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사랑한 소설들 - 빨간책방에서 함께 읽고 나눈 이야기
이동진.김중혁 지음 / 예담 / 2014년 12월
평점 :
품절


때로 이런 상상을 한다. 겨울밤이었으면 좋겠고 아주 따뜻한 실내, 밤새 나는 듣기만 해도 아무렇지도 않을 그런 분위기. 살아온 이야기도 괜찮고 읽은 책 이야기면 더욱 좋을 것같다. 졸면서도 듣고 잘 듣고 있다고 이따금씩 되도 않는 이야기를 덧붙여도 되는 그런 정경. 하지만 되도록 너무 심각하거나 너무 진지하거나 너무 졸렬한 이야기는 아니었으면.

 

... 하는 바람을 십분 충족시키는 그런 책이었다. 영화평론가 이동진과 소설가 김중혁의 팟캐스트 <이동진의 빨간책방>에서 선별한 소설 일곱 편을 둘러싼 그들의 이야기다. '빨책방'은 정말 책 이야기만으로 이루어진 책 전문 팟캐스트다. 매번 챙겨듣지는 못하고 가끔씩 관심있는 책을 다루었을 경우 골라 듣는 정도였다. 영화평론가라지만 독서의 스펙트럼이나 깊이가 여느 작가 못지않은 이동진의 매끄러운 진행과 유려하지 않은 듯한 말투 뒤에 슬며시 작가다운 촌철살인과 성실하게 언어를 차곡차곡 쌓고 표현하는 김중혁의 착한 반응 들은 때로 두 사람의 친밀감에서 비롯된 재치 있는 위트와 더불어 정말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재미를 한껏 주는 방송이다. 서문에도 나오지만 '독서'는 분명 아주 사교적인 행위는 아니다. 아니, 고독한 일이다. 이것에 소통이 덧대어질 때 느낄 수 있는 즐거움은 분명 기대이상이다. '읽는 일'을 마치 여러 사람과 생각과 느낌을 나누고 친밀감을 나누는 일로 확장할 수 있는 것처럼 느끼게 해 주는 것은 이 방송의 최대 매력일 것이다. 미처 읽지 못한 책도 아니 취향의 문제로 영원히 읽을 일이 없을 것 같은 책에 관한 이야기도 괜찮다. 지루하지도 낯설지도 않게 이 두 사람은 다독여준다.

 

특히 이언 매큐언의 <속죄>는 그저 주어진 대로 읽기에 급급해 소설의 깊이와 완성도에 분명 경도되었던 기억은 나지만 그 이상은 아니었던 나에게 다시 한번 이 아름다운 사랑과 속죄의 드라마를 복기하며 제대로 깊이 있게 그것을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이 좋은 소설을 너무 늦게 읽어 배신감까지 느꼈다는 중혁 작가의 말, 만약 이 소설을 아직 안 읽었다면 여기서 이 책을 덮고 무조건 읽기부터 하라는 이동진 평론가의 추천.  소설의 다양한 층위와 더불어 작가 이언 매큐언의 이력, 영화의 한계 들에 대한 이야기는 <속죄>를 미처 시작하지 못한 사람들에게도 이미 시작해버린 사람들에게도, 이미 끝낸 사람들에게도 더 풍요로운 읽기를 가능하게 할 것같다.

 

두 번째로 언급된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그 어떤 추천사보다 화려하다. "사랑과 연애를 다룬 소설 중에서 이 정도로 통찰력 있는 소설도 드물 것 같다."는 이동진의 첨언은 재미없는 부분은 건너뛰어도 무방하다는 독법의 제시와 더불어 당장이라도 이 책을 구하러 뛰어 나가고 싶게 만든다.

 

줄리언 반스의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는 '회한의 정서'로 돌아보는 과거로 마지막에 거론된 하루키의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와도 만나는 부분이 있다.

 

<샐린저 평전>을 읽은 중혁 작가가 작가의 은둔을 고집했던 생애와 종국에는 그를 그러한 고립으로 몰아 넣어 버린 <호밀밭의 파수꾼>을 함께 이야기한 것은 작품이 결코 작가의 삶에서 떼어내어 독립하여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며 또다른 읽기의 지평을 열어준다.

 

소설과 영화의 완성도 모두 높았다고 평가되는 <파이 이야기>는 각각 작가와 감독의 색채에 대한 진지한 접근으로 그 미묘한 차이와 색깔, 강점을 눈에 보이듯 보여준다.

 

읽지 않은 책이라도 다 읽어버린 책이라도 무방하다. 읽지 않은 책에 대하여도 약간의 스포일러만 감수한다면 전혀 낯설지 않게 데면데면하지 않도록 충분히 배려해 주고 이미 읽은 책에 대해서는 지루하지 않도록 다양한 시각, 층위에서 조곤조곤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말 그대로 참 좋다. 에세이만 읽은 하루키에 대해서도 '소설도 어디 한번'을 가능케 하는 저력을 갖추었으니 믿고 따라가기만 해도 참 유쾌한 시간이었고 할 수 있다.

 

다 차치하고 이렇게 진지하게 이렇게 장시간 읽은 책에 대하여 이야기할 수 있는 자리, 지면이 죽지 않을 거라는 희망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안심이 되는, 그래서 마음이 한없이 노골노골해지는 그러한 위안이 되는 책. 겨울밤에 읽으면 따악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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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장소] 2014-12-29 06: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직 저는 신형철의 팥케스트를 간간히 듣고 있을 뿐 빨간 책방까지는 진입을 못했는데...그냥 공허한 공간에 사람의 소리가 노래가 아닌..목소리가 필요할 때
좋더군요. 나즉 나즉 한 것은 그것대로 매력이고요..언젠가 청취..하겠습니다.잘 읽고 배워 갑니다. 포근한 새 해 맞이
하시기를 바랍니다ㅡ(^-^)v

blanca 2014-12-29 12:48   좋아요 0 | URL
그장소님, 저는 아직 신형철의 팟캐스트는 들어보지 못했어요. 맞아요. 라디오에서 그냥 나직나직 사람 목소리만을 듣고 싶을 때 이런 책 관련 방송이 참 위로가 되지요. 덕분에 포근한 새해를 맞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고마워요^^

세실 2014-12-29 08: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참을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정치적 상황 건너뛰고 읽으면 완벽한 러브스토리죠. 저도 재미없는 부분은 건너 뛰었어요^^
<속죄> 읽고 싶네요.

blanca 2014-12-29 12:53   좋아요 0 | URL
세실님, 저는 쿤데라 책은 <불멸>만 읽어봤어요. 그래서 더 호기심이 일어요. 그런데 이 책에서도 그렇고 세실님도 그러시고 재미없는 부분이 있다니 ^^;; 좀 걱정이 되네요. <속죄> 정말 강추입니다! `소설은 죽지 않았다!`고 보여주는 작품 같아요.

섬사이 2014-12-30 02: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동진의 빨간 책방, 저도 매번 챙겨 듣지는 않지만, 가끔 지루한 집안일을 하게 될 때 켜놓고 듣곤 해요.
얼마전에 <다섯째 아이>를 읽고나서 빨간 책방을 들었는데,
제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부분과 다른 시각을 알게 되어 놀랍고 기뻤어요.
<속죄>, 꼭 챙겨 읽어봐야겠네요. ^^

blanca 2014-12-30 14:53   좋아요 0 | URL
아, <다섯째 아이>도 다루었군요. 아무래도 방송이 분량이 있고 그냥 흘려듣기는 힘들어서 시간을 일부러 만들어야 해서 제대로 다 듣지 못해 아쉬워요. 섬사이님, <속죄> 꼭 읽어보세요, 분명 좋아하실 거예요.

2014-12-30 16: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12-31 13: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12-31 14: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12-31 23:50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