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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를 데리고 다니다 보면 낯선 사람과 쉽게 말을 트게 된다.  

내 아기가 객관적으로 너무 이뻐서도 아니고 눈에 띄는 애교를 부려서도 아닌,  

그저 어린 아가가 주는 싱그러움에 대한 반사작용인 듯, 

사람들은 말을 걸어 온다.  

우리 나라처럼 낯선 사람과 절대 눈도 마주치지 않으려는 문화에서 이것은 분명 아주 신선한 경험이다. 

그.런.데. 

나는 할머니들이 보이는 자신없는 반응들이 슬프다. 

얼마전 잠깐 들른 커피숍에 은백의 컬이며 옷차림이 더없이 고상해 뵈는 할머니들이 커피를 마시다 

딸아이에게 말을 걸었는데 반응이 신통찮았나 보다.(울 아가는 대체로 반응이 신통찮다.-..-) 

그 중 한 할머니가 대뜸 "늙어서 미안해. 늙으니까 싫지?"하는 것이다. 

어떤 감정이 진하게 실린 말은 분명 아니었고, 그 뒤를 이은 웃음들로 미루어 약간의 자조 정도가 가미된 듯했다. 

그럼에도 나는 왠지 서글펐다. 그렇게 아름답게 늙으신 분들이 그렇게 자신없는 슬픈 대사를 던졌다는 것에... 

 

재활용 쓰레기를 한 무더기 안고, 잡을 딸아이의 손마저 허락되지 않아 구두로 딸아이를 계속 전진시키고 있는데, 

허리가 꼬부라진, 주름살이 고물고물 너무 귀엽게 박힌 할머니가 계속 딸아이를 올바른 방향으로 끌고 가시려 하시다  

잘 안되시니 갑자기 내 재활용 쓰레기를 채가신다. 

"할머니. 아니요. 무거워요.! 주세요.'
"애 손 잡고 가야지, 내가 들어 줄께." 

순간 할머니가 재활용 박스를 가져가시려고 하시나 싶어 너무 사양하는 것도 경우가 아닌 것 같아  

엉거주춤 따라가는데 할머니의 곱은 등이 재활용 쓰레기보다 더 높았다.

할머니는 근처까지 재활용 쓰레기를 운반해 주시고는 집으로 들어가셔서 나의 잠깐의 오해를 무색하게 했다. 

나는 왜 할머니가 도와주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단정짓고 있었을까. 할머니의 선의를 잠깐이라도 오해했을까? 

우리 사회는 늙어간다는 것에 대한 관용이 그들이 있을 자리를 접어 버리고, 암묵적으로 격리시켜 부양의 의무를 좀더  

간편한 것으로 변질시켜 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할머니의 곱은 등에 "늙어서 미안해"라는 대사가 하나하나 아프게 박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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