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예 쓰지 않는 것보다 후지게 쓰는 것이 두려웠다."는 발언은 상당히 도발적이다. 괜히 찔리는?  쓰는 일의 무게를 함부로 폄하하지 말라는 듯한 그 엄중함을 의식하라고 은근히 충고하는 발언처럼 느껴지지만 발화자가 77세가 되었고 이미 마흔 권 이상의 책을 출판한 대작가라는 배경을 알고 나면 가만히 고개가 끄덕여진다. 그리스 태생의 스웨덴 작가 테오도르 칼리파티데스의 이야기다. 생소한 이름이지만 스웨덴의 국민 작가의 위상인 듯, 심지어 고국인 그리스에는 그의 이름을 딴 길이 있다고 한다. 스무 살 이후에 스웨덴으로 이주하여 모국어가 아닌 스웨덴어로 문학적 성취를 이루었다니 그 노정이 짐작이 간다.



                              




언뜻 작가라기보다는 잘 늙은 헐리우드 배우 같은 이미지다. 이백 페이지가 채 안 되는 작가의 푸념은 사실 절필 그 자체가 핵심은 아니다. 창조의 샘이 고갈된 것에 대한 당혹감, 타성과 관성에 젖은 작가로서의 권태에 대한 고백은 사실 쇠락해가는 고국 그리스로의 그리스어로의 귀환의 발단이기도 하다. 잃어버린 것 그 자체에 대한 이야기라기보다는 잊어버린, 잃어가고 있는 것들을 찾아 더듬어 나가는 과정에 대한 잘 압축된 형상화다. 문장이 시적이면서 어렵지 않고 잘 읽힌다. 작가 자체의 저력과 번역가의 협업인 듯 쏙쏙 잘 들어온다. 


오늘밤 죽는다면 어떻게 될까? 이 불빛과 나무들을 지난 수년간 봐왔지. 죽더라도 그것들이 생각날 거야. 삶이란 꿈이 아니거든. 시간과 빛 사이의 그림자일 뿐이지.죽음은 아무것도 앗아가지 못한다니까.


"죽음은 아무것도 앗아가지 못한다니까." 이 문장이 너무 위안이 된다. 죽음으로 인한 허무주의는 너무 횡행하니까. 반복, 중복, 중첩은 이미 충분하니까. 이런 신선한 시각이 상쾌하다. 그러니 그는 일흔이 훌쩍 넘어 모험을 강행한다. 고국으로의 물리적인 귀환과 더불어 스무 살 이후로 문학적인 언어로는 한번도 활용해 본 적이 없는 그리스어로 이 자그마한 책을 쓰기로. 이 책은 이민자로서 그가 고국에 느끼는 부책감, 미안함에 대한 보상이기도 하다. 


그가 돌아온 고향 마을의 고등학교 아이들이 작은 원형극장에서 아이스클로스의 비극을 연기하는 것을 보는 그의 눈가는 젖는다. 그의 언어로. 마침표이자 그의 절필에서 그를 끌어낸 소년, 소녀들의 역할은 장엄한 결말이다. 


하지만 마지막 말은 모국어로 하는 것이 가장 좋다.


그의 마지막 문장. 절대적으로 공감한다. 마지막으로 할 수 있는 모국어를 간직하고 있다는 건 대단한 축복이다. 잊지 말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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