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운은 교통사고처럼 온다. 예측할 수도 없고 완벽하게 예방할 수도 없다. 오늘의 지루했던 일상은 급작스런 균열로 위태롭게 흔들린다. 지루했던 안온했던 일상은 간절한 기다림의 대상이 된다. 인도계 미국인 작가 아킬 샬마에게 닥친 위기는 그 규모나 파장이 잔인하도록 컸다. 힘든 이민자 가정에 든든한 지지 역할을 했던 형은 명문고 입학을 앞두고 수영장 사고로 의식을 잃게 된다. 말할 수도 웃을 수도 몸을 움직일 수도 없는 시간들은 산처럼 버티고 서서 작가의 가족의 거의 반생을 지배하게 된다. 자전적인 이야기 속의 소년은 형의 사고 이후로 시도 때도 없이 눈물을 흘린다. 학교에서 괴롭힘을 당했을 때 동생을 도와주려 분투했던 형은 의식 없이 아기처럼 누워 자신이 만들어 낸 불행의 무게를 실감하지 못한다. 그래도 끝끝내 가족은 버티고 형의 회복 대신 좋은 성적을 기도해 엄마에게 야단을 맞았던 어린 동생은 미국에서 어엿하게 자리를 잡고 작가로도 성공하게 된다. 이 드라마틱한 이야기의 주인공은 그러나 자신의 이야기에는 대단한 플롯이 없다고 이야기한다. 역경 속에도 아름다운 것이 있다고 독자들에게 이야기한다. 그의 이야기는 그의 삶과 떨어질 수 없고 그러한 그의 성취는 읽는 이에게 건너가 다른 형태로 부활한다. 누구나 성장통을 겪는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그러한 고통을 내재화하는 것이다. 잠잤던 눈물은 다시 깨어나 흐른다.


















짧은 그의 이야기 속 주인공들은 다 어느 정도 불운하다. 결혼에 실패하고 때로 가까운 사람에게 이용 당하고 가족이 죽는다. 그런 상황은 대단히 불행할 것도 같은데 또 그렇지도 않다. 어떤 나쁜 일에도 반드시 조금쯤 좋은 구석이 있고 그것은 주인공들이 집으로 돌아올 때 발걸음을 가볍게 한다. 불운을 곱씹으며 울며불며 절망에 추락하는 인물은 없다. 어떻게든 그들의 삶은 계속되고 예쁜 구석이 있다.


그렇다고 해서 그의 이야기가 가볍기만 한 것은 아니다. 미국에 이민 와서 알콜중독으로 고생하다 원가족에게 돌려보내져 설명할 수 없는 죽음을 맞게 된 엄마를 둔 아이는 자신의 내면에 차오르는 슬픔을 부정하다 어느 순간 그것이 눈물이 되어 넘쳐 흐르는 것을 어쩌지 못한다. <You are happy?>는 페미니즘은 설득하거나 설득당하는 것이 아니라 엄연히 존재하는 것들에 눈을 돌리지 않을 때 저절로 우러나올 수 있음을 보여준다.  가정주부가 주변의 여자들에게 당신은 진짜 행복하냐,고 묻는 행위 자체가 일탈로 받아들여지는 사회가 아직도 이 지구상에 엄연히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보는 순간 그것은 논리나 정당화를 넘어서는 현실의 조각이 될 수 있음을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삶을 여행으로 비유한 첫번째 이야기로 다시 돌아온다. 늙은 남자는 새로운 사랑을 시작한다. 부끄럽기도 하고 불확실하기도 하다. 그러나 문득 그는 그의 낡은 자동차가 부식된 모습에서 자신과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의 인생을 본다. 우리도 그와 같다,고 느끼니 별 거 있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다시 사랑하는 그 여자에게 노크한다. 왠지 그래도 될 것 같다,는 느낌을 받는 그 과정에 절로 설득된다. 무언가를 갑자기 결행하게 될 때, 그것은 아주 사소한 깨달음이나 전환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삶이 인생이 시간에 잠식당해 결국 사라지는 것임을 깨닫게 되는 순간에서 다시 앞으로 걸어나가게 되는 그 과정이 바로 하루 하루가 연결되는 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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