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중앙>이었나 보다. 체르노빌원전에서 일하는 아빠를 둔 아이는 그 날도 어제처럼 평온하게 잠들었다 번쩍이는 섬광과 폭발음을 듣고 잠을 깬다. 아이가 놀라서 창가에 서 있는 장면을 그린 만화를 읽고 몇날 며칠을 잠을 못 이루었다. 원자력발전소가 터질지도 모른다는 걱정, 그땐 다 끝이라는 생각들로 밤새 잠을 못 이루었다. 두려운 상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선병질적이었던 나는 제대로 건수를 잡은 셈이었다.  

   

정말 그 어린 시절의 괴로움과 막연한 추측, 그리고 강한 고통을 주었던 이상하게 원근감 없이 보이는 인생관을 회상할 수 있다면, 어린이들이 느끼는 슬픔을 비웃지 말아야 한다.
-p.112 

어른이 되어가며 어제와 오늘과 내일의 그 단조로운 일상성을 체득해 나갔고, 나와 주변의 모든 사람들은 안전할 거라는 눈먼 믿음에 자꾸 중독되어 갔다. 그런데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외외성'과 '돌발적 비극'에서 언제나 비켜가는 행운은 없다는 것을 머리와 가슴으로 조금씩 알아 가게 되었다. 산다는 것은 때로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라는 것을 가끔은 떠올릴 수 있다.  

아름다운 물방앗간, 단란한 가족, 유달리 친밀감 있는 남매, 영롱한 유년기. 갑작스런 집안의 몰락, 그리고 칭찬받지 못할 사랑, 남매의 불화, 마을을 덮친 자연재해, 죽음...  

심판은 누구의 입에서건 나올 수 있다. 모질고 잔인하고 지각없는 거리의 부랑아라도 할 수 있다. 그러나 도움과 동정은 드문 것이다. 그런 까닭에 그것은 올바른 사람들에게 더욱 필요한 미덕인 것이다.
-p.380

커다란 재난에 처해 우리 삶의 인위적 껍질이 벗겨지고 우리 모두가 근본적인 죽음의 위기 앞에서 하나가 된 그런 순간에 어떤 싸움인들, 어떤 모진 행동인들, 그리고 어떤 상호불신인들 존속할 수 있으랴?
-p.422 

덜컹거리는 지하철 옆에서 중년의 남자는 갤럭시탭으로 재난기사를 읽고 있었다. 중독처럼 스마트폰으로 일본지진기사를 읽는 것이 갑자기 참혹하게 느껴졌다. 고개를 쑥 내밀어 그의 화면을 훔쳐 봤다. 시선을 깨달아 버린 듯 고개를 들어버리는 행동에 머쓱해져 150년도 더 넘어 떨어진, 하지만 마치 작가가 지금의 상황을 알고라도 있는 듯 덧붙인 얘기들을 가슴 아프게 담았다. 어떤 행동을 해도 무슨 생각을 해도 계속 불편하고 가슴 한켠이 무지근했다. 나는 그다지 올바르지도 미덕이 많은 인간도 아니지만 그냥 같은 인간이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슬퍼졌다. 역사적 과오와 종교적 특수성이 마치 아주 객관적인 심판의 기준이라도 되는 듯 하필 이 시점에서 언급되는 것은 참으로 잔인하고 얄팍해 보인다. 죽고 있지 않은가. 아이들도 어머니들도 아버지들도. 인간의 입으로 심판 운운하는 작태가 역겹다.

<플로스 강의 물방앗간>의 1권을 읽는 동안 행복했었다. 작가 조지 엘리엇 특유의 위트와 재기는 물방앗간집 남매의 유년을 사실적이고 사랑스럽게 채색한다. 완벽하지 않은, 하지만 그런대로 행복한 가족의 과거는 언제나 유쾌하다. 아버지의 파산이후로 전개되는 2권은 바깥의 일들과 맞물려 허덕거리며 읽었다.  섬뜩한 오버랩. 책을 읽는 행위가 사는 일과 겹칠 때 삶은 더 가볍게도 무겁게도 들썩인다.

여주인공 매기가 아버지를 몰락에 이르게 한 사람의 곱사등이 아들과 사랑에 빠지는 구성은 의외로 신파적이지 않다. 그것은 수많은 나쁘고 추한 것들에서 좋은 것들을 항상 기대할 수밖에 없는 우리의 그 진저리처지는 관성에 대한 통찰을 놓치지 않은 작가의 저력때문인 것 같다. 남다르게 지냈던 사촌의 연인과 위험한 사랑으로 미끄러지는 그 위험한 도발의 묘사의 결은 놀라울 정도로 섬세하고 예리하다.  그리고 마을을 덮친 홍수. 매기는 자신의 사랑 때문에 불화했던 오빠 톰과 함께 그 물에 쓸려간다. 매기는 끊임없이 자신을 심판하고 단죄하려 했던 세상을 향해 무기력한 저항과 기만적인 순응의 양단 사이에 위태롭게 매달려 있던 자신을 그냥 놓아 버린다. 이런 허무하고 슬픈 결말.

에필로그에서 '자연의 상흔은 치유된다'는 구절이 절절하게 느껴졌다. 믿고 싶지만 큰 공감을 할 수 없었다. 이백 년 가까운 세월을 질러 돌아온 재해는 인간이 무언가를 좌지우지할 수 있다고 믿고 휘둘렀던 남용된 힘과 만나 엄청난 상흔을 남겼다. 이 상흔도 치유될 수 있을까? 아이가 되고 싶다. 걱정하는 것들이 다 기우라고 나만 믿으라고 어깨를 다독거려 줄 보호자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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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시간이라는 위대하고 보편적인 위안자_1759년에 쓴 어느 철학자의 상상
    from Value Investing 2011-03-16 09:51 
    중국이 갑자기 지진으로 사라져 버렸다고 상상해 보자 251중국이란 대 제국이 그 무수한 주민과 함께 갑자기 지진으로 사라져 버렸다고 상상해 보자. 그리고 중국과는 어떠한 관계도 갖지 않았던 유럽의 어떤 인도주의자에게 이 가공할 만한 재앙의 보도가 전해졌을 때, 그가 어떤 영향을 받을 것인지를 상상해 보자.* * *인생의 변화무쌍함과, 이렇게 일순간에 파멸되는 인류의 모든 노동의 창조물의 허망함에 대하여 251∼252나의 상상으로는, 그는 무엇보다도 먼저
 
 
꿈꾸는섬 2011-03-15 22: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연의 상흔은 치유된다...라는 구절의 말을 믿어야할 것 같아요.
침착하게 대응하는 일본인들을 보며 그저 놀라울뿐이에요. 나라면 어땠을까 생각하면 눈물만 나더라구요.ㅜㅜ


blanca 2011-03-16 22:52   좋아요 0 | URL
상황이 수습되는 게 아니라 점점 더 악화일로를 치닫는 것 같아 참 절망적이에요. 산다는 게 참 어려워요. 제발 더한 비극이 없기를 일본을 위해서도 우리를 위해서도 기원합니다.

양철나무꾼 2011-03-16 0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신을 심판하고 단죄하느라 얼마나 자기 자신을 후벼팠을까요?
자연의 상흔은 치유된다는 어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 모든 있어야 할 게 제자리에 있는 것이다'랑 같은 맥락이 아닐까요?^^

blanca 2011-03-16 22:53   좋아요 0 | URL
양철댁님, 제자리에 있는 게 얼마나 소중하고 아름다운 건지 정말 여실히 깨달아요. 그냥 지루하고 평온한 일상, 이게 가장 큰 축복이었다는 것을 왜 사람은 항상 까먹고 말까요?

비로그인 2011-03-16 04: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페이퍼를 읽는 것만으로도 이런저런 망언들 때문에 상처받은 사람들의 마음이 치유될 것 같은데요^^

blanca 2011-03-16 22:54   좋아요 0 | URL
후와님, 댓글이 참 따뜻하네요. 감사합니다. 저도 그러기를 바라요.

책가방 2011-03-16 09: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향력있는 자리에 있는 사람일수록 특히 더 말조심을 해야할 터인데... 안타깝더군요.


blanca 2011-03-16 22:56   좋아요 0 | URL
환멸이 드는 모습이지요. 오히려 더 모범 선례를 보여주어야 할 자리가 얼룩지는 것 같아 참 안타까워요.

oren 2011-03-16 09: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blanca님의 글은 거의 언제나 '마음속 깊숙한 곳에 자리잡은 형언하기 어려운 아픔과 슬픔과 외로움'같은 것들을 어루만지고 다독거리고 보듬어주는 따스한 손길 같은 것이 늘 느껴집니다.

저도 '일본 대지진'을 접하면서 떠올랐던 몇몇 생각들과 blanca님의 이 글을 읽으면서 떠올렸던 생각들 때문에 최근에 읽었던 책을 다시 펼쳐 들었었는데, 그 책의 '일부 내용들'을 한 데 모아 '먼댓글'로 정리해 봤습니다. 아무튼 저한테도 여러모로 도움이 되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blanca 2011-03-16 22:57   좋아요 0 | URL
oren님 과찬을 진짜라고 착각해도 될까요?^^ 예, 먼 댓글 찬찬히 잘 읽어 보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마녀고양이 2011-03-16 09: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블랑카님, 정말 아이가 되고 싶으세요? ^^
안전하다고 믿던 세상이 전혀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던,
진정으로 첫 충격이 오는 시기가 이르면 초등학생, 늦으면 중학생부터잖아요.
참 힘들었어요.........

저는 걸프전 발발 뉴스를 기억해요. 우리의 우방이라던, 선하다던 미국이 진짜 전쟁을 일으킬까 하면서
그럴 일 없다고 믿고 있었는데............ 어느날 속보로 뉴스에 나오더군요.
전쟁이란게 실존하는구나, 하고 굉장히 당황하고 충격받았던 기억이 나요. ㅠ

blanca 2011-03-16 22:58   좋아요 0 | URL
가끔은 엄마 뱃속으로도 들어가고 싶어져요^^;; 걸프전! 아, 저도 어렴풋하게 기억나요. 마고님, 오늘도 믿을 수 없는, 믿고 싶지 않은 뉴스들이 계속 속보로 뜨네요. 현실이 더 악몽 같아요.

2011-03-16 13: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3-16 22: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 2011-03-16 14: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왜 조지 엘리엇보다 <소년중앙>이 더 반가울까요? ^^

blanca 2011-03-16 22:59   좋아요 0 | URL
브론테님, 저 <소년중앙> 사달라고 어찌나 아부지를 많이 졸랐던지 몰라요. 매달 매달 사고 싶어 아주 가슴을 태웠던 기억이 나네요. 가끔 <보물섬>과 <어깨동무>도. 아, 다 그리워지네요.

반딧불이 2011-03-16 16: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망언을 일삼는 사람보다 블랑카님처럼 마음아파하는 사람들이 더 많다는 것에 위안은 가져봅니다.

blanca 2011-03-16 23:02   좋아요 0 | URL
반딧불이님, 그냥 지금은 다 같이 마음 아파하고 함께 이겨나갔으면 좋겠는데 또 분란이 생기나 봐요. 방사능 문제, 과거사 문제들과 겹쳐져. 어떤 게 정답인지 자꾸 다투지 말고 지금은 마음이 가는 대로 그냥 다 기다려 주고 인정해 주고 지지해 줬으면 싶어요.

노이에자이트 2011-03-16 17: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지 엘리엇이 영국의 전원풍경을 묘사하는 장면은 참...잔잔하고 좋죠...

blanca 2011-03-16 23:03   좋아요 0 | URL
아! 노자님, 그래요. 저도 정말 그게 너무 좋더라구요. 노자님 혹시 조지 엘리엇 <미들마치> 읽으셨어요? 완역본이 없다면서요. 왜이리 관심 가는 작가들은 번역본이 없는 건지. 참 아쉬워요.

노이에자이트 2011-03-16 23:07   좋아요 0 | URL
정말 좋은 소설이죠.시중엔 없고 광주엔 도서관에 금성출판사 세계문학전집에 있어서 빌려봤습니다. 다른 지역은 잘 모르겠어요.금성 것이 완역본입니다.

blanca 2011-03-16 23:10   좋아요 0 | URL
아, 완역본이 있군요. 최근에 나온 것이 축약본이라고 되어 있더라구요. 도서관에 찾아 볼게요. 감사합니다., 꾸벅.
 

어제 저녁 가족이 다 잠들고 셔우드 앤더슨의 <와인즈버그 오하이오>를 정말 숙제하듯이 다 읽고(몰입도도 긴장감도 없었다--;;) 아이 책상에 우두커니 앉아 오늘을 걱정했다. 

오늘은 고작 세 돌 넘은 아이(한국 나이로는 다섯 살이다)가 처음으로 유치원에 등원하는 날이었다. 기관을 안 다녀봤고 예민하고 소심한 스타일이라 어떤 반응이 올지 심히 걱정되었다.  

운동장 대자보. 나의 손을 잡은 만삭의 엄마. 교실 안 육십삼 명의 아이들. 게다가 오전 오후 이부제 수업. 나의 기관 적응기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뒷자리 친구에게 지우개를 빌려 달라고 뒤돌아 본 나에게 들입다 달려와 따귀를 때린 중년의 담임 선생님. 난 고작 만 여섯 살을 넘은 나이 그렇게 따귀를 맞으며 학교 생활을 열었다. 매일 혼자서 걸핏하면 울었던 것 같다. 너무나 커다란 운동장 뒤켠에서 줄을 서서 기다리다 오후 수업을 들어가며 나는 실내화 가방을 그만 벤치에 놓고 왔다는 것을 깨닫고 또 혼자 울기 시작했다. 내가 우는 걸 알아 채고 걱정해 준 건 입성이 불결하다고 툭하면 맞고 다녔던 짝꿍 하나였다. 왜 우니? 나 벤치에 실내화 가방...엉엉. 그 남자애는 대열에서 갑자기 이탈하여 머나먼 운동장 뒤켠으로 줄달음치기 시작했다. 교실에 들어오고 나서 얼마 지나고 나서야 그 남자애는 빨간 우주표 실내화 가방을 달랑거리며 나를 안심시켰다.  

갈 때는 잘 간다고 따라나섰다. 어찌나 체구가 작은지 원복을 입히니 가련하다. 세탁소 아저씨에게 자켓 좀 줄여 달라며 들고 가서 아이 착용컷을 보여주니 슬퍼하며 웃으셨다. 이걸, 이걸, 대체... 아저씨는 안타까워서 죽으려고 하셨다. 그리고 일 주일을 연구하시더니 이 방법밖에 없겠다며 또 미안해하시며 어깨 봉이 산처럼 솟아 있어 입고 있으면 목 생략하고 바로 얼굴이 나오는 듯이 보이는 자켓을 내미셨다. 

아아. 기대 이상이었다. 삼십 분을 설득하고 어르고 달래도 흐느끼며 엄마와 함께 있겠다는 아이. 엄마가 오래도록 남아 있으니 다른 아이들도 덩달아 "엄마, 보고싶다"하며 약한 모습을 보며 독한 마음을 먹고 대성통곡을 뒤로 하고 달려나왔다.

사 년 만에 영화도 보고 근 십 사 년 만의 대낮의 자유를 누려 보려고 했으나, 계속 초조하고 나를 찾는 전화가 올 것 같아 전화기를 부여잡고 근방을 배회했다. 솔직히 애 낳으러 병원 갈 때보다 더 떨렸다. <블랙 스완>을 보고 싶었던 마음도 사라지고 입맛도 없어 점심도 걸르고 싶어졌다. 왜 황금돼지해에 12월생을 낳았을까, 하며 또 자학하다 시계를 보다 <킹즈 스피치>를 보다 말다 또 떨다 말다 또 시계를 보다 그렇게 시간아, 제발 가다오, 하며 한시 사십분이 되자 뛰어 나갔다.  

반전이 있다. 유치원 정문 틈으로 살며시 보니 까르르 웃으며 천방지축으로 뛰어 나오는 아이가 내 아이였다. 집에 안 온다는 걸 억지로 끌고 왔다. 어떤 할머니가 아이의 원복 입은 모습을 보니 또 의아해 하시며 "얜 아기네." 이러신다.--;;  하지만 하루가 즐거웠다고 내일 아침 등원이 쉬우리라는 보장은 없다.

또 떨린다. 안 울겠다고 몇 번이나 약속을 했는지. 안 울면 주어지는 뇌물들을 얼마나 많이 땡겼는지.  시집은 대체 어떻게 보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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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1-03-07 21: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모녀여전인가요?
하지만 울고불고 시작한 유치원 생활도 금세 좋아하게 될거에요.
유치원샘들은 아이 맘을 사로잡는데 선수거든요. 조금만 기다려 보세요~~~ ^^

시집은 어떻게 보내지?
보내지 말고 끼고 살까요? ^^

blanca 2011-03-08 20:14   좋아요 0 | URL
순오기님, 오늘도 울었어요. 참--;; 유치원 원장님과 샘이 고생이네요. 삼월달이 어여 빨랑 가서 웃으며 등원하는 모습을 기대해 봅니다.

2011-03-07 22: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3-08 20: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책가방 2011-03-08 01: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엄마가 그러시더군요. 아들 군대 보낼 때보다 딸 시집 보낼때가 더 아프더라고...
어울리지않는 짧은 머리에, 무리에 섞여 끌려가듯 사라지는 아들 뒷모습도 아팠지만
곱게 한복 차려입고 새신랑 곁에서 행복에 겨운 얼굴로 멀어지는 딸의 뒷모습은 쓰라리더라고..
군대 간 아들은 제대하면 다시 당신품으로 돌아오지만
시집 간 딸은 영영 남의 식구 되는 듯하여 정말 많이 아팠다고 하시더라구요.
저도 신혼여행 후 친정에서 시댁갈 때.. 차가 마을을 벗어나자마자 눈물이 나서 정말 많이 울었답니다.
다시 못 올 길도 아닌데.. 그냥 기분이 그렇더라구요.

휴~~ 전 딸이 둘이나 되는데 어떻게 시집을 보내죠 정말...

blanca 2011-03-08 20:16   좋아요 0 | URL
책가방님이 공주님이 두 명이나 있군요. 저희 엄마가 왜 울었는지 이제 알겠더라구요. 고작 유치원 보내놓고 밥맛이 돌 같다니까요. 자식 낳으면 기쁠 일도 많지만 가슴 아플 일도 더 많아지는 것 같아요.

양철나무꾼 2011-03-08 02: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걱정스러워요.
님은 딸을 어떻게 시집 보내실거며, 전 아들을 어떻게 장가 보낼까요?
천년만년 끼고 사는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

blanca 2011-03-08 20:17   좋아요 0 | URL
양철나무꾼님 참 왕자님이 두 명이나 있죠! 나중에 제대로 잘 키워서 행복한 가정 이루는 것까지 보면 마음으로 잘 독립시켜야 할 텐데 그게 참 쉽지가 않을 것 같아요.

마녀고양이 2011-03-08 09: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주일 정도 안절부절 못 하고 기다리면 이제 안심이 될거예요.
분홍공주님이 적응 잘하네요? 즐거웠나보다.. 아유, 그다지 걱정 안 해도 되겠어요.
우리 코알라보다 훨씬 낫네. ^^

그런데 블랑카님, 학교 가서 진짜 따귀 맞았어요? 진짜?
나 그 글귀 읽으면서 맘이 다 철렁하던데요..

오늘은 분홍공주님 잘 가셨나? 화이팅!

blanca 2011-03-08 20:18   좋아요 0 | URL
아녀요. 마고님, 오늘도 역시나--;; 게다가 지금 아프기까지 합니다. 지대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나 봐요. 오늘 미용실 갔다가 시간이 촉박해 얼마나 전속력으로 뛰었던지 온몸이 쑤셔요.

2011-03-08 11: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3-08 20: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잘잘라 2011-03-08 15: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 남자들 술자리에 끼어서 주워들은 이야기 하나.
지난 주에 큰 애 초등학교 입학식에 다녀온 와이프가 전하길, 하필 그 학교에서 제일 '나쁜' 선생님이 담임으로 걸렸는데 입학식에서, 학부형들 다 있는 그 자리에서, 아이들한테 시끄럽다고 소리치고 욕하고 화내서 급기야 반 애들이 다 울어버렸다, 라고 해서, "뚜껑이 확 열려뿐기라. 이사 갈 각오하고 교장선생님 찾아가서 따질거라예! 걸리기만 걸려라 하고 베르고있다 아입니꺼!"
이 대목에서 저는 '역시 남자들은 권력지향이군. 문제는 담임선생님인데 당사자는 냅두고 교장선생님부터 찾는거 봐.' 라는 생각(만, 말로는 안하고 생각만..)을 했는데 다른 네 명의 남자들은 각자 '해결 방법'을 제시하느라 여념이 없는 가운데 분위기는 무르익고 소주는 끊임없이 '한 병 더' 행진을 이어갔더랍니다. ^ ^

blanca 2011-03-08 20:22   좋아요 0 | URL
메리포핀스님 ㅋㅋ 그래도 그런 얘기가 든든하게 느껴지는 부분도 있네요. 저는 왜 엄마한테 따귀 맞은 걸 얘기 안했을까요? 지금도 모르겠어요. 그래서 더 앙금이 남나 봐요. 안그래도 요새 담임배정으로 초등학부모들이 신경들 많이 쓰시더라구요. 자녀분 초등입학 축하드려요^^

비로그인 2011-03-08 15: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다가 이제 어린이집으로 등원합니다. 입학식도 갔죠. 준비물들을 사서(또는 훔쳐서!) 네임펜으로 이름을 쓰고, 반명함판 사진을 뽑습니다. 너의 사회생활이 시작되었구나. 나는 뒤에서 응원한다. 앞에서 나아가는 것은 네 몫이다. 하고, 엄마 치고는 차가운 편지를 써서 추억상자 안에 넣어둘 참이었습니다.

아차차 정작 쓰려고 했던 한 마디-블랑카 님의 눈길은 정말 엄마 같아요.(물론 내가 가짜 엄마는 아닙니다만), 역시 사람마다 감상과 대응과 느낌이 다른 법. 그래서 글이 참 좋습니다.

blanca 2011-03-08 20:23   좋아요 0 | URL
바다가 몇 개월이나 됐을까요? 삼십 개우러 정도인지. 네임펜! 안그래도 저도 이름 쓴다고 남편보고 가지고 오라고 했었는데. 저는 별로 좋은 엄마가 아니에요. 그러니까 더 찔려서 그러는가 봐요. 바다의 어린이집 등원기도 기대됩니다. 잘 하고 있죠?

2011-03-08 16: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3-08 20: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카스피 2011-03-08 19: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시집 보낼려면 아직도 먼것 같은데요^^

blanca 2011-03-08 20:23   좋아요 0 | URL
카스피님 ㅋㅋㅋ 제가 완전 오버한 거죠? 딸아이가 컸을 때 이 글 보여주면 완전 비웃을 것 같긴 해요^^;;

노이에자이트 2011-03-09 16: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딸이 시집 안 가고 할머니로 늙는 것에 비하면 시집 보내는 서러움 쯤은 감수하셔야죠.

blanca 2011-03-09 22:45   좋아요 0 | URL
노자님 그런가요?^^;; 그래야 겠죠?

후애(厚愛) 2011-03-12 11: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따님이 아직 어린데 벌써 시집 보낼 생각을 하고 계셨군요. ㅎㅎ
잘 지내시죠? 즐거운 주말 되세요~ ^^

blanca 2011-03-13 22:32   좋아요 0 | URL
후애님,반가워요. 그러게요. 제가 괜히 혼자 오버하고 있어요^^;;

꿈꾸는섬 2011-03-14 22: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현준이 보낼때의 마음이에요. 현수는 오빠 덕에 워낙 잘 적응해주어서 걱정 없네요.
힘내세요. 곧 괜찮아질거에요.^^

blanca 2011-03-15 22:09   좋아요 0 | URL
꿈꾸는섬님 이제 저희 딸도 신 나게 다니게 되었어요^^ 괜시리 이틀 아주 대성통곡을 해주셔서 맘이 참 안 좋았거든요. 형제들 같이 다니는 아이들은 너무나 즐겁게들 잘 다니더라구요. 보면서 또 부러워하고^^;; 그랬어요. 현수도 참 대견하네요.
 
일의 기쁨과 슬픔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 이레 / 2009년 8월
평점 :
절판


별거 아닌 일도 밤에 혼자서 이것저것 주워섬기다 보면 절로 우울해진다. 어느 해. 그날 저녁 나는 또 기다리는 무언가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데에 무척 실망하고 최악의 상황도 상상해 보고 그랬더랬다. 그리고 매일 다니기 싫다,고 노래를 부르고 다녔던 회사에 정상적으로 출근해서 빈속에 믹스커피를 마시고 직원들을 기다렸다. 하나 둘, 출근하는 직원들과 똑같은 하루가 시작되었다. 열심히 일하는 척 괜히 오버해 가며 잉크토너도 갈고 서고에서 서류철도 하나씩 꺼내고 슬쩍슬쩍 인터넷 검색도 하며 전화에 대고는 최고로 아름다운 척, 친절한 척 하는 목소리 연기도 열심히 하며, 여느 날과 하나도 다를 것 없는 똑같은 하루 속에 퐁당 빠졌다. 그런데 아주 이상한 느낌을 받게 되었다. 어제의 그 고민이 태양이 풀잎 위의 이슬을 삼키듯 저절로 스러져 버리는 것이다. 시간은 멈추고 눈앞의 기한이 더 크게 느껴지고 매일매일 똑같은 농담과 한탄을 나누는 직원들은 언제까지나 내 옆에서 그대로 그 나이로 정지해 줄 것만 같았다. 내가 내 삶에서 한번씩 거창한 것들을 추구하고 기다리는 일들이 마치 전생의 꿈만 같게 느껴졌다. 일이 있어 다행이다, 라는 아주 드문 안도감을 느꼈다. 

   
 

 일은 우리의 원근감을 파괴해버리는데, 우리는 오히려 바로 그 점 때문에 일에 감사한다. 우리가 이런저런 사건들과 난잡하게 뒤섞이도록 해주는 것에, 파리로 엔진오일을 팔러 가는 동안 우리 자신의 죽음과 우리의 사업의 몰락을 아름다울 정도로 가볍게 생각하게 해주는 것에, 그것을 단순한 지적 명제로 여기게 해주는 것에 감사한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근시안적으로 행동한다. 그 안에 존재의 순수한 에너지가 들어 있다.

 
   

 

이거였구나! 싶은 통찰들. 현대에서 '일'은 마치 개인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것처럼 아주 대단한 의미와 가치를 함유하고 있는 것으로 떠받들여 진다. 소개팅에서 제일 먼저 거론되는 '그'나 '그녀'를 소개하는 문구는 직업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 직업에 맞추어 보지도 않은 그들의 인상, 성격, 기호를 상상한다. 그 사람이 수행하는 '일'안에서의 작업과 보수는 그 사람 자체로 환원되어 버린다. 일에 매달려서 새털같은 날들을 하나씩 하나씩 빼먹고 일에 근거해서 상대방을 판단하는 일은 안 그러는 것보다 쉽고 덜 불안하다. 저자는 이 지점에서 출발한다. 회의실에 저소득층 어머니들을 모아놓고 그들의 심리적 갈망을 새로운 제품의 조직원리로 통합하겠다고 덤비는 비스킷 공장의 디자인 책임자, 위성발사를 위해 일하는 우주센터 직원들, 5년 전 여자친구의 죽음 후 종일토록 떡갈나무를 진지하게 관찰하고 그리는 화가, 송전선을 따라 여행하는 송전엔지니어, 감사 업무에 불멸을 위한 기회는 없다는 사실을 우아하게 받아들이는 회계사들, 상업화의 가능성은 요원한데도 자신들의 아이디어에 어마어마한 환상과 꿈을 둘러친 빈곤한 창업자들을 만나면서 '일'이 그 자체로 심원한 가치를 가지는 것이 아니라 '일'을 통해 존재를 유지해 나가는 동력과 삶의 기만들을 망각할 수 있다는 그 수단적 역할에 경의를 표한다.   

냉소 같기도 하고 비아냥거림 같기도 한 내용이 알랭 드 보통의 목소리를 빌려오면 섬세하고 진지한 고백처럼 들린다. 그러니까 이대로도 좋다는 것. 무언가 더한 의미와 가치 추구를 위한 명분을 구태여 찾아 헤맬 필요가 있을까? 라고 진지하게 회의감을 드러내는 저자의 모습은 안도감을 준다. 코 앞의 일들에 코를 박고 있는 것은 삶에 있어 아주 유용한 일이다. 그런 것들을 다 비워내 버리고 진지하게 '나는 누구이고 어디에서 어디로 가는가'라는 질문을 쏘아 대기 시작하면 자멸이다. 존재의 동력은 그것으로 채워지는 것이 아니다. 가끔씩 빵빵하게 채워져 있을 때 터지지 않게 바람을 빼주는 역할 정도가 삶에 대해 존재에 대하여 던지는 '왜'라는 질문일까. 이 책은 그러니까 다양한 직업의 초상화라기 보다는 (작가의 의도는 이것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시선을 멀리 떨구지 않고 바로 코 앞에 던질 수 있도록 해주는 '일'의 그 편협한 구획 나누기의 미덕을 강조하면서 그 미덕의 한계를 지적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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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 2011-03-04 07: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같은 책, 같은 글귀인데, 저랑 정반대로 읽으셨네요. 이 책은 알랭 드 보통의 책들 중에 '불안'과도 좀 비슷해요.

blanca 2011-03-04 23:24   좋아요 0 | URL
안그래도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많이 들더라구요. 리뷰를 쓰면서도. '불안'과도 겹치는 부분이 많고 읽는 중간의 감상과 다 읽고 난 후의 감상이 차이가 나서 저도 놀랐어요. 제가 사실 제대로 보통의 저의를 이해했는지는 확신이 없답니다.

하이드 2011-03-10 09:10   좋아요 0 | URL
보통의 저의도 있지만, 독자의 저의도 있는거니깐요. 그건 독서하는 각자만의 것이라고 생각해요. 독서하는 순간순간마다 달라지는 것. 정답이야 보통도 모르는 것 아니겠습니까 ^^ 그래서 책 읽고, 같이 이야기하는게 재미나요.

마녀고양이 2011-03-04 08: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블랑카님, 처음 다섯줄을 읽으며 내가 쓴 줄 알았잖아요(물론 문체야 블랑카님이 훨 멋지지지만)...
나랑 왜 그리 똑같아! 자기랑 나랑 진짜 유사한 점들이 있어서 한번씩 깜짝 놀란다니까요. ^^

그러게요, 쓸데없는 일인 듯 싶어도 코 앞에 할 일들은 사람에게 에너지를 주는거 같아요.
결국 인간에게 남는 것은 실존적 고민 뿐이라 하면, 그걸 내내 생각하다가 어찌 살겠어요.
그래도 나 이번 학기에 <실존과 심리 치료> 듣는데.. 으아, 이거 흥미로와요.
대학원도 그래서 원래 목표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틀어뜸, 올 연말에 합격해야 갈 수나 있지만 말이죠. ㅎㅎ

blanca 2011-03-04 23:25   좋아요 0 | URL
마녀고양이님, 원래 목표와 다른 곳이라니 무척 궁금해지는데요. 상담 분야인 것은 맞는지도 궁금하구요. 대학원 가시기로 하셨군요. 합격이야 당근 따논 당상일 것 같은데요. 시간이 흘러서 자꾸 자꾸 앞으로 전진하시는 모습이 부럽기만 합니다.

2011-03-05 20: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3-04 13: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3-04 23: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비로그인 2011-03-04 15: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가 소모된다는 기분을 느낄 때 마다 자주 펼쳐드는 책입니다. 알랭 드 보통이 말했듯 `오전 **시 미팅' 이런 메모를 하면서 내가 언젠가는 죽는다는 것을 잊으니까요. 찰나의 가장 유한한 고민을 통해 무한성을 잠시 잊습니다. 이런 말이 괴이하게 들릴 정도로 내가 소모되는 일들을 통해서, 계속 살아있습니다.꼭 성찰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생각도, 굳이 자아실현이 아니어도 괜찮다는 생각마저 했더랬습니다.

blanca 2011-03-04 23:30   좋아요 0 | URL
쥬드님, 맞아요. 성찰하고 자아실현 찾다 보면 항상 현실은 모자라요. 그래서 자꾸 내일을 기약하다 보면 사정없이 늙어 버리고. 지금 이 순간에 코를 박는 것도 견디기 위해 필요한 것 같아요.
 

이렇게 된 것은 1763년 5월 16일 런던의 데이비스 서점에서 보즈웰과 존슨이 처음 만난 덕분이었다. 당시 영국 문단의 거두였던 존슨은 53세였고 영웅 숭배의 기질이 있던 스코틀랜드 사람 보즈웰은 22세였다. 자신의 사명이 어디에 있는지 파악한 보즈웰은 위대한 문인의 말, 습관, 의견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중간에 단절이 있었지만, 그는 존슨이 1784년 사망할 때까지 이 기록을 계속했다.

보즈웰은 존슨으로 하여금 말을 하게 만들었다. 존슨이 말하기 싫어하는데 억지로 말하게 한 것이 아니라, 존슨의 사람됨이 활짝 꽃피어나게 했다. 

-클리프턴 패디먼 <평생독서계획> 중

 

패디먼은 제임스 보즈웰의 <새뮤얼 존슨의 생애>이 영어로 된 최고의 전기이며, 나아가 세계 최고의 전기라고 극찬한다. 자서전, 평전이라면 껌뻑 죽는데 아직 최고의 전기가 무엇인지도 제대로 모르고 살았구나, 싶어 

분노의 검색질을 시작했다. 그.러. 나. 이 책은 없다. 번역본이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아니 확신은 못하겠다. 사무엘도 넣어보고 존슨도 넣어보고 존슨전도 쳐 보고 했으나 책의 이미지는 뜨지 않는다. 원서? 18세기의 천여 페이지가 넘는다는 평전의 원서를 내가 어떻게 읽겠는가. 언감생심이다. 잡담과 스캔들을 좋아해 언제나 그 현장에 있었다는 보즈웰. 유명인을 쫓아 다니는 열성 팬의 원조로 새뮤얼 존슨이라는 인물을 아예 창조해냈다는 보즈웰의 글을 읽을 방법은 과연 없는건지 내가 무식해서 책을 못찾고 있는 건지 도통 모르겠고 실망스럽다. 

게다가 오늘 책을 주문하고 추가로 주문했어야 할 책이 자꾸만 생각나 취소했다 다시 하고 별 쇼를 다했는데 또 생각나고 이런 상황이다. 

 

지금 봤다. 박완서 샘의 추모편. 죽기 전에 뵐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품고 살았는데 야속하게 하필 이사하는 날 그 눈 내리던 날 먼저 가버리신 분. 어쩌면 저렇게 노란색을 잘 소화해 내셨을까. 빨리 주문하지 않으면 책이 사라져 버릴 것만 같아 초조하다. 병이다.--;; 

 이 표지를 자꾸 보니까 더 허무하다. 사라지지 않는 것들은 없구나, 싶어서.

 

 

 

서점에서 스무 살 언저리에 위대한 사람을 우연히 만나 그 사람을 쫓아다니며 거의 삶의 반을 그 사람의 전기를 완성하는 데에 쓰고 그 사람 자체를 재창조하는 과정이 삶이었던 사람. 그 사람을 직접 만날 수는 없으니 이 책을 꼭 읽고 싶다.  1763년. 2011년. 자꾸 자꾸 과거로 휙휙 흘러가 버리는 현재가 아까워 숨을 가다듬게 된다. 늙고 죽는 게 무섭고 납득이 안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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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 2011-03-02 0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옛날옛날에 그 얘기 듣고 원서로 가지고 있어요. ... 가지고만 있어요 'ㅅ'

blanca 2011-03-02 20:49   좋아요 0 | URL
하이드님! 그럼 이건 정말 번역본이 없는 거군요. 흑흑. 하이드님이야 영어가 되시니깐 마음만 먹으시면 바로 읽으실 수 있잖아요. 그런데 이거 정말 두껍던에 아마존에서 주문하셨어요? 침만 계속 흘리고 있어요.

하이드 2011-03-03 08:20   좋아요 0 | URL
아마존에서 주문했는데, 이 시리즈는 800페이지가 우리나라 책 이라이트 400페이지보다 작고 얇아요.
우리나라 책들 이라이트가 얼마나 부피 많이 차지하는지 ㄷㄷ

양철나무꾼 2011-03-02 0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박범신의 '은교'가 생각나는 페이퍼예요~^^

blanca 2011-03-02 20:50   좋아요 0 | URL
양철나무꾼님, 아, 왜 '은교'가 생각나시나 했더니 퍼뜩 깨달았아요. 적요 시인이 등단까지 시켜주는 그 젊은이(이름이 가물가물)의 모습이 비슷하군요. 맞아요. 비슷한 구석이 있네요.

stella.K 2011-03-02 1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최근 문인들의 강연회에 쫓아 다니면서 이쪽에 사명이 있는 것은 아닐까?
의심해 본다능... ㅋㅋ
아, 정말 그러네요. 노란색을 잘도 소화해 내시는 박완서 선생님!
맞아요. 늙고 죽는 게 무섭고 납득이 안 가요.ㅠㅠ

blanca 2011-03-02 20:51   좋아요 0 | URL
스텔라님, 스텔라님 강연후기는 항상 현장감이 생생하고 너무 좋아요. 정말 그쪽으로 진출하시는 것 아니에요? 시간이 너무 빨리 가요. 믿을 수가 없을 만큼. 그래도 오는 봄은 참 좋네요.

비로그인 2011-03-02 12: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엄마, 사람이 죽는 게 너무 슬프다.
라는 저의 말에 저희 모친 '슬픈 일이 아니지. 사람이 늙고 죽는 건 모두 시간과 자연의 일이니, 언젠가는 일어날 일일 뿐이야.'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 이런 일도 다 있구나. 라고 쓸쓸해 하셨던 모친이 떠올라서, 바로 선물포장에 편지를 써서 주문했어요. 쓸쓸한 일들이 너무 많아지는 봄입니다.

blanca 2011-03-02 20:53   좋아요 0 | URL
쥬드님 어머님은 달관하신, 초연한 그런 아름다움을 아시는 분 같아요. 맞아요. '죽음'이라는 게 막상 내 주변 인물이나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되면 섬뜩하게 다가오는 것 같아요. 예전에 죽을만큼 힘들다,는 말을 조금만 힘들어도 내뱉곤 했는데 이제는 그러지 않으려고 해요. 어차피 싫어도 죽을 테니까요. 다만 나이드는 건 항상 두려워요.

비로그인 2011-03-02 15: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만물이 소생한다는 봄과 죽음의 이미지가 왜 이렇게 잘 어울리는지 어떨 땐 오싹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꽃샘추위가 한겨울 한파보다 더 뼛속 깊이 추위를 느끼게 하는 모양이에요...

blanca 2011-03-02 20:53   좋아요 0 | URL
후와님, 저는 영화 <시>에서 봄이 와서 새순이 돋느 것을 보면 너무 이뻐서 눈물이 난다고 했던 초로의 여인의 고백이 너무 와닿아요. 그냥 너무 이쁘면 난 이 이쁜 걸 영원히 볼 수는 없겠구나, 싶어서요. 오버인지도 모르겠지만요^^;;

마녀고양이 2011-03-02 17: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나두 그 기분 알아요.
분노의 검색질.. 응응, 맞아요, 원하는 그 책이 없을 때 기분이라니. 난 요즘 M.C.에셔의 책을 원해요!!

blanca 2011-03-02 20:55   좋아요 0 | URL
분노의 검색질 ㅋㅋㅋ 저는 제 자신을 잘 못 믿어서 끝내 안 나와도 누군가는 '있다'고 댓글을 달아주기를 바라면서 이 페이퍼를 작성했나 봐요^^;; M.C. 에셔는 누구일까요? 궁금해지네요.

cyrus 2011-03-03 1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저도 가끔 유명 서양고전 같은 거 읽고 싶은데 검색하면 아직 국내에 번역되지 않아서 아쉬운 적이
한 두번이 아닌거 같아요, 저는 엘리자베스 개스켈의 작품을 읽어보고 싶었는데,, 우리나라에 소개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

blanca 2011-03-03 20:59   좋아요 0 | URL
엘리자베스 개스켈은 처음 들어 보는데 어떤 작가인지 궁금하네요. 외국어 실력이 좀 되면 더 넓은 세계를 살 수 있을 터인데 그게 참 쉽지 않아요. 저는 이런 생각도 해봤어요. 잘 아는 번역가를 친구로 두는 ㅋㅋ 번역 안된 책은 선물로 번역을 강요하는 아주 파렴치한 상상을 해봅니다.^^;;

kimpk 2011-03-03 13: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RSS reader로 구독하고 있는 독자입니다.

위에서 말씀하신 책을 영어로 읽고 싶으시면 http://www.gutenberg.org/ebooks/1564 로 가면 다운받을 수 있습니다. 저작권이 풀려있으니 안심하고 다운받아 읽으시기 바랍니다.

blanca 2011-03-03 20:57   좋아요 0 | URL
kimpk님 반갑고 감사합니다. 좋은 정보 잘 활용할게요^^

노이에자이트 2011-03-03 18: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무엘 존슨 이야기 얇은 것으로 시사영어사 세계명작영어학습문고 72번 나다니엘 호오도온 <전기 이야기>가 있어요.아이작 뉴톤,벤자민 프랭클린 전기가 함께 있습니다.단 영한대역이 아니고 왼쪽엔 영어원문, 오른쪽에 단어풀이가 되어 있어요.존슨 이야기 분량은 원문과 단어풀이 모두 합해서 28쪽입니다.

blanca 2011-03-03 21:00   좋아요 0 | URL
노자님, 그게 이상한게 저도 이런 책에서 읽은 것 같기도 하고 그래요. 제대로 원본을 보고 싶은데 아직 수요도 그럴 계획도 없는 것 같아 참 아쉽습니다. 모르는 건 노자님께 물어보면 되겠군요. 만물박사 같아요.^^

노이에자이트 2011-03-03 2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존슨과 보스웰의 일화는 영어권에선 매우 유명해서 영어교재 같은 데 가끔 나와요.아마 그런 데서 보신 듯.위에 제가 소개한 책은 난이도 표시가 되어 있는데 고3이상 대학생용으로 나와 있지요.이 정도면 고급편입니다.영어권에서야 초등학교 고학년 정도의 교재인데 아무래도 외국인에겐 어렵겠죠.

cyrus 2011-03-06 21: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국내에는 많이 생소한 작가인데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에서도 살짝 언급되는 여성 작가에요.
제인 오스틴과 동시대에 활동했습니다. 대표작이 <남과 북>인데 국외에서는 캐스켈도 오스틴 버금가는
여성작가로 평가를 받는데 반면 국내에서는 워낙에 오스틴, 브론테 자매의 인지도가 세다보니
지금까지도 여전히 소개되지 못하고 있는거 같아요,,

원서로는 펭귄 북스에서 나온게 있던데 펭귄클래식 카페에서 어느 회원분이
엘리자베스 개스켈의 작품 번역에 대해서 질문을 하신 적이 있었는데
답변으로 번역 계획이 없다고 했을 정도이니,, 국내에서 소개되기에는 아직 먼 거 같습니다. ^^;;

blanca 2011-03-06 22:27   좋아요 0 | URL
그렇다면 로맨스 소설 작가인지 궁금하네요. 번역 계획이 없다니 저까지 덩달아 아쉬워지네요. 원서는 정말 진도가 안 나가더라구요. 다만 원문의 뉘앙스를 십분 공감하며 읽을 수 있다는 장점은 있지만 시대 배경, 사회적 배경까지 알고 있어야 가능한 고유 명사 앞에서는 좌절합니다.

순오기 2011-03-07 21: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박완서 샘 추모특집 보고 싶어 장바구니에 담아요.
결제는 10일 이후에~ ^^

blanca 2011-03-08 20:25   좋아요 0 | URL
순오기님! 저 아직 이 책 주문 안했어요. 먼저 읽으실 것 같은데요. 감상이 기다려집니다.
 

책을 고를 때 리뷰에서 찾아 헤매는 대목은 무엇보다 그 책이 재미있는지의 여부, 그 여부를 초월할 만한 가치가 있는지에 관한 얘기다. 책장이 술술 잘 넘어가느냐,  어렵게 얻은 숨통 트이는 시간을 그 책에 할애해도 아깝지 않느냐. 

책에 대한 책에는 그런 얘기가 잘 나오지 않는다. 대부분 가독성에 대한 얘기는 슬쩍 피한다. 추천도서목록은 위압적이기 쉽다. 그 추천 도서 목록을 피하는 독서에 약간의 죄책감과 자괴감을 얹어 주는 경우까지 있다. 책에 관한 책은 자기가 읽고 자기식으로 해석해 내는 책들에 대한 일종의 지적 허영이나 과시로 흐르기 쉽다. 그 책을 읽지 않는 자는 모두 유죄가 되는 분위기는 숨이 막힌다. 

 

이 책은 자기가 읽은 책에 대한 자기식의 해석과 자화자찬의 대척점에 서 있다. 정말 읽을 책을 찾아 헤매는 독자를 위한 사려 깊은 안내서다. 이미 읽은 책들조차 이 책을 통해 재독의 욕구를 느끼게 할 만큼 매혹적인 책지름신이기도 하다. 작가, 비평가, 출판사의 편집장, 라디오쇼의 사회자까지 거친 저자는 그가 사망해던 그 해에 증보를 거듭한 이 책의 완결판을 펴내게 된다. '평생독서계획'이라는 제목 만큼이나 이 책에서 다루는 책들은 장기적인 영향력을 미치고 독자들의 지속적인 흥미를 이끌어 낼 책을 선별해서 소개하고 있다. 실제로 수정판을 거치면서 도서 목록은 계속해서 수정작업을 거친다. 시간의 혹독한 평가를 이겨내지 못한 지나치게 통속적이고 대중적인 책들은 빠지기도 하고 그 시점에서는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했어도 후에 재평가된 책들은 다시 이 책의 초대를 받게 된다.

기원전 2,000년경의 <길가메시 서사시>로부터 치누아 아제베의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다>까지 133명의 작가들에게는 각각 12매의 원고가 할애된다. 그 작가들의 생애, 뒷얘기, 대표작, 추천작 등이 얘기된다. 그리고 무엇보다 저자가 재미없는 책은 솔직히 재미없다,고 신랄하게 얘기한 점, 과감히 축약본을 읽으라고 권하는 대목들, 건너뛰고 읽어도 무방하다고 독려해 주는 얘기들은 귀를 솔깃하게 한다. 이런 얘기를 기다렸다. 저자가 이 책들은 자기 계발의 도구가 아니라 자기 발견의 도구로 사진 필름의 현상액 같은 것이라고 묘사했던 '독자들과의 간단한 대화'는 정말 정직한 얘기였던 것이다. 다만 사마천의 <사기>, <금명매>, 미시마 유키오의 <가면의 고백> 등을 삽입한 것은 그런 대로 동서양의 균형을 맞추기 위한 노력이었다고 생각되지만, 아무래도 미국적이고 미국인의 정서에 맞는 책들 위주였다는 한계는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달과 6펜스>에서 인간에게 연민과 눈물어린 따뜻한 시선을 보냈던 서머싯 몸의 이 책을 읽으면 단박 그의 소설이 그 자체는 아니었음을 깨닫게 된다. 이 책도 책에 관한, 그리고 그 책을 쓴 작가들에 대한 얘기다. 다만 아주 신랄하다. 그 신랄함은 작가의 생애에도 닿아있고 그 작가들의 작품의 허술한 지점에도 파고든다. 소설은 즐기면서 읽는 것이라 어떤 소설이라도 그것을 읽는 이에게 즐거움을 주지 못하면 가치가 없는 것이라고 사정없이 뱉어 놓고 난 다음 서머싯 몸은 발자크도 플로베르도 심지어 톨스토이까지도 눈치 보지 않고 욕할 부분을 잡아 채어 주무르기 시작한다. 그런데 이 뒷담화가 참 묘한 게 욕먹는 당사자를 꼭 한 번 확인해 보고 싶다는 아이러니한 욕망을 불러일으킨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책을 읽고 나면 대체 서머싯 몸은 그 책의 어디를 그렇게 물고 늘어졌나, 꼭 다시 확인해 보게 만든다. 노이즈 마케팅이 생각난다. 사생활을 까발리고 욕먹을 짓을 했다고 한껏 욕해서 관심을 불러일으킨 다음 이 당사자가 어떤 것을 내놓았나 몰려 가게 만드는 그 교묘한 상술은 이미 여기에서 예고된 것 같다. 

 

알베르토 망구엘은 쉰세번째 생일을 맞은 날, 예전부터 좋아해온 몇몇 책들을 다시 읽어보기로 결심한다. 이 책은 그런 망구엘의 결심을 따라 1월부터 12월까지 망구엘이 카사레스의 <모렐의 발명>을, 키플링의 <킴>을, 샤토브리앙의 회고록 등을 읽어나가는 여정이다. '이 책을 강추한다', 따위는 아쉽게도 없다. '이런 어려운 책을 나만 읽고 이해했다',는 식의 자기자랑도 생략되어 있다. 그저 그 나이의 그 만큼의 깨달음, 그리고 상념, 겹치는 독서이력 등을 잔잔하고 아름답게 하나씩 펼쳐 보이고 있다. 예쁘고 단아한 책이다. 독서는 편안하고 고독하며 느릿한 감각적인 행위라는 그의 정의는 그의 책에도 해당된다. 

 

 

 

 

 

 

 

이제 우리나라의 차례다. 하지만 아쉽게도 우리나라의 책들에 대한 얘기는 아니다.  시사다큐 전문프로듀서인 저자는 우울한 날 다른 인간을 할퀴고 싶지 않아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를 펼쳐 든다. 그리고 토성의 영향 아래 태어나 우울함을 태생적으로 지닌 이들을 떠올리며 위로 받는다. 남자들이 미워죽겠는 날은 <개선문>이나 <장미의 이름> 같은, 남자들이 예뻐 죽겠다는 책을 찾아 읽으면 된다고 얘기한다. 이 책은 어쩌면 쓰는 사람 자기 자신을 위한 독백이 될 수도 있는 지점과 그런 상황을 공유하는 특별한 경험을 했거나 하고 있거나 할 것으로 기대되는 읽는 사람들을 토닥거리는 지점 사이에서 아슬아슬하게 서 있는 것으로 보인다. 책과 저자의 일상은 한데 엉켜 있고 그 책이 재미있다거나 아주 유익하니 꼭 읽어 달라는 당부는 툭툭 털어버린지 오래다. 이것이 이 책의 미덕이기도 하고 이 책을 펼쳐 들지 않을 수도 있는 이유가 될 수도 있다. 그럼에도 이 책을 펼치면 줄긋고 싶은 문장들이 우수수 떨어진다. 그리고 두고두고 참고하게 된다. 나와 비슷한 연배의 여인이 같은 책을 어떻게 그녀의 일상에 뭉클하게 끼워 넣었는지를 확인하는 일은 즐겁다.  

 

 김연수가 권하는 추천도서목록은 아니다. 아니 어쩌면 맞을지도 모르겠다. 이 책은 발췌독의 자료다. 그가 추린 소설들의 인상깊은 대목이 인용되어 있고 김연수의 시 같은 짧은 소회가 간략하게 덧붙여져 있다. 김연수의 글은 앞서의 인용된 작품과 크게 관련되어 있지 않을 때도 있다. 뒤라스의 <연인>의 한 대목, 그리고 사랑은 3D업종이라는 김연수의 얘기. 이런 식이다. 처음에는 고개를 갸우뚱하다 그가 추린 작품들의 대목에 흠뻑 젖게 된다. 저자의 글은 짧고 저자가 읽은 책의 원문은 길다. 신기한 게 막상 그 인용된 소설을 읽으라고 하지도 않는 저자의 글들을 읽으며 그 책을 읽겠다고 메모하게 된다. 그건 인용의 힘이기도 하고 저자의 성실한 삶에 대한 뜬금없는 고백때문이기도 하다. 진정성은 그냥 교감하게 되는 것 같다. 

 

 

읽을 책들의 목록은 늘어만 간다. 살아 온 만큼 더 살면 기력이 쇠하기 시작할 것이다. 그 때는 이제 내가 살아온 삶과 읽어낸 책들의 기억을 소환하며 하루 하루를 지내게 될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평생독서계획> 저자 클리프턴 패디먼의 얘기처럼 책을 읽는 행위는 남녀가 서로 사랑하고 가정을 꾸리고 여타 다른 체험들을 하는 것과 대등한 행위라는 말이 맞다. 한 사람을 만나 사랑에 빠지는 것과 어느 책을 읽고 그 책의 내용에 흠뻑 빠지는 것은 같은 무게다. 먼저 사랑을 경험해 본 친구의 조언은 언제나 어느 정도는 위안이 되는 법이다. 그런 책들에 관한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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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딧불이 2011-03-01 02: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에 관한 책들만 모은 유용한 페이퍼네요. <평생독서계획>에다가 동양의 고전들을 더 보태서 저만의 평생독서계획표를 짜야할까봐요.그런데 저자가 많은 책을 읽고 난 다음에 골라서 저 책을 썼을 것이라 생각해보니 제가 계획표를 짜려면 아직도 멀었다는 생각에 급 좌절...

blanca 2011-03-01 15:28   좋아요 0 | URL
반딧불이님, 안그래도 이 추천도서목록을 표로 만들어 게시하신 분도 있더라구요. 아무래도 동양 고전 부문이 빈약한 편인데 반딧불이님이 이 분야 추천도서목록이나 계획표를 만드시면 많은 분들이 도움이 될듯합니다. 저도 엑셀로 좀 관리를 해야 하나, 생각만 하고 있어요^^;; 무언가 체계를 좀 잡아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게 너무 난삽해져 가는 게 아닌가 싶어서요.

양철나무꾼 2011-03-01 02: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평생독서계획'은 읽다말다 하게 돼요.
저도 평생 독서 계획을 짜야 하겠지만, 일주일 한달 앞도 내다보기 어려운걸요.
문제는 계획을 잘 짜놔도 어느새 읽고 싶은 새책이 나와주신다는거죠~ㅠ.ㅠ

blanca 2011-03-01 15:29   좋아요 0 | URL
양철나무꾼님 그렇죠? 저는 매일 새로 나온 책 검색하다 장바구니가 그득해집니다. 되도록 한 권씩만 주문해서 읽으려 해요. 안그러면 밀릴 것 같아서요. 오늘 서점 구경갔는데 아아아, 세상엔 왜이리 읽은 책이 많은 걸까요....

송도둘리 2011-03-01 1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번 겨울 고전 몇 권과 신간 몇 권을 더해서 겨울독서계획을 만들어봤는데...겨울의 끝자락에서 검토해보니 고전보다는 짧고 쉬운 신간을 훨씬 더 많이 읽었네요.^^;; 근데 '그 책을 읽지 않는 자는 모두 유죄가 되는 분위기는 숨이 막힌다.' 맞는 말인 것 같아요. 무엇을 읽느냐보다 왜 읽느냐가 더 중요한 거겠죠. '평생독서계획'이란 책은 한 번 읽어보고 싶네요.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blanca 2011-03-01 15:31   좋아요 0 | URL
반갑습니다. 독서계획을 만드셨어요? 우아, 저는 그런 생각조차를 못해본 것 같아요.이 책은 쉬엄쉬엄 곁에 두고 읽으시면 도움이 많이 될 것 같아요. 저는 고전도 새로 나온 반짝반짝거리는 책에 눈길이 가더라구요.

cyrus 2011-03-01 13: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평생독서계획> 읽어봤는데,, 페디먼이라는 사람,, 정말 대단한거 같더라구요, 왠만한 유명한 고전들을
죽을 때까지 읽을 수 있는게 쉽지 않을텐데 말이죠. 그리고 마로니에북스에서 나온 피터 박스홀의
<죽기 전에 꼭 읽어야 할 책 1001>보다는 페디먼의 책이 더 나은거 같아요. 피터 박스홀의 책에는
거의 대부분이 서양 문학이 많은데다가 시, 희곡, 수필 작품이 극히 드물거든요.

blanca 2011-03-01 15:33   좋아요 0 | URL
저는 정말 <읽어버린 기억을 찾아서>를 다 읽었다는 것만으로도 놀랐어요. 게다가 몇 번이나 읽은 책도 있고. 정말 보통 사람이 아니지요. 안 그래도 <죽기 전에~>도 비슷한 류의 책인 것 같아 눈길이 가더라구요. 이 책이 더 좋군요^^ 다행이네요. 갑자기 읽어야 할, 읽고 싶은 책들이 무진장 늘어 나서 행복한 고민을 하고 있어요.

다락방 2011-03-01 17: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망구엘의 독서일기는 저도 가지고 있는데 도무지 책장을 끝까지 넘길수가 없더라구요. 절반쯤 읽다가 손을 놓고 말았어요. 그런데 블랑카님의 이 글을 읽고 나니, 이쯤에서 다시 읽어볼까 싶어져요. 손 놓은지 일년이 다 되어가서 사실 그 책안에 어떤 내용이 있었는지 기억도 나질 않네요, 블랑카님. 예쁘고 단아한 책이라니, 저도 다시 도전해봐야 겠어요.

책에 대한 책을 말씀하셔서 말인데요, 블랑카님.
혹시 [채링크로스84번지]란 책은 읽어보셨나요? 저는 그 책을 읽으면 블랑카님이 흥분하실 정도로 좋아한다는 데 만원 걸겠습니다. 훗 :)

blanca 2011-03-01 22:22   좋아요 0 | URL
아, 다락방님 <채링크로스84번지> 벌써 읽었어요! 암요. 만원 ㅋㅋㅋ 난중에 다락방님한테 커피 한 잔 대접할 날이 오면 커피값으로 퉁 칠게요^^;;

다락방 2011-03-02 08:44   좋아요 0 | URL
댓글 쓰고 저장을 누르는 순간, 음, 블랑카님은 읽으셨을텐데, 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괜히 댓글 남겼네요. 하하하핫;; 무안해요. 하하하핫;;

blanca 2011-03-02 20:47   좋아요 0 | URL
에이, 무한하긴요. 다락방님도 참^^;; 좋은 책을 같이 읽었다는 게 좋은 거지요.

비로그인 2011-03-01 18: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평생독서계획.
참 쪼그만 책에 많은 내용이 들어 있죠? ㅎ 저도 말씀하신 정직하고, 솔직한 얘기들이 와닿던 책이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그나저나 다락님과의 내기는 과연 어떤 분이 이기실지..ㅎ (오랜만에 와서는 쓸데없는 거에 궁금하고 그러네요 킄)


blanca 2011-03-01 22:23   좋아요 0 | URL
바람결님, 안그래도 책이 너무 초끄매서 넘 좋더라구요. 요새는 조그만 책이 좋아요. 다락방님과의 내기는 위 댓글을 참고해 주세요^^;;

2011-03-01 19: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3-01 22: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녀고양이 2011-03-02 17: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블랑카님, 1년 전에 읽은 책이, 정말 감명깊게 읽은 책이.. 기억이 안 나는거예요!
아아..... 기력은 쇠하고 에서 꽈당. 정말이지, 읽고 망각하고 읽고 망각하고, 이래도 읽어야 하는 걸까요?
거기다, 왜 이리 세상에 책이 많은거죠.

blanca 2011-03-02 20:48   좋아요 0 | URL
마녀고양이님, 저 요새 무서울 정도로 기억이 안 납니다. 그래서 기록하는 수밖게 없다,고 생각하는데 그 써놓아야 겠다고 생각한 것까지 잊어버릴 때도 있어요--;; 이미 나온 좋은 책들, 그리고 계속 쏟아져 나오는 신간, 시간, 돈, 공간만 좀 된다면 막 사들일 텐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