랭스로 되돌아가다
디디에 에리봉 지음, 이상길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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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그곳은 내게 하나의 이름에 지나지 않았다."로 시작하는 여정. 그 이름은 저자 디디에 에리봉의 고향, 그가 "도망치고자 했던 나의 고장", 노트르담 대성당이 있는 파리 교외의 도시 랭스다. <랭스로 되돌아가다>는 사회학자이자 철학자인 디디에 에리봉의 회고록이자 자기 고백서이지만 사적인 자기 고백록에서 그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체험, 정체성 자체를 문학, 이론, 정치의 필터를 통해 낱낱이 해부하여 공적인 담론의 영역으로 확장시킨 경이로운 역작이다. 이런 유형의 책을 지금까지 경험해본 기억이 없다. 새롭고 혁명적인 방식의 오토픽션은 놀랍게도 십 년도 전에 나온 아버지 연배의 작가의 저작이었다. 그럼에도 이 읽기는 나를 뒤흔드는 차원의 것이었다. '나'와 내가 떠나온 '가족'을 이야기하며 그것을 객관화된 탐사의 여정으로 변모시킬 수 있다는 발견은 놀라운 것이었다. 



계급 탈주자


중세, 근대의 이야기가 아니라 현대 사회에서도 여전히 계급 탈주라는 개념은 공명한다. 디디에 에리봉은 노동자 계급 출신의 대학교수이자 사회학자다. 그의 가족들은 그가 차마 "사회관계자본"이라 여길 수 없는, 계층의 사다리의 하단부에 위치하고 있다. 그의 어머니의 육체 노동은 그가 "몽테규나 발자크의 강의를 들을 수 있도록 해주기 위한 것"이었다. 에밀 졸라 책은 읽어본 적도 없는 어머니가 "에밀 졸라풍"이라 묘사한 아버지의 죽음을 계기로 그는 떠나온 랭스로 돌아가 자신이 스스로를 발명해내야 하고 구축해야 했던 그 고통스러웠던 과거를 복기, 복원한다. 이 탐사의 미덕은 지독한 솔직함이다. 그는 스스로를 기꺼이 극단까지 해체한다. 자신의 위선과 위악과 속물성을 가감없이 언어화한다. 자신의 출신 계급은 내도록 그를 따라다니며 그를 괴롭힌다. 아는 척도 드러내어 놓고 싶지도 않은 가족들. 그러나 그런 가족들의 위치는 개인적인 것이 아니라 사회적 명명이었다는 깨달음은 그가 끝내 그들과 제대로 화해하지 않은 사실로 봉합되지 않는 부분을 저격한다. 정치적으로 노동자의 편이었지만 마음으로는 자신의 출신을 상기시키는 노동자들이 싫었다는 고백이 디디에 에리봉을 끌어내리는가? 그렇지 않다. 우리는 끝내 발화되지 않은 진실 속에 내재된 역설적 진실을 발견한다. 머리와 언어로 소외된 자들 편에 서는 건 쉬운 일이다. 정말 그들로 사는 것이 어떤 삶을 이야기하는지 뼛속까지 알기에 그들로부터 탈출하고 싶었다는 고백이 가지는 함의는 횡행하는 공허한 입장 표명이 가지는 그 무력하고 가식적인 정치적 행동의 병폐를 일깨운다. 



너 같은 사람들


이 책의 다른 한 축은 저자의 게이로서의 성정체성이다. 계급 정체성과 교차하는 이 정체성은 그의 모욕으로서의 역사다. 나는 동성애자들이 과거에 그렇게 많은 폭력과 모독과 모욕에 노출되는 위험 속에 있었는지 몰랐다. 그것들을 뚫고 스스로를 재발명해야 하는 그 사회를 지칭할 마땅한 언어도 없이 그것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속박했다. 에리봉의 어머니는 아들이 가지는 그 성적 정체성을 제대로 명명할 언어조차 차마 동원하지 못해 "너 같은 사람들"이라는 두루뭉술하고 애매모호한 언어를 가져온다. 그것은 그의 사회적 계급과 더불어 그의 "복수의 예속화 양태들"을 양산한다. 이 두 가지 예속화의 여정을 통과하며 스스로를 탈주자이자 재창조된 정체성으로 거듭나게 해야 했던 저자의 여정은 분명 그와 같은 극단적 상황을 경험하지 않은 나에게도 나의 과거와 성장과정, 내가 떠나온 고장을 다른 차원에서 돌아보게 하는 획기적 전기로서의 전범으로 작용했다. 나는 나 같은 사람들을 생각해봤다. 내가 지금 여기에 서 있기까지 통과해 온 경험들을 재조명하며 나는 내가 선택하고 만들었다고 믿었던 많은 것들이 사실은 사회적, 외부적 작용의 결과였음을 깨닫고 아연해졌다. 나를 만는 것은 비단 내가 아니었다. 모든 성장은 사적이고 개인적인 여정이지만 동시에 공적이고 구조적인 산물이기도 하다는 그 자명한 진실을 이제서야 깨닫는다. 


<랭스로 되돌아가다>는 비단 한 개인의 회고록이 아니라 읽는 자들 모두의 회고록으로 변환될 수 있을 정도로 거대하고 심오한 성찰의 열린 오토픽션으로 작용할 수 있는 책이다. 


우리의 과거는 여전히 우리의 현재다. 따라서 우리는 표명되고 창조되는 것이 아니라, 재표명되고 재창조된다. 

-pp.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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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1-03 12: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1-03 13: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얄라알라 2022-01-03 12: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랭스로 돌아가다]의 장르를 오토픽션이라 하는군요. 많은 분들이 꿈꾸는 글쓰기가 아닐까 싶어요. 저도 말끝에서 흉내라도 내고 싶어집니다.

blanca 2022-01-03 13:41   좋아요 1 | URL
자신의 삶을 이렇게 객관화며 돌아보는 행위는 쉽지 않아서 더 의미가 있는 것 같아요. 많은 사람들이 자기 합리화, 변호, 포장을 위해 회고록을 쓰잖아요. 그런데 이렇게 치부를 확 드러내는 글은 그리고 그마저 사회학적 렌즈를 통과시켜 해부하는 책은 처음 읽어봤어요. 놀라운 경험이었어요.

초란공 2022-01-03 13:2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소개해주신 글만으로도 강렬한 책인 것 같습니다. D.H. 로렌스의 영국에서만 계급문제가 고질적인줄 알고 있었는데, 생각해보니 아니 에르노도 자신이 노동자 출신인 걸 부끄러워한 고백이 기억납니다. 동성연애자였던 프랑스의 사상가, 철학자들의 고통과 고뇌를 염두에두면서 읽어야 겠어요. 좋은 책 소개해주셔서 고맙습니다.

blanca 2022-01-03 13:43   좋아요 2 | URL
초란공님 안 그래도 아니 에르노가 이 책에서 여러 번 인용됩니다. 사실 우리 사회에서 성공한 사람들이 쓰는 회고록은 그럼에도 불구하고에 방점이 찍히잖아요. 그런데 이 책은 그래서 여전히 내가 가진 결핍을 확 드러내는 게 놀랍도록 저한테는 충격이었어요. 심지어 그것을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관리하는 것이라고. 제가 가진 결핍도 들여다보게 되더라고요. 좋은 책입니다.

레삭매냐 2022-01-15 09: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중고책방에 떴을 때
주저하지 말고 사두었어야
했는데. 아쉽습니다.

blanca 2022-01-15 09:49   좋아요 0 | URL
헉! 이게 중고로 떴어요? 요새 신간은 거의 중고로 안 나오더라고요.

새파랑 2022-02-10 19: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Blanca님 당선 축하드려요 ^^

blanca 2022-02-11 08:47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서니데이 2022-02-10 22: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blanca 2022-02-11 08:47   좋아요 1 | URL
서니데이님, 감사해요.^^

공쟝쟝 2022-04-07 09:1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블랑카님 열심히 읽고 너무 좋아하시는 거 티나서 ㅋㅋㅋㅋㅋ 저도 열심히 읽고 좋아하게된 책이라 ㅋㅋㅋ 살짝 미뤄뒀다 이제 리뷰 읽어요. 저 역시 비슷한 이유로 책이 보내는 진동에 몸을 떨었던 것 같습니다!

blanca 2022-04-07 19:59   좋아요 1 | URL
솔직히 책 도착했을 때 처음에는 완독이 가능할까? 정말 좋은 책인가? 의심했어요. 그런데 점점 더 빠져들다 뭔가 저의 사고의 지평을 넓혀준 책이라고나 할까요? 사적 경험의 노출이 과도한 세상에서 자신의 경험을 공적인 장으로 어떻게 가져오는 것인가 그 지평을 보여준 책 같아서 두고두고 남았답니다. 그러면서 저 자신도 나름의 눈으로 분석해 보려는 시도를 하고 있더라고요. 물론 실패했지만요. ^^;;;

공쟝쟝 2022-04-07 21:58   좋아요 0 | URL
맞아요. 저도 그러더라고요. 실패라뇨! 용기내세요.😤 그도 오십세에야 이런걸 써냈으니 블랑카님도 저도 부단한 수행의 과정 (에리봉에 따르면 아스케시스) 중에 있으신 걸 거예요. ㅎㅎㅎㅎ

책읽는나무 2022-04-08 12: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제 공쟝님 리뷰 읽고 ‘읽고 싶어요.‘에 담아 뒀더니 오늘 이 책 관련 블랑카님의 리뷰를 읽어 보란 메세지가 제 북플에 떴더군요^^
관심있던 책이었기에 몰래 들어와 눈으로만 읽고 가려다가 용기 내어 잘 읽고 간다는 인사를 남기고 갑니다. 오랫동안 활동하시어 종종 블랑카님의 좋은 글들을 눈팅만 몰래 하고 갔었습니다. 오늘은 이상하게 이건 좀 아니지 않나? 란 생각이 퍼뜩 들게 되었고, 그래서 댓글도 서슴없이 남기게 되네요^^
좋은 책 소개글 앞으로도 계속 몰래 읽게 될테니 양해 바랍니다.
오늘 하루도 좋은 날 되시길 바랍니다.^^

blanca 2022-04-09 09:38   좋아요 1 | URL
와, 이런 따뜻한 댓글이라니요. 소중한 시간 내서 읽어만 주셔도 감사하죠. 그러고 보니 제가 참 오래 있었네요. ㅋㅋ 세월이 유수와 같다는 진부한 말이 실감납니다. 책읽는나무님 활짝 핀 봄을 만끽하시는 하루가 되기를 바라요.
 

어제 꿈 속에서 내가 마스크를 안 쓴 걸 알고 화들짝 놀라 주변을 둘러봤는데...세상에! 광장을 채운 모두가 마스크를 안 쓴 광경이 총천연색(태몽도 아닌데!)으로 내 눈앞에 펼쳐지는 것이다. 꿈속에서도 너무 좋아 넋을 잃고 그 광경을 보았던 기억이...


2021년도의 마지막 읽고 있는 책.

















아직 초반부 읽는 중인데 나는 왜 저자가 영국인이라고 착각하고 있었을까. 사회적, 경제적 계급에 따른 교육 환경의 격차가 유독 큰 나라로 기억하고 있어서였는지 모르겠다. 자신이 탈출하고 싶었던 원가정을 다시 사회학적 관점에서 분석, 복기하는 여정이 많은 것들을 환기한다. 단순히 개인적 회고에 머무르지 않는 그 지점이 빛난다. 객관화된 주관적 글쓰기의 진가가 발휘되는 책이다.

















20대 기자들이 바라본 소년범들의 세계. 언론에서 소비하는 소년 범죄의 잔혹함은 그들을 사회에서 영영 추방하거나 성인 범죄자의 길로 접어드는 것을 방조하게 되는 길로 가는 것은 아닐까 하는 자문을 하게 만드는 이야기. 촉법소년의 폐지가 가지는 의미에 대해 고민하게 만드는 지점이 있다. 나쁜 어른들로 둘러싸인 세계에서 제대로 잘 자라기를 바라는 마음은 그들이 그 엄청난 기대치를 충족하지 못했을 때 추방되기를 은밀히 바라는 마음과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특히 성적 자기 결정권을 학습하지도 경험하지도 못한 채 자라나는 소녀들의 이 아직 덜 자란 아이들의 범죄의 세계의 가장 밑바닥 생태계를 차지하고 있다는 이야기는 충격적이고 가슴 아팠다. 어른들의 가장 고질적인 악을 그들에게서 모방하여 다시 재생산하는 아이들의 취약한 세계. 심지어 그런 아이들의 취약성을 악용하는 간악한 어른들. 


세밑에 읽게 된 책들이 어둡다. 그 어두움을 어떻게 뚫고 나아가야 할지 아직 잘 모르겠다. 알라딘 식구들 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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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이 가는 시점 개인적으로 기억에 남기고 싶은 올해의 책들을 추려본다. 좋았던 책은 많았지만 그 중에서도 다시 읽게 될 것 같은 책을 중심으로.


▶인문/과학




방대한 분량, 사 세기에 걸친 과학자와 시인, 소설가의 이야기는 언뜻 위압감을 주기에 충분해 보인다. 하지만 그것이 엮어낸 거대한 모자이크를 들여다보면 그 촘촘함과 조화로움이 가지는 아름다움에 눈이 부실 지경이다. 요하네스 케플러의 꿈에서 출발하여 마거릿 풀러의 묘비 앞에서 맺는 이야기는 우리 인간의 개개의 삶이 가지는 그 찰나성과 우리가 소망하는 것들이 끝내 좌절당하고 사랑이 떠나갈 때의 그 가차없음에 대한 것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속에 남아 죽지 않는 그 무엇에 대하여 우주적 관점에서 조망한 것이다. 크고 빛나는 이야기들.











흔히 베스트셀러는 그 깊이와 완성도에 대해 의심당하는 경향이 있다. 다 좋다고 하면 뭔가 미심쩍은 구석이 있는 것 같은 느낌. 말초적이고 단편적이고 무언가에 영합했을지도 모른다는 의심. 그러나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좋은 책을 좋아한다고 생각한다. 


철학을 사변적이고 추상적으로 이야기해야 그 본질에 더 충실한 것이라는 시선은 하나의 편견이라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준 이야기. 얄팍하지 않으면서 흥미롭고 진지하면서 금세 실제 사례로 가닿는 그의 능수능란한 글솜씨에 절로 넘어갈 수밖에 없는 책이다. 재미있고 뭉클하다. 그걸로 충분하지 않은가.










▶소설




어렵다. 어려운데 매력적이다. 작가가 이 책 한 권을 위해 얼마나 많은 것들을 쏟아부었는지 그 공력에 절로 고개가 숙여지는 책이다. 과연 우리가 죽음을 제대로 알 수 있을까? 죽기 직전까지도 우리는 여전히 그 실체를 붙잡을 수 없을 것이다. 삶이라는 게, 사는 일이라는 게 생명을 전제로 하는 한 죽음을 제대로 완벽하게 연구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런데 그 근사치에 처절하게 가닿으려는 노력 그 자체를 목격하는 것만으로도 사는 일과 죽는 일에 대한 이해가 조금은 더 깊어지고 넓어지지 않을까. 한 구도자의 구도 과정을 목격하는 것 같은 느낌의 읽기였다. 이 책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날이 과연 올 것인가 싶을 정도로 나의 이해는 피상적이었다. 나머지는 사는 일과 읽고 생각하는 일들로 채워질 수 있을지 확신할 수는 없다. 그 묘한 사투리의 리듬감, 삶의 고단한 그 여정의 간이역에서 채워지는 구수한 입담들이 주는 즐거움도 읽는 재미를 준다. 










지루하고 어렵고 시대에 뒤떨어진 작품일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여전히 오늘날에도 유효하고 시의성 있는 질문을 품고 있는 문제작이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시대를 뛰어넘는 인간과 인생, 무엇보다 인간의 그 불완전함을 한계치까지 밀고 나가 탐구하고 이해하려 했던 작가다. 그의 펜끝에서는 삶의 속살과 인간의 심연이 기어이 드러나고야 만다. 그 끝에 절망으로 침잠하지 않을 수 있는 작가는 그가 유일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가 만든 캐릭터들은 분명 실존한다. 우리의 뒤에 우리의 옆에 바로 우리의 속에. 위대한 이야기다.









남성 작가가 여성을 이야기할 때 그것은 흔히 대상화되기 쉽다. 표피적이고 단편화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 한계를 깨고  그 여성의 내면에 들어가 그녀의 목소리를 대변할 수 있는 작가가 윌리엄 트레버라고 생각한다. 


이야기에는 필연적으로 작가의 세계관이 윤리관이 투영될 수밖에 없다. 익명으로 죽어간 소녀들을 흔들어 깨우고 그녀들의 이름을 찾아준 이 대작가에게 진심으로 경의를 표할 수밖에 없다.










▶에세이




체코의 국민작가인 차페크의 열두 달 정원에 관련한 글이 맞다. 맞는데 신변잡기 에세이가 아니다. 묵직하고 감동적이고 심오하다. 그런데 동시에 귀엽고 사랑스럽고 웃음이 절로 나온다. 


정원과 사랑에 빠진 중년 남자가 그 정원의 땅 위에 우스꽝스럽게 엎드린 모습이 그 작가의 형의 삽화로 직접 재현된다.


세계적인 작가의 정원 가꾸기 분투기는 이 작가의 책을 더 읽어보고 싶게 만드는 최고의 홍보문이다. 










▶기타



전설적인 시나리오 작법서. 영화 제작자나 작가가 되려는 사람들의 교본처럼 칭송되는 책이지만 그런 것과 전혀 무관한 그 누구에게도 권하고 싶을 정도로 좋은 책이다. 인간의 본성과 삶에 대한 이야기가 그 어떤 철학자나 소설가보다 흥미롭고 깊이있게 얘기되는 책이다. 심지어 인간 관계에 대한 고민이 있다면 심리학이나 처세술이 아니라 이 책에서 의외의 출구를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야기의 원형을 이야기하며 인간에 대하여 이야기할 수밖에. 












유럽의 그림책 작가들에게서 그들의 그림책에 대한 이야기뿐 아니라 부모로서 아이를 키우는 자세에 대한 금과옥조 같은 조언들을 들을 수 있었다. 자신을 오늘날의 작가로 성장시킨 유년에 대한 진솔한 이야기들은 아이를 키우는 부모로서 가장 가치를 두어야 할 부분이 무엇인가에 대한 성찰을 가능하게 한다. 








2022년에는 더 행복해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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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집 2021-12-28 19: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more and more 행복해지시길~

blanca 2021-12-29 07:40   좋아요 0 | URL
덕담 감사합니다. 기억의집님도 점점 더 행복해지기를...

stella.K 2021-12-28 19: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내년엔 더 행복해질 거예요.^^

blanca 2021-12-29 07:40   좋아요 1 | URL
스텔라님도 같이 행복해져요. 감사해요.

psyche 2021-12-29 10: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옛날옛날에 읽은 죄와 벌을 빼고 읽은 책이 하나도 없네요. ㅜㅜ blanca님 더 행복한 2022년 되시길!

blanca 2021-12-29 16:28   좋아요 0 | URL
프쉬케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항상 건강하시고요!
 

코로나 시대에 생명의 무게를 생각해본다. 특히 요양원과 중환자실에서 코로나에 걸려 사경을 헤매는 그들의 존재를. 어떤 것이든 드러내어 놓고 말하기 힘든 기준 아래 익명화되는 그 존재의 존엄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리다. 그것이 정말로 어쩔 수 없는 일일까. 언제까지나 남의 일이 될 수 없는 그 나약함. 


"하지만 인간의 목숨이 그 무엇보다 소중한 것이라 해도, 우리는 항상 무언가가 인간의 목숨보다 더 값진 것처럼 행동하죠."

-생텍쥐페리 <야간비행>


















가여운 이들.흔들리는 가여운 불꽃들. 더듬거리며 말하는 별들. 이 모든 것들에도 불구하고 이들에 대한 사랑스러운 점은 바로 살아있다는 것이다.

-크리스티앙 보뱅 <환희의 인간>



















크리스티안 보뱅의 아버지는 마지막 1년을 알츠하이머로 요양원에서 보낸다. 보뱅이 요양원의 노인들을 보고 쓴 글은 우리가 그들을 바라보는 시선의 편협함을 일깨운다. 자본주의의 눈먼 경쟁에서 밀려나 타인을 짓밟고 올라설 필요가 없는 그들의 존재가 가지는 가치에 대하여 보뱅은 얘기한다. 그리고 그렇게 살아있음이 가지는 그 계량화될 수 없는 의미에 대하여. 


코로나 시대에 이야기되지 않는 것들을 이미 이야기한 작가들의 글에서 위안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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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12-25 00: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블랑카님! 🎄 ℳ𝒶𝓇𝓇𝓎 𝒞𝓇𝒾𝓈𝓉𝓂𝒶𝓈 🎅🏻
。゚゚・。・゚゚。
゚。  。゚
 ゚・。・゚
⠀()_/)
⠀(。ˆ꒳ˆ)⠀
ଫ/⌒づ🎁

blanca 2021-12-25 11:05   좋아요 1 | URL
오, 귀여운 토끼가. 스캇님도 메리크리스마스!

그레이스 2021-12-25 21: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야간비행!
너무 오래전에 읽어서 다시 읽고픈 소설이예요.~♡

blanca 2021-12-26 09:59   좋아요 0 | URL
정말 아름다운 이야기라 이렇게 좋은 이야기를 이제서야 읽다니 하며 놀랐답니다.
 
밀회
윌리엄 트레버 지음, 김하현 옮김 / 한겨레출판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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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역시 윌리엄 트레버라는 생각이 들었다. 스산하고 아름답다. 사십대, 오십대, 십대의 주인공들의 내면의 풍경이 다른 시공간을 넘어 읽는 이들 누구에게나 공감을 얻을 수 있는 원형을 중심으로 그려진다. 쉽게 쓰여지지 않은 작품인만큼 쉽게 읽히지는 않는다. 휘리릭 넘길 수는 없는 이야기들이다.


오랜 결혼 생활을 하고 이제는 망자가 된 남편의 시신이 아직 집에 있는 상태에서 방문객을 맞은 아내의 마음은 어떤 것일까. 슬퍼하고 애도할 수 없는 나의 마음을 그 수녀들에게 들키기라도 한다면. 남편이 나를 사랑해서가 아니라 내가 소유한 집을 보고 선택한 전력을 내가 이미 잘 알고 있었다면. <고인 곁에 앉다>는 그런 이야기다. 사랑했던 남편과의 작별을 슬퍼하는 아내가 아니라 계산적이고 자주 욱했던 고인의 곁에 앉은 담담한 아내. 그 아내를 의아한 눈길로 바라보게 되는 수녀자매. 


중년의 남녀가 일종의 소개 업체에서 만나 소개팅을 하는데 서로가 전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그런데 그 점을 차라리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각자가 원하는 것을 대담하게 고백할 수 있는 관계가 된다면. <저녁 외출>은 엉뚱한 발견의 즐거움이 있는 작품이다. 나는 꼭 차 있는 여자와 만나야 한다는 그 내밀하고 언뜻 저급해 보이는 욕망에 솔직해질 수 있는 여자와의 만남은 분명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구태여 애프터를 하지 않아도 되는. 이렇게 헤어져도 괜찮은 그런 만남에 대한 이야기. 어떤 목적을 가지고 만난 남녀가 그 목적을 이루지 못하더라도 소통하게 되는 흩어지지 않는 시간에 대한 기록.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주며 주로 책에 관한 이야기만을 하며 맺게 되는 결혼한 남자와 여자의 관계는 도덕적으로 용인될 수 있을까. 어떤 죄책감을 끝까지 가지고 가야 하는 것인지에 대한 어려운 질문을 하게 되는 작품이 <그라일리스의 유산>이다. 남자가 먼저 죽은 여자의 그녀의 유산을 거부함으로써 얻게 되는 윤리적 자긍심은 어떤 의미를 지니는 것인지에 대해서도 질문을 던진다. 


<로즈 울다>는 늙은 과외 선생에게서 수업을 받음으로써 의도치 않게 그 시간을 활용한 젊은 아내의 외도를 돕게 되는 소녀가 느끼는 비애에 대한 것이다. 그들의 외도를 스승과 제자는 알아차리고 그 패배감, 배신감, 비애를 공유한다. 소녀는 그 사연을 친구들과의 가십거리로 전락시킨 것에 대해 아픈 죄책감을 가지고 있다. 트레버는 소녀가 나이 든 남자의 무력함을 알아차리며 느끼게 되는 고통을 그녀의 성장통과 기민하게 연결시킨다. 둘의 눈이 마주치고 동시에 느끼게 되는 슬픔의 지점은 각기 달랐지만 그것이 향해가는 것은 인간이 타인과 영원히 평행선을 그릴 수밖에 없다는 그 거리감에 대한 통찰에서 만난다. 


영원할 것 같은 사랑은  결국 기만당하고 현재는 언제나 과거를 좀먹는다. 그렇다고 거기 있었던 찬란했던 순간들이 가뭇없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는 트레버식의 의미 부여는 언제나 감동을 준다. 우리가 원하거나 예상했던 대로 나아가지 않는 인생의 흐름이 무의미로 수렴되는 것은 아니라는 깨달음은 이 거장이 언제나 세상에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로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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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12-21 16:0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 작품에서 저도 <로즈 울다> 여러번 읽고 또 읽으면서 그 순간 그 장면을 음미 했습니다 트레버의 문장은 단 한문장이라도 지나칠 수 없죠.^^

blanca 2021-12-21 21:55   좋아요 1 | URL
스캇님, 이미 읽으셨군요! <로즈 울다> 참 좋죠. 이런 건 트레버밖에 못 쓸듯...트레버는 소녀, 중년 여자의 심리 묘사에 가장 탁월한 남자 작가인 듯해요. 보통 뛰어난 작가라도 이성의 묘사는 단편적이거나 단순한데 트레버는 그런 면에서 정말 놀라운 작가 같아요.

나뭇잎처럼 2021-12-23 10:5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 윌리엄 트레버 신간인가요? 저 진짜 윌리엄 트레버 좋아하는데. 넘 좋아서 낭독해서 읽기도 하고, 필사도 하고. 국내에 나온 건 다 읽고, 원서도 많이 찾아 읽었죠. 윌리엄 트레버 좋아하시는 분 만나니 넘 반가운데요? 파리 리뷰에 나왔던 윌리엄 트레버 인터뷰가 생각나네요. 그렇게 좋은데 우리나라엔 많이 안 알려진 것 같은 느낌도 들고. 왜 좋냐고 물으면... 음. 참 딱 말하기 어렵지만. 깨닫지 않고서는 저런 글을 쓸 수 없다, 는 정도로 대답할 수 있을 거 같아요. 날씨가 아주 침착한 날, 다시 꺼내들어야겠어요. ^^

blanca 2021-12-23 11:10   좋아요 2 | URL
나뭇잎처럼님 반갑습니다. 저도 엄청난 팬입니다. 윌리엄 트레버는 대가죠. 어떤 사소한 이야기도 강력한 울림과 깊이를 지니고 있게 만드는 마력을 지닌 작가 중의 작가라고 생각합니다. <펠리시아의 여정> 같은 작품은 정말 살떨릴 정도로 좋았어요. 서구 사회의 백인 나이든 남자 작가가 어떻게 이렇게 처절하고 아름답게 이름 없이 죽어간 소녀들의 이름을 찾아주는 하나의 애도를 이야기로 할 수 있을까 경이로울 정도였습니다. 신간 단편집인데 사실 번역이 늦은 거고 시기상으로는 이미 읽으셨을 가능성도 높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