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든파티 (반양장) 펭귄클래식 79
캐서린 맨스필드 지음, 한은경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웅진)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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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근처 백화점 옥상에는 간이 테라스가 있다. 탁 트인 시야로 뽀송뽀송한 구름이 잡힐 듯하고 푸른 하늘이 마치 바다처럼 너울거린다. 그런데 고개를 조금만 숙이면 재개발을 기다리는 노후화된 작은 집들과 잿빛 담들이 다닥다닥 붙어 왠지 조금 서럽게 나를 올려다 본다. 마치 삶 같다. 아름답고 희망찬 것들만 보고 살 수는 없다. 발을 디딜 땅에, 누일 집 한 칸에, 입어야 할 옷과 먹고 마셔야 할 것들을 끊임없이 그러 모아야 살아 낼 수가 있다.  그건 '나'의 얘기이기도 하고 '당신'의 얘기이기도 하니 우리의 얘기도 될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집으로 오는 가파른 경사로의 가장 아래쪽에 그 작은 초가집들이 모여 있었다. 초가집들과 그들의 집 사이로 큰 도로가 나 있기는 해도 사실 거리는 가까웠다. 초가집들은 무엇보다 눈엣가시였고 그 자리를 차지할 권리가 전혀 없었다. 초콜릿 빛 갈색으로 페인트가 칠해진 자그마하고 초라한 집들이었고, 손바닥만 한 텃밭에는 양배추 줄기와 병든 암탉, 토마토 깡통만 뒹굴었다. 누더기 조각 같은 연기는 셰리던 가의 굴뚝에서 뿜어져 나오는 거대한 은빛 구름 같은 연기와 차원이 달랐다. 그 거리에는 세탁하는 여인들과 청소부, 구두장이 등이 살았다.
-p.103 <가든파티> 중


더할 나위 없는 날씨에 수백 송이의 만개한 장미꽃 속에서 가든파티를 열게 된 셰리던 가에는 그 초가집들 중 한 곳에 사는 사내가 불의의 사고를 당해 다섯 아이와 아내를 남겨 놓고 죽게 된 소식이 전해진다. 이에 셰리던 가의 딸 로라는 가든파티를 즐기는 것에 왠지 모를 부끄러움과 꺼림칙함을 가지게 된다. 로라가 파티에서 남은 음식들을 바구니에 담아 그 집을 방문하게 되는 이야기가 <가든파티>의 사연이다. 로라는 자신의 화려한 모자에 대해 그 초라한 집의 유족들에게 사과한다. 이것은 마치 이렇게 풍족하게 사는 것이 미안하다,는 얘기로 들린다. 죽음과 가난을 지척에서 목도하게 되는 부잣집의 철없는 아가씨의 모습은 성장의 관문을 그녀가 통과하여 이제 그녀가 진짜 삶을 살게 되는 모습을 엿보게 되는 것과 같다. 이제 그녀는 더이상 누더기 조각 같은 연기를 외면하고 셰리던 가의 거대한 은빛 구름 같은 연기를 생각할 수 없게 되어 버린 것이다.  

그녀는 말을 멈추고 오빠를 바라보았다.
"인생이, 인생이......"
그녀가 더듬었다. 하지만 인생이 어떤 것인지 설명할 수 없었다. 그래도 상관없었다. 로리는 무슨 뜻인지 이해했다.
-p.114

 

신화학자 조셉 캠벨은 '우리의 진정한 실재는 모든 생명을 동일시하고 통합하는 데에서 비롯된다'고 얘기한다. 여기에 진실이 있다고 덧붙인다. <가든파티>는 호사스러운 얘기가 아니다. 날카로운 진실에 대한 성찰이 지나간 자리에 이 짧은 이야기의 중량감이 느껴진다. 생애 마지막 책을 남겨 놓고 요절한 작가에게 깨달음은 한꺼번에 달려왔었나 보다. 우리는 그 깨달음들과 섬세하고 아름다운 묘사들을 그저 손을 뻗어 잡기만 하면 된다.  

보기드문 아름답고 가볍지 않은 단편집.
청량한 푸른 하늘과 판자촌의 어딘가쯤에 아직도 작가의 시선은 머물고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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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1-09-26 1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블랑카님이 읽으신 맨스필드 단편집, 저도 가지고 있어요. 그런데 아직까지 안 읽어봤어요.
한동안 외면하고 있었는데 등교하는 버스 안에서 읽어봐야겠습니다. ^^

blanca 2011-09-27 10:51   좋아요 0 | URL
cyrus님 갖고 계시다면 이 좋은 날씨에 꼭 시도해 보세요. 묘사력이 아주 탁월한 작가랍니다. 시인 같아요.

비로그인 2011-09-26 15: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런 이야기였네요. 거대한 은빛 구름만 보고 사는 사람들이 누더기 조각 같은 연기를 볼 수 있으면 정말 좋을텐데요. 이건 저한테도 해당하는 이야기 같아요. 글 잘 읽었어요 :)

blanca 2011-09-27 10:52   좋아요 0 | URL
예, 젊은 여류작가가 그냥 예쁘기만 한 얘기가 아니라 그 속에 담긴 참혹한 진실에 대한 얘기를 가감없이 묘사해서 아주 인상적이었어요. 오늘 하늘은 아예 구름 한 점 없는 푸른 빛깔이네요.

비로그인 2011-09-26 2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blanca님 제 창 너머에는 겨울 내내 구멍만 뻥 뚫려 있던 건물들이 이미 사라져 버렸답니다.

2미터나 될까 한, 길 하나를 건너 휑하니 건물들이 사라져 있는 모습이 뭔가를 떠올리게 하네요. 언젠간 이곳도 그렇게 삶이 통채로 사라지는 그런 휑한 곳이 되겠지요. ^^

blanca 2011-09-27 10:53   좋아요 0 | URL
요새는 무언가 통째로 들어내고 다시 세우는 일들이 너무 빈번한 것 같아요. 그래서 골목길이 참 소중하고 또 아련하기도 하고 그래요. 그런 것들이 반드시 필요한 일인가 의문을 가져보기도 합니다.

프레이야 2011-09-26 23: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누더기 조각 같은 구름이 아니라 이 가을 바다 수평선에 맞닿을 정도로 낮게 깔려
두둥실 흘러가는 흰구름을 보는 것도 미안하게 느껴지는 것 같아요.
오늘 전 그런 구름을 보고 왔어요. 그래도 그런 호사쯤은 이 가을에 누려도 되겠죠.^^

blanca 2011-09-27 10:55   좋아요 1 | URL
그럼요. 아름다운 것을 보고 아름답다, 느끼는 것도 정말 중요한 일이잖아요. 프레이야님, 사시는 곳은 바다내음도 맡을 수 있고 수평선도 보실 수 있으니 얼마나 좋으실까요. 어린 시절 외가가 있는 부산역에 내릴 때 풍겨오던 그 바다냄새가 참 그리워요.
 
쓰가루.석별.옛날이야기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75
다자이 오사무 지음, 서재곤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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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에 이런 식으로 쓰니까 사이가 나빠지는 것이다. 가족 이야기를 글로 써서 그 원고를 팔아야만 살아갈 수 있는 비참한 운명의 남자는 신으로부터 고향을 몰수당한다.
-p.127 

신으로부터 고향을 몰수당한 비참한 남자가 조심스럽게 고백한다. 내 성격을 창조하고 숙명을 규정 지은 이 고장들을 이야기하는 데 나는 결코 적임자가 아니었다고.   

 

<쓰가루> 

쓰. 가. 루. 

'패자의 문학'을 했던 다자이 오사무가 태어나 20년간 자란 곳이다. 역사에서 잊혀진 혼슈의 북단. 다자이 오사무는 한 서점의 의뢰로 쓰가루 반도를 여행하고 소설의 형식을 빌어 <쓰가루>의 풍경, 역사, 추억을 펼쳐 놓는다. 옛친구들과 재회하고 군데군데 유년의 기억들을 들추어 내면서 서투르게 자신을 드러내는 이 작품은 가장 다자이 오사무적인 것이 아닌가 싶다. 그러니까 <인간실격>을 쓸 수밖에 없었던 그의 연약하고 투명한 속내를 들여다 보게 되면 그 속에서 묘한 공감의 요소를 발견하게 된다. 우리는 모두 어느 정도는 루저이니까.  

나에게는 또 다른 전문 과목이 있다. 속인들은 그 과목을 사랑이라 부른다.
-p.35 

 

어른이라는 것은 외로운 것이다. 어른이란 배반당한 청년이다.
-p.43  

배반당한 청년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기만과 환각의 시절들을 끊임없이 회고하고 사랑한다. 그건 비극이기도 하고 희극이기도 하다. <쓰가루>의 절정은 결말이다. 어머니의 젖을 한 방울도 못 먹고 자란 그는 제2의 어머니와도 같았던 보모 다케를 만나는 것을 쓰가루의 마지막 여정으로 아껴둔다. 세 살에서 여덟 살. 어머니는 하나의 인간과 하나의 삶을 조각한다. 다자이 오사무는 마침내 비로소 자신의 성장 과정의 본질을 확인하게 된다. 재회는 너무나 담담하고 너무나 건조해서 외려 더 뭉클하다. 언어가 비껴 가는 지점. 작가와 독자는 손을 맞잡는다.  

세상의 어머니라는 존재는 모든 자식들에게 이와 같은 달콤한 방심 상태의 휴식을 주는 것일까? <중략> 효도는 자연의 섭리이다. 윤리가 아니다.
-p.181 

격렬한 포옹도 눈물도 극도의 흥분도 없이 그저 잘 왔다! 그 한 마디. 다자이 오사무의 귀향의 가장 안온한 종착점이었다. 

 

<석별> 


도호쿠 지방의 나이 든 의사의 회고록 형식을 띤, 같이 의학 전문학교를 다녔던 루쉰에 대한 추억담이다. 아무래도 집필 계기가 국책 홍보를 위한 조직의 의뢰였다 보니 군국주의적 색채가 짙어 상당히 거부감이 들었다. 특히나 러일전쟁을 마치 중국의 독립을 지키기 위한 대리전, 성전으로 미화한 대목과 아시아 여러 나라들의 독립을 지지하는 것처럼 하면서 정작 우리나라에 대한 불법적 침략, 지배에 대해서는 일언반구 언급도 없는 모순에 아연했다. 문학은 현실을 이길 수 없다,는 슬픈 자각. 결국 자신의 소속, 처지를 뛰어넘을 수 없는 그 한계. 거기에서 더 나아가야 언어는 진실 한 점을 딛고 피안을 응시할 수 있지 않을까. 

 

<옛날 이야기> 


공습경보를 피해 방공호로 대피한 다섯 살 딸에게 아버지가 일본의 옛이야기들을 각색해서 들려주는 형식을 띠고 있다. '혹부리 영감', '우라시마', '부싯돌 산', '혀 잘린 참새' 는 다자이 오사무를 통해 형식적인 패러디를 뛰어 넘어 성공적으로 재창조되고 있다. 거북이를 타고 용궁 체험을 가고 토끼 소녀가 너구리 아저씨를 골려 먹고 혀 잘린 참새 소녀를 할아버지가 사랑하고. 이런 전혀 그럴 듯하지 않은 얘기들을 읽으면서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착각하게 하고 책을 읽다 혼자 미친듯이 웃게 하고 때로 튀어 나오는 경구들을 메모하게 하고. <석별> 같은 작품에도 불구하고 다자이 오사무를 위대한 작가로 인정할 수밖에 없게 한다.  

계곡 저 건너편에 아름다운 꽃이 분명히 피어 있다고 믿을 수 있는 사람만이 아무런 주저 없이 등나무 줄기에 매달려 건너편으로 건너갑니다.<중략> 당신에게 모험심이 없다는 것은 당신에게 믿는 능력이 없다는 것입니다.
-p.359 

용궁 기행을 저어하는 우라시마에게 거북이가 내려준 모험의 정의. 피안을 믿을 수 없는 사람은 차안에 발이 묶이고 만다. 우라시마가 용궁을 떠나면서 받은 조개껍데기를 열어보자 곧바로 백발의 할아버지가 되어버린 장면도 의미심장하다. 우리는 그것이 일종의 형벌이라고 반응하지만 다자이 오사무는 축복이 될 수도 있다고 덧붙인다. 세월과 망각은 인간의 구원이라고. 삼백 살의 할아버지가 반드시 불행한 것은 아니다.

세상을 등진다는 것도 돈이 조금이라도 있어야만 가능하지, 돈 한 푼 없는 하루살이 신세라면 세상을 등지려고 해도 세상이 쫓아와서 도저히 등질 수가 없다.
-p.425 

쓰가루 유수의 대지주 가문에서 태어나 '"소설을 쓰는 것이 싫어져서 죽는 것입니다"(해설 참조)라는 유서를 남기고 연인과 동반자살한 그가 이러한 얘기들을 남겼고 그 얘기들을 들을 수 있어 다행이다, 라고 여겨도 되는 것일까?  '생명의 불안이 언어를 발효시킨다'고 했던 그의 얘기처럼 창조의 동력이 없는 우리들은 생명의 불안 때문에 읽는다고 자위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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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리시스 2011-08-18 1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이 책 찜해뒀어요. 다자이 오사무를 읽어본 적은 없는데 단편이 무지 좋을 것 같아요. 블랑카님 글 보니까 할아버지께 이야기 듣는 기분이에요. 일본의 고전들은 약간 그런 분위기가 있는 듯 해요. 저는 [설국] 무지 좋아하는데 이 분이 '소설을 쓰는 것이 싫어져서 죽는 것입니다'라고 했다니 읽고나면 순위가 바뀌겠어요! (몹쓸 줄타기--;;)

blanca 2011-08-19 10:18   좋아요 0 | URL
<설국>은 그 시리도록 흰 느낌이 오래도록 남았어요. 정말 잊을 수 없는 작품이었답니다. 다자이 오사무는 분위기가 가와바타 야스나리와는 좀 다르지만 그 적나라한 솔직함에 반하게 되는 작가랍니다. 일단 글을 재미있게 쓰는 재주가 있어 책장이 잘 넘어간답니다. <인간실격>도 좋아요. 아이리시스님도 좋아하실 거예요^^

마녀고양이 2011-08-18 1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설을 쓰는 것이 싫어져서 죽는 것입니다 라니,,,
무엇인가에 그렇게 몸 받칠 수 있는 것은 정녕 커다란 행운이라 해야 할까요 불운이라 해야 할까요?

거기다 모험심이 없다는 것은 믿는 능력이 없다 라니,,,
그렇네요. 바라는 것이 없다면 행동하지 않을 것이며, 이상과 목표가 없다면 노력하지 않을테니 말이죠.

저도 이 책 읽고 싶어요. 엉엉. 읽고 싶은 책, 너무 많아요. 대청소 시작했는데, 집 다 뒤집어 놓고.

blanca 2011-08-19 10:20   좋아요 0 | URL
마고님, 저는 모험심 제로잖아요-..- 겁쟁이예요. 저는 무언가를 잘 못 믿겠어요. 그래서 저한테 기억하라고 적어 놓았어요. 대청소요!! 아, 저도 오늘 물걸레질해야 하는데 걸레 빠는 게 너무 싫어요. 책은 저번에 이사오면서 그래도 처분하고 정리해서 좀 낫긴 한데. 요새는 읽고 소장 가치 없다고 생각되는 책들은 바로 바로 정리하려고 해요. 반짝반짝 대청소하시고 시원한 커피도 한 잔 하세요. 저는 또 위염이 재발하여 커피를 끊어야 하는 시기가 왔어요. 넘 슬퍼요.

블루데이지 2011-08-18 2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그냥 모른척, 못 본척 지나치려고 했는데...한번 애정있게 돌아보도록 blanca님이 만드셨어요~
<그 얘기들을 들을 수 있어 다행이다>라는 말에 분명 공감할것같아요~

blanca 2011-08-19 10:21   좋아요 0 | URL
블루데이지님 ㅋㅋㅋ 저는 제목이 끌려서 기억해 두었다 결국 읽게 되었어요. 특히 일본의 옛이야기들이 정말 재미있더라고요. 혼자서 여러번 웃었어요.

비로그인 2011-08-19 07: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혀 잘린 참새! 유치원에 다닐 적, 추운 날 이불 속에서 아빠가 읽어주었던 동화.
아버지라고 하지 않고 아빠, 라고 적고 나니 눈물이 핑 돌아요. 블랑카 님이 여기서, 옛 기억을 불러내 준 탓입니다.

blanca 2011-08-19 10:22   좋아요 0 | URL
쥬드님은 벌써 이 얘기를 알고 계셨군요. 자상한 아빠 덕분에. 저는 처음 들었거든요. 저도 아빠를 생각하니 뭉클하네요.

2011-08-24 21: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험심이 없다는 것은 믿는 능력이 부족한 것이다.', '돈이 없다면 세상을 등지더라도 세상이 쫓아온다.'! 완전 공감돼요. ... 어떤 사람은 소설을 쓰지 못해 죽을 수도 있군요. 창조의 희열이라는 강한 단맛을 맛본 탓일까요. 블랑카님의 마지막 구절에도 공감합니다.

blanca 2011-08-25 10:10   좋아요 0 | URL
예, 저도 이 두 문장이 정말 와닿더라고요. 굉장히 독특한 작가라고 생각했는데 느끼고 생각하는 것은 역시 보통 사람들과 크게 다를 게 없더라고요. 그걸 예리하게 포착해서 언어로 표현하는 재주가 탁월한 것 같아요. 참, 섬님의 추천으로 그 책을 당장 구입했답니다.^^

2011-08-25 18:41   좋아요 0 | URL
앗, 바로 구입하셨군요. 블랑카님에게도 좋은 경험을 주는 책이길 바랍니다...^_^
 
한눈팔기 (양장)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62
나쓰메 소세키 지음, 조영석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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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읽는다. 너무 소설 같은 소설. 다채로운 서사. 극적인 전개. 평면적인 인물. 그런 소설 대신. 

정말 소설 같지 않은. 단조로운. 별로 대단할 것도 하찮을 것도 없는 고만 고만한 사람들. 그래서 주위를 한번만 쭈욱 둘러봐도 닮은 꼴을 굴비꿰듯 줄줄이 엮어낼 수 있는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을 읽는다. 

   
 

 그의 마음속에는 죽지 않은 아내와 건강한 갓난아기 외에 일을 그만둘 듯하면서 못 그만두는 형이 있었다. 천식으로 죽을 듯하면서 아직 살아 있는 누이도 있었다. 새로운 지위를 얻을 듯하면서도 얻지 못하는 장인도 있었다.

 
   

 

이런 '그'에 대한 이야기이다. 겐조의 이야기는 나쓰메 소세키의 자화상이기도 하다. 이 소설은 마치 나쓰메 소세키의 3인칭 일기를 읽는 느낌이다. 본가에서 버림받다시피 하고 입양되었다 다시 양부모의 이혼으로 파양되다시피 한 남자의 얘기. 그의 앞에 갑자기 나타난 양부모.  

   
 

 겐조는 바다에서도 산에서도 살 수 없는 처지였다. 양쪽에서 내쳐진 채 이쪽저쪽을 왔다 갔다 했다. 바다의 것도 먹고 때로는 산에 있는 것에도 손을 댔다.

 
   

 

나쓰메 소세키는 언제나 담담하고 건조하다. 그런데 그 행간에 눈물이 스며 있다. 그 눈물은 공통의 경험을 공유하지 않아도 그 경험이 남기는 저릿한 슬픔을 공감한다. 다른 일들로 함께 울 수 있다. 바다의 것도 산의 것에도 손을 대는 겐조의 모습이 눈물겹다. 그리고 그 겐조를 둘러싼 한결 같이 무능하고 때로 몰염치한 주변인들. 어느 구석 하나 시원할 것도 상쾌할 것도 없는 지지부난한 일상들. 사실 그런 것이 삶의 대부분임을 소세키는 예리하게 꿰뚫고 있다. 삶, 사람 들이 언제나 유의미하고 위대해질 가능성을 품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우리들 대부분은 그것을 알고 있지만 못 본 척한다. 적당히 이기적이고 무능력하고 비열한 모습들이 흩뿌려진 소세키의 인간 들은 그래서 어쩐지 익숙하고 외면하지 못하게 만든다. 대단한 이야기나 경구가 없어도 그의 이야기가 언제나 흡인력을 가지는 요인이기도 하다. 

   
 

 '너는 결국 무엇을 하러 이 세상에 태어났는가?'
그의 머릿속 어딘가에서 누군가 이런 질문을 던졌다. 겐조는 질문에 대답하고 싶지 않았다. 가능한 한 대답을 회피하려고 했다. 그러자 목소리는 더욱 겐조를 추궁했다. 몇 번이고 똑같은 질문을 되풀이했다. 겐조는 끝내 울부짖었다.
 "모르겠어."
목소리가 갑자기 코웃음을 쳤다.
 '모르는 게 아니지. 알아도 그곳에 도달할 수 없는 거겠지. 도중에 멈춰 있는 거겠지.'

 
   

 

결국 들켜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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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en 2011-06-27 15: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느 철학자의 글을 정리하다가 '이처럼 절실하게 벗어나고자 하는'이라는 대목에서 blanca님의 이 글이 문득 생각났습니다. 다소 엉뚱한 느낌은 들겠지만 뭔가 상통하는 것도 있겠다 싶어 댓글로 남겨 봅니다. ㅎㅎ
* * *
한가한 망상(妄想) 속에서나 생각해볼 수 있는 가장 찬란하고 가장 의기양양한 상황에서 우리의 진정한 행복을 위해 기대하는 쾌락들은, 사실은 우리가 현실적으로 처해 있는 초라한 지위에서 우리가 언제든지 손안에 넣을 수 있고 언제든지 우리 마음대로 즐길 수 있는 그러한 쾌락들과 거의 언제나 같은 것이다. 허영(虛榮)과 우월(優越)이라는 경박한 쾌락을 제외하고는, 가장 높은 지위가 제공할 수 있는 모든 쾌락을 우리는 개인의 자유만이 존재하는 가장 초라한 지위에서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완전한 마음의 평정(平靜), 즉 모든 실재적이고 만족감을 주는 향유(享有)의 천성이자 기초가 되고 있는 마음의 평정과, 허영 및 우월이란 쾌락은 서로 조화가 되지 않는다. 더구나 우리가 지향하는 휘황찬란한 위치에서는 우리가 이처럼 절실하게 벗어나고자 하는 초라한 지위에서 용이하게 즐길 수 있는 실재적이고 만족감을 주는 쾌락들을 마찬가지로 쉽게 향유할 수 있을는지도 언제나 확실한 것은 아니다.
- 아담 스미스,『도덕감정론』中에서

blanca 2011-06-27 23:25   좋아요 0 | URL
언뜻 한번 읽고는 바로 이해되지 않아서 세 번 정도 다시 읽어 보았습니다. 겐조 뿐만 아니라 저에게도 정말 필요한 얘기네요. 가장 찬란한 상황은 가장 초라한 지위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고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기억하고 있어야 겠습니다. 좋은 댓글 감사합니다.

oren 2011-06-28 00:46   좋아요 0 | URL
blanca님의 댓글을 보니, 어느 철학자가 매우 긴 호흠으로 자신의 철학을 장황하게 펼쳐 놓은 책 가운데 어느 한 구절을 '덜컹' 끌어 와서 무턱대고 댓글로 남겨 놓은 것 같아 죄송스런 생각도 듭니다.

blanca님께서 인용해 주신 [겐조의 메아리처럼 울리는 듯한 질문과 울부짖는 대답]이 자꾸만 머리를 멤도는 것 같아 목소리가 여전히 똑같은 철학자의 뒤이은 언급 한 대목을 덧붙여 봅니다.
* * *
저 평범한 안전과 만족보다 더 낫지 않다는 것

불굴의 근면함으로 그는 자신의 모든 경쟁자보다 우월한 재능을 획득하기 위해 밤낮으로 노력한다. 이어서 그는 그러한 재능들을 공중(公衆)의 눈에 띄도록 하기 위해 노력하며, 똑같이 열심히 여러 취직의 기회를 사람들에게 간청한다. 이러한 목적을 위해서 그는 모든 사람들의 비위를 맞춘다. 그는 내심(內心)으로는 증오하고 있는 사람들에게까지 봉사하고, 자신이 경멸하는 사람들에게까지 아부한다. 그가 전 생애를 통하여 추구하는 이상은 자신이 결코 도달하지 못할지도 모르는 어떤 공적이고 우아한 휴식(休息)의 관념인데, 그것을 위해 그는 어느 때에든 자신의 힘으로 쉽게 이룩할 수 있는 진정한 마음의 평정(平靜)을 희생한다. 그리고 만약 아주 늙어서 드디어 그것을 획득했다고 하더라도, 그는 그것이 어떤 점에서도 그가 이것 때문에 포기했던 저 평범한 안전과 만족보다 더 낫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인생의 최후의 순간이 되어 그의 육체가 고통과 질병으로 쇠약해지고, 자신의 적들의 불의(不義), 동지들의 배신(背信)과 망은(忘恩) 때문에 그가 받아 왔다고 상상하는 수많은 침해와 실망의 기억에 의해 그의 마음이 쓰리고 괴로울 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그는 그러한 부와 권세가 사소한 효용(效用)만을 지닌 허접한 것에 불과하고, 육체의 안락과 정신의 평정을 확보하는 데 있어서 장난감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족집게 상자 정도의 쓸모밖에 없다는 것을, 그리고 부와 권세는, 족집게 상자들과 마찬가지로, 그것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 줄 수 있는 편리함 이상으로 번거로움을 더 많이 준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한다.
- 아담 스미스,『도덕감정론』中에서

blanca 2011-06-28 21:24   좋아요 0 | URL
아담 스미스의 도덕감정론 예전에도 한번 인용하신 것 기억나요. 어떻게 이렇게 명철하고 예리하게 삶을 파악하고 묘사할 수 있을까요? 정말 놀랍네요. 기회가 되면 꼭 완독해 보고 싶게 만드는 인용구입니다. 죄송하긴요. 감사합니다. 몇 번이고 다시 읽게 만드는 댓글인걸요.

비로그인 2011-06-27 2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blanca님. 요새는 담담하면서 조금은 밝은 느낌의 글이 좋아집니다.
그런 글들을 읽으면 걸으면서도 조금은 힘이 나고 그러더군요.

그리고 그 소설 속의 인물과 사건들을 보면서 전철의 그 수많은 사람들, 하루에 포털사이트에 올라오는 수많은 사건들. 나름 담담하면서 조금은 밝게 보려고 노력하기도 하고요.

blanca 2011-06-27 23:26   좋아요 0 | URL
그래서 저도 이제는 지나치게 염세주의적이고 허무주의적인 얘기에서 질기고 생명력이 있는 얘기로 옮겨 가려고 합니다. 그런 시점이 온 것 같아요^^

cyrus 2011-06-27 23: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강상중 씨의 <고민하는 힘>에서 나쓰메 소세키를 좋게 평가하던 내용이 생각났어요.
그래서 한 번은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를 감명깊게 읽어봤는데 국내에 나스메 소세키의
작품이 생각보다 많이 번역되었더라구요. 전에는 민음사 시리즈에 있는 것만 알고 있었는데
문동에도 그의 작품이 번역되었군요. ^^

blanca 2011-06-28 21:20   좋아요 0 | URL
예. 저는 아직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는 읽어 보지 못했어요. 정말 기묘하고 매혹적인 작가입니다. 캐도 캐도 무언가가 자꾸 더 나오네요. 저도 정말 우연히 발견했답니다. 그런데 일본에서는 이 작품이 나쓰메 소세키를 알기 위한 입문서라고 하네요. 자전적인 작품이라 그렇다고 하더라구요.

비로그인 2011-06-28 02: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작년 요맘때 소세키 소설에 빠졌던 때가 떠오르네요. 전집이 나온다면 꼭 소장하고 싶은 작가입니다^^

blanca 2011-06-28 21:21   좋아요 0 | URL
후와님도 좋아하시는군요. 아, 전집이 나오는 것도 괜찮겠어요. 우리나라에 아직 번역되지 않은 작품들도 있는 것 같더라고요. 저는 드문 드문 소세키를 읽게 되네요. <그후>도 참 좋았어요.

비로그인 2011-06-28 08: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현실이 급박하니 글을 읽을 수가 없더이다, 블랑카 님. 그 어느 글도 내 속으로 스며들 수가 없어서.

blanca 2011-06-28 21:22   좋아요 0 | URL
쥬드님, 동감해요. 저는 그때 오히려 독서가 괴롭더라고요. 정말 말 그대로 활자만 겉돌며 읽게 되고요. 결국 허구가 현실을 이길 수는 없는 걸까요?

마녀고양이 2011-06-29 09: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게요, 결국 들켜버렸네요... ㅠㅠ

blanca 2011-07-01 12:41   좋아요 0 | URL
저도 제 얘기하는 줄 알았답니다.--;;
 
신사 숙녀 여러분, 가스실로 - 폴란드 창비세계문학 단편선
타데우쉬 보로프스키 외 지음, 정병권.최성은 엮고 옮김 / 창비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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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책의 마침표는 다른 책이다. <쿠오 바디스>는 1세기 로마의 네로 시대를 그리고 있지만 정작 작가 시엔키에비츠는 폴란드인이다. 말미의 작품 해설에는 시엔키에비츠의 <등대지기>라는 단편 소설 얘기가 나온다. 폴란드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단편소설이며 국정 교과서에도 실려 있으며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에도 영감을 줬다는 그 얘기를 찾아 헤매다 이 책을 만났다. 

짧은 얘기로 나의 전부를 설명할 수 없듯이 단편소설은 '제약'을 필연적으로 수반하며 미완으로 끝나는 한계를 가진다. 그런데 그 한계 안에서 처절한 성공을 거두게 되면 응축된 얘기에 삶의 정수를 '찡'하게 추출해 낼 수 있다. 굉장히 어렵고 드문 일이다. 어렵고 드문 일을 만났다. 정말 오랜만에 웬만해서 몰입하기 힘든 단편 하나하나에 푹푹 발이 빠졌다. 프로이센, 오스트리아, 러시아의 3국에 120여년 동안 분할점령되었던 역사, 제2차 세계대전의 시발점이었던 나치의 침공하에 아우슈비츠의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의 증언적 위치 등이 폴란드적 정서 전체를 대변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특수한 역사적 체험은 이야기 곳곳에 점점이 들어와 박혀 '생'에 대한 조금 더 음울하고 관조적인 시선을 불러낸다. 깊고 오묘하고 슬픔에 찬 눈동자를 통과한 이야기이다. 

얼음처럼 서늘하고도 깊은 전율과 함께 앞으로 그가 절대 목격하지 못할 수많은 영상들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차갑고 거대한 초록빛 대양, 야자수와 섬으로 가득한 푸른 바다, 차갑기도 하고 뜨겁기도 한 대지, 항구와 마을에 있는 여인들, 그가 만날 수 있고, 사랑할 수 있고, 관심을 가질 수 있는 사람들, 사람들, 사람들. 그러나 그들은 지금 여기에 없고, 앞으로도 만날 수 없을 것이다.
-야로스와프 이바시키에비츠 <자작나무숲> 중  

폐결핵에 걸려 자작나무숲 형 곁으로 돌아오는 동생이 죽음 앞에서 자신이 놓칠 것들을 하나씩 셈하는 동안 잠시 망연했다. 그가 절대 목격하지 못할 것들을 나는 목격하고 있는지. 내일이라도 당장 볼 수 있는 건지. 초록빛 대양, 만날 수 있고, 사랑할 수 있고, 관심을 가질 수 있는 사람들, 사람들, 사람들. 다가오는 죽음 앞에서 되려 삶을 황홀하게만 느끼게 되는 스타시 앞에서 잠시 부끄러워졌다. 조금 더 관능적이고, 조금 더 정열적으로 살아도 괜찮지 않을까, 싶게 만드는 얘기.  

"제 아이가 아닙니다. 선생님, 제 아이가 아니예요!"
여자는 신경질적으로 외치며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뛰어간다. 그녀는 재빨리 몸을 숨기고 싶은 것이다. 트럭을 타지 않는 사람들에게로, 걸어서 수용소까지 가게 될 사람들 틈으로, 계속 살아남게 될 사람들의 무리 속으로 가고 싶은 것이다. 그녀는 젊고, 아름답고, 건강하다. 그녀는 살고 싶은 것이다.
 하지만 아이는 악을 쓰면서 그녀의 뒤를 따라간다.
"엄마, 엄마, 가지 마!"
"내 아이가 아냐, 내아이가 아니라고, 아니라니까!......"
-타데우쉬 보로프스키 <신사 숙녀 여러분, 가스실로> 

표제작. 이 수용소 안에 눈물어린 자기 희생적 모정은 없다. 아이와 함께 가스실로 가는 대신 살고 싶은 한 여자가 있다. 그녀는 분홍빛의 통통한 뺨을 가진 천사 같은 아이를 뒤로 하고 태연하게 걸으려 애쓴다. 내 아이가 아니라고 절규하면서. 인간에 대한 지극히 냉소적이고 관조적인 시선. 하지만 생에 대한 절절한 끄달림. 시린 바람이 가슴을 파고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일을 꿈꾸며 아이의 옷가지들을 세탁하고 기차 안에서 아이를 목욕시키던 프리모 레비의 어머니들은 여기에 없다. 프리모 레비의 절규는 오히려 여기에서 공명한다. 이것이 인간인가! 인간이기에 살고 싶고 살고 싶기에 생의 미덕들을 포기하게 되는 역설적 비극이 젊은 작가의 푸르스름한 눈빛 앞에서 흔들린다.

이 이야기들의 마침표는 <자작나무숲>의 작가 야로스와프 이바시키에비츠에게서 빌려온다. 모든 것은 그림처럼, 혹은 음악처럼 아름다웠다,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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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1-06-02 02: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블랑카님이 추천해주시니 꼭 읽어보고 싶은데 우울해질까봐 걱정이네요ㅠㅠ 젊고 아름다운 그녀에게 당신 잘못이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blanca 2011-06-02 22:18   좋아요 0 | URL
후와님, 꼭 읽어 보세요. 정말 대단해요. 번역도 너무나 좋고. 정말 오랜만에 제대로 된 단편들을 만났답니다.

양철나무꾼 2011-06-04 19: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번역이 너무 좋단말이죠~^^
전 장편이나 대하소설을 선호해서 단편은 잘 안 읽는데...님의 추천이니 한번 읽어보기로 하죠~^^

아, 자작나무~^^

blanca 2011-06-04 23:18   좋아요 0 | URL
저도 최근들어 단편에 대한 그 미진함, 또 아무래도 완성도가 떨어지면 정말 콩트 수준으로 전락해 버리는 그런 면에 거부감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이 책은 정말. 왜 사람들이 추천했는지 알 것 같더라구요. 양철댁님도 참 좋아하실 거예요. 굉장히 차분하고 관조적인데 또 지루하지도 않고 아주 독특하답니다.

북극곰 2011-06-08 15: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단편은 나랑 아니구나...라고 생각해왔었는데, 왠지 이건 끌려요. 읽어볼게요.

blanca 2011-06-08 21:28   좋아요 0 | URL
저도 그랬어요. 그런데 이 책은 참 괜찮더라구요. 리뷰 평점이 후한 이유들이 있었더라구요. 잘 읽히고 아름다워요. 추천드립니다.
 
필경사 바틀비 일러스트와 함께 읽는 세계명작
허먼 멜빌 지음, 공진호 옮김, 하비에르 사발라 그림 / 문학동네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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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정도로 무식했냐면 <백경>의 작가 허먼 멜빌의 소설이니 <필경사 바틀비>도 그런 고래에 관련된 마초적인 얘기인 줄 알았었다. 고래 鯨과 밭갈 耕자도 구별 못하면서 허먼 멜빌을 안다고 차마 말하지 못하겠다. 

가로로 길쭉한 특이한 판형, 약간 그로테스크한 분위기의 삽화, 백 페이지도 안 되는 분량. 실패해도 괜찮겠다 싶었다. 적어도 출발 전에 각오해야 하는 거리는 아니다. '재미'를 기대하지는 않았고 '의미'는 있겠다 싶었다.  

화자는 바틀비가 아니다. 야망이 없는, 그러나 어느 정도는 선량하고 어느 정도는 속물적이고 비겁한 초로의 변호사다. 게다가 배경은 월스트리트다. 예전에 복사기가 발명되기 전 인간 복사기의 역할을 대행했던 필경사들을 부리면서 '나'는 종종 당혹스럽게 된다. 역시 기계가 아닌 탓이다. 토너나 갈고 프린트용지나 공급해 준다고 역할을 다 해낼 수는 없는 터. 이미 고용중인 두 명도 만만치 않은데 소극적인 저항을 교묘하게 하는 바틀비가 걸어들어오고 만다. 바틀비는 반항적이다. 시키는 일을 하지 않는 쪽을 택하겠다고 공표한다. 그런데 이 반항은 서글픈 데가 있다. '나'는 모질게 바틀비를 내칠 수가 없는 그 무엇에서 돌아설 수가 없다.  

다소 특이한 사람을 부리는, 이 사회에서 용인되는 평범함 속에 안주하는 '나'의 번뇌와 갈등. 바틀비와 '나'는 분리된 객체가 아니라 서로가 서로를 비춰주는 거울과 같다. 구조와 관습, 상식에서 미끄러져 나가고 소외되는 바틀비를 힘겹게 지켜 보면서 '나'는 한없이 불편하다.  

이러한 얘기들. 언뜻 급박한 전개도 긴장감도 번지르르한 서사도 없는 듯이 보이는 이 얘기가 이다지도 잘 읽히고 결말을 궁금케 하는 것은 작가의 저력이기도 하고 이야기가 품고 있는 인간에 대한 예리한 통찰 덕분이기도 하다. 독자는 '나'와 '바틀비'를 왕복한다. 변호사가 바틀비를 구제해 주기를 바라기도, 외면해 버리고 저만치 앞서가 버리기를 바라기도 한다. 갈팡질팡하는 그 지점이 눈 앞에 펼쳐진다. 들키고 만다.  

슬픈 결말은 구구절절한 설명을 생략하고 있다. 모든 것을 하겠다고, 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이 미덕으로 간주되는 사회에서 당당하면서도 무력하게 하지 않는 것을 택하는 풍경은 꿈이기도 하고 현실이기도 하다. 그래서 '바틀비'는 살아 있다. 죽을 줄 알면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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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1-04-26 14: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흐흐, 이 책에 대한 리뷰를여, 메리포핀스님 서재에서 진짜 인상깊게 본거예요.
이거 같은 소설 맞나 싶을 정도로,, 블랑카님 리뷰는 잔잔하고 이쁘네요.

blanca 2011-04-26 22:02   좋아요 0 | URL
이거 완전 재미나요! 마녀고양이님, 강추합니다. 책 자체도 넘 이쁘고요.

노이에자이트 2011-04-26 16: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멜빌의 소설은 거의 대부분 바다가 배경인데 이 소설은 도심 한복판이라서 특이하죠.제가 좋아하는 소설이기도 합니다.가끔은 바틀비 같은 사람과 한 사무실에서 일하면 어떻게 될까 하는 생각을 해볼 때도 있어요.물론 사연을 알고 보면 이해가 안되는 것도 아니지만...

blanca 2011-04-26 22:03   좋아요 0 | URL
노자님, 멜빌 다시 봤어요. 저도 완전 좋아하기로 했어요. 멜빌 소설 다른 거 추천해 주실 거 있나요? 백경 말구요.

노이에자이트 2011-04-27 16:05   좋아요 0 | URL
'바틀비'같은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 편이죠.
중편 정도의 분량으로 <빌리버드>를 권합니다.멜빌의 특기인 해양소설이죠.조직을 위해 부하를 희생시키는 것이 어디까지 정당화될 수 있는지 고민해볼 기회가 될 겁니다.군대조직에 대해 생각할 기회도 되구요.

2011-04-27 16: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4-27 21:43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