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감을 가졌고 친밀감을 서로 나누고 있다고 생각했던(착각했던) 그녀에 대한 그 생각이 얼마 전 깨어져 버렸다. 그것은 사실 아주 사소한 문제라고도 할 수 있고 본질이라고도 할 수 있는, 스마트폰에서 비롯된 느낌이었다.

 

그녀는 내 앞에서 쉴 새 없이 휴대폰으로 카톡을 하고 전화를 주고 받고 했다. 마치 소개팅에서 만난 눈 앞의 남성을 차마 노골적으로 거절할 수는 없어 "나는 너한테 관심이 없어", 혹은 "너는 네 타입이 아니야"라고 무언의 시위를 하는 것 같았다. 게다가 나는 여자인데, 아줌마인데 말이다. 그리고 그녀가 청한 만남이었는데 말이다. 그러니 대화는 겉돌고 그마저도 나중에 곱씹어 보면 무언가 상대에 대한 배려나 관심이 부족한 듯한 느낌.

 

집에 들어와 결심했다. 다음에 만나자고 하면 안 만날 테야. 그녀 앞에서 잉여 인간이 된 느낌이었다. 대체 휴대폰이 뭐라고 이렇게도 편하게 단칼에 그렇지만 완곡한 것처럼 눈 앞의 사람과의 만남을 부인해 버리는 것인지. 사람을 만나 사람이 아닌 것으로 거부 당한 느낌은 아주 묘했다. 그녀는 원래 스마트폰을 아주 좋아하는, 아니 좀 더 거칠게 말해 어느 자리에서든 스마트폰에 항상 시선이 가 있는 그러한 사람이었지만 어쩌면 이제 그러한 그녀의 휴대폰에 대한 사랑을 감내할 만큼 그녀가 소중하게 느껴지지 않는 내 감정의 변질과도 관련되어 있겠지만, 여하튼 스마트폰과 그녀는 함께 저 멀리 가버렸다.

 

그러니 이런 나에게 김영하의 포문은 아주 시의적절했다. 하필 스마트폰에 대한 비판이라니. 그것이 빼앗아 가는 '시간'에 주목한 것이 내가 느낀 어떤 배려의 결여, 정의 상실과 일치하지는 않았지만 일맥상통하는 구석이 있어 반가웠다.

 

 

 

 

 

 

 

 

 

 

 

 

 

 

김영하는 스마트폰이 야금야금 좀 먹고 들어가는 '시간'을 부자와 빈자 측면에서 주목한다. 우리는 저도 모르게 2년 약정의 노예로 우리 돈을 지불하며 우리의 시간까지 함께 갈취 당하고 있다는 통찰. 거기에 덧대어 김영하는 이미 가진 자들은 이 점을 직시하고 있고 민감하게 받아들이고 있는데 그렇지 못한 자들은 자신의 시간, 자유까지 스마트폰에 헌납하고도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사람으로 받은 상처를 책으로 푸는 경향이 다분한 나는 내처 읽기 시작한다. 음, 맞아, 맞아. 하며. 지나치게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은 그 중간 지점에서 김영하가 덧대는 텍스트들과 영화와 현실에 대한 분석의 만남은 조금 진부한 구석도 있고 참신한 대목도 있고 하지만 멈출 수는 없는 중독성은 있고, 그랬다. 그러다 가장 좋은 대목을 만났다. '죽음'과 영화 '그래비티'에 대한 김영하식 감상이 만나는 이야기.

 

"죽음은 우리와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생각에 익숙해져라. 왜냐하면 모든 선과 악은 지각에 근거하는데 , 죽음은 이러한 지각의 상실을 의미하기 때문이다."(폴커 슈피어링, <철학 옴니버스> 중) 에피쿠로스의 이야기. 아쉽게도 '그래비티'를 보지 못했는데 우주 공간에서 떠돌며 우리의 그 작아진 그 하찮은 삶들을 조망하고도 결국 그 유한한 삶으로 돌아가는 여주인공의 이야기에서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고 우리의 이 유한하고 이 실재적인 현재의 삶에 집중하라,는 조언을 얻어 듣는 기분은 무언가 아주 장엄한 구석이 있었다. 너무 작고 하찮고 찰나의 것들이라 무의미한 것이 아니라 한층 더 유의미한 순간의 가치를 얻는다는 것은 산다는 것이 가지는 그 미묘한 매력을 보여준다.

 

<안나 카레니나>가 소설가들이 가장 좋아하는 소설이라는 대목, 소설 읽기가 주는 그 입체적이고 생생한 간접체험의 매력을 공들여 이야기한 대목은 다시 한번 그 안나와 안나를 둘러싼 이들의 섬세한 내면 풍경에 대한 묘사에 압도되었던 그래서 다시 소설을 읽기 시작했던 그 시간들을 그립게 했다. 그때 분홍공주는 아기였고 나는 아주 젊었고 아직 하고 싶은 것들이 많이 남아 있었다. 나의 지리멸렬했던 일상과 안나 카레니나의 곡절 많은 삶이 만났던 지점은 분명 아주 의미 있는 것이었다.

 

작가의 말을 읽어보니 작가는 곧 '읽다'와 '말하다'를 낼 예정이라고 한다. 그가 본 것들에 대한 찬찬한 기술, 나름대로의 분석, 감상을 듣다 보니 스마트폰으로 향해 있던 사람의 시선에서 받은 그 어떤 냉정함이 조금 삭여지는 것도 같았다. 따뜻한 소통을 한 것도 아닌데 그러고 보면 무언가를 '읽는 행위'는 여전히 사람을 위로하는 구석이 있어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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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4-09-26 14: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와 함께 있는데 자꾸만 스마트폰을 들여다본다면 그때는 `나와 너`의 만남이 아니라 `나와 너와 그사람`이 만난것 같은 느낌이 들잖아요. 굉장히 서운해요. 그렇지만 이런 저도 누군가를 만나면서 저도 모르게 스맛폰을 들여다보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어요. 생각해보니 엄청 좋아하는 누군가를 만날 때는 스맛폰을 아예 가방에서 꺼내지도 않았던 것 같아요. 그도 그랬고 나도 그랬고요. 지금은 우리 둘다 만나면 스맛폰을 꺼내두는 걸 보니, 우린 상대에 대한 애정이 조금 식은걸까요. 나랑 있는데 또 다른 누군가도 함께 있는 느낌, 결코 유쾌하지 않죠.

저는 김영하에 대해서라면 딱히 별 생각이 없는데 블랑카님께서 김영하의 책을 읽고 쓰신 글은 참 좋으네요. 오랜만에 아주 맛깔스럽게 읽었어요.

blanca 2014-09-26 19:14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 맞아요. 딱 그 표현, 불쾌하다고까지 표현하면 조금 강하고 `유쾌하지 않다`, 그런데 집에 와서 곱씹어 보면 속상한 --;; 저는 김영하의 소설 중 어떤 것은 좋아하고 어떤 것은 그렇지 않고 그러면서도 그의 신간은 왠지 챙겨보게 되는 그런 정도랍니다.

하이드 2014-09-26 16: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고 있는데, 김영하를 별로 안 좋아해서 그런지, 잘 쓴 소설은 읽겠는데, 에세이는 진도 안 나가네요.

blanca 2014-09-26 19:16   좋아요 0 | URL
하이드님, 지금 읽고 계시는군요. 저도 생각보다 분량도 적은데 잘 안 넘어갔던 같아요. 이것 다 읽고 애거서 크리스티 여사님 것 읽고 있는데 이것도 신기하게 안 넘어가네요-- 차라리 정말 좋아했던 책들을 다시 한번 읽을까, 이러고 있답니다.

icaru 2014-09-27 13: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람으로 받은 상처를 책으로 푸는, 이라니... 동질감 엄청 느껴요 ㅎ
지금, 바로 이 순간,, 김영하의 이 책을 읽지 않은 저조차도 맞아, 하는 느낌이 들게 써주신 글 감사해요~

이건, 딴소리 친밀감이 깨져버렸던 지인 분, 혹시 아이 친구 엄마 아닌가요? ㅎ 아 저도 비슷한 경험이 최근에 있었더래서요 푸흡...

blanca 2014-09-27 16:59   좋아요 0 | URL
icaru님, 자리 까셔도 되겠습니다. 뜨끔 했네요. ㅋㅋ

세실 2014-09-28 20: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영하를 안좋아하는 분도 있구나......
전 김영하를 좋아합니다^^ 살인자의 기억법처럼 건조하면서 담백한 문체를 좋아합니다. 반전도 좋았구요^^

만남에서는 최소한 스마트폰을 들여다보지 말자고 다짐하고 있습니다.
파울로 코엘료는 상대방 앞에 두고 스마트폰만 들여다보는 사람을 좀비라고 표현했어요. 딱 맞죠?
저도 스마트폰만 들여다보는 사람과는 상종하기도 싫어요~~~~

blanca 2014-09-29 12:30   좋아요 0 | URL
파울로가 그런 애기를 했군요! 저는 `살인자의 기억법`은 아직인데 읽어보고 싶네요. 저는 김연수 작가와 김영하 작가의 소설은 칠십프로쯤, 산문은 다 찾아 읽게 되었어요. 아직 소설에 대해서는 어떤 아쉬움들이 개인적으로 남아서요. 애정하는 작가들임에는 분명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