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책은 아이폰에 다운받아 보기도 하고 킨들로 읽기도 하지만 아무래도 종이책만 못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일단 전자책 서재는 실제 서재처럼 시각화가 어렵다. 서재에 꼭 반듯하지 않아도 손때 묻은 책을 꽂아두는 일은 시간과 공간을 함께 점유하는 일이다. 어떤 기억을 꺼내 보거나 어떤 비교와 대조가 필요할 때 전자기기를 켜 전체적인 그림을 떠올리는 일은 쉽지 않다. 육백여 권의 책을 남기고 나머지를 정리하며 전자책에 집중해보자,던 생각은 많이 흔들리는 중이다. 편혜영의 신간 판형은 정말이지 마음에 쏙 들었다. 세로 판형이 길고 전체적으로 얇고 크지 않은데 품고 있는 자간도 좁지 않고 활자도 보기 시원하다. 이 맛에 종이책을 떠나지 못하나 보다.
내친 김에 킨들 크기와 비교해 보니 거진 비슷하다. 킨들의 최대 단점은 한글책의 절대 부족과 터치감이다. 반응이 한 박자씩 늦다. 활자를 키우고 줄이는 기능과 영문 신간의 접근성은 좋지만 아무래도 나의 영어 실력 부족과 게으름은 서재에 종이책을 쌓는 일과 전자책장에 먼지 앉는 책들을 채우는 일과 별반 차이가 없다. 오히려 더하다. 조금만 읽다 재미가 없으면 별 죄책감 없이 중단하는 경우가 킨들에서 더 많다. 바로 클릭만 하면 결제되는 기능 때문에 막내 아이가 킨들을 가져가 사정없이 결제해 버린 것들 수습하는 과정도 귀찮다. 킨들은 고도의 출판계의 상업성과 문학의 감성을 절묘하게 조합시킨 것 같다. 책을 이렇게 손 안에 다 들어오게 하는 과정을 그저 터치 하나로 가능하게 하다니 일말의 망설임도 차단하는 영리함이다. 그리고 아무래도 쌓이는 책의 물성을 못 느끼니 그저 클릭 하나만으로 전자책 서고는 배가 빵빵해진다.
종이책은 내용의 물화가 아닌데 언뜻 손에 잡히는 한 장이 그 허구에 한 뼘쯤 더 다가가는 것만 같은 착각을 일으킨다. 그러고 보면 나는 아직도 종이책 욕심을 버리지 못하나 보다. 손안에 들어오는 그 단단하지만 부드러운 느낌은 여전히 떨칠 수가 없다. 줄도 긋고 간지도 붙이고 그렇게 이제 남한테 넘기지 못하는 상태로 만들고 나면 마치 나만의 이야기가 되는 느낌은 심한 착각이지만 그 착각조차도 좋다.
이러다 또 전자책으로 가기도 한다. 언제까지나 활자만 내 눈 앞에서 사라지지 않기를 바랄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