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제 갑자기 내 이를 보더니 세 살 딸이 "이빨이 못생겼네." 했다. 앞니가 덧니인데 이십대에는 귀엽다고 자위 ㅋㅋ 하며 지냈는데 삼십 대를 넘어 귀여움과 거리가 멀어져 가니 도드라지는 덧니. 할머니도 치아가 가지런해야 이쁘다는데 육십대에도 교정하는 분도 보고 딸아이한테 이런 얘기까지 듣게 되니 고민하게 된다. 돈과 시간, 교정기를 끼고 변할 얼굴 등에 대한 부담으로 망설여지기도 하고. <섹스 앤 더 시티>에서 미란다가 늦게 교정을 시작해 소개팅 나갔다 교정기 사이에 음식 부스러기 다 끼우고 박장대소하다 딱지 맞는 장면도 맴돌고. 그래서 미란다는 신경질내며 교정기를 떼어 버렸지, 아마. 

# 무릎팍 도사를 챙겨 보는 편인데 어제 엄정화 편이 참 좋았다. 가수활동과 나이에 대한 얘기가 나오자 활짝 웃던 그녀가 갑자기 "정말 최선을 다했거든요." 하며 울먹이는 장면에서 참 많은 생각들이 오고갔다. 자신의 지난 인생을 최선을 다했다고 회고할 수 있는 그녀가 진정으로 부러웠고, 그 얘기를 울면서 해야하는 그녀의 처지가 안쓰럽기도 했다. 어느 분야든 성공한 사람들의 얘기는 들어둘 만한 것 같다. 윤여정의 돈이 절실할 때 최선의 연기가 나온다던 그 가식없던 고백도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었다.  돈과 성에 대한 얘기에 대한 고백은 언제나 치부 같아 어려운데 정정당당하게 양지로 내보낸 그녀의 고백은 그녀가 그것에 대한 콤플렉스나 양가적 감정을 극복했다는 얘기도 되니까. 또 한 편 부럽다. 

# 봄이 오긴 왔나 보다. 오전에 바람맞고 복수하듯 카라멜 마끼아또를 들이키고 있다. 기분 안좋을 때 좋은 날씨는 말리는 시누이처럼 얄밉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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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집 2010-04-08 16: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아주 심하지 않으시면 그냥 있으심이.... 어때요?

엄정화는 받는 거 없이 미워서.. 왜 그런지 저도 몰라요^^ 전 양미경이 좋아요. 언젠가 인터뷰하다가 자기는 말하는 거 너무 싫어해서 가족하고도 별로 말이 없이 지낸데요. 근데 그 말이 왜 그렇게 솔직하게 느껴지던지.. 나이 들면 타인에게 잘 보일려고 하잖아요. 근데 그녀한테 그런 게 없어서 너무 좋았어요. 말 없어도 편한 사이를 만들어야겠어요.

마끼아또 너무 달달 하지 않아요. 전 모카쪽이 좋아요. 하기사 시럽면에서는 오십보 백보죠!

blanca 2010-04-08 22:42   좋아요 0 | URL
딸애 말 듣고 충격받아서요. 못생겼다니, 어흑-..- 제 옆지기도 엄정화를 별로 안좋아해서 안보더라구요. 너무 싫어해서 ㅋㅋㅋ 진짜 솔직하네요. 사실 가족 안에서 가장 처절하고 치사한 일들이 많이 벌어지는데 다들 숨기고 싶어하잖아요.마끼아또는 먹고 나면 항상 후회하는데 열받을 때는 단것을 먹어줘야 해서요--;;

순오기 2010-04-08 18: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인생모토가 '생긴대로 산다'여서 그냥 동지하면 안 될까요?^^
기분 안 좋을 때 좋은 날씨~ 못말리는 시누이라니, 어쩜 이리도 심사를 잘 표현했을까 싶어 웃어요.

blanca 2010-04-08 22:43   좋아요 0 | URL
ㅋㅋㅋ 기분 안좋을 때는 날씨 좋은 것도 얄미워요. 교정하면 치아건강이 상한다고 해서 사실 이러다가 말 것 같아요.

마녀고양이 2010-04-08 2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ㅎㅎㅎㅎ, 어린 딸이 벌써 타박을 줄 나이가 되었네요?
엄정화 어제 너무 이쁘더군요. 열심히 사는 그녀가 좋아졌답니다. 그런데 신랑과 둘이서 저렇게 이뻐진다면 계속 성형할 만 하겠다 했어요... 요즘 연예인들 다들 고친 아름다움이라,, 이젠 별로 부럽지 않더군요. 저도 돈 벌어서 고치면 이뻐질거 같아서. ㅋㅋ

blanca 2010-04-08 22:44   좋아요 0 | URL
어제 보니 또 확 변했더라구요. 목소리가 생각보다 참 사근사근하더라구요. 성형도 시작하면 중독될 것 같아요. 책처럼^^;;

프레이야 2010-04-08 23: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람맞고 카라멜 마끼아또요??^^
달콤한 것 먹고싶은 때가 있지요.
엄정화 연기, 꽤 좋은 편 같아요.
주연 신작영화 '베스트셀러' 괜찮을까나요?
근데 덧니가 살짝 애교스러울 것 같은 블랑카님^^

blanca 2010-04-09 14:55   좋아요 0 | URL
아, 베스트셀러^^;; 그랬군요. 제 딸은 못생겼다고 퉁박을 주네요.--;;

꿈꾸는섬 2010-04-09 20: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덧니라 이가 참 못생겼었는데, 전 사고로 치아를 상해서 가짜이를 달고 있어요.ㅠ.ㅠ 가지런하긴 한데 제 이가 아니니 너무 불편하더라구요. 못생겼던 제 이가 그리워요.ㅜ.ㅜ

blanca 2010-04-09 21:10   좋아요 0 | URL
아...그렇군요. 꿈꾸는섬님 얘기를 듣고 마음을 잡아야 겠어요.
 

말 그대로 모래바람이 미친X   널뛰듯하는 날 힘겹게 폭풍의 언덕(정말이다)위 집에 아이를 끌고 밀며
힘겹게 당도하고 한참이나 지났는데
씩씩거리는 경비아저씨의 목소리. 
 

"아침에 집에 있었어요? 없었다구요? 근데 택배왔다는 얘기는 못들었어요?
 거 참 웃긴 놈이네."
아저씨는 화풀이를 할 건수를 찾지 못해 전전긍긍하다 애먼 택배기사들을 괴롭히는 재미에 한창 심취중이시다.
물론 그 무거운 책박스를 연락 한 마디 없이 경비실에 맡겨버린 그 사람도 한 소리 들을 만하긴 하지만. 

"저녁에 가지러 가면 안되나요??(소심하게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아니 왜요!"  

이쯤되면 무섭다. 다시 그 황량한 언덕을 모래 바람을 맞으며 내려가니 기다렸다는 듯 아저씨가 벌떡 일어나
냉큼 박스를 치워버린다. 남편의 미니미는 무거운 택배 박스에 얼굴까지 가려진 엄마는 보이지 않고 그 추위 속에서도
이곳 저곳 다 참견하고 다 지체하며 속을 태운다. 심지어 이 기괴한 날씨 속에서도 그네를 열심히 타고 있는 한 언니를
발견하고는 놀이터로 줄달음쳐주신다. 솔직한 심정으로 억장이 무너질 것 같았다.
 

입구에서 표정으로 다그치다 안 먹혀들어 다시 낑낑대며 상자를 이고 놀이터 안으로 들어가 온갖 감언이설로 꼬여 봤지만
막무가내다. 저 언니는 할아버지가 재미나게 그네를 밀어주고
있는데 그 언니의 반의 반 줌이나 될까 말까한 자기는 왜 그네를 타서는 안되는지(사실 내가 춥고 힘들어서였으니)
수긍하려 들지 않는다.
구원투수의 등장.
그 언니. " 너 몇 살이야! 몇 살이야? 안되. 이거 타면 무서워!" 

그 한 마디에 바로 미니미는 놀라는 시늉까지 하며(능청은 ㅋㅋㅋ 평소 잘만 타면서) 되돌아온다.
까무잡잡 유쾌하게 생긴 아홉살의 그 언니는 할아버지의 허리에 매달려 콧소리로 과자를 사달라며
다리를 질질 끌며 우리와 같은 방향으로 온다. 미니미는 언니가 맘에 들었는지 연신 되돌아 보고 좋아한다.
무엇보다 슈퍼가서 과자 사달라는 자신과 비슷한 수준의 욕구를 가지고 있는 그녀가 반가웠나 보다.
더 웃긴 것은 폭풍의 언덕 아래받이에서 오버하며 미끄러지는 그 언니의 모션과 거의 동일한 시점에
미니미도 같이 넘어지며 더없이 즐거워하는 것.
한 마디로 가관이었지만 두 마디 더 얹으면 참 귀여운 풍경이었다. 

그 아이 덕분에 나의 아이와 실갱이를 벌이지 않아도 될 수 있어 좋았다.
둘째가 아니라 항상 그 연배의 미니미를 귀여해 주는 첫째가 어디서 뚝 떨어지는 상상을 하곤 했다.
내가 항상 언니를 그리워했던 것처럼. 

혼불이 왔다. 누군가 나에게 혼불을 구해주면 좋겠다고 상상하며 알라딘 중고서점에 들어갔다
정말 기적처럼 혼불을 적당한 가격으로 만났다.
새 책이나 진배없는 상태에 안티 링클 팩까지 동봉해 준 그 센스에 감동받아 당장 수령확인을 했다. 

이제 나의 상반기 책 구입과 독서는 이것으로 마무리할 생각이다.(제발 그랬으면)
그 옆의 쿤데라의 <농담>과 보통의 <동물원에 가기>는 좀 뒤로 미루어 두고.
차근차근 깊게 젖어들며 그녀가 끌로 새기듯 엮어냈다는 이야기들에 묵주신공을 바치듯
짚어가고자 한다. 

잘 할 수 있을지 독서가 고행이 되지나 않을런지 우려도 되고.
하이드님 신간마실에서 자꾸 읽고 싶은 책들이 튀어나오니
괴롭고 그런 심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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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0-03-17 0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 워더링 하이쯔에 사시는군요.^^
혼불~ 아직 읽을 준비가 안돼서 책구입도 못해요.
하지만 오래전에 KBS스페셜을 보고 언젠가는 꼭 읽고 말리라 다짐했어요.
구간은 글씨가 작아서 저는 읽기 힘들어요. 이젠 글씨 작은 책은 내겐 '쥐약'같아요.ㅜㅜ

blanca 2010-03-17 14:14   좋아요 0 | URL
순오기님. 저는 무슨 운명 같이 학교란 학교는 죄다 언덕. 집이란 집도 다 언덕입니다. KBS스페셜이 정말 대단했나봐요. 블로그마다 다 그 얘기가 있던데. 꼭 찾아 보고 싶어요. 안그래도 저는 벌써 ^^;;그래서 2009년도판으로 구했는데 너무 읽기 편하게 되어 있어요. 그리고 조정래샘 책들과는 달리 책 한 권의 분량이 적은 편에 속해서 되레 금방 읽을 것 같기도 합니다.

하이드 2010-03-17 00: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동물원에 가기는 아주 술술 넘어갈텐데.. 눈깜짝할 사이에 읽어버릴꺼에요. 읽으면서 막 페이퍼거리가 우수수 떨어질지도. 아, 이런거, 아 이런거. 하면서요.

그간 신간마실이 좀 모였으니, 내일 정도에는 페이퍼 쓸지도 모르겠네요. 서점도 다녀올꺼구요. 새로나온 푸엔테스의 책. 책 안 사는 와중에도 덥썩 샀던 책이에요. 그 책 정도면 블랑카님이 혹하실지도. 하는 생각이 문득 드는군요. .. (먼산)

전 이제 막 미시마 유키오의 <사랑의 갈증>을 끝내고, 오늘은 안나 카레니나나 읽다가 자려고 합니다.


blanca 2010-03-17 14:19   좋아요 0 | URL
하이드님을 신간마실만 보면 장바구니가 터질려고 합니다. 안나 카레니나 드뎌 시작하셨군요. 아주 재미있지는 않았지만 다 읽고 나면 심장이 흔들리는 기분이 들더라구요.(제가 과장이 심한 건 아시죠?ㅋㅋㅋ)

푸엔테스의 책이라구요? 저는 아직 읽어보지는 못했는데 하이드님 아니었으면 저한테 안기지 않았을 그 수많은 완소책들을 둘러보니(정말 하이드님은 지름신) 또 동할 것 같군요.

어제 <그녀에게 말하다>에서 출판디자이너 정병규 얘기를 읽으며 하이드님 생각이 나더라구요. 마쓰오카 세이코 얘기도 하고.

마녀고양이 2010-03-17 09: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혼불,, 구입하셨군요. 전 장바구니에 넣었다가, 지금 급히 읽을 책에 밀려서 당분간 포기인데. ㅠㅠ
여하간 책이 많이 쌓여있는거... 행복하지 않으세요?
혼불 읽고 리뷰 꼬옥~ 네?

blanca 2010-03-17 14:20   좋아요 0 | URL
근데 주르륵 열 권 꽂혀 있는 거 보면 괜히 해야 될 숙제 쌓여있는 것 같아 괜히 부담스러워집니다. 1권 시작했는데 의외로 재미 있어요. 지루하다는 평이 좀 있어서. 오히려 이게 책 값을 줄일 수 있는 편법일지도 모르겠어요. 당분간은 책을 사지 못할테니까요^^;;

기억의집 2010-03-17 19:32   좋아요 0 | URL
당분간 책을 사지 못할텐데요, 라면 얼마나 좋겠어요. 아마 블랑카님 손이 근질근질할걸요. 책주문도 가만보면 마약중독처럼 끊을 수 없나봐요. 전 진짜 안 사야지 책 사야지 했는데, 그래서 한 며칠 잘 참았다고 생각했는데 이번에 큰 건 저지른걸요. 정경화 40주년 기념박스세트로요!

흑흑 저야말로 미친X 지 뭐예요! 아무래도 중독치료 센터를 들어가던지 해야겠어요.

요즘은 택배 사고가 많아 경비실에 맡겨두라는 추세잖아요. 저의 애아빠는 알라딘이든 뭐든 무조건 경비실에 맡기라고 하더라구요. 근데 10권은 집앞까지 배달해주었으면 더 좋았을 것을. 힘드셨겠어요!

마녀고양이 2010-03-18 09:22   좋아요 0 | URL
ㅋㄷㅋㄷ, 책 사기는 중독이라는 말씀 절대 공감합니다.
이상하단 말이예요, 도박, 술, 담배 이런 중독은 안 걸리는데... 커피와 책 구매 중독은 어찌할 수가 없으니. 중독은 보통 순간 충동 조절 실패라는데.. 에공. 그래도 이런 중독 한두개 버릴 생각은 없습니다. 이런 것도 없다면, 인생을 무슨 재미로~ ^^

기억의집 2010-03-18 10:13   좋아요 0 | URL
하긴 그래요. 중독된 것이 책이 아니고 옷이였다면 아마 파산했을 거에요. 어제 학부모총회 있어서 옷 좀 사 입었는데 옷은 티쪼가리에 하나에 만원도 넘더라구요(좀 이쁜 티요!). 좀 비싼 책도 있긴하지요. 요 며칠 눈독 들이고 있는 책이 있는데 그건 3만원 후딱 넘어서 현재 망설이고 있어요. 사실 남들 눈에는 종이쪼가리일 뿐인데...... 왜 제 눈에는 책이 보물단지로 보이는지..이걸 콩깍지라고 하나봐요.

blanca 2010-03-18 15: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커피와 책 중독 알라디너들의 공통점이 아닐까요? 그걸로 살아가는걸요. 그중독이 아님 다른 나쁜 중독들에 또 빠졌을 거라고 애써 자위하며 살아갑니다.^^

꿈꾸는섬 2010-03-23 2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혼불, 정말 좋겠어요. 저도 보고 싶은데 아직은......님 읽으신거 보면서 마음 동하면 저도 사서 볼거에요.^^

blanca 2010-03-23 22:12   좋아요 0 | URL
꿈꾸는섬님 저 2권까지 보고는 10권까지 읽을 자신이 없어졌었는데 지금 완전히 빠져서 마지막 세 권 아까워서 읽지도 못하고 있답니다. 정말 정말 아... 다 읽고 말씀드릴게요.^^;;
 

 

법정스님이 입적하신 다음 날, 그 분의 마지막 길을 흐느끼며 배웅하듯 끄느름한 날씨 속에서
아이 손을 잡고 걷다 보니
낯선 아주머니가 말을 걸어왔다.  

얘는 말을 잘 하나요?
사물을 가리키면 그걸 알아차리나요? 
정확히 몇 개월입니까?

이런 조금 황당하고 직설적인 질문들.
그 아주머니의 걱정스러운 표정은 가족 중에 누군가가 어쩌면 손주중의 하나가 발달지연을
보이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하게 했다. 
일상적이지 않은 상황에 처하게 되면  곧잘 우리는 비슷한 누군가는 어떤지를 궁금해하며 위로도 받고
걱정도 더하고 그러면서 고민의 모서리를 다듬는다. 
 

몇 개월 후 가게 될 어린이집 탐방후 아이는 거기에 있겠다고 집에 안가겠다고 서럽게 울어댄다.
어린이집에 안가겠다는 것이 아니라 어린이집에 있겠다고 우는 아이를 보니 황당해서 웃음이 나왔다.
벌써 엄마 품에서 벗어나려는 건지, 엄마와의 시간이 만족스럽지 못해서였는지, 그도 아니면
거기에서 커다란 눈을 끔벅이던 귀연 제또래 남자애가 마음에 들었던 건지.^^;; 

집 앞 조그마한 미용실. 딸애의 한 줌도 안되는 머리카락을 잘라내고 예의 미용사 아주머니가 포상격으로 주던 사탕이 없자
황당해하며 기다리는 아이를 데리고 사탕을 하나 사서 빨려 줬다.

집으로 올라오는 언덕받이 또 비슷한 연령의 아주머니가 다가온다.
얘는 누구를 닮았나요?
아빠를 닮았다구요? 내 딸도 아빠 판박인데.
그래서 가르쳐야 하는 거예요. 안되도 왜 안되는지 설명해 주고 가르쳐 주고 그래야지, 어쩌겠어.
왜냐, 자식이니까.
내 딸은 이십대 후반이 되서야 이제 내 말을 이해하더라구.
근데 왜 시집을 안가지?
이제 서른 네 살인데. 

저랑 동갑이네요! 

그러자 갑자기 시작되는 말
즈 앞으로 아파트도 있는데 말이야.   

아빠를 고대로 닮아 고집을 피울 그러나 이제는 조금 유순해졌으나
시집을 안 간다는 나랑 동갑의 아가씨가 떠올라 괜히 웃음이 나왔다.
야무지고 사랑스러울 것 같다.

집에 와서 안자겠다는 아이를 억지로 재워 놓고 실비아 플라스의 일기를 조금 읽는다.
서른 살에 가스 오븐에 머리를 박아넣고 자살했다는 그녀.
테드휴즈의 아내이기도 했던 그녀의 빛나던 소녀 시절 그 시적이고 찬란한 어구들을 야금야금
아껴가며 읽다보면 또 맥락없이 프레이야님 서재에서 본 최명희의 그 명징하고 유리알 같은
문장들이 생각나 <혼불>을 구해야한다는 강박에 중고서점을 뒤지게 된다. 

기적처럼 갑자기 나타난 <혼불> 세트. 밀란 군데라의 <농담>도 보퉁의 <동물원에 가기>도
김혜리의 <그녀에게 말하다>도 아니 실비아의 일기도 아직 한참이나 남았는데. 절판되기 전에
법정스님의 <일기일회>도 읽어야 하는데. 그럼에도 주문해 놓고 역설적으로 제발 판매자가
천천히 배송해 주기시를 기대하며 숙제하듯 그러나 또 아껴가며 실비아의 일기를 읽는다.    

법정 스님의 유언처럼 결국 글을 쓰는 것도 말빚을 지는 일일텐데.
말하고 쓰는 일에서 결코 해방될 수 없어 심지어 처음 보는 사람들한테
쓰고 하고 마는 얘기들이 남기고 갈 의도되지 않은 그 부스러기들에 대한 우려와 연민이 함께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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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애(厚愛) 2010-03-13 14: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법정스님의 <일기일회> 주문하셨군요.^^ 부러워요~
제가 보고싶은 책들은 거의 판매중단이고 일시품절입니다.ㅜ.ㅜ

blanca 2010-03-13 22:45   좋아요 0 | URL
벌써 그렇군요...아직 일기일회 주문은 못했어요^^;;

노이에자이트 2010-03-13 16: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서른 넷이군요.

blanca 2010-03-13 22:45   좋아요 0 | URL
만으로는 서른 둘입니다.^^;; 노자님 나이도 궁금해지는데요.

후애(厚愛) 2010-03-14 07:53   좋아요 0 | URL
저두 궁금합니다.^^

노이에자이트 2010-03-14 15:14   좋아요 0 | URL
아니...왜들 이러시나...호기심 많은 누나들!

비로그인 2010-06-02 00: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몇 권에 대해 비슷한 마음이 들어 잠시 눈 감았다가 갑니다. ^^

blanca 2010-06-02 09:14   좋아요 0 | URL
바람결님 제 옛날 글에 왔다 가셨네요.^^ <혼불> 때문에 오셨는가, 싶네요. 저는 유일하게 소설을 읽고 그 등장인물이 살아 있다고 느낀 책이 <태백산맥>,<혼불>, <안나 카레니나>입니다. 지금도 제 가슴 속에 그 몇몇이 살아 있어요. 특히나 <태백산맥>이랑 <혼불> 등장인물은 서로 만나기도 합니다.ㅋㅋ
 

 

백화점 여성 의류 코너에 풀어 놓으면 종일이라도 놀 수 있었던
연년생 여동생이 시집가고 나서 갑자기 테팔 후라이팬 행사 매장에서 한 시간을 버티는 모습.
조카에게 퍼부어 대던 물량 공세가 어느덧 수세 차원으로 바뀌는 것. ^^;;

아홉살 연하의 곱슬머리 남동생이 여친이 생기자
참새가 방앗간 드나들듯 자주 오던 누나집에 드문드문 와서 그마저도 하루종일 쇼파에 누워 피곤해하는 모습.
핸드폰의 진동소리만 그를 일으킬 수 있다. 그의 여자친구를 싸이의 일촌평에서 찾아 따라들어가 염탐하는
매너없는 누나들의 모습.

미혼의 절친한 베프와 만나면 더이상 흥분하며 밤을 지새우던 공통의 화젯거리가 없다는 것.
너도 나도 어쩔 수 없는 거리감은 눈을 마주치는 그 순간마저 약간은 뜨악하게 느껴진다는 것. 

유부녀들과 만나 각자의 배우자와 아이 얘기만 하는 그 자리.
우리는 더이상 '나'와 '너'의 얘기를 하지 않게 되었구나. 

결국 낯설어진 것들은 내가 원하는 바로 그것이 아니기 때문에
서운하게 된 것들의 다른 이름.
난 낯설게 느끼는 것이 아니라 서운한 거야.
'나'와 '너'가 공명하던 그 순간의 떨림은 시간이 갈수록 점점 희미해져가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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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0-02-25 14: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도... 알라딘 서재가 있어서 다행이라 생각합니다. 하이텔 시절부터 숱하게 온갖 모임과 카페 활동, 아고라같은 커뮤니티, 학교 동기 모임 등을 했어도, <알라딘 서재>처럼 비슷한 체취를 맡은 적이 없었답니다.

(어쩜 난 사람이 아닌거 아닐까?)

blanca 2010-02-25 21:39   좋아요 0 | URL
그죠? 너무 신기해요. 책을 좋아하고 책얘기를 하는 사람을 현실에서는 찾아보기 쉽지 않잖아요. 참 다행한 일이에요.

다들 결혼하고 아기를 낳고 지금은 한창 가정에 집중할 때라 점점 더 멀게 느껴지는 걸 수도 있을 것 같아요. 학창시절 우정을 기대하는 건 음, 서로에게 너무나 큰 부담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프레이야 2010-02-25 2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명의 떨림, 욕심일까요. 서운함일까요. 지향일까요..

blanca 2010-02-25 21:41   좋아요 0 | URL
다일것 같아요. 특히나 저에게는. 사람에 대한 욕심이 너무 많은 것 같아요. 그래서 자아성취를 해야 하는데^^;;;

302moon 2010-02-25 22: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통의 화제가 없음과, 무엇보다도 서로의 일상이 너무나도 바빠,
멀어진 거리는 다시 좁혀지지 않는 친구 사이도 있는 거 같아요.
난독증으로 책을 읽지 못하게 됐으니,
너와 나의 공통분모 하나가 사라지는구나.…
말을 건넸던 친구도 문득 떠오르는 공감 글이었습니다.
저의 결혼한 친구들은 한창 아이 낳아 키우는 즈음이라,
더욱 못 만나게 되는 듯. T_T
윗분 말씀처럼 알라딘 서재가 있어, 참 좋아요. :)

blanca 2010-02-26 15:00   좋아요 0 | URL
302moon님 멀어지는 친구들이 생기면서 또 그 만큼 가까워지는 사람들이 생기지 않는게 나이들어가는 것의 슬픈 점인 것 같아요. 이제부터 만나는 사람들은 나의 전부를 보여주거나 이해받기를 바라지는 않게 되더라구요. 알라딘 서재가 있어서 살지요^^;;

저절로 2010-02-26 14: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연이 겹쳐 인연이 된 친구와 함께 식사를 하고 나오니, 식당 사장님이 친굴 알아보시고는 '접때 함께한 친구분들이 아니네요'하니,'시절따라 친구도 흘러가네요, 지금은 이 친구와 놉니다'인생 다산것처럼 살포시 웃는다.

있을수 있는 평범한 장면과 대화였는데도 가슴이 찌르르..잠깐 그랬어요. 나는 변하면서 친구는 뒷뜰 그자리 그나무이길 바라는 건 무슨 심본지.


blanca 2010-02-26 15:02   좋아요 0 | URL
맞아요. 저는 항상 받기만을 바라 왔던 것 같아요. 그런데 그런 문제가 유년기와 결부가 되어 있는 것인지. 요즘 책들을 이런 문제를 다 걸핏하면 엄마와의 애착 문제로 설명하더라구요. 나이가 들어도 끊임없이 성장해야 되는데 변화를 두려워하는 것 같아요. 노력해야겠어요.
 

제한된 공간 안에 넘쳐 나는 책들.
마음 같아서야 나도 신경숙 처럼 드넓은 서재 안에 나름대로의 분류철칙까지 세워 가며 책들에게 보금자리를 만들어 주고 싶지만, 실상은 다 옆으로 구겨넣고 심지어 바닥에 층층탑을 만들고. 

그러니 처분을 해야 했다.
결혼하기 전에 구입한 책들은 친정에 모셔놓고(그러나 아버지가 자의적으로 처분하셨다. 대체 처분의 기준이 뭔지.)
이사 오기 전에는 한 박스 아름다운 가게에 기증하고
알라딘 중고서점에도 한 박스 팔고
한동안은 도서관을 이용하다 다시 책꽂이 칸막이 위 틈에 불쌍하게 누워서 앙앙거리는 책들 신세도 처량하고
내가 박대하는 책이 누군가에게는 보물이 될 수도 있기에 직접 거래에 나서게 됐다.(무슨 대단한 일이라고) 

최대한 좋은 상태의 책들만 올려 놓고 주문이 들어오기 시작하자 집에 있던 허접한 상자들로
성의없는 포장을 한 후 거래를 트기 시작했다.
한편 나도 중고책들을 사보면서 몇 가지 아쉬운 점, 몇 가지 감동받은 사례들을 가지게 되었다. 

일단 2주이상 지연되어 책을 발송하는 판매자도 있었고,
받아 보니 책전체에서 시큼한 냄새가 물씬 풍긴 경우도 있었고(대체 정체가 뭔지 지금도 의문)
표지가 헌책이라고 온몸으로 호소하는 책, 책 속에 온갖 메모가 즐비한 책 등 기분좋지 않은 사례도 있었지만
총알배송에 꽤 된 책인데도 도저히 헌 책이라고 자신의 신분을 감출 수 없을 만큼 빛나는 책(감사)도 많았다. 

이왕 받고 나서 기분좋은 거래가 되었으면 했고
골드셀러분들은 무언가 달라도 항상 달랐다는 데에서 나는 투지를 불태우게 되었다.
총알배송. ㅋㅋㅋ 그리고 포장재까지 구입했다. 남편의 와이셔츠를 다리면서 입구를 다리미로 눌러주어
정말 알라딘에서 배송하는 것처럼 봉해서 띠지까지 넣어 보냈다.(웬 정성?) 그러고 괜히 좋아서 괜히 상쾌해서 막 웃었다.
이러면 한 몇 십권 팔아치운 고수처럼 보일 테지만 열 권도 등록 안하고 한 여덟권 팔았나? 

중고거래라는게 생각보다 사람 간의 기본 예의가 드러나는 지점이 있다.
처음 중고거래를 한 것은 반값에 나온 아이의 자연관찰 전집이었다.
판매자의 그 예의바른 목소리, 꼼꼼한 포장, 깨끗한 책의 상태로 두고두고 고마움을 느끼게 됐다.
그 분은 나에게 하나의 선례를 남겼다. 사실 상태가 좋지 못한 각종 육아 물품을 염가로 중고시장에 내어 놓고 싶을 때도
있지만 그건 예의도 아니고 경우도 아니라는 생각을 품게 된 것도 나의 첫 중고거래 덕택이었다.
만약 상태도 좋지 않고 배송도 느린 경험을 했더라면 그리 중고거래에 많은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을 지 모른다.
누군가에게 친절과 배려를 베푸는 일은 그래서 소중하다.
그 작고 섬세한 배려가 더 많은 배려를 낳을 수도 있으니까. 

성의없이 포장한 책 받으신 몇 분들께는 정말로 죄송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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