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드라마 <다운튼 애비>의 마지막 회를 못 보고 있다. 이제 이 에피소드를 마지막으로 52부작의 크롤리 백작가의 이야기는 막을 내린다. 드라마는 허구지만 드라마 안의 캐릭터들 각각의 삶의 경로에서 벌어지는 만남, 이별, 상실, 죽음, 해체는 현실보다 더 사실적이다. 태어나 늙고 병들고 죽는 일은 당연한데 새삼스럽다.



큰딸을 칭찬해야 할지 나무라야 할지 모르겠다. 내가 죽음을 받아들일 준비를 하고 성경 외에는 아무것도 읽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있을 때 마치 나에게 내일이 있기라도 한 것처럼 책을 다시 집어 들도록 만든 게 바로 큰딸이기 때문이다.

-클라이브 제임스 <죽음을 이기는 독서> 중




















이 책의 목차 앞에는 "내일은 내가 죽을 차례다."라는 문장이 나와 있다. 저자 클라이브 제임스는 실제 죽어가고 있다. 그리고 이제는 추상명제가 아니라 실제 자신에게 일어날 종결 앞에서 책을 읽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프로이트는 인간은 누구나 마음으로는 자신의 불멸을 믿는다지만 클라이브 제임스는 프로이트의 그런 단정에 저항하고 있다. 그는 강박적은 아니지만 독자가 잊을 만하면 자신의 죽음을 상기시킨다. 그런 그가 읽는 헤밍웨는, 필립 라킨은, 콘래드는 농밀하고 간절하고 급박하고 유의미하다. 유한 앞에서 읽는 일은 언뜻 무의미고 사치스워 보이지만 "가장 어른스러운 일, 즉 사라져야 할 시간이 가까워워진다고 해서 모든 것을 이해하고 싶은 아이 같은 충동까지 반드시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라는 그의 이야기는 유한 안에서 무한을 갈망하는 인간 존재의 내재적 모순이 어리석어 보이는 게 아니라 우리 존재, 생 그 자체의 본질임을 상기시킨다. 


책을 읽는 일이 죽음을 이길 수 있을까? 잘 모르겠다. 하지만 죽음 앞에서도 여전히 읽는 일을 계속하는 이야기는 묘한 위안을 준다. 아직 읽을 책이 있고 읽을 수 있다는 건 아직 살아 있는 것이고 내일을 기약할 책을 사들이는 일은 나에게 아직은 영원을 꿈꾸는 게 가능하다는 암시다. 헛되고 헛된 일을 하는 게 사는 일이니 읽는 일은 그것과 더불어 헛되지만 괜찮은 일이니. 이러다가 <다운튼 애비>의 마지막 회는 영원히 보지 못할지 모르겠다. 끝나는 건 내가 끝나기 전에는 도통 적응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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