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의 맹점은 무언가를 내가 한다,는 느낌이 별로 없다는 거다. 특히 절제와 수긍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두 돌 반의 아이를 종일토록 상대한다는 것은 직장을 다녀서 종일토록 고되지만 그래도 하루를 마감한다는 개념과는 사뭇 다른 것 같다. 어느 것이 더 힘들다,는 경중의 문제가 아니라 하루 하루가 줄줄 늘어져서 뚝뚝 끊어지는 맛이 없으니 시간아 어서 가라, 어서 커라, 이런 식이 된다는 문제가 있다.
예전에 온라인 카페에서 어떤 이가 아이 키우는 게 너무 힘들고 무료하다,고 하자 하루하루를 그냥 때우지 말고 직장을 다니듯 계획을 세우고 어떻게 함께 해줄까를 고민해 보라는 조언이 본 기억이 남는다. 머리로는 그래, 바로 그거야! 해놓고 또다시 나는 시계를 본다. 회사에 다닐 때는 다섯 시 이후 부터 이십 분 간격 정도로 시계를 슬쩍 슬쩍 보긴 했는데 이건 아침 열 시부터 시계를 보게 된다. 오늘 하루는 또 어떻게 버티나. 직장에 다녀도 아이를 키워도 하루는 여하튼 고달픈 것이라는 걸 알게 된 후부터는 내가 어떻게 하면 행복할 거야, 라는 도피처를 아예 불신하게 되었다. 어떻게 해도 하루는 곤곤하다. 그러니 되도록 지금이 전성시대라고 생각하고 사는 수밖에 없다고 혼자 다독이기로 했다.
어제 밤에 인터넷 항해에 빠져 있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극성이 아니라 성의의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감이 깨어 있을 지금 어떻게 책좀 보고 글좀 써볼 시간만 호시탐탐 노리며 아이를 방치한 것이 아닌가 하는 반성과 함께.
오늘. 지하철을 삼십 분을 타고 어린이 대공원에 갔다. 즉흥적으로. 누구에게도 연락하지 않고. 물론 지하철 안에서 <백년의 고독>을 읽기는 했다.--;; 아이는 으레 엄마는 그러려니 하며 사람 없어 좋다고 에어콘 바람 쐬며 나름 즐거워했다.
흐릴 거라 생각했던 날씨는 폭염에 햇빛 정조준이었다. 일단 식물원에 들어가 식물공부를 좀 하다 너무 예쁜 덩굴꽃을 봐서 이름을 기억해 두려고 이름표가 보이게 사진을 찍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집에 와보니 이 지경이다. 리아. 아...이젠 내가 무언가를 한다고 했는데 뒤돌아 보니 그것도 아닌 시점까지 와버렸다.
널따란 놀이터에서 줄서서 타지 않아도 되는 그네를 독식하며 즐거워 하던 따님은 맹수류에 잔뜩 호기심을 보이시며 내내 안고 관람하기를 주장해 주셨다. 극기 훈련의 시작이었다. 비오듯 하는 땀과 안기에는 큰 아이를 안고 표범과 퓨마우리를 지날 때마다 이게 호랑이냐! 호랑이를 보여달라고 주장해 대는 그 분의 비위를 맞추느라 그 큰 맹수 우리를 맴돌아야 했던 엄마를, 표범 보고 호랑이라 눙치려고 벼르던 그 엄마를, 한 큐에 나가떨어지게 해주시는 분. 그거 표범이다!라고 외치는 옆에 아주머니. 360도 돌고 오니 호랑이는 하늘로 올라간 것인지 코끼리가 맞아 주신다.
호랑이는 없네.
인공 냇가와 분수로 물놀이를 할 수 있는 그곳에 가보겠냐고 하니 시큰둥하다 막상 들어가니 재미있는 모양인지 목욕하듯 온 몸을 담그고 흐뭇해한다. 조금 더 용기를 내어 이제는 엎드려서 헤엄치는 시늉을 한다. 어떤 또래 아이가 재미로 한 번 밟고 지나가 주신다. 그 아이의 엄마가 혼비백산하여 뛰어온다. 정작 내 아이는 시큰둥하니 그냥 일어난다.
지하철 타고 돌아오는 길, 그저 몸으로 때운 시간들이 괜히 흐뭇하다. 내가 뭔가를 한 것 같고 해 준 것 같다. 그러니 또 <백년의 고독>의 그 허랑방탕하고 기묘한 저 세계로 들어간다. 스리슬쩍. 건너편에 아주머니가 아이를 쳐다 보는 것 같다. <백년의 고독>에서 아홉살의 소녀에게 반해 각시로 맞으려고 머리를 굴리는 남자 얘기에 빠져 있는 동안 아이는 사탕을 물고 옆 할머니에게로 쓰러져 잠들어 있다. 미안시러웠다. 그러니 또 그 땡볕 더위에 아이를 들쳐 안고는 그 끝이 안보이는 계단들을 오르락 내리락 한다. 지하철 역에서 내려 폭풍의 언덕 위로 도저히 또 올라갈 엄두가 안나 맞춤하게 오는 택시를 타버렸다.
꿈꾸는 섬님 서재에 갔다 우연히 어린이 대공원 탐방기를 읽고 작성하다. 뵐 수도 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