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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가루.석별.옛날이야기 (무선) ㅣ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75
다자이 오사무 지음, 서재곤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7월
평점 :
나중에 이런 식으로 쓰니까 사이가 나빠지는 것이다. 가족 이야기를 글로 써서 그 원고를 팔아야만 살아갈 수 있는 비참한 운명의 남자는 신으로부터 고향을 몰수당한다.
-p.127
신으로부터 고향을 몰수당한 비참한 남자가 조심스럽게 고백한다. 내 성격을 창조하고 숙명을 규정 지은 이 고장들을 이야기하는 데 나는 결코 적임자가 아니었다고.
<쓰가루>
쓰. 가. 루.
'패자의 문학'을 했던 다자이 오사무가 태어나 20년간 자란 곳이다. 역사에서 잊혀진 혼슈의 북단. 다자이 오사무는 한 서점의 의뢰로 쓰가루 반도를 여행하고 소설의 형식을 빌어 <쓰가루>의 풍경, 역사, 추억을 펼쳐 놓는다. 옛친구들과 재회하고 군데군데 유년의 기억들을 들추어 내면서 서투르게 자신을 드러내는 이 작품은 가장 다자이 오사무적인 것이 아닌가 싶다. 그러니까 <인간실격>을 쓸 수밖에 없었던 그의 연약하고 투명한 속내를 들여다 보게 되면 그 속에서 묘한 공감의 요소를 발견하게 된다. 우리는 모두 어느 정도는 루저이니까.
나에게는 또 다른 전문 과목이 있다. 속인들은 그 과목을 사랑이라 부른다.
-p.35
어른이라는 것은 외로운 것이다. 어른이란 배반당한 청년이다.
-p.43
배반당한 청년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기만과 환각의 시절들을 끊임없이 회고하고 사랑한다. 그건 비극이기도 하고 희극이기도 하다. <쓰가루>의 절정은 결말이다. 어머니의 젖을 한 방울도 못 먹고 자란 그는 제2의 어머니와도 같았던 보모 다케를 만나는 것을 쓰가루의 마지막 여정으로 아껴둔다. 세 살에서 여덟 살. 어머니는 하나의 인간과 하나의 삶을 조각한다. 다자이 오사무는 마침내 비로소 자신의 성장 과정의 본질을 확인하게 된다. 재회는 너무나 담담하고 너무나 건조해서 외려 더 뭉클하다. 언어가 비껴 가는 지점. 작가와 독자는 손을 맞잡는다.
세상의 어머니라는 존재는 모든 자식들에게 이와 같은 달콤한 방심 상태의 휴식을 주는 것일까? <중략> 효도는 자연의 섭리이다. 윤리가 아니다.
-p.181
격렬한 포옹도 눈물도 극도의 흥분도 없이 그저 잘 왔다! 그 한 마디. 다자이 오사무의 귀향의 가장 안온한 종착점이었다.
<석별>
도호쿠 지방의 나이 든 의사의 회고록 형식을 띤, 같이 의학 전문학교를 다녔던 루쉰에 대한 추억담이다. 아무래도 집필 계기가 국책 홍보를 위한 조직의 의뢰였다 보니 군국주의적 색채가 짙어 상당히 거부감이 들었다. 특히나 러일전쟁을 마치 중국의 독립을 지키기 위한 대리전, 성전으로 미화한 대목과 아시아 여러 나라들의 독립을 지지하는 것처럼 하면서 정작 우리나라에 대한 불법적 침략, 지배에 대해서는 일언반구 언급도 없는 모순에 아연했다. 문학은 현실을 이길 수 없다,는 슬픈 자각. 결국 자신의 소속, 처지를 뛰어넘을 수 없는 그 한계. 거기에서 더 나아가야 언어는 진실 한 점을 딛고 피안을 응시할 수 있지 않을까.
<옛날 이야기>
공습경보를 피해 방공호로 대피한 다섯 살 딸에게 아버지가 일본의 옛이야기들을 각색해서 들려주는 형식을 띠고 있다. '혹부리 영감', '우라시마', '부싯돌 산', '혀 잘린 참새' 는 다자이 오사무를 통해 형식적인 패러디를 뛰어 넘어 성공적으로 재창조되고 있다. 거북이를 타고 용궁 체험을 가고 토끼 소녀가 너구리 아저씨를 골려 먹고 혀 잘린 참새 소녀를 할아버지가 사랑하고. 이런 전혀 그럴 듯하지 않은 얘기들을 읽으면서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착각하게 하고 책을 읽다 혼자 미친듯이 웃게 하고 때로 튀어 나오는 경구들을 메모하게 하고. <석별> 같은 작품에도 불구하고 다자이 오사무를 위대한 작가로 인정할 수밖에 없게 한다.
계곡 저 건너편에 아름다운 꽃이 분명히 피어 있다고 믿을 수 있는 사람만이 아무런 주저 없이 등나무 줄기에 매달려 건너편으로 건너갑니다.<중략> 당신에게 모험심이 없다는 것은 당신에게 믿는 능력이 없다는 것입니다.
-p.359
용궁 기행을 저어하는 우라시마에게 거북이가 내려준 모험의 정의. 피안을 믿을 수 없는 사람은 차안에 발이 묶이고 만다. 우라시마가 용궁을 떠나면서 받은 조개껍데기를 열어보자 곧바로 백발의 할아버지가 되어버린 장면도 의미심장하다. 우리는 그것이 일종의 형벌이라고 반응하지만 다자이 오사무는 축복이 될 수도 있다고 덧붙인다. 세월과 망각은 인간의 구원이라고. 삼백 살의 할아버지가 반드시 불행한 것은 아니다.
세상을 등진다는 것도 돈이 조금이라도 있어야만 가능하지, 돈 한 푼 없는 하루살이 신세라면 세상을 등지려고 해도 세상이 쫓아와서 도저히 등질 수가 없다.
-p.425
쓰가루 유수의 대지주 가문에서 태어나 '"소설을 쓰는 것이 싫어져서 죽는 것입니다"(해설 참조)라는 유서를 남기고 연인과 동반자살한 그가 이러한 얘기들을 남겼고 그 얘기들을 들을 수 있어 다행이다, 라고 여겨도 되는 것일까? '생명의 불안이 언어를 발효시킨다'고 했던 그의 얘기처럼 창조의 동력이 없는 우리들은 생명의 불안 때문에 읽는다고 자위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