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지 않음으로 말하는 이야기가 있다. 그 여백과 공백 사이로 핵심 메시지가 들고 난다. 많은 것을 말한다고 해서 그 모든 것을 이해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어느 지점에서 멈춰야 하는지 덜어내야 하는지를 기민하게 의식하는 것만으로도 예술은 성립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윤희에게>는 드라마틱한 서사가 없다. 대학 입시를 앞둔 딸 하나를 이혼 후 홀로 키우는 윤희가 일하던 곳에서 휴가를 얻지 못하자 충동적으로 그만두고 딸과 함께 일본 오타루로 여행가는 게 주요 이야기다. 핵심은 윤희가 왜 하필 일본으로 무리해서 딸을 데리고 가느냐는 것이다. 거기엔 고등 시절 우정과 사랑의 경계를 넘나들었던 일본인 혼혈 친구 쥰이 있다. 쥰은 일본으로 가고 윤희는 결혼하고 아이를 낳는 과정에서 연락이 끊겼다 우연히 쥰에게서 편지를 받는 것이 그 계기다. 이렇게 이야기해도 이 영화의 깊이와 감동은 쉽사리 설명되지 않는다. 그래서? 이 영화가 울림을 가지는 지점은 그런 여백과 공백을 김희애라는 노련한 배우가 소화해서 연기하는 곳이고, 오타루의 눈이 부시는 설경과 그 설경 속에서 잔잔하게 흐르는 아름다운 ost고, 많은 것들을 서로 이야기하지 않지만 사랑하고 독립해 나가는 큰 딸과 엄마의 현실적인 교감의 지대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모든 것을 너무나 조화롭게 형상화해낸 연출의 역할이다. 


아주 오랜만에 많은 것을 이야기하기 위해 반드시 많은 것을 동원할 필요는 없다는 각성을 준 좋은 작품을 만났다. 좋은 이야기를 좋은 방식으로 하는 일은 언제나 설득력을 지닌다. 



















라디오 PD 정혜윤 작가의 글에는 실재가 있다. 언제나 산 체험이 있고 절실한 경청이 있다. 물론 그 글이 언제나 전부 다 내 의견과 같다거나 전적으로 긍정할 수 있었다는 것은 아니다. 때로 다른 생각도 있었고 의문을 가질 때도 있었다. 그럼에도 그녀의 글을 적극적으로 찾아 읽을 수 있었던 건 함부로 쉽게 무언가를 재단하고 쓰는 작가가 아니라는 신뢰가 있었기 때문이다. 정혜윤 작가의 글에서는 어떤 에너지가 있다. 그 에너지는 이 세상의 연약하고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한 뜨거운 애정이다. 그 애정은 잊고 살았던 것들을 환기시킨다. 


예를 들면, 우리가 대구 지하철 참사 피해자 유족들과 지하철 노조 덕택에 불연재로 된 지하철 좌석에 타고 다닐 수 있다는 것. 그 이전에는 지하철 내부에서 화재가 생기면 쉽게 옮겨 붙는 가연재 재질의 지하철 좌석에서 위태롭게 졸고 있었다는 것. 아직도 그날 그 불붙은 지하철 안에서 "미안하지만 돈까스는 못해줄 것 같아." 라고 마지막 메시지를 자녀에게 보냈던 어머니의 죽음에 관련한 사연으로 울컥한다.


저자는 2차 세계대전 종전 후 전범이 되어 사형당해야 했던 조선인 포로 감시원들의 잊혀진 사연도 이야기한다. 일본 식민지 시절, 다만 배를 안 곯기 위해 지원했던 연합군 포로 감시원직은 청년들을 졸지에 BC급 전범으로 만들어 버렸다. 평범한 대다수의 사람들처럼 대단한 명분도 악의도 없이 일본이 위에서 시킨 임무를 충실히 수행하던 그들은 종전 직후 갑자기 천하의 몹쓸 죄인이 되어 사형당하거나 설사 석방되었다 해도 정신, 육체의 피폐함으로 평생 고통받으며 살아나간다. 자녀에게 때로는 자신의 과거를 숨기고, 당시 함께 일하다 죽은 동지들의 이름과 고향 주소를 적은 종이를 "우와기"에 넣고 다니며 세상에 드러내어 놓고 한탄할 수 없는 고통을 사는 그들의 증언은 뼈아프다. 왜 하필 그런 일을 했냐? 거부할 수는 없었냐? 고 묻는 일은 가볍고 그런 일들을 할 수밖에 없었던 당시 상황과 이후의 그들의 비극적 삶은 한없이 무겁다. 자신의 무지를 죄악이라 여기며 죽어갔던 이십대 젊은이의 유서. 역사적 비극의 현장에서 개인의 개별적, 구체적 삶은 통째로 무시되고 폄하됐던 그들의 삶과 죽음 앞에서 숙연해진다. 


죽은 아기 돌고래 주위에서 먹이도 먹지 않은 채 계속 그 돌고래를 수면 위로 펌핑하듯 띄워 올리는 엄마 돌고래의 마음은 어떤 것이었을까? 해경이 그 아기 돌고래를 보트에 묶어 운반하자 엄마 고래 '시월이'는 휘슬 소리를 내며 계속 따라온다. 아기의 죽음을 알고 그 슬픔을 표현할 길 없었던 돌고래의 마음이 전해져 와 눈물이 났다. 세월호, 이태원, 그밖에 많은 사건, 사고들로 자녀를 잃은 부모의 마음은 차마 언어로 표현할 길이 없다. 


이 세상의 모든 약하고 덧없는 생명들에게 연민과 사랑을 전하는 작가의 마음은 결국 우리가 그러한 이야기들을 경청함으로써 좋은 삶을 발명해낼 수 있다는 믿음으로 확장된다. 모르니까 그러는 것일 뿐, 우리는 이야기를 듣고 앎으로써 결국 공감과 사랑으로 만날 수 있다는 그 믿음이 소중하다. 오늘 하루도 나는 나의 이야기를 만들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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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3-10-31 09:36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말씀하신 것처럼 특별한 서사가 등장하는 게 아니고 요란하지도 않은데요, 저는 <윤희에게> 를 보면서 울어버렸습니다. 하아-

blanca 2023-10-31 12:00   좋아요 3 | URL
저 ˝나도 네 꿈을 꿔.˝라는 김희애 마지막 대사에 울었어요. 완전 울컥하는데...이제는 연락이 끊긴 고등 때 단짝 친구가 떠오르더라고요. 감독이 각본까지 다 썼다는 얘기에 놀랐고요. 이미 김희애 여배우를 떠올리며 작업을 했다는 이야기도 흥미롭더라고요.
 

아직 서른다섯이 채 안된 아는 동생이 아직 다섯 살이 되지 않은 아이를 키우는 이야기를 들었다. 익숙한 어려움, 낯익은 환희들, 피곤함 등이 떠올랐다. 대체 서른다섯이 되는 것은 어떤 느낌이었나,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 "서른다섯 살이 되던 봄" 에 인생의 반환점을 돌고 있구나, 하고 깨달았던 것 같지도 않다. 스무 살의 봄은 생생한데 그 반환점의 기억이 흐릿하다니...


타당하다고 생각되는 수명이 일흔여덟에서 여든이 되고, 여든에서 여든둘이 되고, 여든둘에서 여든넷이 된다. 그런 식으로 인생은 조금씩 길어지게 된다. 그리고 어느 날, 사람들은 자신이 벌써 쉰이 되었음을 깨닫는 것이다. 쉰이라는 나이는 반환점으로는 너무 늦다. 백 살까지 사는 사람이 대체 몇 명이나 된단 말인가? 사람들은 그렇게 해서 저도 모르는 사이 인생의 반환점을 잃어가는 것이다.

-무라카미 하루키 <풀사이드> 중




여덟 편의 단편에는 하루키의 실명이 등장한다. 소설가가 청자로서 기능하고 우연히 마주친 화자들은 대부분 그 인생의 반환점에 다다랐거나, 혹은 그 이전 정도의 나이로 저마다 겪은 인생의 이야기를 하루키에게 털어놓는 방식의 이야기들이다.  하루키가 가장 자신 있었다는 이야기는 처음 실린 <레더호젠>이다. 이 이야기가 놀라운 것은 화자 역시 다른 이야기 속의 그들과 마찬가지로 젊지만 그녀가 이야기하는 오십 대의 어머니에 대한 인식이 당시 하루키의 나이를 생각할 때 놀라울 정도로 생생하다는 것이다. 은퇴를 앞둔 남편를 두고 독일에 홀로 여행을 떠난 중년 여성이 남편의 반바지를 구입하며 문든 남편에 대한 자신의 감정을 정확히 직시하게 되며 스스로의 반환점을 뒤늦게 만드는 이야기다. 그건 해피엔딩이었을까? 하루키도 그 이야기를 해줬던 아내의 친구도 섣불리 단정짓지는 않는다.  어떤 변화는 급진적으로 전개되지만 이미 그것은 그 사람속에 예정되어 있었는지도 모른다. 하루키가 유일하게 인생의 턴지점인 반환점을 삼십대 중반에서 오십대로 나름의 기준으로는 너그럽게 양보한 이야기다. 

















줌파 라히리는 이제 영어로 소설을 쓰지 않는다고 한다. 이탈리아에 이주해 이탈리아어로 글을 쓰고 꾸준히 번역 작업도 하는 모양이다. 개인적으로 그녀의 예민하고 섬세한 촉수로 이방인의 정서를 어루만진 글을 좋아하지만, 외국어로 이중의 이방자 의식을 조탁하며 만들어내는 이야기가 이제 점차 오십대 중반에 아이들을 독립해 보낸 중년의 쓸쓸함으로 가닿은 변화가 반갑기도 하고, 아쉽기도 하다. 반환점을 맞기에는 너무 늦은 나이 특유의 버석거림이 로마라는 이국적 도시의 정경과 맞물려 그녀 특유의 서정적 정조 아래 투명하게 드러난다. 문득문득 작가 자신의 고백이 아닐까, 하는 심증이 들었지만 그것조차 독자의 자의적 해석의 영역 안에 있을 것이다. 



우리는 나이라는 틀을 자의적으로 부여했지만 그 생물학적 맞물림은 거기에서 우리를 쉽사리 해방시키지 못한다. 내가 이 정도 나이이니 이렇게 행동해야 하고 느껴야 한다,는 사회적 기대가 그러하다. 실제 육체적 노화도 큰 준거점이 된다. 에너지는 떨어지고 그건 분명 삶의 반경을 제약한다. 잃어가고 타협하고 이해하게 된다. 이게 좋은 건지 나쁜 건지는 아무도 섣불리 단정짓지 못한다. 반환점을 인식하지 못했으니 나의 반환점은 아직 오지 않은 건지도 모르겠다. 그 반환점이 오면 다시 턴하고 나에게 남은 시간들을 제대로 세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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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3-10-19 11:3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 역시나 너무나 좋은 블랑카 님의 글입니다.
저도 줌파 라히리의 신간 주문해 받았어요. 곧 읽을 생각에 설렙니다.

blanca 2023-10-19 16:32   좋아요 0 | URL
애정하는 작가가 있다는 건 또 그 작가가 신간을 낼 수 있다는 건 참 일상의 큰 기쁨인 것 같아요. 작가들의 부고가 뜰 때마다 참 마음이 안 좋더라고요.

스파피필름 2023-10-19 14: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블랑카 님 이 글 참 좋게 읽었습니다^^ 저도 주문했습니다.

blanca 2023-10-19 16:32   좋아요 1 | URL
스파피필름님, 감사합니다. ^^
 

열 살에게 어른의 세계는 위압적이다. 특히나 그 어른이 부모일 경우, 그 세계의 문은 닫혀 있다. 아무리 탈출하려 해도 불가능하다. 그 어린 아이가 어른이 되기 전에는... 그래서 넌 다시 어린이가 되고 싶냐,고 묻는다면 나는 단호히 고개를 젓는다. 아무리 좋은 부모라도 때로 그 부모가 믿는 세계가 얼마나 어린 아이에게 폭압적이 되는지 어른이 되고 나서야 알았기 때문에...


그건 도덕률이 될 수도 있고 때로는 종교가 될 수도 있다. 아이는 선택할 수 없다. 부모가 교회에 가라면 가고, 그 친구를 만나면 안된다고 하면 때로 사랑하는 친구와 헤어진다. 그게 부모의 사랑이라고 한다면 아이는 그걸 도저히 거역할 힘을 낼 수 없다. 그건 반역에 버금가니까. 사랑과 폭력의 경계가 얼마나 얇은지 에리히 프롬은 알았다. 그는 "통제와 폭력 행사는 불과 한 걸음 차이다" 라고 엄중히 경고한다. 내가, 어른이 상정한 완벽한 세계가 과연 절대적인가, 자문하고 의심하는 시간을 주기적으로 가지지 않는다면 나는 나도 모르게 아이를 그 세계 안에 우격다짐으로 구겨 넣게 될 위험이 있다. 그리고 그것은 아이가 성장하고 난 후 기억하는 폭력의 시절이 될 수도 있다. 나는 사랑이라고 생각했는데.





뒤늦게 읽은 <1Q84>의 주인공 아오마메와 덴고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아오마메는 어린 시절 주말마다 폐쇄적 종교 단체에 속한 어머니의 전도 활동에 동행해야 했다. 덴고는 아버지의 회사 수금에 동행해야 했다. 그 아이들에게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일요일은 없었다. 아오마메와 덴고는 저마다 나름의 이유로 아픈 시간을 공유한다. 그러나 그 아버지와 그 어머니는 나쁜 사람들이었을까? 내 아이에게 내가 믿는 종교 활동의 전도에 동행하게 하고 나의 삶의 전장에 데리고 다니는 게 과연? 어쩌면  그들에게 그 행위는 하나의 사랑의 방식이라 여겨졌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이들은 결론적으로 부모가 그럼으로써 아이다울 시간을 잃어버리게 된다. 


일요일에 아이들은 아이들끼리 마음껏 뛰어놀아야 하는 것이다. 사람들을 어르고 달래며 수금을 하거나 무서운 세상의 종말을 선전하고 다니거나 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그런 건-만일 그럴 필요가 있다면 그렇다는 것이지만-어른들이 하면 되는 것이다.

-1Q84


현실 세계와 덴고가 쓰는 허구의 이야기의 세계가 중첩되는 곳에서 아오마메와 덴고가 각자의 시간대를 살아나가며 그 상실과 아픔을 소화하고 마침내 재회하기까지의 여정은 선과 악의 경계와 옳은 것과 그른 것의 분별의 지점을 사정 없이 흔든다. 우리가 절대적인 가치라 믿는 것의 근간을 뒤흔드는 지점에서 끊임없이 혼란과 질문을 유도하는 하루키의 이야기는 그가 그린 달이 두 개 뜨는 세계만큼이나 몽상적이지만 도저히 고개를 돌리지 못하게 하는 마력을 지닌다.


슬며시 하늘을 올려다 보고 정말 달이 두 개일 수도 있다,고 믿게 만드는 건 이야기의 힘일까.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시간이 또 다른 차원의 세계에서 벌어지는 하나의 이야기에 불과할 수도 있다는 의심 또한 그렇다. 리얼리티에 대한 고정관념을 허무는 이야기다. 


사랑이라고 믿고 행하는 것들에 대해서도 돌아보게 만드는 시간이다. 그게 통제하고자 하는 힘으로 분출될 때 얼마나 위험해질 수 있는지에 대한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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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3-10-11 12: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1Q84 개정판으로 읽으셨군요~!
3권이긴 하지만 너무 재미있어서 재독하게 되더라구요. 현실과 환상을 넘나드는 하루키 특유의 이야기는 최고인거 같아요! 오늘밤 달이 두개 떠있는지 살펴봐야 겠습니다 ㅋ

blanca 2023-10-11 14:46   좋아요 1 | URL
진짜 이상한게요. 완전 허구잖아요. 그런데 달을 자꾸 보게 된단 말이에요. 오늘 달이 두 개 뜰지도 몰라, 이러면서...하루키 월드에 빠졌습니다.

다락방 2023-10-11 14: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휴 글 너무 좋네요. 이 글 읽으니 이언 매큐언의 <칠드런 액트> 도 생각나고요. 덕분에 이 책 다시 읽어보고 싶어졌어요. 저는 이 책 읽고 남아있는 기억이라곤 아오마메는 고환을 걷어찰 수 있다는 것 뿐인데요...

blanca 2023-10-11 19:43   좋아요 0 | URL
ㅋㅋㅋ 댓글 읽고 벌써 잊어버렸었네, 이랬어요. 정말 독특한 캐릭터죠. 저 1권 읽다 몇 번이나 빵 터졌는지 몰라요. 하루키 초기작 속 여주인공들은 남주의 대상화가 보여서 거부감 드는데 여기에서는 완전 쎈 언니들 대거 등장해서 속이 다 시원하더라고요.

자목련 2023-10-11 16: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1Q84, 읽었는데 내용이 하나도 기억이 안나요. 주인공 이름은 익숙하니,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ㅎ

blanca 2023-10-11 19:44   좋아요 0 | URL
저는 읽기 전부터 이 두 주인공 이야기는 종종 봤던 것도 같아요. 저는 요새 재독하는 책들이 좀 있는데 다 처음 읽는 것 같아 깜짝깜짝 놀라요.

은하수 2023-10-11 17: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읽고 그 다음 권을 한동안 계속 기다렸잖아요!
좀 더 희망적인 내용을 기대하면서요.
3권이 끝이라는게 믿기지 않았어요. 그 마음은 지금도 그렇구요^^

blanca 2023-10-11 19:45   좋아요 1 | URL
그죠, 은하수님. 이건 끝이 아니야, 같은 여운이 길어서...그래서 둘이 돌아온 세계는 어디였을까, 정말 궁금해요.
 

일어 독학을 시작한 지 4개월이 지났다. 특별한 계기가 있는 것은 아니고 언젠가 꼭 한번 공부해보고 싶다고 생각하다 이제는 더 이상 미루면 안될 것 같아 덤비게 된 것. 유튜브를 보며 히라가나와 가타가나를 외우고 EBS 초급 일본어를 듣는다. 성시경의 일본 노래 가사를 활용한 일본어 강의도 듣는다. 그리고 두둥, 일본어 책을 샀다. 하루키의 <후와후와>
















아마 초등학교 1학년 정도 수준이 되지 않을까?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감도 못 잡는 수준이 내 일본어 수준이긴 하지만...그러나 역시 하루키는 하루키다. 어렵다. 한 문장도 사전 없이 제대로 해석할 수가 없다. 블로그에 단어를 정리해둔 것을 찾아 그 단어를 모조리 적고 다시 읽어도 역시 매끄럽게 읽히지 않는다. 이건, 나이 때문일까?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일은 나의 세계를 확장하는 일인데 그 확장도 가능한 연령 한계치가 있는 것일까? 돌아서면 전날 외운 단어를 까먹는다. 오늘의 내가 어제의 나보다 일어를 더 잘하는지 모르겠다. 사실 더 못하는 것도 같다. 하기사 영어 공부한 세월을 생각하면 고작 육 개월도 공부하지 않고 바로 원서를 술술 읽고 싶어하는 게 말도 안된다 싶기도 하고...게으른 욕심쟁이.

















클레어 키건의 <맡겨진 소녀>는 킨들에 원서로 먼저 다운 받아 놓았다. 아마존 리뷰도 극찬 일색이고 일단 분량이 적어서 바로 시도해봤지만 번번이 실패하곤 했다. 그 입구 허들이 높다고 해야 하나. 영 몰입이 안 되었다. 일단 클레어 키건의 문장은 암시적이고 함축적이다. 번역본을 봐도 쉽지 않다. 그 함축의 미가 클레어 키건 자신이 의도한 바이기도 하다. 이건 원작으로 읽어도 마찬가지다. 소녀의 마음은 언어의 필터로 다 걸러지지 않는다. 그 밑에 가라앉은 것들을 읽는 이들 각자가 알아 소환해야 한다. 쉽지 않다. 


줄거리 자체는 복잡할 게 없다. 여름 방학 동안 막내 동생을 임신한 엄마를 떠나 나이 든 친척 집에서 지내는 소녀의 얘기다. 대단한 극적 긴장감도 없다. 그 친척 부부는 친절하고 따뜻하다. 그런데 특별한 점은 이 친절이 이 소녀에게 가지는 의미와 무게다. 줄줄이 딸린 동생들, 언니들 사이에서 소녀는 따뜻한 환대나 배려를 받아본 기억이 없다. 그러한 소녀가 이 눈부신 여름 동안 단 하나의 유일한 아이가 되어보는 경험이 이 소녀의 성장에 어떤 의미를 가질 것인가. 그건 완전히 다른 차원의 이야기다. 


누구나 한번쯤 몹시 춥고 소외당했던 유년의 기억이 있을 것이다. 나만이 유일하게 흠뻑 사랑 받는 기회는 애석하게도 흔치 않다. 그리고 이 소설을 읽는 이는 누구나 그런 특별한 경험을 거슬러서 하게 된다. 그게 이 소설을 읽다 갑자기 툭 떨어지는 눈물의 의미일 것이다. 치유의 시간이다. 아일랜드 작가들은 그런 면에서 아주 특별한 것 같다. 트레버가 그랬고 샐리 루니가 그랬다. 많은 것들을 이야기하지 않는데 그 행간에 거대하고 심오한 뭔가가 불거져 나와 마음의 어떤 현을 '딩'하고 건드린다. 그 공명감은 길게 여운을 남긴다. 잘 쓴 이야기란 이런 것이다. 많은 것들을 부연 설명하거나 과장하지 않아도 바로 건너가서 건드린다. 억지로 될 일이 아니다. 


내가 그 여름에 이 친척 부부에게 맡겨질 수 있었다면...나도 이 소녀처럼 그랬을까 싶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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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3-08-21 11: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와 일본어 독학 시작하신 블랑카 님, 멋져요! 저도 일전에 일본어 해볼까 했는데 마음을 접었어요. 지금은 도무지 시간이 나지 않는다는 핑계를 댑니다. 독서도 못하고 있어서 ㅠㅠ

일본어 공부 응원합니다, 블랑카 님. 다른 누구보다도 블랑카 님의 외국어 공부는 더 응원하게 되네요. 이렇게나 책을 잘 읽어내시고 감상을 잘 적어주시는데, 외국어를 익힌다면 그 폭이 마구 확장되실 것 같아요. 부디 공부 놓지 마세요!!

blanca 2023-08-21 15:10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 진짜 어제 외운 단어, 오늘 보면 처음 보는 느낌처럼 새롭습니다. 그래도 조금씩 오래 하는 걸로 하려고요. 사실 성시경이 마흔 넘고 노안 오고 일어 공부를 시작해서 그렇게 잘하는 거라고 하더라고요. 일어 공부를 하루에 세 시간씩 이 년 이상 했다는 얘기 듣고 자극 받았어요. 연예인이 본업인 사람도 해내는데 나라고 못해내랴, 싶었는데 현실은...성시경이야 일본 팬들이 있지만 저는 일본에서 기다리는 사람이 없어서 ㅋㅋ 일단 의욕을 오래 가지는 게 관건인 것 같기는 해요.
 

언니 같던 중학교 친구가 집에서 아주 멀리, 멀리 기대하지 않았던 고등학교에 배정되어 멘붕에 빠진 나를 다독이며 선물을 줬다. 나의 적응을 도와줄 친구를 연결해 준 거였다. 아주 이쁜 친구야. 나는 역시 우리 동네에서 뜬금 없이 아주 먼 동네에 함께 던져진 다른 친구와 함께 그 백설공주를 닮은 친구에게 다가갔다. 우리는 삼총사가 됐다. 그리고 한 명을 더 만났다. 사인방이 됐다. 우리는 이십대에도 심지어 삼십 대에도 그 인연을 이어갔다. 첫애를 낳고 방금 내 몸에 벌어진 사건으로 멘붕에 빠진 나를 제일 먼저 찾아준 것도 그 친구들이었다. 
















박상영 작가의 에세이를 읽으며 그 친구들과의 시절을 떠올리게 됐다. 내가 왜 이 작가를 좋아할까 생각해 보니 여러 면에서 서로 닮은 점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등학교 시절, 대학교 시절, 그 시절에 내가 가졌던 생각들까지. 교집합이 많아서 뜨끔했다. 다른 점이라면, 박상영 작가는 자신의 꿈을 이뤘고 그 우정도 잘 지켜냈다는 점. 난 두 가지 다 하지 못했다. 슬프게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시절 내가 친구들에게 받은 사랑, 지지는 여전히 지금 나의 일부를 이루고 있다. 어떤 것은 사라져도 없어지지 않는다. 오해로, 다툼으로 멀어진 친구, 지구편 반대끝으로 가버린 친구, 이제는 바빠서 어쩌다 한번씩밖에 얼굴을 볼 수 없는 친구. 모두 다 하찮은 자기변명이자 구실이 되겠지만, 그래도. 우리의 해산은 그런 식으로 설명될 수밖에.


그런 날들이 있었다.

이제는 그 맥도날드도 사라지고 없다.

-<순도 100퍼센트의 휴식> 박상영


가파도 레지던시에서 공동생활을 한 김연수 작가와의 에피소드는 마치 눈앞에 그려지는 것처럼 생생해서 서정적인 단편 한 편을 읽는 느낌이었다. 박상영 작가는 언어를 감각적으로 그려내는 데에 탁월한 재능이 있다. 언어로 사람을 불러낸다. 정말이다!이를테면 이런 묘사. 김연수 작가의 조용조용한 목소리가 귓전에서 들린다.


내가 심드렁한 목소리로 답했다.

"왠지 가짜로 만들어놓은 것 같아. 관광객들 보라고."

김연수 작가님께서는 꿈결 같은 목소리로 속삭이듯 말씀하셨다.

"상영이는 의심이 많구나(음량1). 사람에 대한 신뢰가 없어(음량0.5)......"

-<순도 100퍼센트의 휴식> 박상영


무려 한 세대를 넘는 나이 차가 전복된 순간이다. 세상에 대한 냉소는 어린 상영 작가가, 그럼에도 긍정은 연수님이. 다 같이 밥을 나누어 먹자고 한 솥 가득 밥을 하는 김연수 작가, 또래 친구와 더 재미있게 가벼운 몸으로 놀라고 상영 작가의 짐까지 들고 먼저 사라지는 김연수 작가. 


그 정경이 눈앞에 그려지는데 왜 이리 웃음이 나오는지 모르겠다. 그건 나의 한때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나는 젊을 때 더 냉소적이었고 그게 제법 쿨한 건줄 알았다. 그런 나를 다독이고 세상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주문한 건 의외로 나보다 훨씬 연배가 높은 선배님들이나 기성 세대였다. 내가 나이 들어보니 그런 따뜻함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지하는 건 정말 대단한 일이다. 

















회사 다닐 때 나는 숱하게 난을 죽였다. 나는 나의 소임을 다하지 못했다. 집에서 식물을 키우게 된 이후로도 상황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그 쉽다는 고무나무, 심지어 산세베리아도 내 손에서는 묘하게 말라 비틀어지거나 잎을 축 늘어뜨렸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고 나는 또 새로운 나무를 들였다. 4년째 잘 크고 있는 아레카 야자도 사실 그리 잘 크고 있다고는 하지 못하겠다. 이상하게 한쪽으로 쏠리는 비대칭의 모습, 아무도 우리 집,내 눈에만 잘 크고 있는 나무에 대해 칭찬하지 않는다. 그 옆에 난이도 중이라는 바나나크로톤은 묘하다. 나는 절대 난이도 중급 이상의 식물을 키우지 못하는데, 다행스럽게도 죽을 듯 죽을 듯하며 죽지 않고 살아가고 있다. 이 역시 예쁘게 잘 크지는 않는다. 멀리서 보면 살아 있는 게 분명한데 가까이에서 들여다보면 좀 헷갈린다. 잎사귀가 적고 줄기 부분은 말라 있다. 죽어가는 중인가? 싶은게 1년이다.


김금희 작가는 이런 나와 대척점에 있다. 사실 뭘 키워도 잘 키우는 사람의 식물 이야기가 나에게 어떤 감동을 줄까 싶었지만 역시 좋은 이야기를 많이 쓰는 작가의 사물, 생물에 대한 관찰은 삶과 일상에 대한 깊은 관조적 시선과 맞닿아 공명한다. 식물에 대한 이야기는 나와 비슷한 나이가 주는 공감대에서 내가 미처 정리하지 못한 감정들에 대한 언어적 서사를 부여한다. 맞아, 이런 거였구나, 싶은 대목이 너무 많아서 뭉클했다. 내가 용서할 수 없었던 내 자신에 대한 이야기. 이제는 그만 놓아줘야 하는 내가 내 자신을 너무나 가혹하게 다뤘던 한 시절에 대한 정리. 열심히 한다고는 했는데 그 열심이 더 나의 평안을 훼방했던 고였던 시절에 대한 갈무리. 


나는 다시 한번 아무도 이쁘다 해주지 않는 나의 식물 둘을 바라본다. 주광성을 고집하며 끈질기게 휘어가는 그들의 가지의 생명력을 본다. 


그런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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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3-08-13 13: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글 읽다가 아 맞다 하면서 저의 화분들에 물주고 왔어요. ^^ 이번에 여행갔다오니까 몇녀석이 말라서 다 죽어가고 있더라는....ㅠ.ㅠ 박상영작가의 에세이는 여행에 대해서 저와 완전히 다르게 느끼는것 같아서 오히려 관심이 가네요. 한번 읽어봐야겠어요.
나 자신을 너무 가혹하게 대하던 시절이 사실 우리 대부분은 가지고 있지 않나요? 중요한건 거기서 빨리 벗어나야 한다는거같아요. 오늘도 나를 사랑하고 나의 게으름을 사랑하기 위해 부단히 또 노력중인 이 아이러니.... ^^

blanca 2023-08-13 20:14   좋아요 1 | URL
여행 갈 때 식물 물 주는 일이 문제죠. 저는 그런데 대부분 과습으로 식물들을 죽였던 것 같아요. 요새는 좀 게으르게 했더니 더 잘 자라는 것도 같아요. 저 같은 경우 어떤 시절은 나이가 들수록 더 잊혀졌던 기억들이 떠오르기도 하는 것 같아요. 잘 갈무리 해야 할 것 같아요.

자목련 2023-08-16 16: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박상영 작가의 에세이가 궁금하지 않았는데, 김연수 작가의 등장하는 그 부분은 무척 궁금합니다. ㅎㅎ
식물은 식물이 주는 기쁨만큼 사랑을 주지 못하고 있어요, 저도...

blanca 2023-08-16 16:33   좋아요 0 | URL
자목련님, 이 에세이에서 김연수 작가 분량이 꽤 많아요. 그 묘사가 너무 좋아 하나의 단편 같고요. 우리가 생각한 딱 바로 그 캐릭터 대로 움직입니다. 다정하고 재미있는 사람이요. 박상영 작가가 김연수 작가와 세대를 넘어서 정말 좋아하고 교감한다는 느낌이고요. 진담인지는 모르겠지만 김연수 작가 모델로 소설도 쓸 생각이라 하더라고요. 여튼 둘의 묘한 어우러짐이 정말 좋아서 계속 얘기해줬으면 싶겠다 싶을 정도였고요. 박상영 작가 친구들이 김연수 작가 팬이 많더라고요. 이 부분 얘기도 재미있어요. 여튼 두 작가 다 너무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