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어려운 얘기다. 나한테는. 바른 말을 하고 올바른 조언을 하고 자선을 베풀면 그 상대는 응당 그것을 선의로 받아들이고 고마워하기를 기대하는 마음은 오만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직언이나 조언은 인간이 인간에게 베푸는 것이 아니라 어쩌면 그 저변에 교묘한 지배욕이, 상대를 '선의'라는 그럴듯한 포장하에 좌지우지하고 싶은 욕구가 개입된 것이 아닐까. 특히 부모 자식간의 관계에 이러한 관계의 역학은 도드라진다. 


이제 분홍공주는 벌써 열세 살이다. 내가 열세 살이던 시간이 어제처럼 생생하다는 얘기는 너무 진부해서 덧붙이기도 미안할 정도다. 그렇지만 사실은 사실이다. 내 안에 아직 덜 익은 열세 살이 있는데 내 앞에 열세 살이 있다니, 이건 때로 비현실적이다. 사춘기 초입의 딸 앞에서 나는 세상에서 견줄 사람이 없을 정도로 도덕적이고 성실하고 부지런한 인간인 것처럼 행세한다. 방을 청소해라, 숙제는 미리미리 해라, 영상물은 적당히 봐라, 아이돌에 너무 빠지지 마라, 성실히 공부해라. 객관화하면 내가 듣는 입장이라도 안 듣겠다, 싶은 얘기를 질리지도 않고 하고 있다. 내가 정말 이럴 줄은 몰랐다. 나는 모범생이 아니었는데 마치 선도부장처럼 딸을 훈육하려 든다. 
















"글을 쓸 때마다 내가 쓰레기가 된 기분이었어. 엄마의 잔소리에 틀린 말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에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내가 더 초라해지고, 더 자신감이 없어지고, 나 자신이 한심해 보였어. 엄마, 이젠 그러지 말아줘. 내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어도 실망스런 눈초리를 보이지 말아줘. 

- 서안정 [엄마 공부가 끝나면 아이 공부는 시작된다]


엄마의 잔소리나 엄마의 조언이 틀리거나 옳지 않다 해서 아이들이 반감을 가지는 게 아니다. 너무 맞아서 오류가 없어서 반기를 들 대목이 없어서 아이들은 무력하게 아프다. 특히 사춘기의 아이들은 더욱 그렇다. 성장은 정도가 아니다. 뒤틀어지고 튀어 나가고 어긋나며 우리는 컸다. 확장은 원래 그런 법이었다. 그런데 나는 벌써 잊어버렸다. 열네 살, 나는 하교 후에 방문을 잠그고 매일 낮잠을 잤다. 그리고 밤에 일어나 숙제를 하고 공부를 하고 음악을 들었다. 엄마는 닫힌 방문 너머 나를 의심하지 않았다. 다그치지 않았다. 나라면 그런 딸을 감당할 자신이 없다. 그건 나인데 말이다.


















"난 어머니가 늘 옳았기 때문에 어머니가 싫었어요. 늘 옳기만 한 사람이 있다는 건 정말 무서운 일이에요. 그건 상대방을 더욱더 무력하게 만든다고요. 

-애거서 크리스티 [누명]


[누명]에서 죽은 어머니는 입양한 자식들을 최선을 다해 양육하고 교육했다. 최상의 성장 환경을 제공하려 애썼지만 그녀의 아이들은 저마다 마음 속으로 어머니를 죽이고 싶을 만큼 미워했다. 학대하지도 방임하지도 않은 어머니보다 때로 자신들을 버린 생모를 더욱 그리워하고 사랑했다. 아이를 키운다는 건 아이에게 바른 길을 조언하고 지시하는 게 아니다. 아이를 자신이 바라는 길로 앞에서 일방적으로 끌고 가는 것도 아니다. 조금 뒤떨어져 태어난 그대로 아이를 믿어주고 지지해주고 때로 아이가 질문할 때 혼란스러워할 때 이정표 정도를 제시해 주는 정도로 도와주는 게 오히려 아이가 자신의 힘으로 커나가는 데에 긍정적인 도움이 될 것이다.


머리로는 알지만 쉽지 않은 노릇이다. 가장 함정에 빠지기 쉬운 게 덫에 갇히기 마련인 게 양육인 것도 같다. 인간이 인간을 낳아 독립된 개체로 키운다는 건 어찌보면 얼마나 대담하고 무모한 일인가도 싶다. 시작하기 전에 알지 못했던 것들이 오늘도 나를 키운다. 나는 아직 한참 더 커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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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nnight 2019-06-16 21: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흑흑 무척이나 공감합니다. 조카들과 주말을 함께 보내고 데려다 주고 오는 길 여러 생각을 했어요. 이 아이를 사랑하니까 이런 저런 조언-_-을 해 주려 하지만 결국 잔소리 ㅠㅠ 아이들은 내 생각보다 훨씬 알아서 잘 하는데ㅠㅠ 좀 더 믿고 지켜보자 생각하게 됩니다. 감사합니다. blanca님.

blanca 2019-06-17 11:20   좋아요 0 | URL
저는 잔소리가 싫은데 상대에게는 잔소리를 하게 되는 이 모순이라니요. 이런 모습이기는 싫었는데...흑, 잘 늙는 일은 참으로 품이 드는 일인 것 같아요.

푸른괭이 2019-06-17 11: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격하게 공감하고 갑니다..ㅠ.ㅠ ˝내가 정말 이럴 줄은 몰랐다.˝ 저도요 -_-;;

blanca 2019-06-17 11:35   좋아요 0 | URL
매일 취침 전 반성 모드입니다. 그러나 다음 날 또 반복되고요. 정말이지, 너무 어려워요.
 
아주 작은 습관의 힘 - 최고의 변화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제임스 클리어 지음, 이한이 옮김 / 비즈니스북스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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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계발서가 빠지기 쉬운 함정은 복잡다단한 현실의 과도한 단순화다. 거기에 따른 일률적인 해법 제시는 자칫 현실 도피적인 추구가 되기 쉽다. 그럼에도 힘들 때, 지칠 때 이러한 류의 책을 읽는 일은 의미가 있다. 일단 매일 규칙적으로 조금씩 이러한 책을 읽는 일 자체가 일상의 루틴이 되면 소소한 응원이 된다. 우울의 늪에 빠질 때 필요한 것은 거창한 위안이 아니다. 이렇게 하면 괜찮아질 수도 있다, 너만 그런 게 아냐,라는 거짓말 같은 조언은 폄하될 만한 사소한 거짓말이 아니다. 


저자 제임스 클리어는 본인이 실제 자신의 삶에 일어난 사고에서 재기하는 과정에서 작은 습관의 힘을 경험한 사람이다. 저자의 체험과 뒤따른 인지 과학적 연구는 전문가 수준은 아니더라도 적절히 잘 어우러져 설득력 있는 이야기가 되었다. 습관을 시스템과 개인의 정체성 차원에서 접근한 것 또한 뻔하지 않다. 우리가 어떻게 좋은 습관에서 멀어지고 나쁜 습관에 쉽게 물드는지에 대한 분석적 관찰과 예시에 깊은 공감이 갔다. 



환경과 행동의 함수 관계


제임스 클리어는 대단히 현실적이고 직설적이다. 그는 인간의 절대의지를 신봉하지 않는다. 환경과 분리되어 자신의 삶을 전적으로 자신의 통제권하에 두고 저돌적으로 걸어가는 초인은 그의 독자가 아니다. 집단의 압력에 굴복하고 유혹에 쉽게 지는 대부분의 약한 우리들이 그의 청중이다. 심리학자 쿠르트 레빈의 인간의 행동이 사람과 환경의 함수 관계라는 전제의 인용은 제임스 클리어의 인간에 대한 시선과 이 책 전체의 방향을 암시한다. 


직설적으로 말해서 부정적인 환경에서 긍정적인 습관을 유지하는 사람을 나는 본 적이 없다.

p.131


이를테면 제임스 클리어에게 '개천에서 난 용'은 대단히 비현실적인 이상에 다름 아니다. 환경이 가지는 촉매적 역할에 대한 신뢰는 결국 좋은 습관을 가지기 위해 환경을 전략적으로 설계하라는 조언으로 연결된다.  그의 해법은 결국 자신의 환경을 비교적 자신의 구미에 맞게 재편할 수 있는 사회 경제적 여유가 있는 사람들한테 한정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씁쓸함이 남았다. 


그럼에도 젊은 저자의 인간의 행동 기제에 대한 관찰, 해석, 분석은 분명 명쾌하고 통찰적이다. 환경에 의해 인간이 어떻게 달라지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새로울 것이 없는 비극적 고찰이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는 드물고 어렵기 때문에 회자되는 것이라는 깨달음을 인정하고 나면 평범하고 탐욕스럽고 위선적인 대다수의 우리들이 지금 이 상황에서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한 훈련에 대한 조언은 충분히 유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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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수 고양이의 비밀 무라카미 하루키 에세이 걸작선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안자이 미즈마루 그림, 홍은주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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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으로서의 소설가>에서의 하루키와 <장수 고양이의 비밀>에서의 하루키의 낙차는 시간 차만큼이나 크다. 그도 그럴 것이 <장수 고양이의 비밀>에서의 하루키는 아직 젊고 <직업으로서의 소설가>의 화자는 영원한 청년 같은 느낌도 이기고야 마는 노년에 이미 접어들었다. 진지하고 조심스럽고 성실한 작가로서의 고백은 그의 대담한 서사와 대조를 이룰 정도다. 하지만 그의 또 다른 기발함, 유머, 엉뚱함, 도발의 흔적을 찾고 싶다면 좀더 시간을 돌리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군데군데 눈물이 날 정도로 웃긴 얘기가 많다. 자신을 인간 관계에 서툴고 재미 없는 사람인 것처럼 자주 폄하하지만 그건 역설적으로 그렇지 않다,는 반증처럼 보일 정도로 하루키의 에세이에서의 그의 모습은 재미있다. 그건 그를 둘러싼 현상 그 자체보다 그 현상을 묘파하는 하루키만의 하루키스러운 능력에 빚진 바가 클 것이다. 그렇다고 내도록 가벼운 얘기는 아니다.


정신적으로 상처받기 쉽다는 건 젊은이에게 흔히 보이는 경향인 동시에, 그들에게 주어진 고유한 권리가 아닐까 하고.

물론 나이들어서도 상처받을 일은 얼마든지 있다. 그래도 그 상처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거나 두고두고 곱씹는 건 나이깨나 먹은 사람이 할 일이 아니다.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래서 설령 상처를 받거나 화가 나도 꿀꺽 삼켜버리고 오이처럼 서늘한 얼굴을 하려 애썼다. 처음에는 쉽지 않았지만 훈련을 거듭하는 사이 점점 정말로 상처를 받지 않게 되었다.

-p.125


아, 대체 오이처럼 서늘한 얼굴은 어떤 것일까? 하루키도 젊은 시절 사람들에게 종종 상처를 받고 나락으로 떨어지곤 했다는 고백은 신선했다. 그리고 점차 정말 그의 말대로 훈련의 덕이든, 연륜에서 비롯된 것이든 상처에 강력한 면역을 획득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는 나의 그것과도 겹치는 대목이 있어 반가웠다. 정말이지 그랬다. 아마 이십 대까지도 그랬던 것 같다. 누구의 빈정거리는 말 한 마디로 한 달을 망칠 수도 있었다. 무심코 던진 나에 관련한 평가에도 극도로 민감했었다. 그런 얘기를 듣고 서늘한 오이 같은 담담함 대신 토마토처럼 잔뜩 달아오른 얼굴로 흥분했던 과거의 나는 지금의 내 안에 잊힌 채 고여있다 하루키의 지명으로 벌떡 일어선 것이다. 그래서 좋으냐, 이제 괜찮냐고, 묻는다면 그건 좀 다른 얘기다. 편안해지는 게 전부는 아니니까.


이야기를 쓰는 일, 제로에서 뭔가를 만들어내는 일은 어차피 비정한 세계다. 모두에게 웃어주기는 불가능하고, 본의 아니게 피가 흐르기도 한다. 그 책임은 내 어깨에 짊어지고 살아가는 수밖에.

-p.136


하루키다운 이야기다. 그가 만드는 평행 우주를 연상시키는 이야기의 왕국의 뒤안길은 이러했다. 비정하다,는 말의 무게가 새삼 느껴진다. 그래서 아무나 작가가 될 수 있는 건 아니구나 싶다. 


여행에 항시 가져갔다는 <체호프 전집>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 여행에 대한 좋은 참조가 된다. 나에게도 이러한 '여행의 벗'이 있었으면 좋겠다. 어떤 판형인지 궁금하다. 주오코론샤에서 나온 전집이라는 데 이북과 볼 거리가 난무하는 요즘에 오히려 눈이 번쩍 뜨이는 대목이다. 지금도 하루키가 전집 중 한 권(전집 전체를 설마 가지고 비행기를 타지는 않겠지.)을 가지고 여행하는지 궁금하다. 이미 대작가가 된 과거의 하루키의 모습을 보는 것도 흥미롭다. 


이십 년을 넘게 장수한 하루키 고양의 뮤즈의 이야기는 왠지 스포일이 될 것 같아 삼가는 게 좋을 듯하다. 하루키의 아내가 만화 <유리의 성>에 빠져 등장인물 이름에서 따 온 이름이 '뮤즈'라는 이야기도 재미있다. 하루키도 이 만화책을 재미있게 읽었단다.


여하튼 생각보다 괴팍하고 엉뚱하고 소심하지만 자기가 믿는 가치에 대해서는 한치 양보가 없는 그의 중년의 어조를 듣는 일은 유쾌하면서도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경험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 만큼 즐거운 책이었다. <장수 고양이의 비밀>을 듣는 일은 말할 것도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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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nnight 2019-06-02 10: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blanca님^^ 저도 어제 주문한 이 책을 받아서 읽어볼 참입니다. 젊은 시절 하루키를 다시 엿볼 생각에 두근두근하네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감사드려요^^

blanca 2019-06-03 11:20   좋아요 0 | URL
책이 두께가 좀 있어요. 사실 큰 기대 없었는데 하루키 특유의 너스레 덕분에 앉은 자리에서 다 읽어버렸네요. 참 유쾌하고 재미있더라고요. 달밤님도 즐거운 독서가 되기를 바랍니다.
 
배웅불
다카하시 히로키 지음, 손정임 옮김 / 해냄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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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춘기 소년들의 세계는 흔히 약육강식이 지배하는 성인들의 사회의 알레고리로 읽힌다. 하지만 구태여 꼭 그렇게 치환되지 않더라도 절제와 자제와 위장이 본능과 탐욕을 아직 제대로 이기지 못하는 시기의 이야기는 인간의 심연에 있는 어두운 구석을 여과없이 드러낸다. 그것은 구태여 과거의 것이라 치부될 것도 나와 상관 없는 세계의 것이라 무시할 수도 없을 만큼 지금 현재 여기에서의 우리의 비겁한 모습을 드러내는 생생함을 품고 있다. 권력을 남용하고 약자를 짓밟아 사익을 추구하는 행태는 낯설지 않다. 또 그 회색 지대에서 그 광경을 방조하고 때로 그 과정에서 파생되는 이득을 알게 모르게 누리는 많은 우리들의 모습도. 


<배웅불> 작가의 문장과 이야기의 구성은 대단히 치밀하고 밀도있게 직조되어 시종일관 팽팽한 긴장감을 잃지 않는다. 대체 이 촘촘한 이야기는 어디까지  뻗어나갈 것인가 예측불허다. 한마디로 아주 잘 만들어진 이야기라는 생각이 든다. 대도시에서 벽지로 아버지의 직장을 따라 전학 온 소년, 그 소년을 맞아들이는 또래 집단의 역학 구도는 자연스럽게 소년을 포섭한다. 소년은 아닌 척 하지만 내도록 그 부당한 폭력적인 관계망으로 저도 모르게 서서히 빨려들어가게 된다. 이쯤 되면 과연 그 소년에게는 죄가 없었나 묻게 된다. 그리고 결말은 그에 대한 답을 신중하게 준비하고 있다.


이런 이야기라면 이미 <파리대왕>에서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에서 경험한 익숙한 서사다. 강하고 악하고 매력적인 지배자가 있고 그 대척점에 서 있는 듯 보이는 '나'의 입지는 더없이 약하다.  '나'는 도덕적으로도 힘의 역학 관계 안에서도 길항 작용에 성공하지 못한다.  결국 그 악에 수시로 굴복하는 이야기였다. 


<배웅불>은 일본적인 색채가 강한 작품이다. 전통적인 풍속의 하나인 오봉에 조상의 영혼을 배웅하는 의미로 피우는 '배웅불'은 그 자체로 괴괴한 배경이자 음침한 복선으로 작용한다. 



그들은 살인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살인하고 말지도 모른다. 죽일 마음 없이 사람을 괴롭히고 죽여버릴지도 모른다.


학교폭력 뿐만 아니라 이 사회에 횡행하는 셀 수 없이 많은 끔찍한 사건들이 애초부터 강력한 의도로 빚어진 경우는 많지 않을 것이다. 비판의식 없이 상황에 매몰되어 도덕적 성찰 과정을 방기하다 보면 어느새 벌어지고 마는 많은 비극들을 돌아보게 만드는 이야기였다. 괴롭힘을 당하던 미노루가 마지막에 주인공에게 던진 "나는 처음부터 네가 제일 열 받았었어!"라고 한 이야기는 긴 여운을 남긴다. '그'는 수많은 '우리'와 닮아 있다. 폭력을 사주하지도 약자를 괴롭히지도 않고 오히려 때로 선행을 베푸는 많은 사람들, 그러나 저도 모르게 그런 시스템 자체 안에 순응하며 나날을 살아나가며 약자들을 양산하고 핍박하게 되는 거대 헤게모니의 하나의 부속품이 되어가는 '우리들'의 모습. 정신이 번쩍 들게 하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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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들을 보고 있으면 기이한 기분이 들었다. 서로 다른 젊은 시절을 보냈을 텐데, 세계를 겪은 방식과 경험을 해석하는 방식이 다를 텐데, 마치 똑같은 생을 겪은 것 같았다. 웃지 않았고 눈빛이 멍했고 박탈감에 사로잡히고 회한만 남았다.

-편혜영 <다음 손님>

















편혜영의 문장은 장황하지 않은데 예리하고 구태의연하지 않으면서도 보편적이다. 이런 대목은 밑줄을 긋게 된다. 작가는 음험한 인간의 내면, 하루키의 그 검은 우물을 응시하고 퍼올린다. 이 얘기만 해도 그렇다. 화자의 아버지는 겉으로 보기에 참으로 따뜻하고 사려 깊고 예의 바른 사람이다. 일하는 엄마 대신 그는 치매가 온 장인 어른을 돌본다. 아들은 그런 아버지의 헌신에 감동한다. 이야기는 이 출발점에서 심연으로 틀어 나간다. 그것은 따뜻한 보살핌이 아니라 학대였음을 깨닫게 되는 과정은 선뜩하다. 인간은 복잡하다. 보이는 곳과 드러나는 부분과 숨긴 구석이 한데 어우러져야 비로소 하나의 삶이 완성된다. 외형적으로는 할아버지를 따뜻하게 보살피는 아버지를 둔 소년은 자라 노인에게 더 진심에서 우러나온 간병을 할 것으로 기대하지만 그 기대를 철저히 배반하며 결국 그 어긋난 충돌 지점에 작가는 우뚝 선다. 편혜영의 이야기들은 선뜩한 핍진성을 띤다. 이런 마음이 든다고 해서 저런 행동을 하지 않는 것은 아니라는 인간에 대한 이해는 시시각각 서스펜스적 서사로 형상화된다. 



<식물 애호>는 아마 <홀>이라는 장편으로 발전된 것 같다. 여기에 등장하는 사위와 장모의 괴괴한 관계도 그렇다. 딸은 죽고 사위만 살아남은 상황에 장모는 분개하지 않고 오히려 사고 휴유증에 시달리는 사위의 간병을 자처한다. 제대로 된 의사표현과 거동이 불가능한 사위는 장모가 하는 행동 하나하나의 코드를 해석하며 전체적인 그림을 그리느라 분주하다. 그리고 그 행동은 가면을 쓴 폭력이다. 바깥에서 볼 때 장모는 성녀 수준의 헌신을 보인다고도 할 수 있지만 실상은 딸 대신 살아 돌아온 사위에 대한 교묘한 앙갚음이 행해지고 있었다. 


대단한 복수나 보이는 폭력 대신 이런 음험한 진탕을 통해 작가는 인간을 제대로 읽어내려 한다. 친절을 가장한 폭력, 배려를 가장한 참견. 이상주의적인 관계, 소통, 사랑의 대척점에서 피어나는 이야기의 흡인력이 대단하다. 그것 또한 읽는 이들은 스스로와 가족과 타인을 이해하는 방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미담만으로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이야기들을 소화할 수는 없는 노릇일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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