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래하는 페미니즘 - 여자의 삶 속에서 다시 만난 페미니즘 고전
스테퍼니 스탈 지음, 고빛샘 옮김, 정희진 서문 / 민음사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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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지 리뷰를 보다가 호기심에 구입해서 읽었다. 페미니즘이란 말은 많이 들었지만 솔직히 무엇이 페미니즘인지 잘 알지도 못한다. 그저 여성의 권리 신장을 위해 노력하는 운동이라는 정도만 안다고 해야할까? 그리고 페미니즘에 대한 남성들의 부정적 편견 때문에 페미니즘이라는 단어가 버젓이 들어간 표지의 책을 들고 다니며 읽을 수 있을까? 하는 소심한 걱정도 솔직히 들어서 조금 망설이긴 했지만 리뷰에 글쓴이가 이 책을 쓰게 된 계기가 너무나 공감이 갔기 때문에 리뷰 보자마자 바로 구입. 그리고 독서에 돌입했다.

 

뭔가 끌리는 표지와 다르게 책은 재미없을 정도로 심심한 구성이다. 화려하지도 않고, 정말 정직하게 나를 내용으로만 평가하라는 인상의 책. 쉽게 읽힐까 하는 걱정과는 달리 손에 잡으니 놓기가 아쉬울 정도였다. 페미니즘을 이야기 하고 있고, 읽어보지 못한 고전들을 언급하고 있지만 저자의 경험과 책의 내용에 대한 소개 및 정리 등이 잘 되어 있어 이해하기 쉬웠다.

 

이 책을 읽으면서 인상깊었던 것은 결혼을 한 여자들에게 주어지는 상황은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나나, 환상적인 대도서 뉴욕에서 사는 저자나 같다는 것이다. 일과 육아를 병행하기 힘들어 둘 중에 하나를 포기해야 하는 상황에서 대부분의 여자들은 일을 포기하고 결국 육아와 가사에 몰두하게 된다. 우리 나라의 경우엔 '친정엄마'를 통해 두 가지 일을 병행할 수 있지만 (병행하더라도 결국 아이를 제대로 돌보지 못한다는 죄책감과 엄마에 대한 미안함, 그리고 금전적 보상 등으로 인한 다양한 댓가를 치러야 한다) 저자는 결국 직장을 포기하고 프리랜서 작가를 선택한다. 하지만 가사와 아이를 돌보며 자신만의 커리어를 쌓기는 분명 힘들다. 그리고 남편과 같이 가정을 꾸렸고, 부모가 되었지만 대부분의 가사와 육아는 분명 여자가 더 많은 부분에서 역할을 수행한다. 자유롭게 자신의 삶을 선택하여 살다가 아내가 되고 엄마가 되어 살게 되면 많은 것을 포기하게 된다. 그리고 누구나 한 번즘 '내가 왜 이렇게 살고 있지?'라는 의문이 절로 들게 된다. 저자의 경우 그 의문의 과정을 단순히 넘긴 것이 아니라 '페미니즘 고전 강의'를 통해서 여성의 역할과 삶에 대해 스스로 공부를 하자고 결심하고, 대학에 문의하여 관련 수업을 2년 간 청강한다.

 

이런 과정이 서술되는 부분에서 진짜 공부는 이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살을 살다가 문득 의문이 들었을 때 그것이 왜 이렇게 되었는지 그것을 알기 위해 시작하는 공부. 이 책의 저자는 진짜 공부를 시작했다고 생각한다. '페미니즘 고전 강의'를 청강하면서 만나는 다양한 페미니즘 작가들. 수업 중에 거론되는 작가들 중에 내가 아는 사람은 버지니아 울프나 시몬 드 보봐르 정도이지만 다른 저자들의 삶과 그들의 저작에 대한 소개를 통해 저자의 생각을 이야기 하고 있어 어렵진 않았다.(다만 뒤에 본문에 소개된 책들 중에서 번역이 되지 않은 책들이 있다는 것이 다소 아쉽긴 했다.) 그리고 자신의 삶 속에서 맞딱들이게 되는 상황들을 공부한 내용과 더불어 이해하는 과정이 좋았다. 단순히 강의를 듣고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의 상황들과 문제들에 적용해서 이해하는 점.

 

저자는 수업을 통해 페미니즘이 과연 무엇인가에 대해 이야기 한다. 단순히 가부장적 사회에서 강요되는 여성의 역할에서 벗어나는 것 외에도 남성과 동등한 권리를 주장하는 것 혹은 여성의 몸에 대해 성적인 자유를 표현하거나 주장할 수 있는 권리까지 페미니즘에 대한 다양한 논의를 각 시대별 대표 저자들의 삶과 주장을 통해 살펴볼 수 있다. 저자도 처음에는 육아와 살림에 지쳐 자신의 일과 자신의 삶이 점차 없어지는 현실에 수업을 듣게 되지만 페미니즘이라는 것이 그러한 일을 언급하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님을 수업을 통해서 배워나간다. 나 또한 주디스 버틀러의 '젠더 트러블'에 관한 수업 내용을 통해 남성과 여성을 구별하는 것에 대한 다른 시각을 엿볼 수 있었다는 점에서 새로웠다.

 

책의 결말에서 저자는 가사와 육아를 도맡으며 사는 삶과 혼자서 살며 자유롭게 자신의 선택에 따라 사는 삶 중 어느 것이 낫다고 결론내리지 않는다. 스스로 가족과 육아에서 느끼는 사랑과 행복에 충분히 만족해 한다. 수업을 통해서 저자는 역사적으로 여성의 삶이, 역할이 어떻게 바뀌어 왔는지, 그리고 여러 사람들에 의해 페미니즘이 어떻게 정의내리고 있는지 책을 통해 읽고, 이해하고, 토론을 통해 생각을 공유하고, 서로 설득해가며 생각을 넓혀간다. 그 과정에서 여성으로서의 삶이 어떤 것이 행복한 것이다 라고 정의내리기 보다 자신의 삶에 대해 생각해보고 표현하고, 이야기 나누며 이해하려고 노력하라고 말하려고 하는 듯 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를 자꾸 돌아보게 되었다. 삶에 대해 깊이 생각해서 어떤 남자를 사랑하고, 결혼하고, 아이를 낳았던 것이 아니라 사회적 관습에 따라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당연히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 기른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과정을 겪었다. 하지만 내 생각과 달리 일을 하며 아이를 키우는 것은 쉽지 않았고, 역할에 따른 부담감에 의해 우울증도 왔었고, 심한 죄책감에 시달리며 눈물로 밤을 지새운 적도 많았다. 시간이 흘러 아이가 어느정도 자란 지금도 일을 마치면 아이를 데리러 가야하고, 밥을 챙겨줘야 하며, 목욕시켜야 하고, 청소하고, 빨래하고 먹거리를 장만해야 한다. 또한 돈도 벌어야 하고, 공과금을 납부해야 하고, 적금도 넣어야 하며 이런저런 대소사도 신경써야 한다. 문제는 그 일을 왠지 나만 하고 있다는 생각과 잘못하면 모두 나에게 비난이 쏟아진다는 것 때문에 많은 죄책감이 든다는 사실이다. 나는 그게 참 억울하고 힘들었는데 그럴 수 밖에 없는 현실이라고 하고, 다들 그런다는 말이 더 맘 아프게 했었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며 그런 마음이 다소 위로 받는 느낌이었다. 사회, 문화적으로 만들어진 여성에 대한 역할 모델 수행을 완벽하게 이룰 수 없다는 것. 그냥 그것만으로도 지금 내가 나로서, 아내로서, 엄마로서의 역할을 완벽하게 이루기 위해 아등바등 하지 않아도 된다는 그런 생각?

 

수많은 여성들이 여성의 역할에 대해 고민하고, 싸우고, 표현해왔다는 사실을 새삼 알게되었다. 그 과정에서 많은 여성들이 비난받고, 상처받으며 심지어는 자살까지 했다. 그 아픔 위에서 이만큼의 결과를 얻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될 것 같다. 이 책의 서문을 쓴 정희진 선생의 책을 한 권 카트에 넣어두었다. 다음 책으로 읽으려고. 삶에서 겪게되는 내 일들을 책들을 통해서 나도 공부를 해야겠다. 그리고 내 삶도 저자처럼 조금씩 변했으면 좋겠다.

 

사족.1. 원제가 뭔가 싶어 봤더니 '여성을 읽다(reading women)'이다. 빨래하는 페미니즘은 어디서 나온거지?

       2. 책이 좋아서 서평을 쓰고 싶었는데 제대로 정리되지 못한 글을 써서 아쉽다. 글쓰기 공부를 좀 해야 할 것 같다.

       3. 책 뒤에 소개 되어 있는 책 속에 강의 토론 교재로 사용된 책들 읽고 싶다. 근데 이해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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