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투표를 했다. 2002년 12월 9일 16대 대통령 선거를 하고 온 나는 취업 초년생이었다. 한창 마음 고생을 하긴 했지만 어렵게 취업이 된 상태였다. 전공과는 무관한 곳이었다. 적응이 쉽지 않았지만 어른들은 많이들 도와주려 애썼다.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되던 날 지지자들은 노란 옷을 입고 대통령 당선자 부부를 둘러싸고 노란 풍선을 흔들었다. 잠드는 마음이 왠지 신이 났다. 뭐라도 가능하고 어떤 일도 헛된 공약이 되지 않을 것 같았다. 내 손으로 하는 행위가 실효를 거둔 느낌은 유일하고 소중했다.


2017년 오늘, 나는 예정되지 않은 날짜, 예기치 않은 곳에서 다시 대통령을 뽑게 되었다. 솔직히 끝까지 갈등했고 확신이 없었다.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는 누구나의 지향이자 소망이지만 현실과 자주 부딪혀 학습된 무력감을 끌고 오곤 한다. 아이들은 신이 났다. 아이들이 살아갈 내 나라는 요즘 흔들린다. 미국도 중국도 일본도 우리 나라의 중요한 의사 결정에 영향을 줄 수는 있지만 마치 그들이 주체이고 우리는 객체인 듯한 요즘의 상황이 더없이 서글프다. 이 혼란을 뚫고 나갈 뚝심 있는 위정자가 나타나 다친 우리들의 마음과 떠나버린 우리의 아이들의 마음을 다독여 주고 다시 꿈을 꾸고 이상을 믿고 빛의 힘을 의심하지 않을 수 있도록 할 수 있을까? 헛된 말장난과 사익에 휩쓸리며 또 국민을 기만하지는 않을까? 나는 이미 너무 쇠락해버린 것인지 이제는 노무현 대통령을 내 손으로 뽑던 그 이십 대의 희망과 패기를 나의 것으로 가져올 수 없다.



아이들의 세상은 거대하고 신비하다. 어른들의 세계는 복합적이지만 점점 아이들의 세상이 가지던 빛이 어떤 무력감, 절망, 좌절, 타협으로 어둠에 먹힌다. 그것은 사는 문제로도 설명되고 현실의 한계로도 규정된다.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그 모든 선, 희망이 전부 거짓은 아닐지라도 살며 살아가며 상당 부분 점점 그것이 희미해지고 뒤로 물러나고 때로 타협하게 될 것임을 우리는 경험으로 안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늙어 죽을 때까지 젊은 세대를 자라나는 아이들이 살아갈 공간을 의식하고 의사 결정을 하고 그들의 희망과 그들의 꿈을 보호해 주고자 하는 그 지향점을 포기하지 않는 어른이 되고 싶다. 놀이터에서 손주 앞에서 평균대 위에서 균형을 잡으며 웃음을 터뜨리고 함께 미끄럼틀을 타는 노익장을 과시하던 어느 할아버지의 눈빛을 닮은 그런 노인이 되고 싶다. 타락하거나 타협에 젖거나 탐욕 그 자체와 늙음을 치환하고 싶지는 않다.


그래서 투표를 했고 투표 결과를 기다리고 새로 당선된 대통령이 만들어 갈 우리나라를 기대하려고 한다. "다 똑같아. " , " 다 나빠."는 움베르토 에코가 했던 농담처럼 죽는 그 순간에 해도 늦지 않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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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4-30 15: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들의 미래를 걱정하는 어른들이 있는 반면에 권력자 한 사람의 안위를 걱정하는 철없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후자는 어른이라고 부르기에 부끄럽고 어울리지 않습니다.

blanca 2017-05-02 02:08   좋아요 0 | URL
사람의 특성을 개개인별로 보는 것보다 연령별로 파악하는 것이 더 전형화하는 데 쉽다는 의견도 있더라고요. 권력이라는 게 주어졌을 때 그것을 사적 경계 안으로 가지고 오지 않는 지도자를 기대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