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회가 되면 산티아고에 가고 싶다고 생각했다. 여행을 즐기지도 여행을 많이 가본 것도 아니지만 시간과 체력과 각종 여건이 맞아떨어진다면 완벽한 순례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느 지점을 얼마간은 시간에 책임에 겉치레에 쫓기지 않고 타닥타닥 하염없이 걷는 꿈을 꾼다. 그러다보니 산티아고 순례에 관련한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찾아 읽게 되었다. 도보여행가 김남희의 책도, 또 다른 많은 이들의 책도 산티아고라는 공통 여정이라는 이유만으로 만났었다. 그러다 보면 헷갈리게 된다. 내가 이 순례기를 읽었던가? 분명 이 사람의 이야기는 처음인 것도 같은데 왜 이리 낯익지? 그렇다면 분명 그건 재독이다. 이 책도 시작 전에 좀 망설여진 이유가 그러했다. 읽었던 건 아닐까? 나이가 든다는 것은 이제 처음일까봐 두려운 것이 아니라 반복일까 지레 물러서는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아니었다. 책 날개에는 중년에서 노년으로 넘어가는 듯한 남자가 무언가를 앉아 메모하는 사진 아래 그의 화려한 이력이 소개된다. 현직 의사, 역사가, 외교관, 게다가 공쿠르 상 수상 소설가. 마치 로맹가리를 모사한 듯한 경력이다. 여기에 하나 더 얹어 현직 의사. 하지만 그의 문장은 그의 이력을 노출하려 하지 않는다. 담담하고 담백하고 솔직하고 그러면서도 언뜻 비치는 아름다운 재기가 있다. 또 그의 산티아고 순례는 진부하거나 그 어느 다른 사람들의 것과 닮지 않았다. 젊은 여자 앞에서 조금 흔들리기도 하고 너무 힘들어 지하철을 타기도 하고 길에 실례를 하기도 한다. 그러면서 또 그러한 자신의 모습에 대하여 느끼는 어떤 어색함, 부끄러움이 과장되어 있지도 미화되어 있지도 않다. 종교적으로 감화되려는 찰나 미끄러지는 모습도 솔직하다. 순례의 길이 끝나고 현실과 만나는 지점에서의 실망감도 생생하다. 무언가 자신에게서 떠나려는 순간 집착하게 되는 역설에 대한 고백도 진솔하다. 순례가 끝나고 그의 존재는 더 가벼워지고 본질적이 된다. 그러한 그의 이야기를 듣는 과정도 그의 그러한 탈피에 조금은 가까이 다가가게 되는 착시를 준다. 잠이 오지 않는 밤, 혹은 어쩌다 내일의 고민의 무게로 뒤척이다 거실등을 켜고 빈 공간을 고독하게 응시하는 순간, 이 사람의 순례기는 분명 위로가 될 것이다.

 

 

거울을 보면 나는 조금씩 늙어 있다. 세월의 흔적과 무관한 동안은 어쩐지 좀 괴이쩍은 구석이 있다. 아무리 젊어보여도 내가 그 나이 자체로 돌아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생기발랄하던 동생은 어느 날 만나면 삶에 지친 구석에 자신의 생기를 차곡차곡 접어 놓았다.  그렇게 다 나이가 드는 것인가 보다. 점심으로 우동을 먹으며 나와 그 동생은 나이듦의 무게를 이야기했다. 생존은 낭만으로 감침질하기 어렵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순간, 잘 나이드는 것의 어려움을 실감하게 된다.

 

 

푸른 밤 동안에는 하루의 끝이 결코 오지 않을 것 같다. 푸른 밤이 끝나갈 즈음이면(끝은 오게 되어있고 반드시 온다) 한기와 함께 혹시 몸이 아픈 것일까 하는 우려가 찾아든다. 그리고  사라지고 있음을, 이미 해가 짧아지고 있음을 , 여름이 떠나버렸음을 깨닫는다.

-존 디디온 <푸른 밤>

 

 

 

 

 

 

 

 

 

 

 

 

 

 

 

일흔다섯의 작가는 자신의 나이에 새삼 놀란다. 젊은 시절 어울리던 것들, 즐기던 것들을 더이상 걸치거나 할 수 없음을 인지하게 되고, 스스로에게 진지하고 때때로 혼란스러워했던 외동딸의 결혼식은 엊그제 같은데 딸은 신혼 생활도 즐기지 못하고 투병하다 이미 이 세상에 없다. 상실, 노화, 소멸에 관한 이야기는 거기 반드시 그렇게 있음에도 응시가 불편하다. 작가의 투명하고 예리한 시선은 그 결을 그래도 훑으며 따라간다. 이제 도저히 부정할 수 없는 것들이 나의 것이 된다. 분명 머리로는 다 알고 있다. 하지만 그러한 것들을 항상 감지하고 의식하면 지금, 여기에서의 삶들은 무너진다. '나'는 분명 시간을 통과하며 내가 가정하는 젊고 생기 있고 건강한 '나'로부터 멀어져 결국 늙고 소멸하는 타자로부터 잠식당하며 자연으로 돌아가게 될 것이다.

 

유명하고 위대한 작가도 예외가 될 수 없다. 딸을 잃고 남편을 잃고 이제는 건강하고 정력적이던 일상의 모든 사소한 일들을 자립적으로 해 나가가던 그 모습에서도 멀어져 간다.

 

생과 시간과 죽음을 통합하는 일은 절대 명제인데 폄하되고 지나치게 신비화되는 역설이다. 시간을 통과하며 삶을 순례하는 우리들은 결국 아무것도 모른 채 그 길들을 통과하고 종점에 이르고 말 것인가, 하는 절망 앞에서 그래도 사는 일은 지엄한 것으로 여겨져야 견딜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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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7-02-05 18: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동생분과 우동을 드시면서 나누는 대화 중에도 ˝생존은 낭만으로 감침질 하기 어렵다˝ 같은 멋진 말씀을 하시는군요. 저라면 일부러 머리를 짜내도 만들어내지 못할 표현을요.
저도 산티아고 기행 관련책만 몇 권을 읽었는지 몰라요. 기회 되면 가리라...
그런데 기회가 그냥 되지 않더라고요. 직접 제가 그 기회를 만들지 않는한.
그러면서 여전히 저 책에서 눈을 못떼고 있네요.

blanca 2017-02-05 19:47   좋아요 0 | URL
나인님, 말로 나눈 것은 아니고요. ^^;; 말보다는 돌아서서 곱씹다 보면 이런 저런 생각들과 느낌이 정리되는 것 같아요. 저도 꼭 가보고 싶은데 저질체력이라 감당이
될까 싶기도 하고... 아직은 애들이 까마득하게 어려 하루도 온전히 시간 내기가 힘들어 아직은 꿈만 꾸는 중이랍니다. 스페인은 알함브라 궁전부터 가보고 싶은 곳이에요.

여왕흰이 2017-02-16 01: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생기발랄함이 나이듦의 무게가 날라와 가슴에 콕 찍히네요.

blanca 2017-02-25 03:33   좋아요 0 | URL
나이, 시간이라는 게 참 신기하고 신비로운 듯...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는 남처럼 낯설게 느껴지게 만드는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