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속에서의 행복은 완전한 행복이다.
꿈속에서의 절망은 대책도 없는 절망 그 자체이다’

영자로 태어나 에이코로 살다가 제인으로 살아가는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가는 한 여자의 삶! 피난을 가고 겁탈을 당하고 감옥에 갇히고 가족에게 버림받고 고향땅을 떠나 일본땅 미국땅을 전전하며 온갖 수모와 고초를 겪으면서도 절대 절망하지 않고 언제나 희망을 가지고 현실에 열심을 다하며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놀랍다!

이 소설은 에이코이면서 제인인 주영자 여사가 살아온 생을 기록하고 있으며 실존 인물들이어서 그들의 프라이버시를 위해 간단한 영어 이니셜이나 가명을 사용하고 있다. 소설이지만 인터뷰를 한 내용을 그대로 실었는지 다큐비스무리하면서도 마치 한편의 드라마 스페셜을 보는 것 같은 느낌으로 읽어 내려가게 된다. 마치 주인공이 옆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 같은 기분이다.

제인의 꿈이야기로 시작하는 이 소설, 현재와 과거를 오락가락하는 그녀의 꿈속에서는 그녀를 행복했던 시절의 이야기와 절망적이었던 순간등 모두를 오락가락하게 한다. 그리고 텃밭을 가꾸는 현재의 제인은 이상기후가 어쩌고 해도 알아서 차례도 없이 다툼도 없이 불평도 않고 피고 지고 열매 맺는 꽃과 식물들을 돌보며 인간도 자연의 일부임을 겸손히 받아들이며 살아야 한다는 사실을 이야기한다.

봄여름가을겨울 텃밭을 가꾸는 이야기를 시작으로 4계절 그녀의 파란만장한 삶이 펼쳐진다. 소설을 읽으면 한계절 한계절 그녀의 삶이 실감나게 다가오는데 문득 그 시대에 살고 있었더라면 나는 어떤 삶을 살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10년만에 한국으로 가는 비행기에 딸과 함께 몸을 실은 제인이 현해탄을 건너 일본이름 에이코로 살았던 열여섯살때의 이야기를 한다. 아이와함께 일본으로 밀항하는 긴박한 순간들, 일본 경찰에 붙잡혀 오무라 수용소에서 감옥 생활을 하며 겪게되는 이야기들, 감옥에서 나와 댄서로 살아가며 아이를 빼았겼다가 되찾아 오는 이야기들이 한숨을 돌릴 사이도 없이 전개가 된다. 절망적이고 고통스러운 순간에도 누군가의 따뜻한 구원의 손길을 받기도 하지만 스스로 환경에 적응해 살아가려 애쓰는 모습이 억척스럽기까지 하다. 자신을 소중히 지켜주겠다는 미군 R을 만나 에이코는 이제 또다른 나라로 떠날 준비를 한다.


여름
시간이 좀 더 거슬러 올라가 한국전쟁으로 열한살 어린나이에 남쪽으로 피난을 내려 오는 흥남부두의 이야기를 한다. 언젠가 보았던 영화속에서 만4천명의 목숨을 살린 그 흥남부두의 메러디스 빅토리 피난선에 몸을 실은 영자와 식구들이 눈에 선하게 그려진다. 엄마를 북에 두고 내려와 늘 엄마가 그리운 피난처에서의 삶 또한 호락호락하지 않다. 삼촌의 계략으로 몸이 팔려 가게 된 곳에서 탈출해 스스로 살아가기 시작한 영자는 또다른 사건에 연루되어 감옥 생활을 하게 된다. 출소 후 그녀는 다방에서 일을하게 되고 사랑이라는 감정이 싹트지만 미군에게 겁탈을 당하고 생긴 그의 아이를 낳는다. 그리고 아이와 함께 살아가기 위해 일본으로 밀항을 하게 된다. 정말이지 너무나도 기구한 생이다.


가을
일본을 떠나온 에이코는 샌디에고에서 제인으로 살아가게 된다. 한국의 가족이 너무도 그리워 TV쇼 오늘의 여왕에 출연해 한국으로 가게 되지만 빈곤하게 살고 있는 아버지와 인색한 오빠의 행동에 마음이 무겁기만 하다. 하지만 전쟁을 겪어낸 사람들은 모두 강인하다는 사실을 믿으며 자신 또한 샌디에고에서의 삶을 위해 일본에서 그랬던것처럼 다시 영어공부에 매진하게 된다. 흑백차별의 현장을 보기도 하고 또한 일을 하며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기도 하고 한국어 통역을 하는등 정말 다재다능한 제인이지만 주변 사람들의 시기를 사야했고 남편의 연이은 배트남 파병으로 인해 가정에 위기가 찾아오게 된다.


겨울
여러 우여곡절끝에 자신만의 클럽 아리랑을 오픈하고 호황을 누리게 된 제인, 맹장이 터져 생사를 오락가락하기도 하고 온갖 욕망과 유혹의 손길에 시달리기도 하며 원인 모를 병에 고통스러운 순간들을 잘 극복해 지금은 건강을 잘 유지해 나가며 텃밭을 일구고 산다. 늘 북에 남겨두고 온 엄마를 그리워하는 영자, 에이코, 제인이 한국전쟁이 터지기 직전 자신의 어린시절을 꿈꾸듯 회상하는 장면이 참 애틋하다.


에필로그
‘제인은 자신의 삶의 경험을 통해 무엇보다 몸에 닥쳐온 고통의 체험을 통해 세상은 결코 혼자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요 더불어 살아가는 것임을 배웠다. ‘

텃밭을 가꾸는 이야기로 시작된 이 소설은 역시 텃밭 이야기로 마무리를 짓는다. 참 멋진 마무리다. 자신의 삶을 통해 커다란 깨우침을 얻게 된 제인, 사람들과 부대끼고 온갖 일들을 겪으며 살아온 풍진 세상이지만 사람은 사람과 더불어 살아야 한다는 사실을 깊이 깨닫고 자신의 삶을 사랑하고 그 세월을 사랑할줄 안다.

이 소설은 주영자 여사의 자서전이며 회고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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