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터에서
김훈 지음 / 해냄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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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젯밤 꿈 속에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닌 이모가 나왔다. 이모는 꿈 속에서도 몸이 아팠던 기억을 가지고 있었지만 정결한 숲에서 얼굴을 보여준 이모는 우려했던 것보다 훨씬 건강해 보이고 예뻤다. 안심이 되기도 했지만 문득 잠에서 깨니 역시 마음 한곳이 아려왔다. 이모에게 제대로 된 작별 인사, 감사를 전하지 못했다. 죽음 앞에서 생은 어찌 이다지 하찮고 허무하게 스러지고 마는 것인가. 죽고 나면 우리 같은 평범함은 때로 하찮음과 망각으로 치환되어 서럽다. 기억하는 사람이 남는다고 해서 생이 더 유의미해지고 무거워지는 것은 아닐진대 오늘이 영원할 것처럼 마치 발이 단단히 이 지구t상에 못박혀 있는 것처럼 일상 속의 사람들은 싸우고 끄달리고 욕망하고 붙잡는다.


"2017년 설", 작가의 사인은 힘찬데 어쩐지 조금 아릿하다. 내가 기억하는 김훈은 영원한 오십 대인데 작가는 벌써 칠십 대에 접어들었단다. 우연히 옆에 있던 딸아이가 작가의 후기를 읽다 "엄마, '늙기가 힘들어 허덕지덕하였대'."라고 뜻도 이해하지 못한 말을 슬며시 옮긴다. 작가보다 한참 어린 나인데 그 '허덕지덕'의 무게를 실감한다. 시간의 경과가 늙음과 동의어는 아니다. 시간이 지나면 늙어지지만 늙음을 내면화하는 일은 별개의 일이다. 거죽은 풍화하는데 내면에 생의 기운과 젊음의 추억은 차곡차곡 쌓이니 그것들을 내칠 용기를 차마 내지 못한다. 어느 날 서 있을 초로의 여인과 나를 동일시하기란 쉽지 않다.


"마동수는 1979년 12월 20일 서울 서대문구 산외동 산18번지에서 죽었다."



이러한 첫문장으로 들어갈 때 이야기의 하중이 절로 다가와 다리가 갑자기 무겁게 느껴졌다. 생으로 시작하지 않고 죽음으로 풀어나가는 이야기. 이 이야기는 필연적으로 다시 그 사람의 삶으로 가는 역순환적 순서로 갈 것을 예고하는 것은 아니다. 마동수의 삶은 결국 그가 낳은 형제 마장세와 마차세를 이야기하기 위한 출발점이 되기도 하고 그들의 이야기가 결국은 만날 접점이 되기도 하고 마침내 그들의 이야기가 종결될 복합적인 지점이다. 세상에 발붙이지 못한 부박한 아비의 삶은 결국 죽음을 설명하기 위한 하나의 전제이자 출발, 도착점이 된다. 형제는 아버지처럼 살고 싶지 않아 분투하지만 결국은 아버지의 삶을 이해하게 되고 그의 삶을 닮게 되는 생존의 그 지엄하고 가혹한 본질에 가 닿는다. 어머니를 이해하지 못했고 이미 늙어버린 사람들의 이야기를 오해했던 시간은 시간의 결을 따라 제대로 해석되고 때에 따라서는 나의 것이 되기도 한다.


"아버지가 죽어 홀가분했다."는 차남 마차세만의 문장이 아니었다. 형 마장세는 일치감치 베트남전의 참전을 로 빌미로 그의 던적스러운 삶에서 도망치려 하지만 결국 그가 타지에서 벌였던 불법적인 사업으로 인해 아버지 만큼 추락한다. 형과는 달리 동생 마차세는 늘 아버지와 어머니의 삶과 죽음을 지척에서 지켜보게 되지만 그 또한 신산하고 초라하고 때로 비겁한 그들의 생존에서 멀리 떨어지려 시도해도 결국은 다시 떨어지는 진자 추처럼 생으로 귀환한다.


억새꽃이 부풀었고, 가을빛이 자글거렸다. 시든 줄기가 바람에 끄달리면서 바람을 버티고 있었고 꽃씨들은 바람 속으로 흩어졌다. 억새는 꽃이 아니라 꽃의 혼백처럼 보였다.

-p,311


전쟁통에 전남편과 젖먹이를 잃어야 했고 평생 방황하는 남편을 두고 형제를 키워내야 했고 말년은 치매로 요양원에서 보내야 했던 형제의 어머니를 화장하고 내려오는 길의 묘사는 눈부시다. 그것은 비단 어머니 김도순의 삶의 은유로만 해석될 것이 아니다. 누구나의 삶인들 이러지 아니할까. 충분히 나이든 김훈의 삶의 결을 간파해내는 문장들은 가슴의 결에 아로새겨질듯 간명하면서도 처절하다. 그의 문장은 끌로 판 듯 치열하고 또렷해서 차마 흘려보내지 못할 듯하다.


우리의 삶은 지극히 사적이지만 공적인 큰 파도 속에서 부유하며 그 사사로움을 잠식 당한다. 누군가의 삶도 결국 개인적인 서사만으로 설명될 수 없는 이유다. 사사롭지만 사소하지 않은 그 모든 것들을 언어로 도열하면 삶의 지고하고 처절한 순간들이 드러난다. 개인과 사회와 역사, 욕망과 의지와 이상과 좌절의 겹쳐진 그 틈새를 간파한 작가의 필력은 그가 살아 낸 생의 기억들과 무관하지 않은 듯하다. 마지막 장을 덮으며 늙고 사는 일을 실감한다. 무겁고 무섭지만 신비로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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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7-03-06 14: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우, 따님이 문장을 또박또박 잘 읽는데요?
엄마를 닮아 글을 잘 쓰려나 봅니다.ㅎ
그 뜻이야 앞으로 살면서 문득문득 많이 떠오르겠죠.
김훈 작가의 그 문장 참 기가막히군요.
정말 앞으로 살면 살수록 허덕허덕할 때가 많겠죠?
살면 살수록 물 같으면 좋겠는데...

blanca 2017-03-07 09:28   좋아요 0 | URL
벌써 4학년인 걸요. 김훈 문장은 여전히 경이로운 대목이 많더라고요. 늙는 일은 절로 되는 게 아니라 너무 넘어야 할 산이 많은 것 같아요.

stella.K 2017-03-07 13: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딸래미가 벌써 4학년이어요? 아니 언제에...ㅎㅎㅠ

blanca 2017-03-11 13:20   좋아요 0 | URL
저도 깜짝 놀라요. 제가 4학년이던 게 엊그제 같은데 --;;; (이건 좀 과장이죠? ㅋㅋ)
 
바다 (양장)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44
존 밴빌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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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어디에서 오는 길이었을까. 잘 기억나지 않는다. 퇴근길이었을 낯선 아저씨는 가족에게 주려고 산 붕어빵 봉지에서 붕어빵을 하나 꺼내 낯선 아이에게 건네 주었다. 따뜻했다. 하늘의 달은 정말 신기하게도 집까지 따라와 주었다. "신들의 시절"이었을까? 세상도 우주도 한없이 광대한 시절, 모르는 것이 너무 많아 신기한 것은 신비로 점철되던 시절, 유년. 서서히 장막은 걷히고 남에게 일어날 수 있었을 또는 있었던 모든 일들은 나의 안전한 지지대로도 파고든다는 것을 알게 되는 그 시점, 나도 내가 사는 삶도 별 수 없으리라는 사실을 단단하게 깨닫게 되는 그 시간, 어른은 소멸을 향해 늙어간다.


온화한 날씨 속에 한 해가 끝을 향해 이울어가고, 낙엽들이 허둥지둥 달려가고, 알아채지도 못하는 사이에 낮의 밝음이 희미해지고, 가로등이 매일 저녁 어제보다 약간 더 일찍 켜지는 때에. 그래, 이것이 내가 어른의 생활이라고 생각하던 것이다. 늦가을에 맞이한 기나긴 화창한 날씨 같은 것, 고요의 상태, 호기심이 사라진 차분한 상태. 견디기 힘들었던 유년의 날것 그대로의 직접성은 다 사라지고, 어렸을 때 곤혹스러워하던 것은 다 풀리고, 모든 수수께끼가 해결되고, 모든 질문에 답이 나오고, 순간순간에 물이 똑똑 듣듯이 거의 알아챌 수도 없이, 황금 방울처럼 똑똑, 마지막, 거의 알아챌 수도 없이 해방을 향해 흘러가는 상태,

-p.92


이 남자는 지금 이 시간을 상실과 더불어 통과하고 있다. "그들은, 신들은 떠났다."는 선언으로 시작되는 이야기. 이미 남자는 충분히 늙었다. 반 세기가 더 지나 돌아온 유년의 풍경은 화석처럼 보존되어 있었다. 오십 년의 시차는 같은 공간 안에서 경계를 허물고 서로 극복된다. 남자가 회상하는 자신의 세계 밖의 풍경은 예나 지금이나 지극히 관조적이다. 남자는 그 모든 시간을 직접 통과해 왔건만 번번히 불투명하게 관찰하는 시점에 자신을 고착화한다. 그렇다면 그가 이야기하는 모든 것은 개별적인 것이 아니라 보편적인 우리의 이야기로 응축되는 것이다. 내가 어린 시절 경험했던 그 모든 것의 직접성은 비록 서사의 구체적인 결은 다르지만 이 남자의 음험한 짝사랑과 서툴지만 영롱했던 그 모든 처음이었던 것들과 겹친다. <바다>를 읽게 되면 그래서 멈칫멈칫하게 된다. 이것은 타자의 이야기가 아니라 나의 이야기도 되니까.


작가는 "세속적 표현의 순간"을 고대하는 이 남자의 목소리를 빌어 그의 소망을 실현했음을 들킨다. "나는 표현될 것이다."는 작중 화자의 고백으로 폄하되지 않는다. 그 뒤에 숨어 끊임없이 자신의 시선을 들키는 작가 본인의 것으로 의심되어도 충분할 것이다.


사는 일은 지난하지만 절실한 일이다. 상실과 필연적으로 만나는 것은 유한한 삶의 본질적 속성일 게다. 눈물 없이는 나아갈 수 없는 일이다. 상실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일은 그래서 때로 진부해지지만 영원히 반복되는 삶의 이야기다. <바다>를 유영하는 일은 그러한 상실을 저마다 개별적인 지점에서 보편적인 곳으로까지 밀고 나가는 힘겹지만 의미 있는 과정이다. 우리는 이미 모두 모든 불가능한 것들의 발치를 쓸어가는 시간을 통과해 신들의 시간을 통과해서 다시 신들의 시간으로 갈 운명이다. 그 운명을 기억하는 과정에서 <바다>는 하나의 이정표가 되어 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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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담한 빛
백수린 지음 / 창비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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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표지는 아련하게 찬란하다. 해가 저무는 중일 수도 있고 해가 뜨기 전일 수도 있다. 레이스 커튼의 아랫단은 자기 그림자와 만날 듯 말 듯하다. 표지가 제목인 <참담한 빛>과 더불어 이야기에 진입한다. 이 역설은 언제나 그래왔다. 기쁠 때도 슬플 때도 슬며시 반대편에 서 있어야 할 감정, 기억, 언어는 오곤 한다. 그게 논리적으로 자연스럽지 않으니까 숨을 쉰다. 정합과 논리는 이론의 지지대지 현실의 완충 지대에 있는 것은 아니다. 백수린 작가는 이야기를 시작한다.

 

처음부터 읽지 않았다. <중국인 할머니>부터 시작했다. 중국인 새할머니의 죽음에서 역주행한다. 가족은 핏줄로만 맺어지는 것이 아니지만 애초의 출발이 그런 것이 아닐 때 조금씩 서걱거린다. '나'는 거기에서 출발했고 거기에서 좀더 나아가 끝낸다. 머뭇 머뭇 과하지 않게 딱 좋은 곳에서 더 나아가고 싶은 욕구를 기민하게 조절한다. 새할머니, 새외삼촌, 새사촌. 그들과 감동적으로 교감하지 못했다. 그것은 그랬으면, 하는 이야기다. 그러나 나는 중국인 새할머니와 교감한 '나'만의 비밀이 진실이든 왜곡이든 그것을 밝히며 그녀를 애도한다. 빛나는 달을 보며 아직 다 크지 않은 '나'를 두고 중국인 할머니가 중국 민요를 불렀던 장면, '덧없이 짧은 한 순간' 이었지만 중국인 새할머니와 당신이 데리고 온 아들이 낳은 사촌 진운이와 그렇게 셋은 잠시 '가족'을 느꼈었던 기억은 그녀 안에 쌓여 기억을 이루고 그게 삶의 과거를 만든다. 서늘하고 찬란한 이야기였다.

 

만난다. 낯선 이를. 그것은 우연한 조우지만 공유되는 시간의 충실성은 그 누구도 단정지을 수 없다. 충만하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다. 기대는 있었지만 과하지 않았고 실망이 뒤따르기도 했지만 압도적이지는 않다. <시차>에서 외국으로 입양 간 사촌과의 조우도 그러했고, 아버지의 몰래 한 사랑이 낳은 딸과의 만남을 그린 <북서쪽 항구>도 그러했다. 표제작인 <참담한 빛>에서 남자와 외국의 다큐멘터리 감독이 함께 한 잠깐의 시간도 마찬가지였다. 소통은 많은 것을 함유하고 있지 않지만 양자를 변화시킨다. 작가의 문장은 몹시 담담하다.

 

영원할 듯 빛나던 순간은 사라지고 모두 종국에는 늙고 병들어 종료되는 것이 삶임을 이미 알고 있다는 듯, 사람들은 피로한 얼굴로 묵묵히 집에 차오른 물을 양동이 가득 퍼서 창밖으로 버렸다.

-<높은 물때> 중

 

환상은 없다. 러시아 문학 스터디를 주관했던 근사했던 첫사랑 선배도 생업에 찌들어 영업을 하고 <첫사랑> 촉망 받던 미술학도는 머나먼 타국에서 불법 민박을 운영하며 늙어간다.<높은 물때> 그러나 종국에 이 모두를 훓고 지나가도 남는 것에 대한 응시가 작가의 이야기다. "어렴풋한 빛"이 떨어지고 살아남는 이야기에 다시 표지로 돌아온다.

 

바람이 불고 커튼은 흔들리며 자기를 투영해 내고 자기를 응시하고 그 공간 안에 우리 시선은 떨어진다. 찰나에 아련한 과거와 두려운 미래가 중첩되며 남기는 어딘가의 현재에 발을 담근다. '참담한 빛'은 그래서 언제나 우리를 통과한다. 참담해도 빛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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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이소오 2016-10-09 17: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블랑키님, 참 글 잘 쓰시죠.

블랑카님, 작가시죠??

blanca 2016-10-09 20:54   좋아요 0 | URL
음... 사람 참 기분 좋게 만드시는 재주가... 고마워용^^
 
안녕 주정뱅이
권여선 지음 / 창비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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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와 여자의 관계의 틈에는 언어로 형용할 수 없는 수많은 이야기가 있다. 사랑에 빠질 때에도 헤어질 때에도 왜 그랬는지 누군가에게 설득력 있게 혹은 알아들을 수 있게 이야기하기 어렵다. 어제까지 손잡고 걸었던 길을 오늘 혼자 걷게 될 때 "너는 왜 그랬어? 너희들 좋았잖아."라는 말에 대답할 수 없다.

 

어색하게 헤어지고 연락이 끊길 때 우리의 서사는 나름의 이야기로 왜곡되고 종결된다. 아주 많은 시간이 흐른 뒤 누군가 하나는 분명히 다른 식으로 윤색된 연애 이야기를 갖게 된다. 현실? 그게 전부는 아닌 것 같다. 연애는 삶을 닮는다. 시작하고 변하고 마친다.

 

권여선의 이야기 속 연애는 슬프다. 만나고 헤어지고 각자가 간직하는 서사가 다르다. 서로를 철저히 오해해 버리고 만다.

<카메라>에서 여자는 직장 동료의 남동생을 그녀 몰래 만나게 된다. 그러다 어처구니 없이 헤어지게 된다. 재회한 것은 그 남녀가 아니라 그 여자와 남자의 누나다. 남자의 누나는 여자와 남자의 사랑을 알고 있었지만 끝까지 모른 척해 준다. 하지만 여자가 미처 알지 못한 남자의 서사를 완성해 준다. 그것은 사려깊고 애달프다. 남동생의 삶과 사랑을 이해하고 받아들여 준 누나의 이야기는 미처 남자의 전부를 알지 못한 여자를 울린다. 두 여자는 손을 잡는다. 끝났다,고 생각한 사랑은 그의 가족으로 인해 영원히 흐른다. 남자는 미처 그 사랑을 완성하지 못하고 마침표를 누나에게 맡겼으므로.

 

<층>에는 남녀 간의 사랑 안에 흐르는 현실의 묘한 위계를 감지한다. 백 퍼센트 순수한 사랑은 힘들다. 끊임없이 사회적 경제적 위계는 남녀 사이를 침투한다. 그것을 거부하는 것도 묵인하는 것도 무시하는 것도 결국은 그것을 인정하는 것과 다름 아니다. 남자는 자신보다 나이가 많고 공부도 많이 한 여자에게 아픈 가정사를 숨기려고 안간힘을 쓴다. 여자가 떠나자 남자는 자신의 그러한 처지가 여자를 떠나게 했다고 오해한다. 하지만 여자가 떠난 것은 그런 남자의 처지보다 자신의 가족을 부정하려는 그 거친 폭력에 진저리를 느낀 것이었다. 그러한 계기가 아니더라도 여자와 남자의 이야기는 처음부터 완성될 수 없었다. 작가는 그 미묘한 지점을 예리하게 간파한다. 그러한 것들이 모두 지나가고 난 자리에서 여자와 남자는 자신들을 처음부터 다시 정립하고 나아간다.

 

"산다는 게 참 끔찍하다. 그렇지 않니?"

 

권여선의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한다. 그 누군가가 시작한 이야기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보이는 것 아래의 뒤의 속살을 담담하게 관조하며 그녀는 애써 미화하거나 과장하지 않는다. 관계도 사건도 살아나가는 일도 다 그런 것이라는 그녀의 기본적인 어조가 때로 냉정하지만 그 명징한 맛에서 그녀의 이야기는 울린다. 끔찍한 삶 속에서 일어나는 유일한 위안인 사랑조차도 결국은 그 안에서 회자되는 것임을 기억하는 작가의 이야기는 결국 읽는 이들을 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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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nnight 2016-09-29 13: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무척 와닿았어요. 주정뱅이 1인으로서..ㅠㅠ;;

blanca 2016-09-29 14:06   좋아요 0 | URL
주정뱅이라는 말이 되게 뭐랄까, 귀엽게 느껴졌어요. 그런 의미에서 달밤님도 ㅋ 귀여워요...
 
쇼코의 미소
최은영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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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많은 기대가 없었다. 이미 충분히 근사한 짧은 이야기들은 톨스토이가 체홉이 카버가 다 해버렸으니까. 대부분의 단편들은 그러한 후광에 압도당하기도 하고 기대기도 하고 애써 왜면하며 닮아가거나 너무 멀리 튀어나가버려 버석거린다. 시작한 이야기는 마침표를 향해 어쩔 수 없이 나아가곤 했다. 어느 순간 작가가 쓴 단편에 대한 기대가 없어져버렸다. <쇼코의 미소>를 두고 진지하거나 호의적으로 출발하지 못했다.

 

표제작, <쇼코의 미소>에 특별한 서사가 이야기의 견인력은 아니다. 화자의 고등학교 시절 우연히 홈스테이를 하게 된 일본 여학생 쇼코와 펜팔을 하게 되며 그녀의 삶의 서사를 목격하게 되며 각자의 모국어가 아닌 다른 언어의 한계 안에서 소통하는 이야기의 갈피짬에는 화자가 이 사회의 주류 세력이 추구하는 자본주의 바깥에서 '꿈'을 향해 비틀거리는 외부인으로서의 소외감과 그것의 근저에 있는 "제대로 풀리지 않는 욕망의 비릿함"을 냉정하게 자인한다. 그것은 자신을 키워준 할아버지라는 공통 분모 앞에서 각자 자신의 꿈과 삶으로 신 나게 뛰어나가지 못하는 화자와 쇼코의 생래적 한계가 결국은 자신들이 만들어 낸 하나의 환각이자 변명거리임을 알아차리는 지점에서도 그러하다. 공교롭게 조부의 죽음이 만나는 지점에서 '나'와 쇼코는 다시 만나고 새로운 소통의 가능성을 확인한다. 최은영 작가는 우리 모두가 사실은 알고 있지만 차마 말하지 못하는 것들을 기민하게 포착한다. 가족 안에서 '사랑'은 때로 '체념', '구속'의 완충장치처럼 작용한다. '사랑'은 '소통'이 아니고 '삶'을 부드럽게 말랑거리게 만드는 것도 아니다. 같은 언어를 공유하지 않는 관계에서 이루어지는 소통은 때로 이러한 객관의 시선을 가져온다. 조금 더 냉정하고 조금 더 진지하게 어느 순간 내 안의 것들을 들여다보게 된다.

 

<씬짜오, 씬짜오>에서 독일에 체류하게 된 두 동양인 가정이 함께 시간을 보내며 교류하다 과거 베트남전의 역사에서 충돌하고 소원해져버리는 이야기는 그렇게 스쳐가게 되는 관계의 한계를 형상화하면서도 남기는 것에 대한 응시가 돋보인다. 타인에게 "곁을 주는" 일은 그래서 무의미하지 않다. 정감 있고 가족조차 외면하는 상대의 존귀함을 발견해 내는 관계는 사소한 오해로 붕괴될 만큼 연약하지만 그 둘의 삶에 긴 여운을 드리우며 영원히 남는다. 엄마들 관계에서 틀어졌지만 화자가 그 때의 엄마 나이 만큼 성장해서 길을 마주하고 다시 그 예전의 이웃 아주머니와 조우하는 장면은 뭉클하다. 그 희망은 유치하지 않고 미화되지 않아 더 현실적이다.

 

'삶의 어느 지점, 잃어버린 인연'에 대한 최은영의 천착은 계속된다. <언니, 나의 작은, 순애 언니>에서 어머니가 어린 시절 함께 큰 친척 언니의 삶이 의도하지 않은 외부적 사건으로 하류층으로 전락하며 서서히 부담을 느끼고 그녀의 고난에 동행했던 손을 슬쩍 놓아버리며 분리되는 이야기는 냉정하지만 진실이다. 그것은 타이밍의 문제이기도 하고 관계의 어긋남이기도 하지만 그렇게 놓아버렸다고 해서 함께 보내버린 시간마저 허공으로 부서지는 것은 아니다. 그랬으니 그 언니의 죽음 앞에서 화자의 엄마는 다시 오해를 풀고 그녀와의 시간을 떠올리는 결말을 잃어버리지 않는다.

 

<한지와 영주> 또한 그렇다. 이 이야기는 좀더 젊고 많이 예쁘다. 프랑스의 수도원 봉사에서 우연히 만나 감정적 교류에서 더 나아가지 못하고 어긋나버리는 둘의 관계는 단순히 젊은 남녀의 치기어린 열정으로 치환될 것은 아니다. 둘의 관계는 일상성에서 비롯된 것도 아니고 공통의 언어로 내밀하게 소통했다고 볼 수도 없다. 모든 경계와 한계를 넘어 불완전하게 그러나 그래서 더 깊이 편견 없이 이루어진다. 그렇지 않다면 한국의 대학원생이 나이로비의 수의사와 잃어버린 꿈과 사회적 압력과 가족의 사랑과 부담을 함께 공유할 일은 없을 것이다. 결국 둘은 어긋나지만 그 어긋남마저 그 나잇대의 아련함과 더불어 아름답게 느껴진다. 누구나 한번쯤 잃어버리게 되는 그 타인과의 완전한 소통과 감정적 교류에 대한 완벽한 기대치에 대한 연가는 언제나 눈물겹다. 그것은 그러한 기대를 품었던 자기 자신에 대한 청춘에 대한 애달픈 안타까운 정서이기도 하다.

 

교황이 집전하는 미사 참석을 위해 상경했던 미용사 엄마가 연락되지 않는 딸때문에 우연히 찜질방에서 만나게 된 할머니와 시위에 참석하게 되는 이야기와 키우다시피 한 손녀가 기간제 교사가 되지만 어느 날 갑자기 만날 수도 연락할 수도 없게 된 할머니의 사연은 세월호와 만난다. 충분히 애도되지 못하고 충분히 납득하거나 설명할 수 없는 앞선 죽음에 대한 이야기는 역시 답답하고 슬프고 억울하다. <미카엘라>와 <비밀>은 작가가 차마 선뜻 위로하기도 힘든 이 큰 비극에 가지는 애도의 마음을 짐작케 하지만 거기에서 더 나아가지 못하는 어떤 머뭇거림이 느껴져 이야기가 멈춘 듯해 아쉽다. 우리 모두 마음 한 구석에 묻은 아이들의 이야기는 그 어떤 서사로도 덮어질 수 없을 만큼 너무나 크고 깊은 눈물이라 그런 듯도 하다.

 

"십대와 이십대의 나는 나에게 너무 모진 인간이었다."라는 작가의 말은 이십대의 나에게도 해당되는 이야기라 가슴이 떨렸다. 그런 스스로에게 사과하는 작가의 의연함에 위로 받았다. 나는 그러지 못했다. 나에게 너무 가혹하고 모질었던 청춘은 또 다른 형태로 나에게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다. 언젠가는 나도 최은영 작가처럼 스스로에게 사과하고 싶었나 보다. 고마운 작가, 그녀의 건투를 빈다. <한지와 영주>에서 다른 언어를 썼던 아이들이 최선을 다해 서로 이야기를 하고 듣고 이해하고 공감하려 했던 그 작은 장면에서의 대사가 비어져 나와 나에게 도착한다. "그런데 내 말을 이해해?" ...

 

이해하려는 노력은 아무리 무용해도 멈추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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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애 2016-09-12 09: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따뜻한 마음과 시선이 필요하다고 그게 (내가) 바라는 바라고 그런데 그것이 이해하려는 노력에서 시작된다고.

blanca 2016-09-12 13:41   좋아요 1 | URL
사실 이해라는 게 어쩌면 공감을 위한 조금 헛된 시도일 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그런 몸짓이 중요한 거니까요. 아예 인간은 소통이 불가능하니 시도조차 말자,는 냉소보다 저에게는 더 진실에 가깝게 들리는 면이 있어요. 그런데 이런 댓글 좋네요.^^

[그장소] 2016-09-12 09: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단편으로 쇼코의미소만 봐서 나머지 소설도 궁금했는데 좋은 리뷰 감사해요!^^

blanca 2016-09-12 13:43   좋아요 1 | URL
나머지 소설들도 충분히 좋았아요. 한국 문학의 미래가 어둡지 만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저보다 나이도 어린데 제가 한참 지나 알아차린 걸 이 작가는 이미 미리 너무 잘 느끼고 있더라고요.

[그장소] 2016-09-12 13:51   좋아요 0 | URL
단 한편을 젊은 작가 상 책으로 만났을 뿐었지만 매우 놀랐던 기억이어서 ㅡ이게 데뷰작이라니!!ㅡ눈이 더 가던 작가였네요! 나이도 물론 한 몫했을 거예요 . 젊은 작가라는 상에 더할 수없이 잘 부합한단 생각였어요 . 이 책 나온다고 듣곤 올게 왔구나 ㅡ했었다는!^^
흔쾌한 성장 예요!^^

다락방 2016-09-12 12: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블랑카님도 이 책을 좋아하실거라고, 저는 확신했어요.

blanca 2016-09-12 13:44   좋아요 1 | URL
제가 항상 뒷북을 친답니다. 아우, 너무 좋았고 작가의 말은 더 좋았어요. 아주 울컥하더라고요.

자목련 2016-09-12 16: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 소설집 정말 좋죠? 리뷰는 더 좋아요^^

blanca 2016-09-13 08:08   좋아요 0 | URL
자목련님, 표지부터 한 편 한 편 다 진지하고 결도 곱고...어젯밤 지진으로 정말 많은 생각이 오고 가더라고요. 계신 곳은 괜찮으셨는지 궁금합니다.

자목련 2016-09-14 07:47   좋아요 0 | URL
진앙지와 먼 곳이었는데도 흔들림을 느꼈어요. 그 순간 정말 무서우면서도 수많은 생각들이...
건강하고 즐거운 추석 연휴 보내세요^^

cyrus 2016-09-13 2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즐거운 추석 연휴 보내세요. ^^

blanca 2016-09-13 22:06   좋아요 0 | URL
아. 고마워요. 어제 지진은 괜찮으셨는지... 명절 잘 보내기를 바라요. ^^

서니데이 2016-09-13 2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blanca님 즐거운 추석연휴 보내세요.^^

blanca 2016-09-13 22:06   좋아요 1 | URL
서니데이님도요^^** 고맙습니당~

2016-09-14 02: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9-14 10:50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