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립 로스의 부고를 그의 죽음 이틀 뒤에 들었다. 순간 아연했다. 어쩐지 영원히 죽지 않을 것 같은 그런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의 이름은 고유명사라기보다는 보통명사처럼 항상 주변에 맴돌 것만 같은. 하지만 그런 필립 로스도 죽었다면, '나'도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도 당연히 죽을 것이다. 말로 설명하기 힘든 절망감이다. 그는 살아생전 <네메시스>를 끝으로 절필을 선언했다. 대중 앞에서의 강연도 그러했다. 더 이상 쓰는 것의 고투를 견뎌내지 않겠다는 그의 인터뷰는 그래도 그 이야기를 언젠가는 철회하고 다시 펜을 잡을 그 날의 여지를 남기는 듯했다. 필립 로스라면 그럴 줄 알았는데 정말 자신이 스스로에게 했던 약속을 지키고 홀로 있다 죽음의 위기를 느끼고는  911을 부르고 그것을 타고 병원에 갔다 자신의 아버지처럼 연명치료를 거부하고 생전의 필립 로스처럼 죽었다.



















제일 좋아하는 그의 작품들.  그로서는 유일한 논픽션으로 보이는 <아버지의 유산> 표지 사진. 아버지가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보며 그는 아버지가 지금의 자신보다도 훨씬 젊었던 그 눈부시고 강인했던 사진 속의 모습을 응시한다. 삶과 죽음의 그 강렬한 체험과 그 덧없음과 그 처절함을 그보다 더 잘 언어화할 수 있는 작가가 있을까. 아버지가 죽음을 그 자신의 강렬한 삶처럼 절절하게 겪어내는 과정을 묘사한 그의 문장은 가슴에 아릴 정도로 날카롭고 정묘했다.


"Dad, I'm going go have to let you go."

(Patrimony by Philip Roth)


필립 로스가 <에브리맨>에서 묘사했던 것처럼 자신의 아버지에게 했던 마지막 인사처럼 죽음은 "있음에서 풀려나" 

해방되는 것이다. 남아 있는 산 자들도 죽은 자를 그렇게 떠나보내야 할 것이다. 굿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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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18-06-01 12: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blanca님 첫번째 문단이 저의 마음이었어요.
저도 그는 죽지 않을 거라고, 그는 죽음에서 비켜설 거라고,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아요.
911을 부르고 연명치료를 거부하고... 마지막 순간까지 로스는 정말 로스답네요.

blanca님이 제일 좋아하는 작품들이군요. 전, 네메시스를 막 끝냈고, 다시 에브리맨을 읽어요.
굿바이,라고 말하고 싶지 않은데.... 굿바이.... 굿바이...

blanca 2018-06-02 02:43   좋아요 0 | URL
단발머리님, 필립 로스 말년에 그의 전기를 집필하며 함께 시간을 지낸 작가가 있더라고요. 그래서 아마 조만간 그의 전기를 만나게 될 것 같아요. 펜을 꺾는 용기를 낸 그의 용단도 참 그답다는 생각이 들어요. 실제 글을 써보려고도 했는데 잘 안 되니 포기해버렸다고 하는데 필립 로스 기준에 자신의 글이 그 더 이상 마음에 차지 않았나 봐요. 쇠퇴와 죽음을 인정한 그의 용기가 부러워요. 쉽지 않은 거잖아요.

stella.K 2018-06-01 13: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좀 그랬어요.
타계한 나이가 85세라고 하던데 요즘엔 워낙에 장수 시대라 그런지
별로 장수했다는 느낌이 안 들더군요.
그래도 내가 그 나이까지 산다고 하면 좀 그렇더군요.
뭐 그리 오래 사나 싶기도 하고...ㅋ

blanca 2018-06-02 02:45   좋아요 0 | URL
스텔라님, 저도 필립 로스 나이 듣고 그렇게 느꼈어요. 모르겠어요. 참, 살면 살수록 산다는 건 오리무중인 듯. 제가 그 나이까지 살 수 있을지 살면 더 살고 싶을지 어렵네요. 그래도 죽는 건 여전히 정말 무서울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