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이라는 나이는 참으로 신기하고 신비로운 지점이다. 한 마디로 인생의 중간 기착지에 도달해서 세상을 바라보던 시각이 흔들리는 경험을 하게 된다고나 할까? 이제 가능한 것보다는 불가능한 것들이 많고 할 수 있는 것보다는 해야 하는 것들이 많다는 그 보편적인 체념의 장에 들어서게 된다. 삶을 더 이상 한 없이 확장되어 있는 무한의 장으로 응시하지 않게 된다. 오히려 한계와 유한의 지점은 소실점처럼 저만치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마흔이 되고 제일 먼저 경험한 것은 인간 관계의 한계다. 누군가와 완전히 소통하고 공감할 수 있다는 환상에서 깨어나게 되었다. 작년 급격하게 친해진 그 사람은 급격하게 멀어져 갔다. 내가 느낀 그 사람의 단점과 한계의 자장 안에 내가 민감하게 반응한 것은 결국 나의 못난 점이나 내가 원했으나 이루지 못한 것들과 분명 겹치는 대목이 있었기 때문이다. 호감을 느끼고 함께 공유했던 일상 만큼이나 실망과 환멸, 내 자신의 오판과 어리석음에 대한 자책은 아팠다. 처음 하는 경험은 늦은 만큼이나 더 통렬했다. 나이 든 한 사람은  나에게 "큰 공부를 하는 중이며 이것 또한 지나갈 것이다."라고 했고 그의 조언은 맞았다. 공부는 한계의 절감과 맞닿았다. 이제 더 이상 누군가와 공감하고 소통한다는 그 착각에 쉽게 기댈 수 없을 것 같다. 나 자신조차 일관성이 없는데 타인한테 그 큰 기대를 걸었다는 것에 묘한 애잔함이 느껴진다. 그러고 보면 마흔은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프리즘이 흔들리는 경험을 많이 하게 되는 기착지인 것 같다. 다른 모든 마흔들도 그럴까? 

















이 책을 전자책으로 다운 받아 읽으며 어제 오늘 많은 위로를 받았다. 이 책은 섣부른 조언이나 장밋빛 조언 대신 중년이 삶 전반에서 가지는 성장통에 대해 심리학자의 관점에서 차분하게 되짚어 나가는 이야기다. 마흔이 되기 전에 읽어 마흔이 가져 올 것들에 대하여 각오나 기대를 다지기에도 이미 흘려 보낸 그 중년의 위기를 재해석하고 더 넓은 프레임안에서 통합하는 데에도 큰 도움과 지지를 줄 수 있는 책이다. 분명이 이 시기 수많은 갈등과 고통을 경험하게 되지만 그것이 지나온 삶과 앞으로 남은 삶 전반에서 어떻게 자리매김할 수 있을지를 명철하게 보여준다. 중간 중간 인용하는 플로베르나 도스토예프스키의 문학작품, 라킨의 시들도 흥미롭다.


성장하여 스스로 삶을 책임질 것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삶은 무자비하다. 단순하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성장은 중간항로에서 정말로 피할 수 없는 요구사항이다.


이 중간항로가 마흔이다. '성장'이란 단어는 성장기 학창시절에만 동원되는 단어인 줄 알았지만 이 마흔의 얘기에서 가장 빈번하게 나오는 단어 중 하나라 이채롭다. '성장'을 포기하면 우리는 흔히 여기저기에서 조롱조로 폄하되는 억센 아줌마, 아저씨가 될지 모른다. 불평불만 투성이의 노인이 되어버릴 수도 있다. 삶이 통과하는 지점에서 요구하는 이 힘든 과제를 제대로 수행해내지 못한다면 삶은 살아지는 대로 시간과 각종 우연으로 점철되다 예기치 못한 순간 마침표를 찍고 퇴장을 요구할 것이다. 저자는 유년 시절의 부모와 사회라는 외부에서 주입된 그 렌즈로 굴절된 세상에서 이제 자기 고유의 관점과 시선으로 세상과 내면을 재응시하며 진정한 의미에서의 '자기'를 찾아나가는 시발점으로 마흔을 얘기하고 있다. 



그러니 마흔이 고독하고 아픈 것은 당연한 것도 같다. 이 시간을 통과하면 나는 한뼘쯤 자라 있었으면 좋겠다. 고약해지고 독선적이고 자기만의 프리즘 안에서 타인과 세상을 재단하는 경직된 틀을 깨고 나와 훨훨 날아가 점점 진짜의 나와 진정한 나의 삶에 다가가는 과정이 되기를 기대한다. 그리스 시인 카바피가 삶의 여정을 노래한 '이타카'의 페니키아 시장에서 예쁜 보석과 아름다운 것들을 구경하며 누리는 즐거움도 포기하지 않으며 그것을 진정한 의미에서 즐기는 여유도 가지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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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8-02-18 07:3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제가 서른에 접어들기 시작했을 때부터 인간관계를 형성하는 일에 집착하지 않게 되었어요. 저는 너무 일찍 느낀 것 같군요. 오프라인이든 온라인이든 친한 사람 몇 명 있다고 해서 그들과의 관계가 오래 간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한계효용체감의 법칙이라는 게 있어요. 이 법칙은 사람 관계에도 적용할 수 있어요. 처음에는 상대방이 좋아서 친하게 지내지만, 계속 만나다 보면 상대방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고 호감도가 낮아져요. 오프라인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알라딘 서재 활동을 하면서 한계효용체감을 느끼고 있어요. 예전에 친하게 지냈지만 어느 순간부터 (댓글)대화를 안 하게 된 분들이 많아졌어요. 그럴 땐 미련 없이 제가 먼저 관계를 끊어요.

blanca 2018-02-19 02:49   좋아요 2 | URL
cyrus님이 스물여섯이라 했을 때를 기억하는데 벌써 서른에 접어든다,는 얘기를 들으니 세월이 얼마나 빠른지 느껴집니다. 기대가 없으면 실망도 없지만 잔재미도 없어지고 이게 계속 반복인 것 같아요. 무덤덤하게 지내야지, 했다가 또 기대하고 실망하고 ‘불가근 불가원‘은 너무 어려운 과제로 느껴져요. 적절한 거리 유지는 평생의 숙제가 될 듯합니다.

순오기 2018-02-18 08:1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마흔을 지나면서, 마흔은 ‘비로소 흔들리는 나이‘라고 정의하게 되더라는...^^

blanca 2018-02-19 02:54   좋아요 1 | URL
순오기님의 댓글을 곱씹게 되네요. 나이들어서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많은 것 같아요. 예전에 섣불리 단정지었거나 호기를 부렸던 모습이 좀 부끄럽게도 느껴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