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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라쉬 브런치 - 번역하는 여자 윤미나의 동유럽 독서여행기
윤미나 지음 / 북노마드 / 2010년 3월
평점 :
한때는 출간되는 '거의 모든' 여행기를 사서 봤다. 가이드북 말고 여행서라는 것이 그닥 많지 않을 때였다. 떠나지 못하는 자, 소파에 길게 누워 남의 유랑기를 읽으면서라도 일상에서의 탈출을 꿈꿔서였다. 그리고 한동안 여행서를 멀리 했다. 재미가 없어서였다. 책의 꼴은 멀끔하게 진화해가는데, 내용은 갈수록 시시해졌다. 아니, 내가 불감증이 되어가는지도 몰랐다. 웬만한 글빨, 웬만한 여행지가 아니면 지갑이 열리지 않았으니까.
<굴라쉬 브런치>를 집어든 것은 순전히 표지의 카피와 사진 때문이었다. "세상에는 남자와 여자, 그리고 여행자가 있다." 그리고 두 사람 앞으로 펼쳐지는 어딘가의 풍경. 이제는 퇴화해버린 줄 알았던 역마살이 꼬리뼈 쪽에서 움찔거렸다. 아, 내가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이었지. 칠 년 사회생활로 자의 반 타의 반 잊고 있었던 내 안의 여행 본능!
체코, 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 이렇게 3개국을 여행하는 이 여행기는, 사실 여행지에서 (혹은 여행을 다녀온 후 그곳을 회상하며) 씌어졌다뿐, 그냥 수필이라고 칭하고 싶은 글들이다. '여행기'라는 좁은 카테고리 안에 이 글들을 가두고 싶지 않다. 첫 페이지 첫 문장부터 재기가 빛나는 문장들에 혹해, 윤미나라는 사람의 머릿속이 궁금해졌다. 여행지와 내면을 유연히 넘나들며 독서, 음악 취향 등을 부담스럽지 않게 내비치는 재주, 그리고 그 취향을 수첩 한구석에 끼적이게 하는 인간적 매력, 햇빛에 잘 그을린 듯 뽀송뽀송하고 칼칼한 문장들. 내 또래의 이렇게 건강하고 경쾌한 글쟁이를 만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독서였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라면, 윤미나 그녀가 찍은 사진들을 볼 수 있었다면 더 재미있었을 거라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