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읽는 동양철학 27] 아빠들은 어떻게 자라왔나?

남자들의 수난시대입니다. 결혼할 상대를 제때 구하는 남자를 구경하는 게 점점 힘들어졌습니다. 외국인 아내도 참 많아졌죠. 예전에 일본에서 유행하던, 물론 지금도 유행하고 있는 황혼이혼(黃昏離婚)이 우리에게도 현실이 되었습니다. 남자가 왜 이렇게 되었는지를 육아를 하면서도 알 수 있습니다. 딸과 아들을 둔 아버지들의 경우 딸에게 하는 행동과 아들에게 하는 행동이 같은가요? 똑같지는 않겠지만, 달라도 너무 다르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어떤 엄마는 남편이 아들과 딸을 대하는 게 너무 달라서 마치 이중인격 같다고까지 말했습니다. 남자들은 강하게 키워야 한다는 관념이 오래도록 내면화되다 보니 자신의 아들에게도 그렇게 대할 때가 많습니다. 나는 어렸을 적에 큰 수술을 많이 받아서 병약했습니다. 아이들이 운동장에서 축구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도 신나게 축구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몸이 따라 주지 않아서 학교 계단에 쪼그리고 앉아서 구경을 했습니다. 가만히 앉아서 구경하다 보니 꽃도 보이고 나무도 보이고 나비도 보이고 산도 보이고 바다도 보였습니다. 유심히 꽃과 나무를 바라보다 보면 감정이 일어나서 종이에 적게 되더라고요.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문예반에 들어가서 동시를 썼습니다. 중학교 때는 문예반이 없어서 누리단 활동을 했지만 고등학교 때 다시 문예반을 했고, 대학교 때는 공과대학 다니면서 문학동아리 생활을 했습니다. 나의 중학교와 고등학교 시절이 어땠을 거라고 짐작이 되시죠. 중학교 고등학교 남자 아이들은 어른 흉내를 내는 것을 자랑으로 삼았습니다. 말을 할 때 육두문자를 섞어 쓰지 않으면 이상하게 쳐다볼 정도였죠. 게다가 공부하기를 싫어해서 상업고등학교에 갔으니 겉멋이 든 아이들이 꽤나 많은 환경에서 청소년기를 보냈습니다. 가족생활 역시 1남2녀로 자라서 두 누나와 생활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섬세한 시선으로 사물을 바라보는 데에 익숙해졌습니다. 정신적으로 힘든 청소년기를 보냈을 거라는 짐작이 들지 않나요? 정신적으로 더 힘든 시기는 역시 군대 생활이었습니다. 훈련을 받고 내무반 생활을 하는 것은 일도 아닙니다. 몇 평방미터의 청소구역 문제 때문에 직할부대가 으르렁거리며 싸우는 모습을 보면서 남자들의 세계란 게 좀 치사스러운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남자들만 가득한 세계에서 섬세한 심결을 가지고 살아간다는 게 고통스러운 일이죠.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르겠지만, 첫째 민준이는 나의 이러한 심결을 타고났습니다. 어쩌면 아빠와 비슷한 고통을 겪을지도 모르는 민준이에게 힘이 되는 말을 해주고 싶습니다. 대학 시절 우연히 발견해 지금도 힘이 되고 있는 보들레르의 글입니다. 

기질과 정신적 능력에 있어서 차이가 없다손 치더라도, 여자들 사이에서 여자에 의해 길러진 남자들은 다른 남자들과는 좀 다른 데가 있다. 유모적 보살핌과 어머니의 귀여움, 그리고 누이의, 특히 '작은' 어머니라 할 수 있는 큰누이의 사탕발림은 남성적 기질을 반죽처럼 주무르면서 바꾸어 버린다. 출생 이후 여인의 부드러운 분위기, 그녀의 손과 가슴, 무릎과 머리, 그리고 넘실거리는 그녀의 유연한 인상이 풍기는 향취에 오랫동안 젖은 남자는 예민한 신경과 돋보이는 품성을 갖게 된다. 이를테면 그는 남성과 여성을 다 지니고 있는 인간이 되는데, 이런 속성이 없으면 더없이 힘차고 엄격한 천재도 예술의 완벽성에 있어서 미진한 존재로 남을 뿐이다. 
- 보들레르, <꿈꾸는 알바트로스>

보들레르의 이 말은 어머니들과 책 놀이를 할 때 다시 떠올랐습니다. 한 어머니께서 "다른 어머니들은 경청은 잘 하는데 화제를 바로 돌려버려서 아쉬웠는데 선생님은 들은 말을 깊이 생각해서 인문학적으로 연결시켜서 들려주셔서 참 고마웠어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일반적으로 남자보다 여자가 경청하는 능력이 있지만, '남성과 여성을 다 지니고 있는 인간'의 경청 능력은 차원이 다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의 성장 이야기를 늘어놓은 까닭은 '남자다움'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입니다. 마초와 초식남 등 남자를 표현하는 말이 많이 있지만 남성성은 여성성만큼이나 왜곡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서는 남성성이란 무엇인가 하는 거대한 질문보다는 왜곡돼 있는 부분을 짚는 것으로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중국의 전국시대에 활약했던 영웅 중에서 가장 유명한 유세가인 소진과 장의가 있습니다. 소진은 진(秦)나라를 제외한 여섯 나라(연, 조, 한, 위, 제, 초)의 공동 재상으로 임명되어 최고 전성기를 보냈고, 장의는 소진의 합종전략을 깨뜨려 더욱 큰 명성을 얻었습니다. 그런데 맹자가 장의를 평가한 대목이 참으로 흥미롭습니다. 

경춘이 말했다. "공손연과 장의가 어찌 진정한 대장부가 아니겠습니까? 한번 노하여 제후가 두려워하였고, 편안히 지내니 천하는 전쟁이 종식(終熄)되습니다."
맹자가 대답했다. "이것이 어찌 대장부가 될 수 있겠습니까? 그대는 예(禮)를 배우지 아니했습니까? 사내가 관을 쓰는 것은 아버지가 이를 가르쳐 주고, 여자가 시집가는 것은 어머니가 이를 가르쳐 줍니다. 문 앞에까지 보내고는 주의하기를 '네 시집가서는 반드시 공경하고 반드시 조심하여, 남편을 거슬리지 마라'고 합니다. 순종(順從)을 정도로 삼는 것이 아낙네의 도리입니다.
- <맹자> 6-2

경춘은 장의가 이룬 업적을 대장부답다고 했지만, 맹자는 장의가 업적을 이룬 내용을 분석해서 사내답지 못한 부분을 가려냅니다. 맹자는 동양철학자 중에서도 남성성이 유독 강한, 요즘 말로 하면 '마초 성향'이 강한 사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맹자 앞에서 '대장부'를 운운하니 발끈할 만도 하지요. 소진과 장의가 어떻게 출세를 하게 되었는지는 사마천의 <사기열전>을 통해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습니다. 

(소진은) <주서(周書)> 「음부(陰符 : 병가서의 일종)」를 찾아내어 머리를 파묻고 읽었다. 1년쯤 되어서야 [유세할] 상대방의 심리를 알아내어 설득하는 방법을 터득하고는 이렇게 말했다. 
"이 방법만 있으면 이 시대의 군주를 설득할 수 있을 것이다."
- 사마천, <사기열전>, '소진열전'

즉, 소진과 장의는 사나이의 기상을 가지고 전국을 유세한 것이 아니라 권력자의 속마음을 꿰뚫는 심리학을 이용해서 출세를 한 것입니다. 소진과 장의가 활약하던 전국시대는 권모술수가 횡행했기에, 역설적으로 대장부다운 사람이 거의 없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맹자는 경춘의 물음에 답변한 후에 자신이 생각하는 '대장부'에 대해서 말합니다. 

"천하라는 넓은 거처에 살고, 천하의 올바른 자리에 서고 천하의 큰 도리를 행하고, 뜻을 얻으면 백성들과 더불어 해나가고, 뜻을 얻지 못하면 홀로 그 도리를 행하며, 부귀도 그의 마음을 더럽힐 할 수 없고, 빈천도 그의 마음을 움직일 수 없으며, 위세나 무력도 그 마음을 굴복시킬 수가 없습니다. 이것이 대장부라고 하는 것입니다."
- <맹자> 6-2

공자가 말하는 대장부는 조금 다릅니다. 용맹하고 고결한 것이 맹자의 대장부라면, 여유롭고 인자한 것이 공자의 대장부입니다. 공자는 남쪽 지역의 군자를 대장부의 표상으로 삼기도 했습니다. 제자들의 문답을 통해서 뜻을 이뤘을 때 어떻게 할지 비전을 이야기하는 모습속에서 각자가 생각하는 대장부의 모습과 공자가 꿈꾸는 대장부의 모습을 엿볼 수 있습니다. 

자로ㆍ증석ㆍ염유ㆍ공서화가 선생님을 모시고 곁에 있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너희들보다 얼마간 나이가 많기는 하나 나를 꺼리지 말아라. 너희들은 뒤에서 말하기를, 내가 너희들을 이해해 주지 못한다고 하는데, 만약 내가 너희들을 이해해 준다면 어떻게 하겠느냐?"
자로가 불쑥 나서면 대답하였다. "제후의 나라가 큰 나라들 사이에 끼여 있어 군대에 의한 침략을 당하고 있고, 다시 기근까지 겹쳐 있다 하더라도 제가 그 나라를 다스린다면, 대략 삼 년이면 백성들을 용감하게 만들고 또 올바른 길을 알도록 하겠습니다." 공자께서는 빙긋이 웃으셨다. 
"구야, 너는 어떠하냐?" 염유가 대답하였다. "사방 육칠십 리 또는 오륙십 리 되는 곳을 제가 다스린다면, 대략 삼 년이면 백성들을 풍족하게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예악 같은 것은 다른 군자의 힘을 기다리겠습니다."
"적아, 너는 어떠하냐?" 공서화가 대답하였다. "제가 이것을 할 수 있다는 뜻이 아니라, 이렇게 되도록 배우고 싶습니다. 종묘의 제사나 회의를 할 때, 예복을 차려입고 작은 보좌관 노릇을 하고 싶습니다."
"점아, 너는 어떠하냐?" 증석은 거문고를 연주하고 있다가 '쨍!' 하고 한 번 튕기고는 거문고를 놓고 일어서서 대답하였다. "저는 세 사람들이 이야기한 것과는 다릅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무슨 상관이 있느냐? 각자가 자기의 뜻을 말하는 것인데." 증석이 말했다. "봄이 되면 겨울옷을 간편한 봄옷으로 갈아입고, 농번기가 지나면 어른 대여섯 명과 아이들 예닐곱 명과 함께 기수에서 목욕하고 무우대에서 바람을 쐬고 흥얼거리며 돌아오겠습니다."
공자께서 감탄하면서 큰 소리로 말씀하셨다. "나도 점과 함께 하고 싶구나!"
- <논어> 11-25

나는 남쪽지역인 제주도 출신이기 때문에 공자가 말한 '남쪽 지방의 군자'가 더 끌린지 모르겠습니다. 내가 생각하는 사나이란 따뜻하고 가정적인 남자입니다. 비록 겉으로는 유약해 보이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몸을 던지는 것은 마음이 따뜻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자기 감정을 숨기지 않고 솔직하고 정직하며, 잘못했을 때 인정하고 사과하는 것은 사나이다운 행동입니다. 우리 아버지들이 배운 남성적 가치관 속에는 아직도 허위와 위선이 많이 남아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기의 마음속에 남아 있는 왜곡된 남성성의 찌꺼기를 처리하는 것은 각자의 몫으로 하고, 이 글에서는 다만 이런 점도 있을 수 있다는 문제제기로 보아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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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울 2013-12-19 08: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승주나무님, 잘 지내시죠. 오랜만입니다. 어릴 적부터 군대 생활까지 모습에 선하네요^^

[나쁜아빠]라는 책과 승주나무님 글을 통해 이것저것 아픈 점 가져갑니다. 고맙습니다.

승주나무 2013-12-20 06:47   좋아요 0 | URL
여울마당 님 안녕하세요. <나쁜 아빠>라는 책 제목을 보자마자 띵! 했네요. 나쁜 아빠가 되고 싶은 아빠는 한명도 없지만, 나쁜 아빠가 되지 않는 아빠 역시 극히 드물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거기에 맞는 책인 것 같아요. 잘 읽어보겠습니다. 저도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