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지 않은 세월 국어도 나름대로는 열심히 공부했고 영어는 꾸준히 노력한 것 같은데도 아직 나는 들인 시간에 비해 두 언어에 서툴다. 잘 기억나지 않는 단어들, 헷갈리는 표현들, 확신이 서지 않는 문장들, 때로는 상대가 한 말을 재깍 알아듣지 못하고 확인한다. 숫자와 기계 앞에서는 자신이 없어도 언어 앞에서는 그보다는 좀 더 당당해지고 싶은데 소망과 기대만 부풀어 오르다 한번씩 바람이 빠진다.
쉰일곱의 저자가 뒤늦게 사랑에 빠진 대상은 모국어인 영어가 아닌 프랑스어다. 하지만 뒤늦게 그가 미친 듯이 프랑스어에 쏟아 부었던 열정은 기대 만큼 효율적이지 않았다. 일 년이 넘게 프랑스어에 투자된 시간은 그가 학창시절 제2외국어로 공부했던 경험을 자양분 삼아 대단한 대미를 장식해야 할 것 같은데 정작 그의 펜팔 친구인 프랑스 여인과 막상 대면했을 때에는 기대와는 달리 아주 간단한 대화조차 제대로 진행되지 않는다. 그는 자신의 고군분투 외국어 학습 체험기의 마지막을 화려하게 장식하고 싶은 욕망 앞에서 진솔해지기로 했다. 결과는 실망스러웠다. 하지만 그가 프랑스어에 쏟아부은 사랑은 그 사랑 그 자체만으로 무언가 더 나은 것을 남겼다. 그는 달라졌다. 프랑스어를 배우는 과정에서 무너지곤 했던 몸도 이제 가속도로 노년을 향해 하강곡선을 긋고 있던 인지능력도 그의 프랑스어를 향해 걸어갔던 노정에서 분명 더 나은 지점으로 나아가는 도약의 흔적을 남겼다. 그래서 그가 기대했던 것만큼은 아니었어도 무언가 열정과 사랑을 가지고 투자했던, 소모했던 그 시간들과 정력을 그는 헛된 것으로 폄하하지 않는다. ' 나이들어 외국어라니' 는 반문이나 의심이 아니다. '나이듦'과 그것을 표현하는 언어는 교묘하게 닮으며 서로를 빗겨간다. 만났다 헤어졌다 해서 그것이 일생의 실패는 아니다. 사람을, 사물을 만나는 과정에서 흔들리는 그 숱한 지점들은 흔적을 남기고 우리는 그것을 밟고 생을 지나간다.
책꽂이에 아직 읽지 않은 시집 한 권은 연년생 동생에게서 선물 받은 것. 한달음에 다 읽어버렸다. 시인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태어나는 것이라는 진부한 이야기는 언제나 실감을 남기니 더욱 진부해진다. 맞는 말이니 체감하는 말이니 반복되는 것이겠지.
나의 생애는
모든 지름길을 돌아서
네게로 난 단 하나의 에움길이었다.
-나희덕 <푸른 밤>
나에게 '너'는 말과 글이기도 한 것같다. "모든 지름길을 돌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