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이 다 부러워하는 좋은 회사에 입사했는데 그 회사의 실체 자체가 거대한 사기에 불과하다면. 게다가 회사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에 대하여 나는 이미 기밀을 유지하기로 맹세를 했고 그 약속을 어길 경우 어마어마한 재정적 손실과 더불어 가족의 안위에 대해서도 협박을 당하게 된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회사를 박차고 나오거나 내부에서 일어나는 부조리하고 불합리한 일들을 외부에 드러낼 수 있을까.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런데 실제로 미국에서 그런 일이 일어났다. 신변을 위협하는 온갖 협박과 회유 속에서도 흔들리거나 포기하지 않고 취재한 용감한 저널리스트가 있었기에 이 일은 비로소 세상 바깥으로 드러날 수 있었다. 자신의 신원이 드러나는 위험을 무릅쓰고 회사에서 일어났던 일들을 증언해 준 수많은 내부 고발자들이 없었다면 어쩌면 이 엽기적인 사기극은 현재진행형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게다가 이 기업은 평범한 제도,도소매, 서비스 회사가 아니라 의료 기업이라 환자의 생명과 건강을 위협할 수 있었다. 








스탠퍼드를 중퇴한 젊은 백인 금발 여성이 창업한 최첨단 스타트업 기업 '테라노스'는 자가 기기를 이용하면 간단한 손가락 끝의 채혈을 통해 수백 가지 질병을 조기 진단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는 실리콘 밸리에서도 수많은 사람들을 현혹시킨 환상적인 서사 그 자체였다.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등의 중년 남성 창업자들의 거대 신화를 흔든 엘리자베스 홈즈의 등장은 시의적절한 것이었다. 기술업계, 의료계, 정재계가 그 신화를 더 확장하고 심화시키는데 열광적으로 동조했다. 그러나 정작 회사 안에서는 그 신화의 기반 자체가 없었다는 것을 발견한 직원들의 동요가 있었다. 어설프게 만들어 낸 제품은 기본적인 검사 과정에서도 오작동했고  테라노스는 대신 타사의 제품을 상습적으로 몰래 이용하여 산출된 결과를 버젓이 이용하기도 했다. 이런 사기의 결정체에 루퍼트 머독, 헨리 키신저, 조지 슐츠의 거액이 투자됐다. 각자의 분야에서 백전노장인 그들조차 완벽하게 속았다. 


이 사기극과는 별개로 회사 내부에서 일어난 직원들의 착취의 수준 또한 심각했다. 엘리자베스의 숨겨진 연인으로 추정되는 인도인 서니는 직원들을 수시로 감시하고 자신의 수족처럼 부리려 했고 거기에 반항할 경우 모든 직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경비원에 의해 끌려 나가게 하는 드라마틱한 장면을 연출했다. 심지어 화학자 출신의 성실하고 열정적이었던 직원은 테라노스에 일하면서 겪은 일들로 결국 죽음에 이르게 된다. 아내가 회사에 전한 부고는 함께 일했던 직원들한테 전달조차 되지 않는다. 테라노스는 직원들을 소모품 취급했다. 이의를 제기하거나 진실을 궁금해하는 건 자사에 대한 도발로 간주됐다. 진실에 눈감고 아부하는 직원은 승진시켰다. 


그런 기업이 수조의 가치를 지니고 21세기의 경이로운 성취로 언론에 회자됐다. 엘리자베스는 스티브 잡스처럼 검은 터틀넥을 입고 나지막한 목소리를 꾸며내어 대중 앞에서 큰 눈을 깜박거리며 인도주의적인 청년 기업가처럼 행세했다. 정작 자신의 직원들의 존엄은 무참히 짓밟았던 그녀가 연기한 인본주의적 기업가의 모습에 모두가 속아 열광했다. 그 거대 집단의 믿음을 흔드는 일은 고독하고 위험한 시도였다. 


그런 의미에서 젊은 직원 두 명의 활약은 놀라웠다. 특히 국무 장관을 몇 차례나 지낸 조지 슐츠의 손자 타일러 슐츠의 내부 고발이 인상적이었다. 그는 테라노스에서 일어났던 일들을 월스트리트저널 기자인 저자 존 캐리루에게 증언함으로써 할아버지와 척을 지고 테라노스의 무시무시한 협박, 감시의 대상이 된다. 그럼에도 끝까지 그들의 회유에 굴복하지 않았다. 그가 젊었기에 또 부유한 집 출신이었기에 그럴 수 있었다고 얘기할 수도 있지만 그렇기에 그는 더더욱 그 일에 휘말릴 필요가 없다고 합리화할 수도 있었다. 무엇보다 집안에서 실권을 쥐고 있는 할아버지는 손자보다 테라노스의 엘리자베스를 더 믿고 싶어했다. 저자인 존 캐리루도 이 젊은이의 윤리의식에 깊이 감명 받았다고 반복해서 얘기하고 있다. 그와 친하게 지냈던 에리카 청은 테라노스로부터 신변의 위협을 느끼면서도 기꺼이 회사의 잘못된 실험 관행을 당국에 신고했다. 


<배드 블러드>의 저자는 후반부에서야 비로소 자신을 드러낸다. 그 전까지 테라노스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시종일관 거리를 두고 담담하게 서술됨으로써 독자는 이 기묘한 사기극의 실체가 십 년 넘게 외부로 노출되지 않고 유지될 수 있었던 그 동인을 스스로 찾아나가게 된다. 모두가 바랐던 미래의 최첨단 진단 기술. 자극적이고 화려한 홍보술 이면에는 산업혁명 시대에나 어울릴 법한 인간의 인간에 대한 착취와 억압이 있었다. 가족의 생계를 등에 걸머진 직원들은 침묵하거나 아프거나 나갔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여전히 의문을 제기하고 의심의 단서를 놓지 않았던 몇몇의 사람들, 그들을 지지하고 믿어준 사람들, 의사로서 한 히포크라테스의 선서의 본질을 기억했던 이들이 있었다. 사랑하는 남편의 마지막을 지켜주지 못한 아내의 망부가가 있었다. 그리고 이것은 결국 거대한 허구 속의 실낱 같은 진실을 비로소 세상에 드러나게 했다. 


21세기, 미국의 실리콘밸리에서 일어난 일은 그래서 명암을 동시에 품고 있다. 인간은 어리석고 때로 악독해지지만 여전히 그 안에 자정의 힘을 품고 있다. 악은 창궐하지만 그 안에서 선은 끝내 죽지 않는다. 인간은 인간을 이용하지만 존엄한 인간을 끝까지 파괴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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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부만두 2022-01-26 10: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시의적절한 독서를 하셨네요! ^^

blanca 2022-01-26 14:08   좋아요 0 | URL
^^ 감사합니다.

다락방 2022-01-26 11:4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페이퍼가 너무 좋아서 이 책 읽고 싶어졌어요. 왜 항상 다른 사람들이 읽는 책은 재미있어 보이고 꼭 읽어야할 것 같고 그럴까요?
이 책도 담아갑니다. (오늘 열 권 주문한 사람이...)

blanca 2022-01-26 14:11   좋아요 0 | URL
열...권이요? ㅋㅋ 그거 도착하면 인증샷 꼭 올려주세요. 대리만족 하게요. 저 이번 달은 이제 못 사요. 이북과 도서관 대여로 해결하자고 결심했던 게 엊그제 같은데... 이미 무너졌습니다.

하이드 2022-01-26 11: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정말 믿기지가 않죠? 뭐에(탐욕에) 눈이 씌워서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대단합니다. 엘리자베스 동영상 찾아보면 검은 목폴라에 목소리 저음 내는 것 나와요. 정말 이 세대의 전무후무한 스캔달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거 제니퍼 로렌스 주연 영화로 나오는데, 정말 잘 어울릴 것 같아요.

blanca 2022-01-26 14:12   좋아요 1 | URL
오, 영화로 나오는군요. 이 책 자체가 영화 같아요. 너무 놀라운 게 이런 사기극이 일이 년 지속되었다 해도 놀랄 텐데 자그마치 십 년 넘게 유지됐다는 것 자체가 엽기적이에요. 게다가 엘리자베스 소송 중에 재벌남 만나 결혼하고 아이도 낳았다고 해서 또 놀랐어요.

레삭매냐 2022-01-26 13: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얼마 전에 김지윤 박사가 진행하는
프로그램에서 <배드 블러드>의
주인공을 다룬 프로그램을 본 기억
이 나네요.

증권거래 주작질 혐의는 유죄지만
혈액 검사로 환자들을 농락한 죄에
대해서는 무죄 판명이 났다는 점이
정말...

노친네들이 돈에 눈이 멀어 희대의
사기꾼을 비호하는 장면은 상상이
가질 않네요.

blanca 2022-01-26 14:15   좋아요 0 | URL
저도 그거 봤어요. 자살한 직원도 있는데...어떻게 그런 판결이...오히려 환자들 혈액 검사로 그런 사기를 친 거에 대해서 더 중벌을 내려야 하는 것 아닌가요? 테라노스 근무 환경 묘사해 놓은 거 읽으니 정말 부글부글 끓더라고요. 지옥 같았어요. 생계를 위해 참고 다녀야 했던 사람들 생각하면...

persona 2022-01-26 13:4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애시당초에 피 한방울로 그런 걸 알 수 있을 리가 없는데 그런 기술 있다고 해서 한참 이해를 못했던 기억이 있네요. 일본에서 만능세포 발견했다는 이야기도 어이없었어요. 둘다 어린 여성이 나와서 세상을 들썩이길래 응원해주고 싶었지만 그게 잘 안되더라고요. 그런데 저는 정작 황우석 박사님 이야기는 다 사실이라고 생각하고 믿었던 거 같아요. ㅎㅎㅎ 에휴. 저는 돈 관련 부분 보다도 더 나쁜 게 직원을 죽음에 이르게 한 것과 기술에 희망을 걸었던 환자들에게 실망을 안겨줬다는 점 같아요. 그런데 요즘도 마이크로칩 음모론 이런 거 들어보면 참 얼마나 사람이 호도되기 쉬운 건가 싶어져요. 아무리 초소형을 개발하려고 해도 더이상 불가능한 사이즈라는 게 있거든요. 피에 포함되는 정보도 한계가 있을테고요.
예전에 읽었던 카길에 대한 책이나 삼성을 생각한다, 버거의 상징도 떠올라요. 진실을 좇는 행위를 막는 게 의미가 있을까요?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는 없는 걸텐데요.
리뷰 진짜 멋져요. 많이 공감되고요. 좋은 책 추천 감사드려요. ㅎㅎㅎ

blanca 2022-01-26 14:20   좋아요 2 | URL
여러가지가 연상됐어요.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기꺼이 속아줬다는 게 의미심장한 것 같아요. 그 와중에도 협박 받으면서도 끝까지 양보하지 않은 내부 고발자들이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면서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가정해보게 되더라고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persona 2022-01-26 14:31   좋아요 1 | URL
그렇네요. 기꺼이 속아줬던 사람들도 있었겠죠? 되게 절박한 사람들이었을텐데. ㅠㅠ
 

남고가 내려다 보이는 집에서 산 적이 있다. 쉬는 시간, 점심 시간만 되면 시계처럼 남학생들의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렸다. 그런데 정말 그날은 무슨 일이 난 줄 알았다. 거의 포효 수준. 무슨 큰일이라도 난 줄 알고 바깥을 내다보니...


함박눈이 내리고 있었다. 남자애들은 운동장에 드러눕고 눈사람을 만들고 눈싸움을 하고 무슨 대단한 축제라도 벌어진 양 비명을 지르고 엎어지고 웃고...나도 저런 시절이 있었을까? 절로 웃음이 났다. 아직 이 아이들은 어른이 아니구나.


그런데 어제의 눈은 다르게 다가왔다. 눈이 오면 길이 미끄럽다, 미끄러운 길에서 넘어지면 골절이다, 라는 이 재미없는 명제에 집착해서 조심조심 땅을 딛고 가느라 긴장으로 온몸이 경직됐다. 오랜만에 내린 함박눈의 낭만은 전혀 생각도 못하고 춥고 힘들다,는 생각만 가지고 더듬더듬 길 위를 다니는 내 모습이 참. 나도 나이가 많이 들었구나, 싶었다. 눈이 오면 신나서 막 환호성을 지르던 시간은 벌써 저만치 물러가고. 
















소설가 이상우는 잘 알려져 있지 않은 것 같다. 정지돈 작가의 책에 자주 등장하는 친구인데 호기심에 검색해 보니 2011년 <중추완월>이라는 작품으로 문학동네신인상을 수상하며 등단했다고 나와 있었다. 당시로서는 전형적이라 받아들여지지 않는 소설의 방식으로 엄청난 반응을 일으켰던 모양이다. 대단한 작품이었다,라는 게 중론이다. 언젠가 꼭 읽어보고 싶다고만 생각했는데 드디어 기회가 왔다. 


지금까지 읽은 그 어느 단편과도 달랐고 압도적으로 좋았다. 문장 하나하나가 잉여와 부족함을 모두 발라 본질만 남긴 것처럼 명료하다. 장소도 시간도 특정되지 않은 곳에서 살인과 시체의 처분이 일어난다. 과거의 기억과 심지어 자신의 정체성마저 박탈 당한 주인공이 '손'과 나누는 교감은 경악스럽기도 하고 애절하기도 하다. 읽기 편한 이야기는 아닌데 그 불편함이 단순히 자극적인 말초적 감각에 기대는 것이 아니라 여운이 길다.


"어차피 우리는 갈 곳이 없잖아."라는 주인공의 독백, 대화에 절로 숨이 멈춰졌다. 중추절, 갈 곳도 불러주는 곳도 없는 그 틈새에서 타인의 손과 나누는 유대라니...

















카렐 차페크의 인생은 길지 않았다. 그는 노년으로 진입하지 못한 채 죽었다. 그의 앎은 그래서 중년에서 머물렀을까? 아니면 그 너머로 더 빨리 단시간에 뻗었을까. 후자라고 생각한다. 내가 막연하게 자주 생각했던 한 인간의 다양한 정체성에 대하여 다각도로 다면적으로 접근한 이야기. 평범하고 성실한 한 인간의 내면에 얼마나 다양하고 복잡한 인간의 군상들이 모여 있는지 형상화한 대목들. 애거서 크리스티도 이야기한 적이 있다. 오늘의 의인이 내일의 좀도둑이 될 수도 있는 게 인간이라고. 절대적으로 선한 사람과 절대적으로 악한 사람이 있다고 믿는 순간 우리는 쉽게 한 인간의 삶을 이야기하는 것이 가능하겠지만 인생은 결코 정합적이고 일관된 스토리라인으로 구성할 수 있는 손쉬운 글감이 될 수 없다. 그 모순과 어그러짐 자체가 생명의 역동성이다. 
















철학자 존 캐그가 윌리엄 제임스의 "실존적 생명 구조법"을 알려주고자 한 책이다. 프래그머티즘의 창시자로서의 제임스의 이야기들은 제임스의 삶과 저자 캐그의 삶과 독자의 삶을 한데 모아 비로소 이해된다. 


프래그머티즘이라는 집은 대리석으로 지은 숭배의 장소가 아니라 거주하면서 세계와 만나는 장소다.

-존 캐드 <아픈 영혼을 위한 철학>


나의 경험의 틀 안에서 실재를 찾기란 쉽지 않다. 그 실재는 주관적이고 가변적이나 무용한 것이나 무의미한 것은 아니다. 내가 어제 경험하며 정립한 나만의 그것은 오늘 기꺼이 다른 경험에 의해 수정될 수 있다. 그 가변적인 지점을 인정할 때 삶은 무의미에서 벗어난다. 내가 진리라 믿었던 것들이 붕괴된다고 해서 바로 무의미로 추락하는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제임스도 캐그도 예기치 않았던 삶의 난관을 통과하며 그들 자신의 절대적이었던 가치들을 수정하고 보완하며 나아갔다. 우리의 삶은 끊임없이 신선하다. 나날이 개선된다. 그 믿음이야말로 윌리엄 제임스가 시종일관 잃지 않았던 인생에 대한 낙관이다. 


그러니 내리는 눈은 다른 의미에서 여전히 아름다울 수 있다. 꼭 눈싸움을 하거나 거기 위에서 구르지 않아도 느낄 수 있는 희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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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22-02-10 22: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blanca 2022-02-11 08:47   좋아요 0 | URL
헉, 감사합니다.
 
요즘 애들 - 최고 학력을 쌓고 제일 많이 일하지만 가장 적게 버는 세대
앤 헬렌 피터슨 지음, 박다솜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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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깝게 혹은 다행히도 밀레니얼 세대가 아니다.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IMF가 터졌고 졸업 전후까지 이 여파로 여러 대기업 공채들이 취소되거나 규모를 줄여 취업난을 호되게 겪기도 했다. X세대로 명명되어 거침 없는 자기 표현, 문화의 소비 주체로 인식된 시기를 잠시 겪기는 했지만 그것을 나의 정체성으로 진지하게 받아들였던 적은 없는 것 같다. 당시만 해도 어떤 세대의 명명은 하나의 마케팅 전략의 일환으로 이용된 감이 있다. 그 세대의 본질적 특성에 대한 진지한 사유의 결과는 아니었다는 느낌이다. 모두의 삶은 개인적인 것이고 구조적인 것이 아니라는 얕은 사견이 깨어지는 데에는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지만 노동자로서의 삶, 기성세대가 구축해 놓은 체제에 대한 비판적이고 심오한 인식이 따라온 것은 아니었다. 


반면 오늘날의 세대의 명명은 진지한 만큼 더 어두운 그 세대만의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밀레니얼 세대. 1980년대 초부터 2000년대 초에 태어나 IT 기기를 필수품처럼 접하며 자라난 세대. 경제적 풍요와 번영을 누리며 집중 육아로 자라나는 가운데 미래의 꿈을 선언하며 그 꿈에 가 닿는 직진 경로로 교육을 통한 명문대에 진학하는 게 모범답안처럼 제시되던 세대. 그러나 막상 사회로 나왔을 때에는 약속 받았던 직장도 미래도 실종된 곳에서 그 어느 세대보다 많은 시간 고되게 일하며 번아웃되는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 이 책의 저자 앤 헬렌 피터슨 본인이 속한 세대이기도 하다. 이 이야기는 저자 피터슨이 자신의 "사적 이야기를 확장하고 상술하려는 시도의 결과물"로서 "우리 자신을, 우리의 번아웃에 기여한 체제들을 명징하게 보여주는 어휘와 틀을 창조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것은 비단 미국에 사는 밀레니얼에게만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라 2022년 이 지구상의 자본주의 사회에서 생존을 도모하느라 분투하고 있는 우리 모두가 열렬히 공감할 수 있는, 인간 존재가 시장 논리 안에서 그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자신을 소모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에 대한 명징한 분석틀이다. 그런 의미에서 <요즘 애들>은 요즘 애들이 아니어도 미처 깨닫지 못했던 거시적인 그림 안에서 나를 바라볼 수 있게 하는 의미 있는 프리즘을 제공해준다. 


밀레니얼들은 수십 년 동안 특별하다는 말을 듣고 살았다. 우리 개개인은 잠재력으로 가득하다고.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 잠재력을 부모와 달리 돈 걱정 없는 완벽한 삶을 만드는데 발휘하는 것이라고. 하지만 베이비붐 세대는 자녀들을 일자리에 맞추어 기르고 최적화하는 사이에 그런 삶을 가능하게 만드는 보호 장치들을 사회적, 경제적으로 해체시켰고, 직장에서 없애버렸다. 

-pp.165


절로 고개가 끄덕여지는 이야기다. 밀레니얼들의 부모들은 자녀들의 기대치 자체를 무한하게 끌어올림으로써 무엇이든 가능하다는 비전을 주고 정작 산업 현장에서는 최대한의 이윤을 내 주주들에게 이익을 돌려주기 위해 노동자들을 절감해야 하는 비용으로 치환 시켜버렸다. 우리는 산업 현장에서 최소한의 보호 장비도 없이 청년들을 착취한 사례를 잊을 만하면 듣게 된다. 그들의 비참한 처우는 사고가 나야 비로소 수면 위로 떠오른다. 표면화되지 않은 은밀한 착취들은 헤아릴 수조차 없을 것이다. 

이는 양육 과정 자체를 근사한 이력서로 탈바꿈시키기 위해 뛰어들었던 마음과 그 시장 가치가 곧 존재 가치로 치환될 때 무시할 수 있는 인생과도 통하는 이야기다. 즉 기업의 이익에 기여하지 않는 노동자의 삶은 이야기될 가치도 없는 것으로 무화되는 경향성이다. 그러니 이 모든 일은 하나의 부수적인 부작용이 아니라 "요즘 애들"을 양육하며 그들을 통해 키웠던 그 자본주의적 계층 상승의 꿈과 떨어져 이야기될 수 없는 맥락을 가지고 있다. "요즘 애들"과 우리 모두의 번아웃은 결국 우리 모두가 공모한 결과라고 이야기해도 무리가 없을 정도다. 


이 책의 한계는 그런 구조적인 문제들을 노출함과 동시에 결국 거대 담론화시킴으로써 개인의 역할을 모호하게 만들어 버린 것과 동시에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이렇게 살 필요는 없다"고 각성 시키는 지점이다. 우리가 이렇게 하루하루 탈진할 정도로 자신의 에너지를 일에 쏟고 그 틈새에  SNS의 타인들의 자기 과시적 삶을 순회하며 비교와 불안으로 소진되는 하루하루가 삶을 채우는 것을 방관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 그 가능성의 통로를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는 생각이 들지만 상황이 급진적으로 개선되기는 어렵겠다는 절망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그것은 생존과도 통하는 이야기다. 사는 일은 많은 것들을 합리화한다. 기업이 이윤을 창출해내지 않는 일은 실패로 규정된다. 그리고 그 이윤을 가장 쉽게 가시화시키는 것은 더 많은 비용을 절감하는 것이고 그것이 인건비가 될 때 근로자들의 삶은 간과된다. 더 많은 사적인 시간을 포기하고 회사의 공적인 삶에 자신을 복무시킬 때 그것은 미덕으로 간주된다. 소비자로서의 우리의 정체성은 물가가 안정되기를 바라고 주식 투자자가 되면 배당을 받고 싶어진다. 그렇다고 우리가 그 이면의 노동자의 착취를 의도적으로 간과하겠다는 의도를 가졌던 것은 아니다. 부모가 되면 자녀가 이왕이면 공부를 잘 하길 바라고, 이름 있는 대학 졸업장을 들고 취업을 잘 해서 빠른 경제적 독립을 이루기를 바라게 된다. 그것은 결국 이런 사회적 시스템에 순응하기를 바라는 지점에 저도 모르게 자녀를 던져 넣게 되는 것이다. 아이가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지만 이왕이면 경제적 어려움을 겪지 않기를 바란다. 이런 상충하는 욕망들의 집합소가 인간이라는 복잡다단한 존재들을 이루는 요소들이 아닌가. 그렇다면 세대의 번아웃은 출구가 없는 영원한 쳇바퀴다. 우리의 자식은 누군가의 근로자가 된다. 입으로 대의와 노동자의 기본권을 외치지만 정작 자영업자가 되어 아르바이트생의 노동에 기대다 그들이 어느 순간 4대 보험 보장을 요구하면 난감해 한다. 이렇게 자신의 번아웃을 주장하며 저도 모르게 타인의 번아웃을 조장하게 된다. 결국 피터슨의 냉소는 하나의 단서이자 전조가 된다. 

자신의 번아웃을 줄일 생각만 하지 말고, 당신의 행동이 어떻게 남의 번아웃을 부추기는지 생각해 보라는 말이었다. 

-pp.367


이렇게 살 필요는 없다. 그 말만큼은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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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트의 탄생 - 대한민국 브랜드 100년 분투기
유승재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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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명사가 된 고유명사 브랜드들의 역사를 통해 자꾸 그리운 과거가 소환되는 건 덤. 모두가 불가능을 얘기할 때 뚝심 있게 밀고 나가 우리만의 브랜드를 일궈낸 기업가들, 근로자들의 분투기가 드라마처럼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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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디에 에리봉 지음, 이상길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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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그곳은 내게 하나의 이름에 지나지 않았다."로 시작하는 여정. 그 이름은 저자 디디에 에리봉의 고향, 그가 "도망치고자 했던 나의 고장", 노트르담 대성당이 있는 파리 교외의 도시 랭스다. <랭스로 되돌아가다>는 사회학자이자 철학자인 디디에 에리봉의 회고록이자 자기 고백서이지만 사적인 자기 고백록에서 그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체험, 정체성 자체를 문학, 이론, 정치의 필터를 통해 낱낱이 해부하여 공적인 담론의 영역으로 확장시킨 경이로운 역작이다. 이런 유형의 책을 지금까지 경험해본 기억이 없다. 새롭고 혁명적인 방식의 오토픽션은 놀랍게도 십 년도 전에 나온 아버지 연배의 작가의 저작이었다. 그럼에도 이 읽기는 나를 뒤흔드는 차원의 것이었다. '나'와 내가 떠나온 '가족'을 이야기하며 그것을 객관화된 탐사의 여정으로 변모시킬 수 있다는 발견은 놀라운 것이었다. 



계급 탈주자


중세, 근대의 이야기가 아니라 현대 사회에서도 여전히 계급 탈주라는 개념은 공명한다. 디디에 에리봉은 노동자 계급 출신의 대학교수이자 사회학자다. 그의 가족들은 그가 차마 "사회관계자본"이라 여길 수 없는, 계층의 사다리의 하단부에 위치하고 있다. 그의 어머니의 육체 노동은 그가 "몽테규나 발자크의 강의를 들을 수 있도록 해주기 위한 것"이었다. 에밀 졸라 책은 읽어본 적도 없는 어머니가 "에밀 졸라풍"이라 묘사한 아버지의 죽음을 계기로 그는 떠나온 랭스로 돌아가 자신이 스스로를 발명해내야 하고 구축해야 했던 그 고통스러웠던 과거를 복기, 복원한다. 이 탐사의 미덕은 지독한 솔직함이다. 그는 스스로를 기꺼이 극단까지 해체한다. 자신의 위선과 위악과 속물성을 가감없이 언어화한다. 자신의 출신 계급은 내도록 그를 따라다니며 그를 괴롭힌다. 아는 척도 드러내어 놓고 싶지도 않은 가족들. 그러나 그런 가족들의 위치는 개인적인 것이 아니라 사회적 명명이었다는 깨달음은 그가 끝내 그들과 제대로 화해하지 않은 사실로 봉합되지 않는 부분을 저격한다. 정치적으로 노동자의 편이었지만 마음으로는 자신의 출신을 상기시키는 노동자들이 싫었다는 고백이 디디에 에리봉을 끌어내리는가? 그렇지 않다. 우리는 끝내 발화되지 않은 진실 속에 내재된 역설적 진실을 발견한다. 머리와 언어로 소외된 자들 편에 서는 건 쉬운 일이다. 정말 그들로 사는 것이 어떤 삶을 이야기하는지 뼛속까지 알기에 그들로부터 탈출하고 싶었다는 고백이 가지는 함의는 횡행하는 공허한 입장 표명이 가지는 그 무력하고 가식적인 정치적 행동의 병폐를 일깨운다. 



너 같은 사람들


이 책의 다른 한 축은 저자의 게이로서의 성정체성이다. 계급 정체성과 교차하는 이 정체성은 그의 모욕으로서의 역사다. 나는 동성애자들이 과거에 그렇게 많은 폭력과 모독과 모욕에 노출되는 위험 속에 있었는지 몰랐다. 그것들을 뚫고 스스로를 재발명해야 하는 그 사회를 지칭할 마땅한 언어도 없이 그것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속박했다. 에리봉의 어머니는 아들이 가지는 그 성적 정체성을 제대로 명명할 언어조차 차마 동원하지 못해 "너 같은 사람들"이라는 두루뭉술하고 애매모호한 언어를 가져온다. 그것은 그의 사회적 계급과 더불어 그의 "복수의 예속화 양태들"을 양산한다. 이 두 가지 예속화의 여정을 통과하며 스스로를 탈주자이자 재창조된 정체성으로 거듭나게 해야 했던 저자의 여정은 분명 그와 같은 극단적 상황을 경험하지 않은 나에게도 나의 과거와 성장과정, 내가 떠나온 고장을 다른 차원에서 돌아보게 하는 획기적 전기로서의 전범으로 작용했다. 나는 나 같은 사람들을 생각해봤다. 내가 지금 여기에 서 있기까지 통과해 온 경험들을 재조명하며 나는 내가 선택하고 만들었다고 믿었던 많은 것들이 사실은 사회적, 외부적 작용의 결과였음을 깨닫고 아연해졌다. 나를 만는 것은 비단 내가 아니었다. 모든 성장은 사적이고 개인적인 여정이지만 동시에 공적이고 구조적인 산물이기도 하다는 그 자명한 진실을 이제서야 깨닫는다. 


<랭스로 되돌아가다>는 비단 한 개인의 회고록이 아니라 읽는 자들 모두의 회고록으로 변환될 수 있을 정도로 거대하고 심오한 성찰의 열린 오토픽션으로 작용할 수 있는 책이다. 


우리의 과거는 여전히 우리의 현재다. 따라서 우리는 표명되고 창조되는 것이 아니라, 재표명되고 재창조된다. 

-pp.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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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1-03 12: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1-03 13: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얄라알라 2022-01-03 12: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랭스로 돌아가다]의 장르를 오토픽션이라 하는군요. 많은 분들이 꿈꾸는 글쓰기가 아닐까 싶어요. 저도 말끝에서 흉내라도 내고 싶어집니다.

blanca 2022-01-03 13:41   좋아요 1 | URL
자신의 삶을 이렇게 객관화며 돌아보는 행위는 쉽지 않아서 더 의미가 있는 것 같아요. 많은 사람들이 자기 합리화, 변호, 포장을 위해 회고록을 쓰잖아요. 그런데 이렇게 치부를 확 드러내는 글은 그리고 그마저 사회학적 렌즈를 통과시켜 해부하는 책은 처음 읽어봤어요. 놀라운 경험이었어요.

초란공 2022-01-03 13:2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소개해주신 글만으로도 강렬한 책인 것 같습니다. D.H. 로렌스의 영국에서만 계급문제가 고질적인줄 알고 있었는데, 생각해보니 아니 에르노도 자신이 노동자 출신인 걸 부끄러워한 고백이 기억납니다. 동성연애자였던 프랑스의 사상가, 철학자들의 고통과 고뇌를 염두에두면서 읽어야 겠어요. 좋은 책 소개해주셔서 고맙습니다.

blanca 2022-01-03 13:43   좋아요 2 | URL
초란공님 안 그래도 아니 에르노가 이 책에서 여러 번 인용됩니다. 사실 우리 사회에서 성공한 사람들이 쓰는 회고록은 그럼에도 불구하고에 방점이 찍히잖아요. 그런데 이 책은 그래서 여전히 내가 가진 결핍을 확 드러내는 게 놀랍도록 저한테는 충격이었어요. 심지어 그것을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관리하는 것이라고. 제가 가진 결핍도 들여다보게 되더라고요. 좋은 책입니다.

레삭매냐 2022-01-15 09: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중고책방에 떴을 때
주저하지 말고 사두었어야
했는데. 아쉽습니다.

blanca 2022-01-15 09:49   좋아요 0 | URL
헉! 이게 중고로 떴어요? 요새 신간은 거의 중고로 안 나오더라고요.

새파랑 2022-02-10 19: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Blanca님 당선 축하드려요 ^^

blanca 2022-02-11 08:47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서니데이 2022-02-10 22: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blanca 2022-02-11 08:47   좋아요 1 | URL
서니데이님, 감사해요.^^

공쟝쟝 2022-04-07 09:1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블랑카님 열심히 읽고 너무 좋아하시는 거 티나서 ㅋㅋㅋㅋㅋ 저도 열심히 읽고 좋아하게된 책이라 ㅋㅋㅋ 살짝 미뤄뒀다 이제 리뷰 읽어요. 저 역시 비슷한 이유로 책이 보내는 진동에 몸을 떨었던 것 같습니다!

blanca 2022-04-07 19:59   좋아요 1 | URL
솔직히 책 도착했을 때 처음에는 완독이 가능할까? 정말 좋은 책인가? 의심했어요. 그런데 점점 더 빠져들다 뭔가 저의 사고의 지평을 넓혀준 책이라고나 할까요? 사적 경험의 노출이 과도한 세상에서 자신의 경험을 공적인 장으로 어떻게 가져오는 것인가 그 지평을 보여준 책 같아서 두고두고 남았답니다. 그러면서 저 자신도 나름의 눈으로 분석해 보려는 시도를 하고 있더라고요. 물론 실패했지만요. ^^;;;

공쟝쟝 2022-04-07 21:58   좋아요 0 | URL
맞아요. 저도 그러더라고요. 실패라뇨! 용기내세요.😤 그도 오십세에야 이런걸 써냈으니 블랑카님도 저도 부단한 수행의 과정 (에리봉에 따르면 아스케시스) 중에 있으신 걸 거예요. ㅎㅎㅎㅎ

책읽는나무 2022-04-08 12: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제 공쟝님 리뷰 읽고 ‘읽고 싶어요.‘에 담아 뒀더니 오늘 이 책 관련 블랑카님의 리뷰를 읽어 보란 메세지가 제 북플에 떴더군요^^
관심있던 책이었기에 몰래 들어와 눈으로만 읽고 가려다가 용기 내어 잘 읽고 간다는 인사를 남기고 갑니다. 오랫동안 활동하시어 종종 블랑카님의 좋은 글들을 눈팅만 몰래 하고 갔었습니다. 오늘은 이상하게 이건 좀 아니지 않나? 란 생각이 퍼뜩 들게 되었고, 그래서 댓글도 서슴없이 남기게 되네요^^
좋은 책 소개글 앞으로도 계속 몰래 읽게 될테니 양해 바랍니다.
오늘 하루도 좋은 날 되시길 바랍니다.^^

blanca 2022-04-09 09:38   좋아요 1 | URL
와, 이런 따뜻한 댓글이라니요. 소중한 시간 내서 읽어만 주셔도 감사하죠. 그러고 보니 제가 참 오래 있었네요. ㅋㅋ 세월이 유수와 같다는 진부한 말이 실감납니다. 책읽는나무님 활짝 핀 봄을 만끽하시는 하루가 되기를 바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