. 예정된 시간보다 훨씬 늦은 시간까지 질문이 이어졌다. 강연에 참석한 사람들은 대부분 책을 구매하여 현장에서만 70권 넘게 팔려나갔다. 충남은 6차산업센터가 처음으로 생긴 곳이며 유명한 풀무학교가 있다. 


28일 밤에 충남 홍성의 홍동마을로 이동해 풀무학교의 게스트하우스에서 짐을 푼 후 홍동마을의 '뜰'이라는 주점에서 주민, 활동가들과 함께 밤늦도록 이야기를 나눴다. 동네에 호프집이 없어지자 마을 자체적으로 호프집을 만들었는데 '뜰'이라는 공동체 화폐로 구매가 이루어지는 독특한 방식이었다. 지역화폐를 직접 보기는 처음이었다. 이튿날은 공교롭게도 3·1절이었다. 



▲  대구농업기술센터와 충남발전연구원에서 강의를 하고 충남 홍성 홍동마을의 주민 자치 호프집에서 주민, 활동가들과 깊이 있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대구는 뜨거웠고, 충남은 진지했다.



홍동마을은 일제 시대 의병운동이 격렬하게 일어났던 지역이어서 마음이 묘했다. 홍동마을의 전설적인 어른인 홍순명 도서관장님을 만나고 오찬을 나눴다. 풀무학교는 3·1운동 민족대표 33인 중 한 명인 남강 이승훈 선생의 오산학교에서 씨알 함석헌 선생과 동급생으로 활약한 이찬갑 선생이 충남 홍성에 내려와 1958년 설립했다. 홍순명 선생은 2년이 지난 1960년부터 풀무학교에 참여한 이래로 지금까지 풀무학교와 홍동 마을을 지키고 있는 큰어른이다. 홍순명 선생은 일본어를 유창하게 하시며 소네하라 대표와 한담을 나눴다. 


홍동 마을의 풀무학교는 자연적인 방문객만 한 해에 14만명이 되는 세계적인 명소다. 홍순명 선생과 소네하라 대표는 농업이 모든 산업의 기초가 되고, 미래 산업의 열쇠가 되어야 한다는 데 생각을 같이 했다. 두 분의 만남을 곁에서 지켜보면서 '농업'에 대한 나의 편견이 눈 녹듯 씻어나갔다. 농업이 괜히 '천하지대본'이라는 말이 아니며, 이 말은 미래에도 그대로 적용된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홍순명 선생은 콘텐츠를 하나 하나 가꿔왔다면 서명숙 이사장은 길이라는 플랫폼을 만들었다. 소네하라 대표는 네트워크를 만들어 이를 코디네이터하는 일을 해왔다. 이 대가들의 근거지가 농촌이라는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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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다른 대한민국에서 살고 싶다
박에스더 지음 / 쌤앤파커스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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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익을 따라서 행동하면 원망이 많아진다
- 논어 4-10

박에스더는 내가 인상 깊게 본 세 번째 여성 저널리스트이다. 비록 만나본 적은 없지만 <나는 다른 대한민국에 살고 싶다>를 통해서 보여준 한국 사회에 대한 문제의식과 타자에 대한 감수성이 글을 읽는 데 설득력을 주고 있다. 첫 번째 저널리스트는 서명숙 제주올레 이사장으로 시사저널 편집국장을 오래 하다가 시사저널 사태 때 기자들을 거들었다가 고소고발 당하고 홀연히 스페인의 산티아고로 걷기 여행을 떠나더니 돌아와서는 제주 올레길을 만들었다. 지역경제는 물론 웰빙과 비즈니스 등 사회경제적 부분에 대해서 폭넓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두 번째 저널리스트는 시사인 편집장을 맡고 있는 김은남 기자다. 김훈 작가가 시사저널 편집국장 시절 인정을 받을 정도로 뛰어난 기자이지만 시사저널 사태를 당하면서 모진 풍파를 다 당했다. 김 편집장은 시사저널 노조 지회의 지도부에 있었고, 나는 서포터즈로 활동하며 인연이 이어졌다.


박에스더 기자는 1997년부터 기자 생활을 해서 경찰, 법조, 국회, 아프가니스탄 전쟁 현장까지 국내외 곳곳을 누비고 정치인, 관료, 기업인 등 굵직한 인물들을 만났다. 이 경험과 특유의 감수성으로 지금 우리들의 대한민국과 다른 대한민국을 생각하고 있다니 궁금해졌다.

특히 수십 년 동안 한국의 남편에게 매 맞고 캐나다 남편에게 인간 이하의 대우를 받으며 고생하다가 끝내 암 선고를 받은 아는 언니의 이야기, 이혼남과의 관계에서 아이를 갖게 된 친구가 남자친구의 반대를 무릅쓰고 미혼모로 살아간 이야기는 경험에서 우러난 맛을 더했다. 박에스더 기자의 이야기를 하는데, 내가 아는 두 기자를 데려온 것은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다.

왠지 모를 사무적인 느낌과 선뜻 동의되지 않는 생각들이 행간에 보여서 읽는 데 불편했다. 그게 무슨 느낌일지 곰곰이 생각해 보았는데, 저자인 박에스더가 만난 인사들은 우리 사회를 대표하는 유명인이거나 힘이 센 사람들이 아닌가. 그리고 박에스더 기자 또한 힘센 사람들 축에 들어간다. 앞의 두 기자는 직장에서 잘려 1년 넘게 길거리 밥을 먹어보기도 하고, 자신이 오랜 세월 몸담던 매체를 장례지내기까지 했다. 이 밑바닥 경험은 문장에 깊이 배어 있다. 박에스더 기자의 책에는 이런 시련의 감성이잘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한 사건에 대해서 언론이 아무리 상세하게 보도한다고 하더라도 실체적 진실과 행간에 담겨 있는 정서와 의미를 찾기는 어려운 것처럼 박에스더 기자의 글에서도 언론 기사가 보일 수밖에 없는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나는 다른 대한민국에서 살고 싶다>라는 책에서는 청소부, 외판원, 방문교사, 알바생 같은 바닥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좀처럼 등장하지 않는다. 하지만 꼭 밑바닥 경험을 해보아야 좋은 기자가 될 수 있을까? 이 주장에 동의하기에 박에스더가 밑바닥을 향해 건넨 손이 예쁘게 보인다. 자기성찰과 의지에 한표를 주고 싶다. 박에스더 기자의 손은 낮은 곳에 있지 않지만, 낮은 곳으로 건네고 싶다는 마음만은 충분히 볼 수 있었다. 이것이 내가 <나는 다른 대한민국에서 살고 싶다>에 대한 느낌이다. 판단은 독자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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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아는, 우리만 모르는 - 위키리크스가 발가벗긴 대한민국의 알몸
김용진 지음 / 개마고원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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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키리크스가 공개한 미국 외교전문 총 25만1287건 중에서 주한 미 대사관이 작성해서 본국으로 보낸 전문은 모두 1980건입니다. 2006년~2010년 말까지의 내용이 집중돼 있습니다. 이 안에는 우리가 믿던 대한민국 정부가 전혀 다른 모습으로 그려져 있습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전에 나는 사람을 대함에 있어 그의 말을 듣고는 그의 행실을 믿었다. 이제 나는 사람을 대함에 있어 그의 말을 듣고 그의 행실을 살피게 되었다. 재여로 인하여 이렇게 바뀌었다."

논어5-11


미국과 서방의 극우 정치인들의 말이지만, 줄리언 어산지를 암살하거나 사형에 처해야 한다고 말할 정도로 위키리크스가 폭로한 정보는 충격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전문을 작성한 미국의 입장에서 보면 지극히 정상적인 정보 수집 방법입니다.

문제는 그 안에 담겨 있는 우리 정부의 모습입니다. 한미 정상회담에서 대통령이 답변할 ‘최후의 무기’를 발설해버리기도 하고, FTA의 대응 계획을 발설하는 등 ‘검은 머리 외국인’들이 많아도 너무 많다는 사실에 크나큰 배신감을 느끼게 됩니다.
비록 진보적인 입장을 가진 저자에 의해 재구성되긴 했지만 미 대사관의 전문은 그 자체로 자신의 존재 가치를 증명하고도 남습니다.

이 책은 두 가지 시사점을 주는데, 위키리크스에 비춰진 모습으로 봤을 때 한국은 사실상 무정부상태가 아닌가 하는 강한 의구심이 듭니다. 우리가 언론에서 듣고 정부에게 들은 말과 위키리크스의 말이 달라도 너무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를 보도하는 언론의 자세입니다. 수많은 특종거리들이 담겨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권과의 불편한 관계를 싫어하는 노예근성 때문에 보도를 거의 하지 않습니다. 이런 현상을 노엄 촘스키 교수는 '선전모델(propaganda model)'이라고 명명했습니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우리는 하나의 시험에 들었습니다. 바로 ‘진실’이 내는 시험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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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치고 정치 - 김어준의 명랑시민정치교본
김어준 지음, 지승호 엮음 / 푸른숲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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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멋대로 나꼼수 분석 3부

잡스, 주커버그, 김어준은 미디어 신봉자





스티브 잡스는 쿨미디어의 신봉자로 알려져 있다. '쿨미디어' '핫미디어'의 개념은 미디어 이론가 마셜 맥루언이 창안했는데, 그는 자신의 대작 <미디어의 이해>에서 이렇게 정리하고 있다.

뜨 거운 미디어란 단일한 감각을 "고밀도"로 확장시키는 미디어다. 여기서 고밀도란 데이터로 가득 찬 상태를 말한다. 사진은 시각적인 면에서 고밀도다. 반면 만화는 제공되는 시각적 정보가 극히 적다는 점에서 저밀도다. 전화는 차가운 미디어, 혹은 저밀도의 미디어다. 왜냐하면 뒤에 주어지는 정보량이 빈약하기 때문이다.. 반면에 뜨거운 미디어는 이용자가 채워 넣거나 완성해야 할 게 별로 없다.
- <미디어의 이해>(커뮤니케이션출판사), 60쪽

아 이폰이 출시되고 나서 잡스가 혼신을 기울인 작업은 소비자들이 아이폰을 어떻게 활용하고 있는지다. 소비자행태를 분석하고 반영했다. 그 결과 갓난아기도 쓸 수 있는 직관적인 UI가 탄생했다. 아이폰은 '쿨미디어'의 상징으로 자리잡았다.
페이스북은 사용자의 참여로 완성되는 쿨미디어 그 자체다. 페이스북은 서드파티 업체가 놀 수 있는 앱 플랫폼을 제공해주고, 이용자들이 놀 수 있도록 친숙한 기능들과 UI를 제공한다.
특히 페이스북과 마크 주커버그의 성장과정을 온전히 담아낸 포춘 지 전 기자 데이비드 커크패트릭의 주저 <페이스북 이펙트>에는 이런 기록이 있다.

페이스북 사람들이 숭배하는 유명한 사회 철학자이자 미디어 이론가인 마샬 맥루한은 1964년 자신의 저서 <미디어의 이해>에서 '지구촌(global village)'이라는 말을 사용하며 통일된 커뮤니케이션 플랫폼이 지구를 통일시킬 수 있다고 예견했다.
- <페이스북 이펙트>(에이콘출판사), 490쪽

' 존나 씨바', '쫄지마' 같은 '구어체 김어준'과는 달리 기사를 검색해서 마주보는 '문어체 김어준'은 상당히 다른 캐릭터를 보여준다. 김어준이 발언한 일련의 인터뷰 기사들을 보면 그가 '미디어'의 관점에서 접근하고 있다는 사실을 쉽게 눈치챌 수 있다.

"전달되지 않는 메시지는 아무리 많은 사람이 모여 크게 외쳐도 독백일 뿐이다."
"전혀 다른 메시지 유통 채널의 구축이 가능한 물적 토대의 출현―딴지일보 때는 인터넷+PC였고 나꼼수는 인터넷+스마트폰+트위터―이란 관점에서 본질적으로 같다. 나머지 디테일은 마이너하다."
- 오마이뉴스 인터뷰, 2011.11.11 "나꼼수와 'MB 멘토' 최시중의 대결... 승자는?"


김어준은 핫미디어를 쿨하게 사용하는 미디어 고수



▲ 미디어 이론의 전설이 된 마셜 맥루언은 미디어 전공자는 아니다. 동양철학을 지독히 사랑하는 영문학자였다. 미디어를 전공하는 전문가에 따르면 엄 격한 사회과학 방법론(자연과학과 같은)이 주류를 이루던 커뮤니케이션 미디어 학계에서는 마셜 맥루언을 경계하고 무시하다가 최근 그에 대한 재발견, 재해석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는 전언이다. 잡스, 주커버그, 김어준은 맥루언의 신봉자다..라고 추정된다.

김 어준을 표현하는 3대 키워드는 딴지일보(인터넷), 나는 꼼수다(팟캐스트), 닥치고 정치(책)이다. 딴지일보를 제외하고는 모두 핫미디어를 구사하고 있다. 딴지일보 역시 '김어준의 아이들'이 콘텐츠를 주로 쓴다는 점에서 제한성이 있다. 딴지일보보다는' 딴지일보 총수'가 김어준을 대변한다. '총수'란 간섭을 불허하는 절대 지위의 직함을 말한다. 삼성 이건희를 생각하면 잘 알 수 있다.

김어준의 진정한 힘은 뜨거운 미디어에 있다. 정확히 말하면 그는 뜨거운 미디어를 '차갑게' 구사한다.

라디오는 뜨거운 미디어다. 자극의 강도를 높일수록, 라디오의 효과는 점점 더 높아진다.
- 마셜 맥루언, 위 책, 524

< 나는 꼼수다>는 아이폰이 만들어낸 팟캐스트 플랫폼에서 유통되는 콘텐츠이지만 본질은 라디오다. 참여를 거의 허락하지 않는다. 여기에 청취자가 직접 만든 음원을 집어넣고, '존나 씨바', '쫄지마' 같은 말들을 '냉각제'로 활용하는 방식이다. <닥치고 정치>도 크게 다르지 않다. 책이라는 미디어는 문자를 쓰기 때문에 진정으로 뜨거운 미디어다. 이 또한 김어준 식대로 쿨하게 구사하고 있다.
<닥치고 정치>는 에세이 식이 아니라 방담 식이다. 인터뷰어 지승호와 김어준이 처음부터 끝까지 대화를 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니까 '구어체로 쓰여진 책'이다. 여기다가 김어준 트레이드마크인 걸쭉한 육두문자가 자주 등장하면서 "핫미디어를 쿨하게"라는 공식이 만들어졌다.

스티브 잡스와 마크 주커버그, 김어준을 비교한 까닭은 이들이 모두 '미디어'의 관점으로 접근해 성공을 거둔 인물이라는 사실을 환기하기 위해서다. 세상의 많은 기획자들은 아직도 표피적인 차원, 또는 본능적인 차원에서 접근하고 있다. 미디어적 접근은 이보다 두 계단 정도는 더 깊이 들어가야 한다. 미디어감수성이 반영되지 않은 기획은 이제 분명한 한계가 있다.


<지난 글>


"나는 꼼수다는 정통언론이다"
나꼼수 홈런의 비밀은 '원샷신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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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치고 정치 - 김어준의 명랑시민정치교본
김어준 지음, 지승호 엮음 / 푸른숲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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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제 : 진보논쟁, 2D에서 3D로 진화하다


진보, '말의 잔치'가 시작되다


MB정권의 실정으로 진보진영의 집권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때에 맞춰 진보진영에서 '진보' 키워드를 둘러싼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가히 "나는 진보다" 논쟁으로 불릴 만하다. 썩 반가운 현상이긴 하다. 하지만 소출되는 담론들을 보면 만족할 만한 게 없다. 치열하게 공부를 하지 않는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는다. 진보는 분열로 망하는 게 아니라, 공부를 하지 않음으로 망한다. (보수의 인식 수준은 논의할 게 못 된다)

진보가 무엇이냐에 대해서 최근 언급한 사람은 조국-오연호(책 <진보집권플랜>), 김규항, 진중권(이하, 한겨레신문 지면), 김어준(책 <닥치고 정치>)이다. 진보진영의 내로라 하는 '이빨'들이다. (상세한 소개 생략)

최근 김어준은 책 <닥치고 정치> 등을 통해 "나는 진보다" 대열에 합류했다. 김어준은 이 한마디로 이전의 진보 논쟁을 정리해버렸다.

"이건 논리적 추론이 아니라 정서적 직관의 영역이지. 내가 자꾸 '느낌'을 이야기하는 이유야. 대중정치는 사실 이 영역에서 결정되거든. 진보 진영에선 정치가 논리의 영역에서 결정될 거라고 생각하지만"
- <닥치고 정치>(푸른숲) 전자책 29쪽

이전의 진보 논쟁은 관념이거나 논리이거나, 최소한 정서적 직관을 감안하지 않은 2D의 차원에서 전개되었고, 김어준은 3D 수준으로 논의를 끌어올렸다. 2D와 3D를 구분하는 기준은 김수영 시인의 시론이 던져준다.

“시작(詩作)은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고, ‘심장’으로 하는 것도 아니고, ‘몸’으로 하는 것이다. ‘온몸’으로 밀고 나가는 것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온몸으로 동시에 밀고 나가는 것이다.”
- 김수영 산문선집 ‘시여 침을 뱉어라’, 민음사(1975)

여기서 시작(詩作)을 '진보'로 바꿔 써도 좋다. 2D까지는 밑단부터 차곡 차곡 쌓아가는 이른바 '선형적'인 방식이었다. 그러나 3D부터는 쌓는 순간 전체가 되고 영원이 되는 '비선형적 직관'의 영역이다. 이것은 내 주장이 아니다. 이미 4세기 전인 17세기 르네상스 시대부터 유럽에서 줄곧 논의되던 방식이다.

참된 원리들로부터 직접 도출되는 명제들에 대해서는 관점에 따라 때로는 직관에 의해 또 때로는 연역에 의해 인식된다고 말할 수 있지만, 그 참된 원리 자체에 대해서는 직관에 의해서만, 반면에 멀리 떨어져 있는 결론들은 연역에 의해서만 인식된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 데카르트, <정신지도를 위한 규칙들>(1628년)

스 피노자 인식의 3단계(에티카) : 첫째, 감각은 영혼의 표상을 초래한다. 이것은 원인에 관한 통찰이 아니기 때문에 전체에 대한 관계를 밝히지 못하므로 불완전한 인식이다. 둘째, 이성은 보편 개념을 가지고 표상을 가다듬는 것, 즉 표상의 원인을 발견하여 더욱 높은 단계의 인식에 도달한다. 셋째, 실체에 대한 인식은 직관적인 인식에서 도달된다. (1662~1665)


김어준의 사바나 가설에 대한 교정

김어준은 진보와 보수의 개념을 설명하기 위해서 우리를 사바나의 원시 세계로 데리고 간다. 포식자나 자연재해 등 예측할 수 없는 공포에 대해 살고자 하는 욕망의 자세에서 좌와 우가 구분된다는 논리다. 여기서 '우'는 공포에 지배당한 자들이 살려고 발버둥치는 '반응'에 불과하기 때문에 세계관이라고 하기 뭣하다는 게 김어준의 입장이다. 그래서 우를 '겁먹은 동물'에 비유한다. 다만, 보수에게 '세계관'이라고 이름을 붙여줄 수 있다면 그것은 '자존심'이다. 자존심 없는 우는 역시 동물일 뿐이다.
이에 반해 좌는 공포의 구조(시스템)를 상대하며 모든 사람이 부담할 수 있도록 논리의 칼로 잘게 잘라낸다. 그래서 반응보다는 '세계관'으로 불릴만 하다고 평가한다. 하지만 밀림 전체를 상대하면서 오만에 빠져 대중들로부터 '재수 없다'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고 경고한다. 이를 '사바나 가설'이라고 부르겠다.

김어준의 사바나 가설은 보수에 대한 노골적인 폄하와 함께 진보에 대한 과도한 상대우위이다. 솔직히 좀 유치하다고 생각한다. 김어준이 이야기하는 우와 좌의 시점은 전혀 다르다는 점에서 불공정하기까지 하다. '18세기 우'와 '21세기 좌'를 비교할 수 있을까? 좌가 공포를 구조화하는 인식에 도달했다면 우 역시 그러한 인식에 도달했다고 보아야 한다. 그래야 게임이 되지 않을까? 역사는 좌와 우의 끊임없는 경쟁이니까. 이보다 더 과학적인 설명은 다음과 같다. 인간은 어느 순간부터 직립보행을 하기 시작하면서 앞발, 즉 두 손에 여유가 생겼다. 직립보행 자체도 전체 구조의 변화다. 내게는 27개월 된 민준이와 9개월 된 민서 두 아기가 있다. 민서가 7개월 될 때만 해도 형 민준이는 '민서야, 까꿍~!' 하면서 아기 대접을 해줬다. 그런데 민서가 9개월이 되자 밥상을 짚고 일어섰다. 이때부터 민서에 대한 동생 대접이 끝났다. 민준이는 민서 위에 올라타며 친구처럼 놀았다. 이것이 세계의 일반적인 변화다.

사바나로 돌아가 보자. 인간은 남은 손으로 도구를 만들기 시작한다. 즉 소셜미디어다. 소셜미디어를 통해서 자연스럽게 협업을 하게 되었다. 여기까지는 좌와 우가 구분되지 않는다. 마치 일제에 대항하는 독립운동에 좌와 우가 구분없는 것처럼. 잉여물이 생기고 부족이 생기면서 권력이 등장한다. 지배가 시작되고 전쟁이 시작되고 제국이 생겨난다. 이 지점에서 '우'가 탄생한다. 우는 높은 권력을 지향하는 의지이며, 좌는 낮은 피해대중을 생각하며 권력에 저항하는 의지이다. 동양에서 우를 대표하는 지식인은 공자, 맹자, 한비자 등이며, 좌를 대표하는 지식인은 노자와 장자, 묵자 등이다. 좌와 우의 관심사는 '낮은 곳', 즉 대중이지만 각자 대중을 바라보는 관점이 다를 뿐이다. 한나라당이 '복지'를 '시혜'로 해석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3D 진보논쟁을 좀 더 자세히

김어준을 포함해서 지금까지의 진보 논쟁이 한계를 보일 수밖에 없었던 까닭은 '진보'와 '보수'를 구분해 버렸기 때문이다. 이것은 이제까지 보수가 만들어놓은 프레임이다. 이를 박차고 뛰쳐나와야 한다. 즉, "진보, 보수"라는 '구분'이 아니라 "진보-보수"라는 '섞임' 속에서만 진정한 진보 논쟁이 가능하다. 동양의 음양 이론의 거울로 보면 진보와 보수를 바라보는 지혜를 얻을 수 있다. 다산 정약용이 유배지에서 아들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섞임'의 진면목을 확인할 수 있다.

“아버지는 양(陽), 어머니는 음(陰)이지만, 자식의 입장에서 보면 어머니가 양 자식이 음이 된다. 그러니 내가 없을 때는 어머니를 아버지라고 생각하고 존경해야 한다”
- 다산 정약용, 유배지에서 아들들에게 보낸 편지

다산 정약용이 보여주는 음양이론의 특징은 음과 양이 서로 위치를 바꾼다는 데 있다. 이것은 주역의 일반적인 원리이기도 하다. 진보와 보수 간에도 이런 현상이 자주 일어난다.

"한마디로 총괄해서 정리하자면 이념은 서구의 것이되, 그걸 수행하고 주장하는 방식은 여전히 성리학자의 그것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는 거지."
- <닥치고 정치> 전자책 593쪽)

요컨대 진보는 보수의 안에서 파악될 수밖에 없고, 보수 역시 진보의 안에서 파악될 수밖에 없다. 한 국가를 지휘하는 장군의 전투력을 가장 잘 말해주는 것은 장군 본인도 아니고 부하들도 아니고 왕도 아니고 백성도 아니고 오직 적병과 적장이다. 적과의 교전 속에서만 장수의 능력이 표현되는 것이니까. 음양이론 중 하나인 천지인(天地人) 삼재(三才)를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하늘은 틀이 있으면 죽고, 땅은 틀이 없으면 죽는데, 사람은 하늘과 땅이 없으면 죽는다."

결국 남는 것은 진보가 아니라 진보성, 보수가 아니라 보수성, 그 비율의 차이뿐이다. 이 비율 중 진보성이 51% 이상이면 '진보'라 표현하며, 진보성이 49% 이하라면 '보수'라고 표현한다.

음양이론뿐 아니라 서양철학으로도 진보와 보수를 설명할 수 있다. 플라톤은 하늘을 향해 손가락을 가리키고, 제자인 아리스토텔레스는 땅을 향해 손가락을 가리키는 유명한 그림인 이탈리아의 화가 라파엘로(1483~1520)의 "아테네학당"(School of Athens, 1510~11)을 직관적으로 읽어낼 수 있다면.(그림 참조) 플라톤(왼쪽)이 들고 있는 책은 "티마이오스Timaeus"로 추상적, 논리적 철학으로서의 정신적 이데아를 상징한다. 아리스토텔레스(오른쪽)가 들고 있는 책은"니코마스 윤리학(Nicomachean Ethics)으로서 자연과 생물의 관찰을 중시하는 현상적, 경험적 철학을 상징한다.
이 그림의 포인트는 하늘과 땅을 가리키는 손가락이 아니다. 바로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관계 그 자체다. 즉, 플라톤은 아리스토텔레스 안에서 의미를 가지며, 아리스토텔레스 역시 플라톤 안에서 의미를 갖는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를 구분하는 순간 철학은 공허해진다.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해서 플라톤이 의미를 획득했고, 플라톤이 있었기에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신의 철학을 정립할 수 있었다. 입술이 없어지면 이가 시리다.



▲ 플라톤(왼쪽)과 아리스토텔레스(오른쪽)을 구분하고 읽어버리면 서양철학의 첫단추를 잘못 끼운 셈이 된다. 아리스토텔레스 안에서 플라톤을 읽고, 플라톤 안에서 아리스토텔레스를 읽어야 한다.


김어준을 읽을 때 주의사항

김어준은 '직관'의 언어를 사용한 근래 보기 드문 진보논객이다. 김어준의 '정서적 직관'은 충분히 대중적이며 '스타일돋는다'. 하지만 반쪽의 정서, 반쪽의 직관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진보성-보수성, 음-양처럼 모든 것은 짝을 이룰 때 의미가 분명해진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남성성-여성성이 있다. 물론 남성과 여성이라는 정체성은 있지만 모든 인간은 정자와 난자의 결합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누구나 남성성-여성성을 가지고 있다. 이 비율에 따라서 시대정신이 결정된다.

김어준은 자칭 타칭 '마초'다. 남성성 과잉이다. 김어준의 '말'을 대할 때 정서적 쾌감과 동시에 '정서적 반감'이 드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이것은 김어준의 '타고난 애티튜드'이기 때문에 바뀌지 않는다. 따라서 김어준을 읽을 때 이 부분에 주의를 해야 한다.

기질과 정신적 능력에 있어서 차이가 없다손 치더라도, 여자들 사이에서 여자에 의해 길러진 남자들은 다른 남자들과는 좀 다른 데가 있다. 유모적 보살핌과 어머니의 귀여움, 그리고 누이의, 특히 '작은' 어머니라 할 수 있는 큰누이의 사탕발림은 남성적 기질을 반죽처럼 주무르면서 바꾸어 버린다. 출생 이후 여인의 부드러운 분위기, 그녀의 손과 가슴, 무릎과 머리, 그리고 넘실거리는 그녀의 유연한 인상이 풍기는 향취에 오랫동안 젖은 남자는 예민한 신경과 돋보이는 품성을 갖게 된다. 이를테면 그는 남성과 여성을 다 지니고 있는 인간이 되는데, 이런 속성이 없으면 더없이 힘차고 엄격한 천재도 예술의 완벽성에 있어서 미진한 존재로 남을 뿐이다.
- 보들레르(프랑스 시인)

우리들의 시대정신은 '아빠 멘토'가 아니라 '엄마 멘토'다. 아빠 멘토는 김어준처럼 한수 가르치고 명령하는 방식이다. 엄마 멘토는 상처를 보듬고 이야기를 경청하고, 세심하게 설명을 해준다. 물론 김어준의 말에 상처를 위로받을 수 있지만, 김어준이 보듬어주지 못하는 상처가 분명히 존재한다.  이 부분에 유의하며 '나꼼수'와 '닥치고 정치'를 권한다.

김어준은 '개념찬 꼰대'로서 '구시대와 새 시대를 연결짓는 연결고리'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구시대의 연결고리를 증명하는 간단한 방법은 나꼼수 방송을 듣고나 <닥치고 정치>를 읽은 후에 질문을 하나 던져보면 된다.
 
“그래서 어떻게?”

이것은 김어준이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이다. '새시대의 연결고리'들이 찾아야 한다. 김어준은 다만
몰상식이 진흙탕처럼 흐르는 시대를 증언하는 데 머무른다.

사람에 대한 최대의 예의는 제대로 그를 이해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글은 김어준에게 할 수 있는 최대의 예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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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아. 2011-11-08 01: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님아 근데 님 글은 재미없다. 길고. 공부하신 분 같은데 뭐해. 읽히지가 않는데.

승주나무 2011-11-08 03: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직 짧고 재밌게 못쓰겠네요. 닥치고 기다리삼.. 그런 글 읽으려면..

junmin 2011-12-17 1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진 한 방이군요...닥치고 기다리삼 !!!!..잘 읽었습니다.특히, 좌와우의 명쾌한 비유가 인상적이었습니다.

비로그인 2011-12-28 21: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승주나무님, 블로그 배경은 환삼덩굴같은데 환삼넝쿨과 승주나무와 관련성이 있나해서요.

713266153 2012-01-04 14: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어준 책을 못 읽었지만.. 승주나무님의 해석이 좋게 다가오네요.. 참, 숨은 고수들 많군요..

승주나무 2012-01-04 14: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junmin 님//제가 부족한 점도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런 댓글을 받은 것 자체가 완전무결하지 않고 말이 길다는 뜻도 되니까요.^^;
터닝포인트 님//블로그 배경은 알라딘에 있는 거 그냥 썼어요. 시시한 결론이어서 지송~~^^

승주나무 2012-01-04 14: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손님 님//칭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보다 엄청난 고수가 너무 많아서 명함 내밀기도 좀 그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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