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개와 폭우로 음산한 여름밤, 시인 바이런은 문학사에 길이 남을 제안을 친구들에게 한다. 무료하게 실내에 칩거하며 보내기엔 아까운 시간들을 타인이 이미 완성해 놓은 이야기들로 채울 것이 아니라 직접 으스스한 유령 이야기 같은 것들을 만들어 경연을 하자는 것이었다. 마지막에 살아 남은 이야기는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이었다. 19세기 초, 유부남과 사랑의 도주를 감행한 소녀의 상상력이 만들어 낸 어쩐지 처연하게 느껴지는 괴물의 이야기는 시대적 공분을 샀다. 여성 예술가는 프랑켄슈타인 못지않은 괴물로 치부되는 시대였다. 상당 기간 수많은 창작의 영역에서 영감, 모방, 복제의 원천으로 끈질기게 살아남은 괴물은 심지어 그녀의 남편 퍼시 셸리의 것으로 왜곡되기도 했다. 괴물을 낳은 여자는 괴물 그 자체여야 했다.



   















<프랑켄슈타인>을 읽고 나니 대체 이런 인간의 양면성과 내면의 복잡다단함을 투명하고 명징한 언어로 시처럼 묘사한 작가의 삶은 어떤 것이었을까 궁금했다. 대략적인 약력만 봐도 결코 평범치 않은 삶이었다. 21세기에도 시의성을 잃지 않고 디스토피아적인 미래의 전망에서도 소환되는 프랑켄슈타인이 벌써 이백 년도 전에 스무 살도 안된 소녀에게서 태어났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하나의 거대한 서사의 발원점처럼 느껴졌다. 메리 셸리. 그녀의 이름이다. 게다가 그녀의 어머니는 페미니즘의 주창자라 해도 과언이 아닐 메리 울스턴크래프트다. 똑같은 이름의 모녀는 기실 제대로 눈을 마주친 적이 없음에도 딸이 삶 자체로 어머니의 못다 이룬 꿈을 실현함으로써 강하게 결속된다.  이 전기는 그러한 모녀의 일대기를 교대로 풀어나감으로써 시간과 공간의 경계를 해체하여 페미니즘의 견인의 역할을 하게 된 두 여인의 질곡 많은 삶을 생생하게 복원해 낸다. 출산 휴유증으로 채 보름도 함께 하지 못한 어머니와 딸은 격동의 시대에 그 시대의 압력과 불의에 타협하지 않는 삶으로써 만난다. 18세기에 이미 불행한 결혼 생활로 고통 받는 자매가 독립할 수 있도록 독려하고 결혼 제도 밖에서 딸을 출산하고 그 딸을 데리고 삼십 대 후반에 메리의 아버지가 될 고드윈을 만나 사랑에 빠지고 여성의 인권을 남성과 동등한 시점에서 역설하는 책을 펴내 수많은 사람들의 질타와 잔인한 언사를 견뎌내며 여전사처럼 살아나가는 어머니 메리의 삶은 딸이 마침내 남성과 동등한, 아니 어쩌면 한 발 더 나아간 경계에서 만들어 낸 <프랑켄슈타인>의 발원점 그 자체다. 딸 메리가 아버지의 눈을 피해 어머니의 무덤 근처에서 연인 퍼시 셸리와 데이트를 하며 어머니의 책을 함께 읽는 장면은 상상만으로도 도발적이다. 


사랑과 자신이 추구하는 대의 사이에서 괴로워하는 모녀의 모습은 인간적으로 보이면서도 안타깝다. 메리 셸리는 자신의 생살을 찢어내는 것만 같은 자녀의 죽음을 무려 네 번이나 겪어야 했다. 남편 퍼시 셸리의 여성 편력과 계모의 딸 제인 클레어몬트와의 기이한 삼각 관계 또한 지난하게 그녀를 괴롭힌다. 혈연으로 얽힌 관계도 아닌 이 두 자매의 삶이 끊임없이 연결되는 지점도 흥미롭다. 독립적인 삶과 여성의 인권에 대한 깊은 이해와 지지, 투신에도 사회에서 전방위로 가하는 압박과 비난, 배척은 두 모녀에게 깊은 상실감과 우울감을 남긴다. 상흔은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 페미니즘은 갑각류의 갑옷이 아니었다. 자신을 던져 인간의 근원적 존엄함에 대한 이해와 공감을 결여한 사회를 설득하려 했던 모녀의 희생과 노력은 결국 후세가 걸어갈 자양분이자 숙제가 되었다.


어머니도 딸도 자신들의 숙원이 자신들의 세대에서 완수되지 못할 것임을 예견했다. 항상 후세를 의식했고 뒤에 올 시대를 기대했다. 서로의 기억과 서로에 대한 희망은 작고 만만한 것이 아니었다. 메리는 메리를 기억하고 사랑하고 신뢰했다. 그리고 그 근저에는 인간이 성차를 떠나 동등하게 존엄하고 행복할 권리가 있음에 대한 깊은 자각과 이해가 있었다. 


이 어마어마한 두 생애를 현재의 것에 버금가게 복원해 낸 작가의 노력과 그 생애에 대한 깊은 애정과 경탄이 배어나오는 활자들이 경이롭게 느껴졌다. 죽음은 많은 것을 파괴하고 지워버리지만 끝내 죽음도 지고 마는 것이 있음을 의식하게 만드는 책이었다. 
















으슬으슬 비가 내리는 비로 계속 된 실내 생활에 진력이 날 대로 나 불곁에 모여 앉은 바이런, 퍼시 셸리, 메리, 포리도리, 클레어는 메리 셸리가 악몽에서 세기를 넘어 영생을 누릴 프랑켄슈타인을 마침내 창조하게 될지 예감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 날의 그 자리에 살짝 동석해 보고 싶다. 아직 다 저마다의 삶의 고통으로 지치기 전, 빛나는 청춘들은 위대한 창조의 현장에 증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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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장소] 2018-04-04 23: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글 읽다 으슬으슬 등 뒤가 썰렁하게 느껴졌어요 ! ^^ 이미 완성해 놓은 글을 읽는 1인이..

2018-04-06 13: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4-07 02:51   URL
비밀 댓글입니다.